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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나는 내 온 생애를 돌아보며 1,200 페이지의 글을 쓰고나서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글을 마치며
내 기억과 일기, 편지들을 토대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는 몇 달간 나는 과거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었다. 때로는 가슴이 저리도록 아프고 슬픈 기억도 있었고, 때로는 마음 따뜻해지도록 행복한 기억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은 모두 내 인생이었으며, 그 시간동안 내가 살아온 발자취는 되돌릴 수도 없고 다시 살 수도 없는 것이기에, 설령 부끄럽고 후회스러워도 감추거나 채색하고 싶지 않았으며,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돌아보고 더듬어보며 기억하고 싶었다.
지나온 날들을 회상할 때, 물론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운 날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부끄럽고 후회스럽고 화가 나고 한스럽고 원통한 날들이 더 많았다. 할 수만 있다면 되돌아가서 다시 살고 싶었다. 정말 과거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서 살아보고 싶었다.
내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안타깝고 원통하게 생각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어머니의 참혹한 죽음이다. 내 인생은 어머니가 살아계시던 날과 어머니의 죽음 그 이후로 나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머니만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았던들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내 인생을 평가할 때 그렇게 불행하다거나 만족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죽는 날 까지,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장 부끄럽고 죄스럽고 고통스럽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인생이 온전하지 않고 반쪽 인생을 산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1983년 4월 30일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시절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리라.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과 어머니를 내가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사실만을 제외하면, 나는 착하고 좋은 아내와 훌륭한 딸들과 더불어 지금까지 더없는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고 자부한다. 이것은 물론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인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잃었으나 그녀를 잃지 않았고,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과 지혜로운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의 행복한 가정을 일구었다.
돌아보면 이제 우리는 재산도 모았고, 아이들도 훌륭하게 자라났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해보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해가며 잘 살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욕심도 별로 없고 만족한다.
사람의 인생을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가, 나는 이 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학식이나 지위? 명예? 부(富)? 권력? 성취? 아니면 사랑?
어린 시절 나를 일깨워 준 소중한 책인 「새 세대의 진로」에서 이은상 시인은 “단순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누구에게나 존경을 받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고 누구에게나 신임을 받아서 안심하고 사귈 수 있고 안심하고 같이 일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무엇으로서의 성공이라고 할 것인가? 나는 그를 ‘인간으로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르고자 한다.”고 말했다. 나는 시인이 말하는 인간으로서 성공한 사람이고 싶었다.
사람이 일평생 살면서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또한 그렇게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내 아내, 내 아이들에게 만이라도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내 아내로부터 내가 좋은 남편이었다는 말을 듣는 것, 그리고 내 아이들이 우리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였다고 말해주는 것. 그것이 더없이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이라는 것을 내 가슴으로 믿으며 나는 떠나고 싶다.
내가 그녀를 만나던 시절의 그 황홀한 기억과 그녀를 만나 격렬하게 빠져버린 사랑의 열병 같은 것은 언제나 나를 전율케 한다. 그것은 뜨겁고 강렬하고 매혹적인 고통 같은 것이었으며 그 역사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불덩이같이 뜨겁기만 했지 분별력도 없었고 현실을 외면한 채 자학할 뿐이었다. 이런 나의 중심을 잡게 하고 넘어지면 끊임없이 일어서게 한 사람은 그녀였다.
그런 그녀도 마침내 나에게 실망하고 지쳐서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그녀가 1977년 7월 26일에 내게 보냈던 마지막 편지의 그 구절을 늘 생각했다. 그녀는 말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렇게 말해주길 바랬답니다. 「그대의 삶 그 전부를 더없는 연민과 아픔으로 껴안는 용납의 두 팔, 아직은 내 힘이 온전치 못하나 어차피 나는 너를 바라고 있다. 아까운 내 물건을 찾아오듯이 언젠가 기필코 너를 데려와서 내 속에 영원히 안주케 할 것이다」라고...그러나 아니었죠. 어긋났죠. 마지막 또 한 번.”
