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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의 종합준공은 한국 근대화의 효시.
그 이듬 해 봄에 공조설비를 가동하면서 후판공장의 트러블은 거의 진정되었다. 정말 힘드는 기간이었지만 회사 경영진에게 이름 세자는 확실히 눈도장을 찍은 셈이었다.
봄에는 열연공장이 가동되었다. 일본인들이 처음 조업지도를 해주어서인지 별일없이 가동되었다. 크기는 다르지만 후판공장과 같이 슬라브를 가열하여 연속 압연기로 철판 두께를 1.2mm-6mm 정도까지 생산하는 공장으로 일반적으로 철판이라고 불리는 제품이다. 하지만 후판공장과는 규모가 달랐다. 후판은 기껏해야 단중(單重)이 십여 톤이지만 열연은 35톤의 크기도 있었다. 가열로에서 1200도 이상으로 가열해서 표면을 디스케일링(Descaling)을 하고 조압연기(Rough mill)를 거쳐 6대의 사상압연기(Finishing mill)을 통과하면 철판의 길이는 두께에 따라 수Km에 달해 다운코일러(Down coiler)에서 화장지처럼 빨갛게 달아있는 철판을 감는 모습은 예술품이었다. 제철소 견학을 가게 되면 대개 이 공장을 보여준다.
이런 와중에 또 강편공장(Billet mill, 철근재료)도 준공되어 초기 일본인 수퍼바이저의 지도로 별탈없이 가동되었다. 하지만 담당공장이 3개나 되어 공장을 다니려면 하루 십여Km를 걸어 다녀야 했다.
회사는 이제 종합준공을 앞두고 하루하루가 달라졌다. 제철소의 공정은 제선(용광로, 일본 호칭 高爐)-제강(轉爐)-압연(分塊, 熱延, 厚板, 鋼片)공정이지만 일반적으로 후공정부터 안정을 시키고 마지막으로 고로와 전로 및 분괴 압연을 동시에 준공한다.
압연공장은 수시로 가동을 정지할 수 있으나 제철의 첫 공정인 고로는 마음대로 세울 수 없다. 한번 가동하면 5년이상 내화재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가동해야 한다. 그래서 종합준공은 용광로에서 쇳물을 받아 압연제품이 생산되는 전공장의 가동을 의미한다. 그러자면 마지막 고로가 가동되어야 한다.
73년도 포항제철 1기 준공을 앞두고 회사는 흥분하기도 했고 초조하기도 했다. 사장님은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 해서 동해바다로 들어간다고 강조했다. 애국지사들의 흘린 피의 대가로 받은 대일 청구권 자금이기 때문에 조상들을 볼 면목이 없으니 생명을 걸고 하라는 뜻이다.
계장(計裝)을 담당했을 때는 제철설비의 신경줄이라 이런저런 상항을 직접 보았지만 이제는 담당설비에 붙잡혀 솔직히 내 코가 석자라서 귀동냥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멀리서 보아도 100여m나 되는 고로의 첨탑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고 전로의 연돌이 침탑처럼 솟아오르는 것은 당시 280여만평의 대지 어느 곳에서도 한눈에 보이는 장관이었다.
고로를 건설하기 위해 타워크래인을 처음 설치했을때 무서워서 아무도 올라가지 않아 사장님이 먼저 올라갔다고 한다. 그제서야 기중기공과 해당간부들이 따라올라갔다는 일화는 산업화 초기의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요즈음이야 아파트 건축장에서 쉽게 보는 타워크레인이었지만 그때는 모두 처음 보는 것이고 높이가 100여m가 넘는 탓이다. 길쪽하게 솟은 크레인이 언제 바람에 쓰러질지 몰라 아무도 올라가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이 제선공정에서 석탄의 열량을 높이는 코크스 공장을 준공해서 수입한 유연탄으로 코크스(Cokes)를 생산하고 소결공장을 준공해서 고로에 장입하는 철광석의 소결광(Sintered ore)도 생산하고 제강공정에서 석회 소성공장을 준공하여 생석회를 환원력이 강한 소석회(slaked lime)도 생산했다. 부대설비가 완전히 가동되었다는 뜻이다.
고로에 붙일 불씨도 태양열로 원화(原火)를 채화해서 원화로에 보존해서 이제 고로 화입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전날 콘베어 벨트로 노정(爐頂)까지 운송해온 철광석(소결광 포함)과 쇠를 녹일 수 있는 열원으로 코오크스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생석회를 원료 장입장치로 시루떡 쌓듯 한켜씩 한켜씩 고로 내부에 균등히 배분하여 장입하고 고로 옆에는 섭씨 1500도의 열풍로를 가동하여 노 하부의 풍구로 불어넣어 만전을 기했다.
