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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퇴계의 한시
이원걸(문학박사)
【1】 자연과 함께 한 소년 시절
가재
돌 지고 모래 파면
저절로 집이 되고
앞으로 가고 뒤로 가니
다리 또한 많구나
한 평생 한 옴큼
샘물에서 살아가니
강과 호수 물이
얼마나 많은지 묻지 않네
石蟹 석해
負石穿沙自有家 부석천사자유가
前行却走足偏多 전행각주족편다
生涯一掬山泉裏 생애일국산천리
不問江湖水幾何 불문강호수기하
負(질 부) 穿(뚫을 천) 沙(모래 사) 家(집 가) 前(앞 전) 却(물러날 각) 走(달릴 주) 偏 (기울 편) 涯(물가 애) 掬(잡을 국) 泉(샘 천) 裏(속 리) 問(물을 문) 湖(호수 호) 幾(몇 기)
이 시는 퇴계가 15세에 지은 「가재」란 시이다. 소년 퇴계가 샘물 속의 가재를 보며 지은 것이다. 가재는 새우와 게의 중간형으로 한자어는 석해(石蟹)이다. 가재의 몸은 붉은 빛을 띤 갈색인데 남한과 중국 동북부의 오염되지 않은 1급수에 산다고 한다.
소년은 샘물을 유심히 바라본다. 맑은 샘물에 가재 한 마리가 부지런히 집을 짓고 있다. 가재의 집이라야 별 것 아니다. 샘물에 깔린 작은 돌 몇 개면 족하다. 시인은 가재의 몸놀림을 자세히 살펴본다. 가재는 돌을 헤치고 모래를 파내어 집을 만드는데 정신이 없다. 가재는 앞으로도 잘 기어가며 뒷걸음질도 잘한다. 다리도 새우처럼 양쪽에 다섯 개씩 모두 열 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나는데 어려움이 없다.
소년은 문득 이 작은 생물에게서 가르침을 얻는다. 작은 샘물 안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가재는 샘물 너머 강과 호수가 얼마나 큰 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가재는 이 작은 샘물에서 사는 것이 만족하기 때문에 강과 호수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은 샘물은 퇴계가 살고 있는 그 곳이며, 강과 호수는 바람 그칠 날이 없는 험한 세상을 뜻한다. 가재는 퇴계 자신을 의미한다. 소년 퇴계는 조용한 샘물 안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가재를 보며 이처럼 깊은 의미가 담긴 시를 표현했다. 예리한 관찰력과 깊은 생각을 담은 시이다. 평범하면서도 교훈을 주는 시이다.
우리는 이 시에서 퇴계가 생각했던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퇴계는 자연과 함께 생활하며 인품을 바르게 하고 학문 연구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는 것을 이 시를 통해 미리 알 수 있다. 이 시는 퇴계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삶의 모습을 미리 그려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퇴계는 이 시에서 말했던 것처럼 늘그막에 조정의 높은 벼슬을 모두 내어놓고 작은 샘물 안의 가재가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것처럼 고향으로 내려와 성리학 연구와 제자를 가르치는데 만족했다.