나는 그 편지를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슬픔에 내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가, 그때부터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다시는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그때 이후 진정 그녀가 말한 그대로 살아왔는가, 글쎄 잘 모르겠다. 평가는 그녀가 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나는 그녀를 만나 사랑을 느끼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녀에게 진실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녀와 살면서 그녀를 실망시키고 낙담케 하고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한 적은 많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아내에게 가장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은 아기를 두 번이나 자연유산하게 한 일이다. 이 점은 내가 평생 아내에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사는 원인이 되었다. 나는 그래서 더욱 아내의 몸에서 태어난 우리 딸들이 소중하고 감격스럽다.
그러나 이 점만 제외한다면 나는 아내를 향한 마음에 거짓이 없고 늘 진실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내를 향해 부끄럽지 않게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아내는, 아무리 아내가 좋은 길을 가르쳐주고 내조를 잘하려고 하여도 세상 남자들은 대부분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듣지 않는데 당신은 그래도 내 말을 따라 주었지 않느냐, 그 점에서 당신도 대단한 사람이다. 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뻤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해주는 아내가 고마웠다.
하지만 만일 아내가 그저 내 말에 순종만 할 뿐 아무런 방향제시도 조언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가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듣지 않는 가부장적인 남편이었다면 아마 우리의 인생은 지금보다 훨씬 고생스럽고 불안정 했을 것은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똑같이 서로의 말을 존중했고, 서로를 믿었으며,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사랑하며 우리의 인생길을 같은 방향을 향해 함께 걸어왔다. 그렇기에 우리 부부의 오늘이 있는 것이고 우리 가정이 건재한 것이리라.
그러므로 나는 내 인생에 대하여 감사하다. 내가 어머니께 지은 죄를 생각할 때는 부끄럽고, 내가 노력한 것에 비하면 분에 넘치는 복(福)도 받았다. 누구든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그때 나는 과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직은 모르겠다. 나의 남은 생(生)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도 아직은 모른다. 다만 나는 이 시점에서 일단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아보았으므로 이제는 펜을 놓고자 한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더 진실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서...
2021년 11월 1일(우리들의 결혼 40주년이 되는 날에)
그 후 나는 내 삶의 끝이 어디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리고 나의 생(生)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를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어느 따뜻한 봄날에 낮잠을 자다가 꾼 한바탕 꿈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의 내 인생은 푸른 초원에서 춤을 춘 듯 생생하고 부드러운 것이었으며, 그러므로 후회도 슬픔도 없을 것 같았다.
나 떠난 후에
진달래꽃 바람결에 떨어지는 어느 봄날
내 모습 언뜻 언뜻 구름 속에 사라지고
내 목소리 들리는 듯 아스라이 멀어지면
그대여, 나 한바탕 꿈을 꾸다 먼저 떠나간 줄 아시구려
그대 눈물지을 겨를도 없이 먼저 떠나간 줄 아시구려
(간주)
그대여, 나 떠난 후에도 슬퍼하지 말아요
그대를 만나 살아온 한 평생 꿈같은 세월
꽃밭가득 봄나비처럼 부드럽고 생생해요
햇살가득 푸른 들에서 춤을 춘 듯 즐거웠어요
종달새처럼 노래 부르며 그대 품에서 행복했어요
오오 그대여, 나 떠난 후에도 슬퍼하지 말아요
오오 그대여, 나 떠난 후에도 눈물짓지 말아요
그랬다. 나는 내 어머니를 지켜드리지 못했기에 죄인이었는데도 내 어머니보다 오랫동안 과분한 인생을 살고 있으며, 좋은 아내를 만나 귀여운 딸 둘을 얻고 이만큼 살았으니 과분한 인생이었다. 그래서 언제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며 이 노래를 만들었다.
다만 이 곡의 가사 역시 내가 아내를 두고 먼저 이 세상을 떠나거나, 아내가 나를 두고 먼저 떠나가거나 했을 경우를 생각하며 쓴 시였기에, 곡을 붙이고 나니 슬픈 곡조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 곡은 2023. 12. 24. 열 번째 가곡으로 작곡되었고, 2024. 2. 2. 구광일작곡가와 채보를 하였으며, 2024. 7. 10. 장충신세계레코딩스튜디오에서 소프라노 임청화의 가창으로 녹음되었다.
https://youtu.be/SdLvo7srB94?si=os4uzEQ4S9knGyci
첫댓글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많은 작품을 소개 할 수있어
참으로 행복하시겠다는 생각입니다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양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