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Beethoven)이 작곡(作曲)한 '월광곡(Moonlight Sonata)'의 탄생배경(誕生背景)》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이 쓸쓸한 가을 저녁이다. 베토벤은 달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고요한 초저녁 거리를 거닐고 있다. 높이 떠오르는 둥근달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실낱같이 가느다란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바람결에 들릴 듯 말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선율이 베토벤의 마음을 움직인다. 베토벤은 꿈결 같은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발길을 옮긴다.
바로 자신의 피아노 곡이 초라한 오막살이 작은 집에서 흘러나온다. 이토록 가난한 집에 웬 피아노며 그것을 치는 사람은 또 누구란 말인가. 그는 주체할 수 없는 감흥에 젖어 슬그머니 그 집 문을 밀고 들어선다.
주인이 깜짝 놀라며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누구요? 아닌 밤중에 말도 없이---’ 베토벤은 주인의 기척에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방안에는 작은 촛불 한 자루가 깜빡인다. 그 옆에서 꿰매던 헌신짝을 든 주인이 서 있고, 들창 밑 피아노에 앉아있던 한 소녀가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낡은 피아노 위엔 악보는 고사하고 종이 조각 하나 보이지 않는다.
‘당신이 시방 치던 곡의 악보는 어디 있나요? 베토벤의 물음에 소녀가 부끄러운 듯 조그맣게 대답한다. ‘저는 눈이 안 보여서---’ 채 끝을 맺지 못하는 소녀의 목소리에는 벌써 눈물이 섞여 있다.
‘아, 장님, 가엾고 놀라운 일이다. 눈먼 소녀의 이 재주, 이 운명---’ ‘그러면 그 어려운 곡은 어떻게 배웠지요?’ ‘배운 적 없습니다. 예전에 제가 살던 집 건너 편 어느 부인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그저 흉내를 내 보았을 뿐이에요.’
‘참 가엾은 일입니다. 저 역시 넉넉지 못한 사람으로 음악을 좋아하기는 하오만’ 그때 두 사람이 주고 받는 소리를 듣고 있던 집 주인이 다가온다. 어딘지 모르게 기품 있어 보이는 청년에게서 뜨거운 열정을 느끼고 앞치마를 털면서 의자를 권한다.
‘눈 먼 이 아이에겐 오라비와 다 깨진 피아노만이 위안입니다. 웬만하면 음악회라도 데리고 가 저 애의 평생 소원인 베토벤 선생의 피아노 소리라도 들려주고 싶습니다만 형편이 워낙 어려워서--.’ ‘그토록 베토벤의 연주가 듣고 싶은가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인지 신인지 모를 대천재 베토벤 선생이야말로 온 천하가 모두 우러러보는 분 아닙니까?’
초는 점점 녹아내려 가물가물 꺼져가면서 세 사람의 얼굴을 비춰준다. 베토벤은 슬그머니 소녀를 붙잡아 일으키고 피아노 앞에 앉는다. 조용히 건반에 손을 얹고 불행한 소녀를 위해 연주를 시작한다.
방금 전에 소녀가 치던 바로 그 곡이다. 때로 빠르게 이따금씩은 느리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곡조는 조그만 방을 채우고 들창 너머 달빛을 타고 흐른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베토벤은 물론 두 남매를 감싸고 도는 선율에 모두 넋을 놓아버린다.
연주가 끝나도록 남매는 미동도 않는다. 말없이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소녀가 별안간 베토벤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며 부르짖는다.
‘선생님, 선생님은 베토벤 선생이 아니신가요?’
‘그렇소. 내가 바로 베토벤이오.’ 베토벤의 말에 두 남매는 얼싸안고 기쁨과 감격에 복받쳐 흐느껴 운다. 벅찬 목소리로 오라비가 애원한다.
‘선생님, 불쌍한 제 동생을 위하여 한 곡만 더 들려주실 수 있는지요?’ 베토벤이 다시 피아노를 향해 앉았을 때 가녀린 촛불이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꺼져버린다.
열어젖힌 들창으로 쏟아지는 달빛이 피아노 건반 위를 비춘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엔 빛나는 별들이 은구슬을 뿌려 놓은 듯 반짝이고 그 가운데로 은하수가 흐른다.
베토벤은 두 남매의 깊은 사랑, 아름다운 별, 방안 가득한 달빛에 몸과 마음을 내어 맡긴다.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최고조로 끓어올랐을 때 베토벤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황홀하고도 신비로운 광경 속에서 두 남매가 손을 모은다.
그들의 가슴 속에도 영롱한 별이 내리고, 달빛의 신비로움 속에서 피아노 가락이 그들을 에워싼다.
조용하던 곡의 흐름은 갑자기 변하고 베토벤의 두 손이 비바람치듯 현란하게 오르내리자 산이 울고 천지가 흔들린다.
휘몰아치던 선율은 다시 가볍고 아름답게 퍼져나가 두 남매의 가슴 속에 평화와 희열을 가득 안겨준다. 이윽고 베토벤의 손이 움직임을 멈추고 두 남매가 피아노 연주의 황홀경에서 채 헤어나기 전에 베토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리없이 소녀의 집을 빠져나온 베토벤은 거처로 돌아오자 낡은 피아노로 쳤던 곡을 밤새도록 악보에 옮긴다. 달빛소나타, 악성 베토벤의 유명한 '월광곡(月光曲)'은 그렇게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