들판의 연못
이슬 젖은 고운 풀잎
물가를 에워싸고
작은 연못 물 맑아
모래조차 보이지 않네
구름 날고 새 지남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다만 때때로 날던 제비
물결 찰까 두렵다네
野塘 야당
露草夭夭繞水涯 노초요요요수애
小塘淸活靜無沙 소당청활정무사
雲飛鳥過元相管 운비조과원상관
只怕時時燕蹴波 지파시시연축파
露(이슬 로) 草(풀 초) 夭(어릴 요) 繞(돌 요) 涯(물가 애) 塘(연못 당) 淸(맑을 청)
活(살 활) 靜(고요할 정) 雲(구름 운) 飛(날 비) 鳥(새 조) 過(지날 과) 相(서로 상)
管(관계될 관) 只(다만 지) 怕(두려울 파) 燕(제비 연) 蹴(찰 축) 波(물결 파)
이 시는 퇴계가 18세 때 들판의 연못을 지나가다가 지은 것으로, 제목은 들판의 연못이라는 뜻의 「야당(野塘)」이다. 이 시에 연못과 구름․제비가 등장한다. 연못은 잔잔한 분위기를 나타내며, 제비는 활발히 움직이는 대상을 말한다. 제비는 음력 9월 9일에 강남으로 갔다가 3월 3일에 돌아오는 총명한 새로 알려져 있다. 우리 조상들은 강남 갔던 제비가 집으로 돌아와 보금자리를 트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소년 퇴계는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다. 태양이 솟아오르기 전이다. 지난밤에 이슬이 나무와 풀잎에 내렸다. 소년은 연못가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맑고 잔잔한 연못과 풀잎에 구슬처럼 내린 이슬 때문이다. 연못 둘레에 이슬을 함빡 머금은 풀잎이 빙 둘러 있다. 연못물이 너무 맑아 모래조차 보이지 않는다. 고운 수면 위로 가끔 구름이 지나고 새가 날며 지나간다. 투명한 거울에 비친 자연의 움직임이다. 소년은 아름다운 연못의 모습을 보고 이 잔잔한 수면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시키고 싶었다.
이 시에도 18세 소년 퇴계의 철학적 생각이 담겨 있다. 1구는 자연 대상을 표현한 것이다. 시인은 자연 현상이나 대상을 보고 시를 쓰기 마련이다. 연못과 그것을 두른 풀잎을 보고 이런 시를 쓰게 된 것이다. 2구는 투명한 연못을 표현한 것인데 깨끗한 사람의 마음을 상징한다. 모래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깨끗한 연못은 마음에 욕심과 잡된 생각이 침범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3구는 연못에 구름과 새가 날아가는 것이 비쳐지고 있음을 표현한 것인데 깨끗한 마음에 바깥 사물이 와서 비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고요한 마음에 점차 외부로부터 여러 가지 현상이나 사건이 접근한다는 의미이다.
퇴계가 이 시에서 강조하고자하는 바는 4구에 있다. 지금까지 조용한 분위기가 제비가 등장함으로써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담겨 있다. 제비는 땅 위를 스치듯이 난다. 급히 아래로 날다가 돌기를 반복하며 원을 그리듯 날아 오를 때도 있다. 또한 조용한 수면을 스쳐갈 때도 있는데 시인은 제비가 조용한 연못의 수면을 스쳐가면서 물결을 일으킬까 염려한다.
여기서 잔잔한 수면은 사람의 마음이 평온한 상태를 의미하며 제비는 인간의 욕망을 의미한다. 시인은 제비로 인해 연못물이 일렁이게 될까 염려한 것이다. 소년 퇴계는 들판 연못의 잔잔함을 인간의 평온한 마음에 비유하여, 잔잔한 인간의 마음이 외부 세계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을 경계하며 이처럼 표현했다.
감회
홀로 숲 속 작은 집에서
만 권의 책 즐겨 읽으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십 년 세월 살아왔네
이제야 진리의 근원
어렴풋이 깨달은 것 같으니
이는 내 마음으로
우주를 보는 것일세
感懷 감회
獨愛林廬萬卷書 독애임려만권서
一般心事十年餘 일반심사십년여
邇來似與源頭會 이래사여원두회
都把吾心看太虛 도파오심간태허
獨(홀로 독) 愛(사랑 애) 廬(초가집 려) 萬(일만 만) 卷(책 권) 書(글 서) 般(일반 반) 事(일 사) 餘(남을 여) 邇(가까울 이) 與(더불어 여) 源(근원 원) 頭(머리 두) 會(모일 회) 都(모두 도) 把(잡을 파) 吾(나 오) 看(볼 간) 太(클 태) 虛(빌 허)
이 시는 퇴계가 19세 때에 작은 아버지 댁에서 성리학의 원리를 연구한 책인 성리대전(性理大全) 두 권을 읽고 성리학의 깊은 뜻을 깨닫고 쓴 것이다. 퇴계는 본격적으로 성리학 관련 서적을 만났던 것이다. 시의 제목은 느낀 바를 쓴다는 의미의 「감회(感懷)」이다. 이 무렵 퇴계는 [소학(小學)] 읽고 학문의 발판을 다지며 의학도 익혀 자신의 건강에 유의했다고 한다.