조로원들은 노압과 노정압, 각 곳의 온도와 성분, 장입물의 하강장치를 보면서 고로 내부의 상태를 유추한다. 만에 하나 노압과 노정압의 언발란스나 장입 원료의 불균형이 발생하면 노 상부에 떠 있는 철광석과 코크스는 기울어져 노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심하면 노 내부의 불이 꺼지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간다.
드디어 73.6.8. 종합준공과 함께 올림픽 봉화를 운송하듯 원화를 7명의 봉송자가 운송해서 박정희 대통령과 사장께서 고로에 직접 화입(火入)을 하셨다. 고로에 분사되는 중유분에 불을 붙인 것이다. 이를 ‘고로 화입식’이라고 칭한다. 고로 가동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이제 풍구에서 불어넣는 섭씨 1500도 열풍이 코크스를 태우고 그 열로 철광석이 녹고 생석회로 철광석 중 불순물을 제거하는 원리이다.
화입 후 첫 출선(出銑)까지는 거의 하루가 걸린다. 첫 쇳물이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는 포철이 사느냐 죽느냐였으며 바로 대한민국의 근대화가 이루어지느냐 마느냐의 기로이기도 했다.
제철소에서 생산되는 철은 제품이 아니고 중공업의 원자재이기 때문이다. 철강이 있어야 고층빌딩도. 토건사업도. 기계공업도 자동차공업도 심지어 음향기기까지 시작할 수 있다. 이를 철강산업의 후방산업효과라고 말하지만 이런 면에서는 석유화학공업도 비슷하다. 생산품이 제품이 아니고 후방공업분야의 소재를 생산한다는 뜻이다. 이제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 그렇게 귀했던 철강이 탄생하려고 용틀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첫 출선(쇳물)은 화입 후 21시간반이나 기다려야 했다. 처음 불을 피운 후 계속해서 1500도의 열풍을 주입하여 태우는 코크스로 노내의 온도는 거의 1800도까지 올라가고 이 열에 의해 철광석은 녹아 내린다. 철은 섭씨 1500도 정도가 되면 액체로 변해 비중이 커서 항아리 모양의 노저(爐底)로 모아지고 불순물은 비중이 낮아 그 쇳물위에 부상해 있다. 철광석에 혼합된 철분과 불순물은 철광석이 녹으면서 비중차이를 이용하여 분리시키는 것이다. 노저(爐底)의 쇳물이 어느정도 모아지면 출선구를 뚫어 쇳물은 출선도를 따라 토페드 카(Torpedo car, 열손실을 방지하도록 어뢰모양의 노)로 쇳물을 받고 쇳물위에 부상되었던 불순물인 스래그(Slag)를 그때는 버렸다. 지금은 스래그도 고로 시멘트 원료로 사용한다.
이러한 조업과정에서 노 내부는 들여다볼 수도 없고 오직 사방에서 측정하는 압력과 온도로 유추할 뿐이다. 그래서 고로 조업은 쉽지 않은 것이다. 눈으로 직접 가동상황을 확인 할수 없기때문이다. 물론 수퍼바이저의 조업지도를 받아서 하지만 그 하루 동안은 회사 전체가 비상이 아닐 수 없었다.
화입 후 회사는 긴장을 해서 그런지 서로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만 치어다 보면서 내일 아침에 쇳물이 나오기를 기도하면서 기다렸다.
후담이지만 일본 수퍼바이저들이 한국인이 이렇게 능숙하게 조로(操爐)작업을 할 줄 몰랐었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브라질에서는 턴키베이스로 발주되어 첫 시조업날 쩔쩔매어 결국은 일본사람이 조업을 시작해서 몇 년이 지난 그 당시까지도 기술료(Man/month fee)를 받으며 조업을 유지하고 있는데 한국의 조로원들은 마치 몇 년이나 운전 해본 것처럼 거침없이 작업을 했다고들 했다.
연수를 다녀와서 사장님의 지침대로 일본설비를 연수한 것으로는 가동할 수 없으므로 우리 직원이 볼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고 군대훈련을 하듯이 합판으로 만든 운전반 모형으로 끊임없이 모의훈련을 한 효과가 큰 힘이 되어 현실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생각은 오로지 사장님의 아이디어로 군에서 하는 전술훈련과 같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튿날 모두들 뜬눈으로 밤을 새운 고위간부들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고로 주상(鑄床)으로 모여들었다. 회사에서는 자기자리를 지키라고 강조했지만 출근시간 전이고 역사적인 장면이라 전사 간부들은 다 모였다고 생각된다. 사장님은 일찌감치 나오셔서 주상(鑄床)에서 바라보기도 하다가 고로 주변을 한 바퀴씩 돌기도 하셨다. 그만큼 긴장하신다는 것이었다.
담당부서장은 연방 조로 운전실에서 일본 수퍼바이자의 지침을 받아 전투를 지휘하듯 스피카로 지시를 하고 현장은 여기저기서 서로 현황을 알리는 고함들이 들렸다.
