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支配的 信仰 롬八章十節 八-十五節 又十一-卅六節 宮井三淸
人能物物卽 人爲物之主. 不能物物卽 物爲人之主矣. 刱世而來 人物兩界不明 招上帝之怒者 違刱造之本意故耳.
人食果之後 心生貪欲, 見物生心. 忘爲人而拜物, 나혈之金像以此. 曠野之金犢 亦以此, 에서之豆汁亦以此, 該隱之殺弟亦以此. 甚哉! 人之忘本也. 支配掃有其說乎? 神不惜獨子 以与之 此以萬物惠我(롬八章三十一節). 然則神造萬物盡付于我者 神爲我而造故也. 日月雖明 爲我而造, 河海雖大 亦爲我而造, 金宝雖貴 亦爲我而造. 人受之福榮已耳.
然魔以物誘我, 人之生非以神 但以物則 何可牲物也? 不可不拜 使之拜木石, 使之拜金錢, 使人生貪 而死. 善遊者死於水, 善登者死於木, 拜物者死於物. 紅袍之富 是其證也. 但貴其物 而善用之已耳. 然則得救 或曰, 我可任意産物乎? 我答 産物者神也, 用物者人也.
神視人信仰如何 分量如何 而任之. 猶人不能守 聖殿之器皿, 使巴人取去 不足怪. 猶人無守金之資格也. 故聖經有与五兩者 有与二兩者 有与一兩者. 我信而受之 用之已耳, 不可爲我有. 故我不可任意取之 任意用之, 惟何神意已耳. 主外誰可任意乎?
主有稅金之必要 可使魚口出金, 有救人之必要 使小兒納餠魚. 或叩人若過衛爲衛 所食不能 畏衛乎? 是權選巨斗 比如强臣 踪扈賴王, 然王者無如之 何已耳? 有人棄車 命棄貨物車卽 人皆不願者 自己不欲物待也. 人以物待我卽 我不願 而不知自己 反以物待者多矣. 勝飢而不爲食之, 奴手空 不爲饑之 奴者 庶不失義 絶之力矣. 信仰己此而後 可知物爲吾有 而吾能用之.
048. 지배적 신앙 / 로마서 8:10, 8-15, 11-36. 궁정교회, 삼청교회
인간이 만물을 지배하면 인간이 만물의 주인이 됩니다. 만물을 지배할 수 없으면 물체가 인간의 주인이 됩니다. 창세 이래로 인간과 만물의 두 세계가 분명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노하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창조의 본 뜻을 위배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뒤부터는 마음에 탐욕이 생겨서 물체를 보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사람이 됨을 잊어버리고 물체를 섬기니, 라헬의 금상(金像)이 이것이며, 광야의 금송아지 역시 이에서 나왔고, 에서가 팥죽에 마음이 유혹된 것도 이것입니다. 가인[該隱]이 아우를 살해한 것도 역시 이로 서였습니다. 너무합니다, 인간의 근본을 망각함이! 모두 지배하고 소유하는 것이 그 설명입니까? 하나님은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셨으니 만물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롬8:31). 그런즉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어 다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창조하시었기 때문입니다. 해와 달이 밝아도 우리를 위하여 지으셨고, 강과 바다가 크다고 해도 역시 우리를 위하여 지으셨으며, 금은보석이 귀하여도 역시 우리를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복을 받아 영화를 누릴 뿐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물질로서 우리를 유혹하기를, 인간의 생(生)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만 물질로 서이니 어찌 희생물이 옳은가 라고 합니다. 어쩔 수없이 숭배해야하니 목석(木石)을 숭배하게 하고, 금전을 숭상하게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탐욕을 일으키게 만들어 죽게 합니다. 헤엄 잘 치는 이는 물에서 죽고, 나무 잘 오르는 이는 나무에서 떨어져 죽으며, 물질을 숭배하는 자는 물질로 인하여 죽습니다. 자색 옷을 입었던 부자가 그 증거입니다. 다만 물건이 귀하다면 그것을 선용(善用)할 뿐입니다. 그러면 구원 얻은 자가 혹 말하기를, 내 마음대로 물체를 생산할 수 있나요? 저의 대답은 만물을 생산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만물을 사용하는 자가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신앙이 어떠한 가 그 분량이 어떠한 가를 보시고서 일을 맡기십니다. 유대인은 성전의 기물(器物)을 지킬 수가 없어서, 바벨론 사람들이 가지고 갔으니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유대인은 그 황금 같은 자격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5량을 준 사람이 있고, 2량을 준 자가 있었으며, 1량을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는 믿고 받아서 사용할 뿐이니, 나를 위해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대로 취할 수가 없고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일 뿐입니다. 주님 외에 누가 임의로 할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세금을 지불할 필요가 있으시매 고기의 입에서 돈이 나오게 하실 수가 있었고, 사람들을 구제할 필요가 있어 어린 아이로 하여금 떡과 생선을 받으셨습니다. 혹 경비하는 경비초소에서 구걸을 하는 자가 먹을 것을 얻을 수 없다면 경비병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이는 권리가 그릇을 선택하는 것이라 강한 신하에 비교한다면 왕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과 같은데, 그러나 왕이 된 사람은 그렇게 함이 없으면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버리고 화물차도 버리라고 명령했다면, 사람이 모두 원하지 않는 것은 자기를 물질로 대접받기 싫다는 것입니다. 남이 물건으로서 나를 대한다면 내가 원하지 않으며, 자신을 몰라주고 도리어 물질로서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고픔을 이기고 먹지를 않았는데, 종의 손에도 먹을 것이 없는데 굶주리지 않았다면 종은 품위를 잃지 않기를 바라고 절의를 지켰습니다. 신앙은 자기가 이렇게 된 뒤에야 물건이라는 것은 내가 소유하고 내가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