특히, 이 당시 그는 먹고 자는 것도 잊을 정도로 [주역(周易)]을 부지런히 읽고 그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다. 이 때문에 퇴계는 몸이 마르고 쇠약해지는 병을 얻어 평생 고생을 하게 된다. 훗날 퇴계는 이렇게 된 원인이 학문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스승을 만나지 못한 채 지나치게 독서와 사색에만 몰두하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퇴계는 태어난 지 일곱 달만에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 춘천 박씨의 가르침을 받고 자라났다. 여섯 살 무렵에 이웃 노인에게 [천자문(千字文)]을 배우고, 열두 살에는 작은 아버지에게서 [논어(論語)]를 배웠다고 한다. 이 외에 그는 특별한 스승을 모시고 공부한 적은 없었다. 혼자 독서하며 깊이 생각하여 이치를 깨달았다. 1구와 2구에 이런 내용이 있다. 소년 퇴계는 숲 속 작은 집에서 십여 년 동안 온 마음과 힘을 쏟았다고 한다. 그에게 책이 유일한 스승이었다. 그는 책 속에서 진리를 찾고 기뻐하였다.
그의 독서 수준은 대단했다. 기초 학문의 단계를 지나 수준 높고 철학적인 내용이 담긴 성리학 서적을 깊이 의미하면서 거기에 담긴 내용을 터득하고 나니 온 세상의 근원을 파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태허(太虛)는 크게 비어 있다는 의미인데 우주의 가장 근본이 되는 이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끊임없는 탐구와 사색의 과정을 거쳐 도달할 수 있다. 이 시는 퇴계의 소년 시절 독서와 성리학의 이치를 깨닫고 그 기쁨을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그는 일반 소년들과 달리 이처럼 깊은 생각과 학문 탐구로 인해 수준 높은 성리학의 이치를 소년 시절에 이미 터득했다.
【2】 매형을 사랑한 퇴계
매화는 청렴하고 절개가 있으며, 나무가 늙고 파리한 것에서 신선의 풍격이 있다. 그리고 매화는 많은 꽃 가운데 이른 봄에 피므로, 화형(花兄)․화괴(花魁)라고도 부른다. 맑고 아름다운 자태 때문에 살결이 맑고 깨끗한 미인이라는 의미의 빙기옥설(氷肌玉屑)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중국 송나라 때 임포(林逋)라는 사람은 아내와 자식 대신 매화와 학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불렀다. 이처럼 옛 선비들 대부분이 매화를 사랑했지만, 퇴계는 유독 매화의 고결한 자태와 향기를 사랑했다고 한다.
현재 도산서원 경내에 매화원(梅花園)이라는 표시석이 남아 있는데 퇴계가 평소 매화를 좋아하여 심어 두고 즐겼던 흔적이다. 그의 문집 여러 곳에 매화를 소재로 해서 지은 시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퇴계의 평소 말과 행동을 기록한 [언행록]에서 살펴볼 수 있다.
퇴계가 세상을 떠날 때의 일화를 보면, 퇴계는 병이 중하여 자신도 모르게 옷을 입은 채 설사를 했는데, 분재(盆栽)한 매화가 곁에 있는 것을 보고 불결한 냄새 때문에 매형(梅兄)에게 미안하니 매화를 옮기라고 했다 한다. 여기서 우리는 퇴계가 식물인 매화를 인격체로 대하고 있음을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퇴계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던 날 아침에도 제자들에게 분재한 매화에게 물을 주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일 평생 매화를 곁에 두고 애정을 기울였다. 퇴계에 매화는 벗이었다. 매화의 고결한 인격을 그리워하고 그런 인격을 갖춘 매화를 벗으로 맞았다.
