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 제거냐, 공생이냐
칡은 주변 산에 점점 많아지고 있다. 산과 인접한 밭이나 논도 휴경하면 바로 칡이 침범하기 시작하고, 몇년만 방치하면 칡이 밭이나 논을 점령한다. 집 앞의 매실 과수원도 칡이 이미 점령하였다. 산에 바로 인접하지는 않았지만, 산에 인접한 밭이 장기간 방치되어 있다 보니 그 밭에서 칡이 넘어와 잠깐 사이 칡이 과수원을 뒤 덮은 것이다. 4년 전 과수원 관리를 시작하고부터 칡을 제거하고 있다.
칡 제거를 쉽고 친환경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과 주변 농민에게 자문 등을 통해 방법을 찾아보고 그럴 듯하면 시도도 보았다. 가장 먼저 해본 것이 과수원에서 염소를 키우는 방법이었다. 한두 마리 키우는 것은 효과가 크지 않았다. 염소가 칡의 뿌리까지는 먹어 치우지 않기 때문이다. 좀 많이 키우면 칡의 싹이 나오는 족족 염소가 먹어버려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염소가 매실 나무까지 상하게 할 것이 확실해 보였다. 염소는 땅에 붙어 있는 것 보다 높은 데 있는 것을 좋아하고, 나뭇잎뿐 아니라 가지나 굵은 줄기까지 먹기 때문이다. 결국 염소를 통한 과수원의 칡 제거는 포기하였다.
주변 농민의 의견은 포크레인으로 칡과 매실나무를 모두 제거하고 새로 과수원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고, 아니면 근삼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제초제로 칡을 죽이라는 것이다. 근삼이를 가을에 칡의 뿌리 가까운 줄기를 자른 다음 바르면 뿌리까지 죽일 수 있다고 한다. 두 가지 방식은 나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이다. 포크레인을 쓰는 것은 매실나무까지 죽여야 하고, 새로 과수원을 만드는 것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또, 근삼이라는 제초제를 쓰는 것은 토양 오염 위험성이 커서이다.
고민하다 결국 선택한 것이 칡을 활용하면서 조금씩 칡을 제거해 나가는 방법이다. 칡은 매실나무를 죽일 수도 있지만 쓰임세도 꽤 있다. 칡뿌리는 칡차와 칡즙을 만들어 먹을 수 있고, 칡의 새순은 갈룡이라 하여 나물로 먹을 수 있고 덕어서 차로 쓸 수도 있다. 맛을 별로지만 몸에는 좋다고 한다. 칡 줄기는 예전에는 갈포라 하며 옷감의 원료가 되었는데 요즘은 모르겠다. 나는 칡덩굴을 오이나 수세미 등과 같은 넝쿨 식물의 유인 줄로 활용하고 있다. 설치할 때는 좀 불편하지만 걷을 때는 잘라 그 자리에 버리면 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고 편하다. 또 칡꽃은 꽃이 부족한 여름철에 밀원으로 중요하다고 한다. 벌이 귀할 때 의미가 있다. 매실나무에 주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칡과 함께 살아가면서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3월에는 칡이 많은 곳은 삽으로 칡뿌리 캐, 어릴 때 추억을 살려 먹어보기도 하고 말려서 차로 끓여 먹고 있다. 마른 칡과 마른 대추를 섞어 차를 끓이면 참 맛있다. 1주일 전 쯤에는 독일에서 같이 계시던 분이 도고에 와 손자들에게 칡뿌리 맛을 보여주고 칡차를 만들겠다며 칡뿌리를 캐갔다. 이렇게 칡이 활용되기도 한다. 연구해 보면 칡의 활용 방법은 더 많아질 것이다. 가능성 있는 방안의 하나는 쌀과 칡으로 막걸리를 담는 것이다. 칡의 쌉싸름한 단맛이 감미료를 넣지 않아도 막걸리를 맛있게 할 것 같다. 언젠간 시도해 볼 생각이다. 맥주도 호프를 넣지 않으면 밍밍해서 맛이 없다. 우리 막걸리의 수준을 높이려면 아스파탐과 같은 인공 감미료를 대체할 천연 원료를 찾아야 한다. 칡이 대안일지 모른다.
그리고 칡을 제대로 제거하기 위해서는 뿌리는 뽑아내고, 줄기는 잘 걷어내야 한다. 칡은 땅에 닿으면 마디마다 뿌리가 생겨 독립된 나무로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칡 줄기를 걷을 때는 줄기의 뿌리 가까운 부분을 찾아 낫으로 자른 다음, 줄기를 당겨 땅에 뿌리를 못 내리게 하여야 한다. 그래서 칡넝쿨을 걷는 다는 말이 나온 듯하다. 올 봄에는 칡뿌리 제거는 조금만하고, 넝쿨 걷는 것은 200평 정도했다. 뿌리에서 새순이 나와 1년에 얼마정도 크는지 볼 생각이다. 그리고 칡이 있는 매실 과수원에 닭도 방사할 계획이다. 칡잎이나 새순이 닭의 좋은 사료가 될 듯하기 때문이다.
지금 과수원에는 매화꽃이 한창이다. 작년에 매실이 조금 열려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전지를 잘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올해는 매화꽃이 많이 폈다. 수확도 많아야 하나 벌이 오지를 않아 적정이다. 전국에서 수억 마리의 꿀벌이 실종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아는 분의 경우 50개의 벌통 중 5개 만 벌이 있고 나머지는 빈 통이 되었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기후변화 때문인지 병충해 때문인지, 농약 때문인지 알기 어렵다고 한다.
오늘 동네 사람과 매화 꽃 구경하는데 벌을 없고 파리 비슷한 것이 한 마리 보였다. 누군가 똥파리 너라도 좋다. 하자 모두 웃었다. 벌을 대체할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칡이 걱정이 아니고 벌이 없어진 것이 더 걱정이다. 내일 일을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첫댓글 칡(갈/葛) 얘길 하시니 갈등이라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갈등의
등藤은 등나무....
넝쿨을 뻣어가는 방식이
칡은 오른쪽으로 비틀어 꼬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비틀어 꽈서 번식. 커 나가기 때문에
칡과 등나무가 얽히면 서로 복잡해져 풀기가 너무 어렵게 된다는 데에
갈등 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있다고 합니다. 재미있습니다. 개인.단체.지역... 이해관계 갈등이 없고, 있어도 빨리 치유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