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난 주, 몇몇 길벗들과의 만남에 한분의 스님이 참석을 했더랬다. 오랜 세월 세속과 다른 길을 걸어온 흔적이 얼굴에 진하게 묻어난다. 이분 曰 :
"예수는 13살 때부터 인도에 유학해 불교의 최상승인 '밀교' 수행을 했다. 그래서 예수는 이적의 능력을 행사한 것이다 ..."
이런 류의 주장은, 1887년 러시아의 퇴역 대령(?)인 니콜라이 노토비치라는 사람이 인도 북부의 캐시미르에 있는 헤미스 사원에서, 라마승이 전해준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두 권의 기록서(원본은 2세기 이전의 팔리어로 기록되어 라싸 근처의 한 사원에 보존되어 있다고 함)를 근거로 책을 집필했고, 이후 후대에 몇몇이 이를 근거로 다시 책을 출판함으로서 세상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이 아마 30대였을 것이다. 처음엔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 들였다. 그럼에도 노토비치 기록의 모순된 부분 때문에 100% 신뢰를 하지 못했는데, 이런 의문을 참아내지 못하던 일부 서양의 탐구자들이 노토비치의 답사 코스를 따라 탐문에 나섰고 이들은 어디에서도 노토비치가 보았다는 이사(예수의 이름)에 대한 기록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최근 이 기사를 구글링해서 검색했는데 나오지 않음. 키워드를 잘 못 넣은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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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토비치의 얘기는 20세기 들어 서구를 비롯해 불교의 원조국인 인도의 유명 수행자들에게도 관심거리였고, 일부는 노토비치가 주장한 사원에 직접가서 이를 확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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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12년 3월 18일 푸우를 떠나 카눔으로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마다 전도를 하며 나아갔는데, 어느 큰 사찰 앞에서 승려 한분과 조우했다. 그는 달라이 라마보다 한 직위가 아래인 타시 라마의 스승이었던 고승으로서 그 절의 주지직에 있었다. 나는 그 주지에게 혹시 이 절에 예수의 행적에 관한 문서가 전해 내려오는 게 없느냐고 물어 보았다. 왜냐하면 최근 들어 노토비취(Nicolas Notovitch)라는 러시아인이 그의 책에서 밝히기를 그가 티벹의 어느 사찰로부터 고서(古書) 한 권을 보았으며, 거기에는 기이하게도 ‘예수의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언급과 티벹까지 왔다 간 행적이 적혀 있다고 썼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겨서 물어 보았던 것이다. 그 주지는 ‘원, 별소리를 다 듣겠소. 사실무근이오. 이 사찰의 장서고에 그런 책은 있을 수가 없소’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그는 덧붙이기를 ‘하기야 몇 백년 전에 선교사들이 잠입해서 국왕 한 분을 개종시켰던 적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소’라고 말했다.” - ‘썬다 싱(인도의 성자로 불리는 인물)’의 「사건 모음집」(1915년)
기독교에 주눅들은 불교는 '이사'라는 가공의 인물이 예수였고 그 예수가 실은 불자라는 점에 고무된걸까? 이런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불교 신문에 까지 사실처럼 올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류의 내용을 확인없이 받아들여 얘기하는 스님처럼, SNS에도 이런 류의 얘기들이 팩트처럼 회자되고 있다.
"솔직히 말해보자. 그대들은 신명계가 얼마나 엄정한지에 대해 스스로 무지함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그대들을 하수로 바라보는 것이다^^" (새길학당 멤버에게 하는 말이 아님)
첫댓글 😂😅🤔 신명계의 엄정함이란?
성서는 창조주라는 유일신의 메세지다. 이를 인정한다면 창조주가 그렇게 허술하게 자신의 메신저를 아무나 쓰고 그것이 정경으로 채택되게 했을까?
신명계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은 이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는다. 무식하면 용감하단 말이 이런 류의 내용을 신앙하는 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 글은 윗글 처음에 등장하는 스님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음)
😂😅😃 불문학 박사인 민희식 한양대 교수가 신문지상(주간중앙 1986. 10. 26)에 ‘예수는 한때 불교 고승이었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글이 불교도들이 이를 더 믿게한 촉매였다.
그러나 불교계는 민교수가 불교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인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아마 노토비치의 책을 찾아내 참고로 글을 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