내 벗 소나무․국화․매화․대․연꽃과
사귀는 정 담담해 싫지 않다네
이 가운데 매화를 특별히 좋아해
절우사에 가장 먼저 맞아 들였네
我友五節君 아우오절군
交情不厭淡 교정불염담
梅君特好我 매군특호아
邀社不待三 요사부대삼
我(나 아) 節(절개 절) 君(임금 군) 交(사귈 교) 情(뜻 정) 厭(싫을 염) 淡(옅을 담)
梅(매화 매) 特(특별할 특) 邀(맞을 요) 社(모일 사) 待(기다릴 대)
퇴계는 소나무․국화․매화․대나무․연꽃 가운데 유독 매화를 좋아했다. 위의 다섯 가지는 고결한 기상과 멋을 지닌 식물로 공식 인정되었다. 눈보라 가운데 굳센 기상을 드러내는 소나무․풍요한 가을 정서와 함께 하는 국화․꼿꼿한 기상의 대나무․진흙 가운데서도 물들지 않는 연꽃은 저마다 고유의 멋을 간직하고 있다. 이 가운데 퇴계는 매화를 가장 좋아하여 도산서당의 절우사(節友社)에 가장 먼저 심었다고 했다.
절우사는 도산서원 동쪽 산기슭에 있는 화단이다. 이곳에 퇴계가 화단을 만들어 대나무․매화․국화․소나무를 심어 감상하며 즐겼다고 한다. 여기서 절우는 계절의 벗이란 뜻으로, 매화․대나무․소나무․국화를 말한다. [퇴계집]에 보면, 단을 만들고 그 위에 매화․대․솔․국화를 심어 절우사라고 했다 한다[築之爲壇, 而植其上梅竹松菊, 曰節友社]라고 기록되어 있다.
홀로 산 창에 기대니
밤 기운 차가운데
매화 가지에 오른 달
밝고도 둥글다
가을 바람 살랑살랑
일으키지 않아도
맑은 향기
절로 정원 가득하다네
獨倚山窓夜色寒 독의산창야색한
梅梢月上正團團 매초월상정단단
不須更喚微風至 불수갱환미풍지
自有淸香滿院間 자유청향만원간
倚(기댈 의) 窓(창 창) 夜(밤 야) 寒(찰 한) 梢(가지끝 초) 團(둥글 단) 須(모름지기 수) 更(디시 갱) 喚(부를 환) 微(작을 미) 淸(맑을 청) 香(향기 향) 滿(가득할 만) 院 (집 원)
퇴계와 매화는 고결한 벗님으로, 은은한 향기를 흩날리는 꽃일 뿐만 아니라 달빛과 어울려 한층 더 멋스러움을 드러낸다. 달이 오른 정원의 매화를 감상하며 지은 시이다. 시인은 홀로 달 오른 밤 창가에 기대어 매화를 감상한다. 날씨가 쌀쌀한 가운데 매화 핀 정원에 달이 비친다. 하얀 매화 가지에 둥근 달이 걸렸다. 흰 매화와 환한 달이 절묘한 운치를 자아낸다.
시인은 자신도 모르게 정원의 매화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방이 모두 조용하다. 시인은 달빛과 향기에 절로 취한다. 그래서 온 정원 가득한 매화 향기는 굳이 가을 바람을 일으켜 향기를 실어오지 않아도 된다. 자연스럽게 향기가 퍼져오기 때문이다.
구슬 가지에 눈이 비쳐
차가움도 두렵지 않고
다시 달을 맞으니
또렷하게 보이네
어떠해야 여기에
달을 오래 머물게 해서
매화도 떨어지지 않고
눈도 녹지 않게 할까
雪映瓊枝不怕寒 설영경지불파한
更邀桂魄十分看 갱요계백십분간
個中安得長留月 개중안득장유월
梅不飄零雪未殘 매불표령설미잔
映(비칠 영) 瓊(구슬 경) 桂(계수나무 계) 魄(혼 백) 看(볼 간) 個(낱 개) 安(어찌 안) 長(길 장) 留(머무를 유) 飄(드날릴 표) 零(떨어지 령) 殘(남을 잔)
눈이 내린 뒤, 영롱한 구슬 같은 매화 가지에 달까지 오른다. 매화는 원래 추위를 견디고 피기 때문에 눈이 내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구슬처럼 고운 매화 가지에 눈마저 내려 청아한 멋이 드러난다. 거기에 달까지 떠올라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매화의 은은한 자태․흰 눈․하늘의 달빛이 너무나 곱게 어울린다.
