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하여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십사(第十四) 야전 병원(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나) ㉠뿌리가 뽑혀 하늘로 뻗었더라
㉡낮말은 쥐가 듣고 밤말은 새가 들으니
입이 열이라서 할 말이 많구나
듣거라 세상에 원 / 한 달에 한 번은 꼭 조국을 위해
누이는 피 흘려 철야작업을 하고
날만 새면 눈앞이 캄캄해서
쌍심지 돋우고 공장문을 나섰더라
㉢너무 배불러 음식을 보면 회가 먼저 동하니
남이 입으로 먹는 것을 눈으로 삼켰더라
대낮에 코를 버히니 / 슬프면 웃고 기뻐 울었더라
얼굴이 없어 잠도 없고
㉣빵만으론 살 수 없어 쌀을 훔쳤더라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보고 / 멀리 고향 바라 울었더라
못 살고 떠나온 논바닥에 / 세상에 원
㉤아버지는 한평생 허공에 매달려
수염만 허옇게 뿌리를 내렸더라
*월남 파병: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국군을 파병한 일.
*야경꾼: 밤사이에 화재나 범죄가 없도록 살피고 지키는 사람.
*동회(洞會): 예전에, ‘동사무소’를 이르던 말.
01. (가)와 (나)의 공통점으로 적절한 것은?
① 설의적 표현을 통해 주제 의식을 부각하고 있다.
② 시구의 반복을 통해 지배적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③ 명령형 어미를 활용하여 단호한 어조를 구사하고 있다.
④ 색채어의 활용을 통해 시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⑤ 공감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대상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02. [보기]를 참고하여 (가)를 감상한 의견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김수영은 억압적 사회 현실과 관련한 주체로서의 각성과 반성을 잘 보여 주었다. 그것은 특권 계급의 전횡이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처럼 정작 분노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사소한 문제로 힘없는 이웃들만 증오하는 옹졸한 소시민으로서의 자기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자조하는 태도로 드러나 있다.
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이라는 표현에는 전횡을 일삼는 특권 계급에 대해 화자가 느끼는 분노가 반영되어 있군.
② 화자는 ‘언론의 자유’나 ‘월남 파병’의 문제에 침묵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수치심을 느끼고 있군.
③ ‘개의 울음소리’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도 화자가 자신에 대해 자조적 태도를 지니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군.
④ ‘절정 위’가 아니라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는 진술을 통해 화자 자신의 소시민성에 대한 각성을 드러내고 있군.
⑤ 사소한 문제로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힘없는 이웃으로 화자는 ‘이발쟁이’나 ‘야경꾼’을 들고 있군.
03. [보기]를 중심으로 (나)의 ㉠~㉤을 해석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 시는 모순된 현실의 부정적인 모습을 효과적으로 풍자하기 위해 일반적인 대상의 정상적인 상태를 비틀거나 뒤집어 놓는 표현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① ㉠: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 물구나무선 나무의 이미지를 그림으로써 부정적 현실에 대한 풍자를 시작하고 있다.
② ㉡: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속담을 비틀어 놓음으로써 현실의 모순적 양상과 이를 적극적으로 풍자하려는 화자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③ ㉢: 반어와 역설을 통해 구체적 현실 상황을 뒤집고 비틂으로써 노동자들의 고된 생활상을 드러내고 있다.
④ ㉣: 일반적인 표현을 비틀어 놓음으로써 끝없는 욕망을 제어할 줄 모르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⑤ ㉤: 아버지로 표상되는 농민의 모습을 뒤집어, 물구나무선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농사에 평생을 바친 이들이 고통받는 농촌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도움자료
[2014 EBS 인터넷 수능]
(문학B)
김수영,「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정희성,「물구나무서기」
01 ② 02 ① 03 ④
가 김수영,「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해제 ㅣ 이 시는 우리 사회의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 즉 독재 정권의 부정이나 사회적 부조리에는 맞서 싸우지 못하면서 사소한 일에 대해서만 분개하는 자신의 소시민적 삶의 태도를 치열하게 반성하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이러한 자신의 옹졸함이 과거 포로수용소 시절부터 시작된 ‘유구한 전통’임을 밝히면서, 힘 있는 자들에 게 굴종하고 나약한 이들에게만 화풀이를 하는 자신의 비겁함을 고 백하고, ‘나는 얼마큼 작으냐’하는 물음을 자조적으로 되풀이함으로써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주제 ㅣ 권력의 부정과 사회의 부조리에 순응하는 소시민적 삶에 대 한 반성
구성 ㅣ
1연:권력의 부패 대신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는 ‘나’
2연:사회의 부조리 대신 작은 일에만 반항하는 ‘나’
3연:포로수용소 시절부터 계속되어 온 ‘나’의 옹졸한 태도
4연:왜소한 ‘나’의 옹졸한 반항
5연:현실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비켜서 있는 ‘나’의 삶
6연:힘없는 이웃들에게만 반항하는 ‘나’의 비겁함
7연:왜소한 존재로서 느끼는 자괴감
나 정희성,「물구나무서기」
해제 ㅣ 이 시는 노동자와 농민으로 대표되는 민중들의 삶이 고통스럽게 지속되고 있는 사회 현실을 비판한 작품이다.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생활상의 여유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와 농민의 삶을 뿌리가 뽑혀 거꾸로 서 있는 상황으로 표현하고, 관용구를 비틀거나 구체적 현실을 반어적으로 뒤집어 진술함으로써 모 순된 사회상을 냉소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주제 ㅣ 민중의 삶이 뿌리 뽑힌 현실에 대한 비판
구성 ㅣ
1행~3행:세상의 부조리한 모습
4행~16행: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고된 삶
17행~20행:피폐한 농촌 현실로 인한 농민들의 비참한 삶
01 작품 간의 공통점, 차이점 파악 ②
정답이 정답인 이유
두 시 모두 시구의 반복이 작품의 지배적 정서를 강조하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가)에서는 ‘얼마큼 작으냐’라는 시구의 반복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부끄러움을 강조하고 있으며, (나)에서는 ‘세상에 원’이라는 시구를 반복하여 부정적 현실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가)의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나 ‘우습지 않느냐.’ 등은 설의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에서는 설의적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다.
