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8장 예술과 스포츠로 인류를 하나로 만들다
문선명은 예술과 스포츠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닮은 인간의 마음은 정・지・의(情知意)가 바깥으로 드러난다고 말했다.
예술과 스포츠는 평화를 만드는 데 뺄 수 없는 귀한 요소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활동하거나 리더가 되려면 예술을 중심삼고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1. 천국의 노래를 들려주는 리틀엔젤스
1963년만 해도 한국의 문화적 토양은 처참하고 척박했다. 당장 먹고살기에 급급해 문화를 즐길 여유는 애당초 없었으며, 한국의 고유 문화가 있기는 해도 제대로 보여줄 체계가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문선명은 한국의 참다운 문화를 세계에 보여주고자 힘든 가운데서도 큰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첫 번째로 어린이들에게 우리의 춤을 가르쳐 세계로 내보내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로 했다. 한국이라고 하면 전쟁과 가난만 떠올리는 외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의 전통 춤사위를 보여주고 한민족은 문화민족이라는 사실을 일깨울 생각이었다.
문선명이 어린이 무용단을 창단하려 하자 사람들은 "왜 무용단을 코 흘리는 어린이들로 구성해야 합니까, 성인 무용단을 만드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반대했다. 문선명은 이렇게 답을 해주었다.
"어린이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어린이들은 인종과 종교와 사상을 초월합니다. 어린이를 통하여 세계는 하나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너희가 어린아이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셨고. 이사야 11장 6절에서도 '어린이가 너희를 인도하리라'했습니다. 어린이의 순결과 정직, 돈도 명예도 모르고 그저 기뻐 춤추는 그들이 곧 천국의 상징입니다. 한국의 평화애호의 정신을 우리 어린이들 이상 잘 표현할 사람이 없습니다."
리틀엔젤스의 출발은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았다. 어린이의 숫자도 17명에 불과했고 서울에 아주 초라한 연습실을 빌렸다. 비가 오면 빗물이 줄줄 흐르는 집이었다. 그때 누가 이들이 자라서 세계를 누비며 공연하게 될 것이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1964년 한국문화자유재단(KCFF)이 세워지자 주요 과제 중 하나가 리틀엔젤스의 세계 공연을 후원하는 일이었다. 리틀엔젤스는 1965년 9~12월에 미국에서 첫번째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일정 중에는 펜실베이니아 게티즈버그에 거주하는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 자택에서의 공연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외에도 미국 전역에서 75회나 공연했다. 또한 국영방송 에드셜리반 쇼를 통해 방영되었다.
그러나 공연은 성공했지만 리틀엔젤스는 빚더미 위에 앉았다. 비록 한국문화재단이 순회공연을 후원했으나 기금은 턱없이 적었다. 다행스럽게도 「리더스 다이제스트 Readers Digest」 공동 설립자인 라일라 월리스(Lila A. Wallace) 여사가 그 소명에 감동받아 2만5천 달러를 보내왔다. 그때 이래로 월리스 여사는 오랜 기간 리틀엔젤스를 지원하는 주요 기부자 중 한 명이 되었다.
1971년 12월, 워싱턴 공연은 리틀엔젤스 역사에서 영원히 간직되는 소중한 공연이 되었다. 문선명이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날의 공연이기도 하거니와 미국의 심장부에서 수많은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의 예술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선명이 세계 선교를 위해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마침 리틀엔젤스는 워싱턴DC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12월 18일 공항에 내리자 리틀엔젤스 단원들이 문선명 내외를 맞았다. 어린 천사들이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합창을 부를 때 부부는 감격에 겨워 이 어린 천사들이 영원히 한국을 빛내는 예술가들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날 밤, 케네디센터 오페라홀에서 미국의 정계, 외교계, 경제계의 저명인사들이 구름처럼 모인 가운데 리틀엔젤스 대축제공연이 열렸다. 100명 이상의 국회의원들과 고위 인사들이 가족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왔으며 100여 개국의 외교대사들도 참석했다. 2,200석이 매진된 공연은 문화외교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린 천사들이 한국의 전통 춤과 노래를 불러 청중들을 감동시켰으며 마지막 합창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앵콜! 앵콜!' 환호했다. '하나님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를 부르자 전체 청중들이 모두 일어나 함께 부르면서 감동의 무대가 막을 내렸다.
뒤이어 리틀엔젤스 창시자로서 문선명이 소개되자 청중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 박수는 한 개인에게 보내는 것이지만 사실은 한국의 아름다움 예술에 보낸 것이었다.
이후에도 리틀엔젤스는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공연을 쉬지 않고 펼쳤다. 2012년 2월까지 리틀엔젤스는 50년 동안 전 세계6대 대륙을 누비며 6,000회 이상 공연했으며 TV에 500번 넘게 방영되었다. 지구상에 있는 나라를 대부분 밟아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대통령과 총리들이 리틀엔젤스 공연을 관람했다. 특히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앞에서 어전 공연을 했으며 유엔총회 의장, 한국의 올림픽경기장,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공연을 했다. 또한 역사에 영원히 기억되는 평양에서도 공연을 했다.
1990년 모스크바에서의 공연은 매우 뜻 깊은 행사였다. 그해 4월11일은 문선명 내외의 30주년 성혼기념일이었다. 그때 문선명 부부는 모스크바를 방문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고, 다음 날 저녁 모스크바 국립아동궁전극장에서 리틀엔젤스는 소련 어린이들을 위한 기금 마련 공연을 했다.
대통령 영부인 라이사 고르바초프(Raisa Gorbachev) 여사는 리틀엔젤스 공연을 보기 위해 폴란드 대통령 야루젤스키(Wojciech Jaruzelski)의 리셥션에서 예정보다 일찍 출발할 정도였다. 라이사 여사는 무대 뒤에서 리틀엔젤스 아이들을 안고 키스를 해주었고 기념촬영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기쁨의 미소를 지었으며 심지어 KGB 요원들조차 미소를 짖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해인 1991년 12월 문선명은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났다. 이후 북한 고위 관료들과의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1998년 5월 평양에서 리틀엔젤스 공연이 성사되었다.
이는 역사상 최초의 대사건이며 리틀엔젤스가 얼마나 세계평화와 남북화해에 큰 기여를 했는지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봉화예술극장과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등지에서 세 차례 공연을 했으며 그때마다 북한 고위직과 시민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문선명의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에서 밝힌 것처럼, 공연을 보는 동안 북한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여성의 모습이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북한의 김용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깊은 산중에 작은 오솔길을 냈다'고 칭송했다.
2010년은 한국전쟁 60주년이었다. 그해를 맞아 문선명은 리틀엔젤스가 한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했던 이들에게 사랑과 위로, 감사의 뜻을 전하는 평화대사가 되어 세계 순회공연을 할 것을 당부했다.
리틀엔젤스의 세계 순회는 2010~12년까지 진행됐으며, 유엔군의 깃발 아래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인도적인 도움을 주었던 22개국에서 공연을 했다.
세계 순회 마지막 공연은 2012년 2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다. 그 행사에서 문선명 부부는 청중들로부터 리틀엔젤스를 창단하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원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박수를 받았다.
문선명이 리틀엔젤스를 만들고 아낌없이 자원한 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다. 그 이름을 높이자는 것이 아니며, 통일교 교리를 전파하자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문선명은 리틀엔젤스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 마음이 고와야 노래가 곱다. 마음이 고와야 얼굴이 곱다"라고 말했다. 리틀엔젤스가 그토록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준 것은 우리 춤 속에 녹아 있는 우리의 전통, 우리의 정신 문화가 아름답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