이즈음 눈 맞은 매화의 고운 모습이 더욱 또렷하게 시인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러자 시인은 순간적으로 이 상태를 그대로 유지시키고 싶은 욕심이 피어오른다. 하늘엔 달을 고정해 두고, 매화도 지지 않고 눈도 녹지 않는 현재의 모습 그대로 머물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 가운데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는 것이다. 고요한 가운데 쏟아지는 달빛과 매화 향기 속에 시인은 그대로 머물고 싶어 소박한 욕심을 드러낸 것이다.
다행히 매선이
나와 함께 짝해 주어
나그네로 지냈지만
꿈도 향기로왔다네
동쪽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그대 데려가질 못하니
티끌 많은 서울에서
고운 모습 곱게 간직해주오
頓荷梅仙伴我凉 돈하매선반아량
客窓蕭灑夢魂香 객창소쇄몽혼향
東歸恨未携君去 동귀한미휴군거
京洛塵中好艶藏 경락진중호염장
頓(조아릴 돈) 荷(멜 하) 伴(짝 반) 凉(서늘할 량) 客(나그네 객) 蕭(쓸쓸할 소) 灑(씻 을 쇄) 夢(꿈 몽) 魂(넋 혼) 歸(돌아갈 귀) 恨(한스러울 한) 携(끌 휴) 君(그대 군) 洛 (강물 락) 塵(티끌 진) 艶(고울 염) 藏(감출 장)
서울에 분재한 매화를 두고 떠나오며 주고받은 시이다. 퇴계가 한양에 거처할 때 분재한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살았는데, 퇴계는 그 매화를 감상하며 객지의 고독을 달랜다. 그래서 자신은 비록 객지인 서울에 살고 있지만, 다정한 친구 매화가 가까이 있기 때문에 한양 생활에 활력을 얻을 수 있고, 꿈도 향기로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오며 매화를 가져 올 수 없어 그대로 두고 떠나와야 하기에 아쉬운 마음을 감출 길 없다. 그렇지만 퇴계는 매화에게 고운 자태를 잃지 말기를 당부한다. 연인과 이별하는 것처럼 다정하다.
듣건대 도선께서
우리를 푸대접하셔도
임이 떠나신 뒤에도
하늘 향기 피울 겁니다
원컨대 임께선
저와 함께 계실 때처럼
맑고 고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주어요
聞說陶仙我輩凉 문설도선아배량
待公歸去發天香 대공귀거발천향
願公相對相思處 원공상대상사처
玉雪淸眞共善藏 옥설청진공선장
聞(들을 문) 說(말씀 설) 陶(질그릇 도) 仙(신선 선) 輩(무리 배) 凉(서늘할 량) 發(필 발) 願(원할 원) 對(대할 대) 思(생각 사) 處(곳 처) 眞(참 진) 善(잘할 선)
매화의 답시이다. 매화를 여성 화자 입장에서 표현했다. 퇴계를 도산의 신선이라고 했다. 매화는 자기를 떠나가는 주인에게 푸대접한다고 토라졌다. 여성적인 표현이다. 그래도 여전히 하늘이 부여한 향기를 내뿜겠다고 한다. 떠나시는 임에 대한 아쉬움을 접고 본연의 향기를 피우리라고 다짐한다.
반면에 매화는 떠나가시는 임에 대해서도 당부를 잊지 않는다. 떠나가시는 임께서는 도산으로 낙향해서도 서울에서 자기와 마주 대하던 그 순간들을 잊지 말라고 부탁한다. 그 모습 그 대로를 간직해 달라고 한다. 이처럼 퇴계는 매화를 인격적으로 형상하여 애틋한 정감을 표현했다. 이는 매화에 대한 퇴계의 또 다른 애정 표현이다.