화입 한지 21시간 반이 지난 오전 7시반에 출선공이 출선구를 개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모두들 긴장해서 출선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출선공이 출선구를 뚫자마자 시뻘건 쇳물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비산했다. 출선공들은 석면복으로 방화복을 입었지만 그들도 참관하는 간부들도 모두들 놀라 뒤로 물러섰지만 누가 먼저랄것 없이 사장님을 필두로 모두들 만세를 불렀다.
비산하던 시뻘건 쇳물은 차츰차츰 안정적으로 흘러 출선도를 따라 토페드 카에 담기고 불순물들은 슬래그로 슬래그저장소로 흘려 내렸다. 멀리서 바라본 사람들은 스래그(Slag)의 흐름을 보고 그게 쇳물인 줄 알았다고들 했다. 그것도 시뻘겋게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처음 나오는 쇳물이라 질을 따질 형편은 못되었다. 하지만 고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고로에서 쇳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대성공이었다. 물론 이 철은 속칭 무쇠라는 선철(銑鐵)이었다. 일반 산업용으로는 깨어지고 파손되어 사용할 수 없다. 그때 처음 나온 쇠로 주물을 만들어 기념으로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무겁고 모양도 없지만 현재도 포스코 청암(박태준 당시사장 호) 박물관에 그 당시 기념품이 전시되어있다.
이제는 제강공정의 가동이었다. 토페드카는 기관차에 이끌려 제강공정으로 이송되어 크레인 운전공에 의해 혼선로에 장입해서 예열 후 래들(Laddle, 일본어는 나베)에 받아 다시 전로(轉爐)에 장입되고 석회석과 부원료를 첨가하고 랜스(Lance)로 산소를 불어넣어 취련(吹鍊)을 시작했다.
그러자 첨탑 같던 제강공장의 굴뚝에 횃불같이 불이 붙어 활활 타올랐다. 꼭 올림픽 성화가 타오르는 것 같이 가스 라이터를 켜 놓은 모양이다. 폐기가스를 버리면 공해가 되니까 태우는 것이다. 지금도 제철소에 가면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게 전로 연돌의 횃불같은 불꽃이다. 옛날은 취련하는 동안 계속되었지만 지금은 폐열을 회수해서 가스들을 예열하고 최소한의 폐기가스만 태운다.
고로에서 쇳물 따라온 참관자들은 박수를 치며 성공적이라고 모두들 야단들이었다. 전로는 경우에 따라 세울 수 있기 때문에 고로만큼 우려를 주지는 않았지만 탄소가 많이 포함된 선철을 실제 용도에 맞는 강철로 만드는 철강의 핵심 공정으로 철강의 성분은 여기서 결정된다. 강철로 만든 액체를 조괴공장에서 조괴 틀(Ingot mold)에 주입되어 표면이 고상으로 굳어지도록 며칠 냉각시켜 잉고트(Ingot)로 제조되어 분괴공장으로 이송하게 되는 것이다.
분괴공장은 이 잉고트를 가역 압연기로 지금까지 압연(열연, 후판, 강편)공장에서 수입하던 슬라브를 제조하여 자급하는 것이다.
지금은 조괴와 분괴압연 공정은 유물로 사라지고 전로에서 바로 연주(連續鑄造)로 이어져 슬라브로 생산되고 있어 조괴공정과 분괴압연을 합쳐 연주공정으로 통합된 것이다.
그러고도 회사는 극도의 긴장과 침묵 속에 한주를 보내고 두주를 보내었다. 압연부문도 사고가 발생해 회사를 불안하게 만들까 봐 걱정이 되어 비상근무 체제로 들어갔다. 심야에는 대학 동기생인 열연공장장, 2년선배인 후판공장장, 그리고 년배이신 강편공장과 정비과장이 교대로 회사에서 야간 대기를 했다.
두주가 지나고 일본 수퍼바이자들이 고로가 안정되었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제야 회사에서도 자축연을 하고 대외홍보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런 일을 어떻게 해 내었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포철의 생산능력은 겨우 연산 103만톤으로 일본의 수천만 톤에 비하면 걸음마였다.
꿈은 꾸는 자의 것이 아니라 꿈을 위해 노력하는 자의 것이었다.
한달 뒤 간부회의에서 사장님은 너희들이 내 생명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하셔서 한바탕 웃었다. 성공했기 때문에 우향우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었다.
첫댓글 정말 큰 일을 했습니다.
마치 영화 보듯이 흥분을 느낌니다.
소우, 잡기장 같은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한게 아니고 저도 함께한 2만여명중의 한사람일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한국의 근대화를 위해 철강과 석유화학을 생각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온 민족이 머리 숙여 감사드리고 그 행동대장격으로 포항제철을 리더한 박태준회장의 추진력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으로 작금의 국영기업체장들이 흥청망청 돈만쓰고 임기를 채우는 분들에 비해서는 국민의 존경을 받으실만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