③ 명령형 어미는 (나)의 ‘듣거라’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가)에서는 명령형 어미가 사용되지 않았다.
④ (나)의 ‘수염만 허옇게 뿌리를 내렸더라’라는 시구에서는 색채어가 활용되었다. 그러나 (가)에서는 색채어를 활용하여 시적 긴장감을 고조시킨 부분을 찾을 수 없다.
⑤ 공감각적 이미지의 활용은 (가)와 (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02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①
작품에 대한 해설을 바탕으로 시어 및 시구의 의미나 기능을 이해해 보는 문제이다. 화자가 자신과 세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에 유의하며 진술의 적절성을 판단해 본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은 ‘이발쟁이’나 ‘야경꾼’과 마찬가지로 사소한 문제 때문에 화자가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힘없는 이웃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옹졸하게 분개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라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돼지 같은 주인 년’이라는 과격한 표현은 그 주인이 진정한 분노의 대상이 될 만한 특권 계급이라는 생각이 반영된 게 아니라, 자신이 엉뚱하게 분출한 분노의 표현 그대로에 해당할 것이다. 화자가 정작 분노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특권 계급이 일삼는 전횡에 해당하는 시구는 ‘왕궁의 음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② ‘언론의 자유’나 ‘월남 파병’의 문제는 [보기]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 침묵하는 자신의 모습이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이다.
③ 지금 자신이 반항하고 있는 일도 과거 포로수용소에서의 거즈 접기처럼 사소한 일이라고 느끼는 화자는 자기가 ‘개의 울음소리’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마저 질 정도로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들도 화자가 자신에 대해 자조적 태도를 지니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④ ‘절정 위’가 아니라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고한 것은 정작 분노해야 할 것들에 대해 침묵하고 힘없는 이웃들만 증오하는 자신의 모습이 옹졸한 소시민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⑤ ‘이발쟁이’나 ‘야경꾼’은 ‘땅 주인’, ‘구청 직원’, ‘동회 직 원’ 등과 달리 쉽게 증오의 대상이 될 만큼 만만한 사람들, 즉 사소한 문제로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힘없는 이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03 구절의 의미 파악 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은 ‘인간은 빵만으론 살 수 없다.’라는, 인간의 삶은 생존을 위한 기본 요건 이외에 다양한 문화적 욕구도 충족되어야만 한 다는 의미로 활용되는 관용구를 비틀어 놓은 시구이다. 시인은 ‘쌀을 훔쳤더라’라는 말을 통해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든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에 드러난 모습이 끝없는 욕망을 제어할 줄 모르는, 즉 빵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어서 쌀까지 훔치고 자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물구나무선 나무, 즉 뿌리가 뽑혀 하늘로 뻗은 나무는 자연 의 섭리에 어긋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이어질, ‘누이’ 와 ‘아버지’가 고통받는 부정적 현실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풍자하기 위한 비틀기나 뒤집기의 시작에 해당한다.
② 원래 통용되는 속담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다.’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이다. 그런데 ㉡에서는 이를 비틀어 놓음으로써 현실의 모순을 풍자하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③ 풍족하게 먹지도 못하는 상황을 ‘너무 배불러’라고 반어적으로 뒤집고, 음식을 눈으로 삼켰다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실상을 비틀어 놓음으로써 노동자들의 고된 생활상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⑤ ㉠과 대응되는 이미지를 통해, 평생 농사를 지은 아버지를 ‘한평생 허공에 매달려 / 수염만 허옇게 뿌리를 내렸’다고 하여 물구나무선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이 역시 논밭에 정 상적으로 서 있는 농부의 모습을 뒤집어 놓음으로써 현실의 모순을 고발하고자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