시냇가 집의
작은 매화나무에
납일 전에 꽃망울이
가지마다 맺혔다 하네
봉오리 꼭 붙들고
내 가길 기다려
봄추위 일찍 입어
빛을 잃지 말아라
聞說溪堂小梅樹 문설계당소매수
臘前蓓蕾滿枝間 납전배뢰만지간
留芳可待溪翁去 유방가대계옹거
莫被春寒早損顔 막피춘한조손안
溪(시내 계) 堂(집 당) 樹(나무 수) 臘(섣달 납) 蓓(꽃망을 배) 蕾(꽃봉오리 뢰) 留(머 무를 류) 芳(꽃다울 방) 翁(늙은이 옹) 莫(말 막) 被(입을 피) 早(일찍 조) 損(덜 손) 顔(얼굴 안)
퇴계는 객지 생활 가운데서도 고향 매화를 늘 잊지 못했다.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이며 두고 온 매화가 있기 때문이다. 고향 매화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이다. 퇴계는 한양에서 도산의 매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시냇가 작은 매화 가지에 납일(臘日)도 되기 전에 가지마다 꽃망울이 맺혔다는 것이다.
이에 퇴계는 불안하다. 하루 빨리 고향으로 달려가 고운 모습을 보고자 함이다. 그래서 매화에게 가지의 꽃 봉우리를 고이 간직했다가 자신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다. 행여 그 사이에 한파를 입지 말았으면 하는 소망도 함께 담았다.
손수 매화 심어
외로운 서재 지키게 했으니
올해에도 분명
향기 가득 뿜을 것일세
주인은 서울에서
멀리 서로 생각하니
무한한 맑은 시름
가만가만 맺히리
手種寒梅護一堂 수종한매호일당
今年應發滿園香 금년응발만원향
主人京洛遙相憶 주인경락요상억
無限淸愁暗結腸 무한청수암결장
種(심을 종) 護(보호할 호) 應(응할 응) 京(서울 경) 遙(멀 요) 憶(그리워할 억) 限(한 정할 한) 愁(근심 수) 暗(몰래 암) 結(맺을 결) 腸(창자 장)
이 시는 고향 매화가 피어 향기 피울 것을 떠올리며 지은 것이다. 퇴계는 고향의 매화를 손수 심었다. 그 매화를 남겨 두고 타향살이를 하면서 늘 그리워했다.
시인은 고향에 남아 외로운 서재를 지키는 매화에게 그리운 정을 드러내었다. 달려 갈 수 없는 현실이기에 고향 매화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간다. 매화가 필 무렵에 고향에서 향기를 피울 매화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곳에 대한 그리움이 피어난 것이다.
아침 일찍 산 북쪽에
봄빛 찾아왔다더니
눈에 들어오는 꽃이
비단 더미처럼 피었네
대 떨기 헤쳐 보니
초췌하여 놀라웠고
매화 그루 잡고
늦게 핀 것 탄식했네
성긴 송이 바람 받아
저렇게 흩날리네
괴로운 그 절개가
모진 비에 꺾였구나
지난 해 왔던 벗이
이제 서로 막혔으니
근심이 가시질 않아
주체할 수 없구나
朝從山北訪春來 조종산북방춘래
入眼山花爛錦堆 입안산화난금퇴
試發竹叢驚獨悴 시발죽총경독췌
旋攀梅樹歎遲開 선반매수탄지개
疎英更被風顚簸 소영갱피풍전파
苦節重遭雨惡摧 고절중조우악최
去歲同人今又阻 거세동인금우조
淸愁依舊浩難裁 청수의구호난재
朝(아침 조) 從(따를 종) 訪(찾을 방) 春(봄 춘) 來(올 래) 眼(눈 안) 爛(문드러질 란) 錦(비단 금) 堆(쌓일 퇴) 試(시험할 시) 叢(떨기 총) 驚(놀랄 경) 悴(파리할 췌) 旋(돌 선) 攀(잡을 반) 歎(탄식할 탄) 遲(느릴 지) 疎(성길 소) 英(꽃부리 영) 顚(도리어 전) 簸(까부를 파) 遭(만날 조) 摧(꺾을 최) 歲(해 세) 阻(막힐 조) 依(의지할 의) 舊(옛 구) 浩(넓을 호) 裁(지을 재)
퇴계는 애써 찾은 고향 매화가 추위로 인해 손상되었음을 보고 매우 슬퍼하며 안타까워하였다. 다음 시의 제목에 의하면, 시인이 삼월 중순에 도산에 이르러 매화가 추위에 피해를 입음이 심해 온실에 넣었으나 역시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아쉬운 정을 다음처럼 표현해 내었다. 도산 매화가 겨울 추위에 손상되었음을 슬퍼하며 지은 시다.
