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행위와 그 악한 행실을 따라 그들에게 고스란히 갚아 주십시오.
그들이 한 그대로 그들에게 갚아주십시오.
그들이 받을 벌을 그들에게 되돌려 주십시오.
[시편 28:4]
시편 28편은 악인들과 사악한 자들에 대해 어떻게 기도해야할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오해하여,
원수의 사악한 행동들에 대하여 침묵하고, 그런 잘못들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조차도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개신교에는 있다. 물론, 원수의 개념에 대한 정리는 필요하겠지만, 자기의 뜻과 달라서 원수가 아니라 '사악한 행동'을 하는 이들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가난한 자들을 억울하게 하고, 권력을 이용하여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고, 올곧은 삶을 사는 이들을 핍박하고, 무력으로 약한 이들의 것을 약탈하고, 평화를 가장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그러면서도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와 행동은 거룩하고 선한 것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위선자요, 사기꾼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악인과 사악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대체로 불의를 고발하는 일보다는 그들과 한 편이 되어 복을 빌어주고 빌붙어사는 것을 선택한듯하다. 이런 까닭에 더욱더 신앙인답게 사는 일은 힘든 일이되었지만, 그러므로 신앙인답게 살 것을 요청당하고 있는 것이다.
악인들과 사악한 자들의 악한 행실을 막을 힘이 있었다면, 그냥 막으면 될것이다.
하지만, 시인이 목도하는 상황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막고 싶지만, 막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하나님껫서는 귀를 막고 계시는듯하고, 침묵하신다. 그래서 두렵다. 하지만, 시인은 두려움 속으로 빠져들어가지 않는다. 듣지 않으셔도, 침묵하셔도 주님은 나의 힘이시고, 방패이시며(7), 자신을 그 악한 길에서 건져주실 분이심을 믿는다.
시편 28편을 통해 '귀를 막고 계시는 하나님,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한다.
1980년대 암울한 시대에 불렀던 민중목음성가 중에 '민중의 아버지'라는 노래가 있었다.
하나님 당신은 죽어버렸나.....귀 먹은 하나님, 혀 짤린 하나님...
경건을 자처하는 보수신앙인들은 불경스러운 노래라고 했지만, 그 노래는 암울했던 시절의 어둠을 온 몸으로 감내하며 살았던 이의 고백이었고, 억압의 시대를 살아가며 간절하게 하나님을 바라는 이들의 기도였다.
시편 28편의 기도는 평안한 가운데 드려진 기도가 아니다.
혹시라도 사악한 자들의 폭력 앞에서 무덤으로 내려가는 살람이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던 상황에서 드린 기도다. 그 두려움의 심연으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그는 하나님을 자기의 힘으로, 방패로 삼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의지할 그 무엇이며, 그것이 허상이 아니라면 반드시 일어설 것이다.
시편 28편의 시인 다윗의 자기 정체성은 '주님의 소유인 주님의 백성'이다.
내가 누구인가?
이 자기 정체성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나를 누구로 생각하는가?
그 고백에 따라 삶의 지평은 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