시인은 산의 북쪽에서 봄이 찾아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매화를 찾았다. 그런데 대나무 떨기 속에 핀 매화가 추위에 상해 여지없이 손상된 것이다. 이에 매화 그루를 잡고 아픈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 손상된 꽃 송이가 바람결에 흩날리는 것을 보니 매우 가슴 아팠다. 그래서 작년에 만났던 벗을 만날 길이 없다며 아쉬워한다.
매화는 퇴계에게 고결한 벗이었다. 벗인 동시에 위안과 평안을 주는 대상이기에 매화를 매형이라 불렀다. 이와 함께 퇴계는 매화를 은은한 향기가 우러나는 꽃으로 즐겼다. 굳센 기상과 향기가 돋보이는 매화가 일품이라고 하였다. 이런 두 가지 특성을 지닌 매화는 퇴계가 달밤에 즐겨 찾는 대상이었다. 달빛과 매화 향기가 어울린 가운데 시인 퇴계는 한적한 멋을 누렸다.
그래서 퇴계와 매화는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인격체가 되었다. 퇴계는 매화에게 주고 답한 시를 통해 다정다감한 정서를 표출하였다. 그러면서 서로 심지를 굳게 하여 속세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지켜나가자고 당부하였다. 이러한 표현 역시 심성 수양을 평생 과제로 실천하려고 했던 퇴계의 의식과 관련이 있다.
때문에 퇴계는 벼슬살이를 하면서 고향에 두고 온 매화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고향은 퇴계가 만년에 학문을 수양하고 제자를 양성할 터전이기에 늘 동경의 지향점이었다. 이 같은 매화에 대한 애정은 추위에 상한 매화를 보고 슬퍼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퇴계의 어진 성품은 매화의 성격과 유사한 점을 지녔다. 그래서 그는 매화를 유독 많이 남겼다. 매화를 가까이 두고, 그와 함께 친하며 위안의 친구로 삼았다. 매화를 사랑한 퇴계는 매화의 속성처럼 고결한 교육자․철학자․문학가․관료의 삶을 살았다.
【3】 산촌 네 계절의 멋스러움
안개 걷힌 봄 동산
비단처럼 어여쁘고
고운 새 주고받는
울음소리 정겹구나
요즈음 이 산 속에
찾아오는 이 없어
마당의 푸른 풀이
제멋대로 자라네
霧捲春山錦繡明 무권춘산금수명
珍禽相和百般鳴 진금상화백반명
山居近日無來客 산거근일무래객
碧草中庭滿意生 벽초중정만의생 (시집 권4)
霧(안개 무) 捲(말 권) 錦(비단 금) 繡(수놓을 수) 珍(보배 진) 禽(새 금) 和(답할 화)
般(일반 반) 鳴(울 명) 居(살 거) 近(가까울 근) 來(올 래) 客(손님 객) 碧(푸를 벽)
庭(뜰 정) 滿(가득할 만) 意(뜻 의)
봄이 왔다. 산촌의 흥겨움을 담았다. 동산은 파란 새싹, 고운 새순, 예쁜 꽃으로 꾸며져 있다. 그런데 아침 산 안개가 그림처럼 고운 동산을 가리고 있다. 안개 낀 봄 동산도 멋이 있다. 시인은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린다.
어느덧 안개가 하늘로 피어오르고 비단 같이 고운 산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흰 안개가 걷힌 뒤 푸른 산이 나타난다. 그 무렵 이름 모를 산새가 여기저기서 아침 인사를 한다. 흰 안개․파란 산․새 울음소리는 시각적․청각적 표현이 잘 어울린 부분이다.
시인은 뜰로 시선을 옮긴다. 산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요즈음 찾아오는 이가 없어 마당에는 풀이 제멋대로 자란다. 그래서 애써 마당의 풀을 뽑을 필요가 없다. 찾아오는 손님이 뜸하다는 표현은 시끄러운 세상을 벗어난 산 속 생활의 고요함을 의미한다. 산 속의 한가로운 일상 생활을 표현한 시다.
보리 추수하는 계절
집집마다 기뻐하는데
닭과 개 뽕나무 삼나무도
저마다 생기가 도네
요즈음 비록
이처럼 가난이 심해도
우물가를 기어가던
진중자 모습은 면하리라
田家相賀麥秋天 천가상하맥주천
鷄犬桑麻任自然 계견상마임자연
縱使年來窮到骨 종사연래궁도골
免敎匍匐井螬邊 면교포복정조변 (시집 권3)
賀(하례할 하) 麥(보리 맥) 鷄( 닭 계) 桑(뽕 나무 상) 麻( 삼 마) 任(맡길 임)
縱(비록 종) 使(하여금 사) 窮(다할 궁) 到(이를 도) 骨(뼈 골) 免(면할 면)
敎(하여금 교) 匍(기어갈 포) 匐(엎드릴 복) 螬(굼벵이 조) 邊(가 변)
보리 추수기다. 이 무렵 농촌 백성들의 일년 양식은 거의 바닥이 나거나 이미 그러한 집도 많았다. 당시 농촌 생활은 보리가 추수되는 무렵이 일년 중 가장 견디기 어려운 때이다. 식량이 떨어진 집에서는 풀뿌리나 소나무 껍질 등을 멀건 죽과 함께 먹으며 이 위기를 넘겨야만 했다. 우리 조상들은 시기를 보리 고개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제 막 보리 추수를 하게 된 것이다. 무사히 보리 고개를 넘겼다는 말이다. 먹거리가 풍부하지 못했던 때의 보리 추수는 농촌 사람들에게 매우 큰 기쁨을 준다. 이렇게 사람들이 저마다 흥겨우니 개와 닭도 평화롭기 마련이다. 그리고 부업으로 재배하는 뽕나무․삼나무도 잘 자란다. 뽕나무 잎으로 누에를 길러 명주실을 얻고, 삼 나무에서는 삼베를 생산해 낸다. 시인은 농촌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이어지는 시는 보리 추수 덕분에 농민들이 굶주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표현이다. 진중자는 [맹자]에 나오는 인물이다. 그는 제나라 명문 집안 출신의 사람으로, 불의와 타협하기 싫어 오릉으로 옮겨 가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흘 동안 굶다가 우물가에서 굼벵이가 반이나 파먹은 자두를 씹지도 않고 삼킨 뒤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그는 청렴한 척하다가 결국 비난을 받는다. 청렴한 선비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우물가에서 기어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는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위의 시로 돌아가면, 보리 추수를 맞은 농민들이 진중자와 같이 어려운 생활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티 없이 소박한 농부들의 모습이 청렴한 척하다가 비난받는 그보다 순수하다는 의미도 드러낸다. 이 시는 농민들이 보리를 추수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구름이 해를 가리어
늦게까지 머물렀는데
해바라기 석류꽃
골고루 피었구나
먼 산에 밤 비 내렸음을
이제 겨우 알았으니
앞 시내 돌 여울에
시냇물 소리 들려오는구나
薄雲濃日晩悠悠 박운농일만유유
開遍川葵與海榴 개편천규여해류
始覺遠山添夜雨 시각원산첨야우
前溪石瀨響浣流 전계석뢰향완류 (권3)
薄(엷을 박) 濃(짙을 농) 晩(늦을 만) 悠(그윽할 유) 遍(두루 편) 葵(해바라기 규)
與(더불어 여) 榴(석류나무 류) 覺(깨달을 각) 遠(멀 원) 添(더할 첨) 溪(시내 계)
瀨(여울 뢰) 響(소리 향) 浣(씻을 완)
한 여름 아침이다. 하늘의 구름이 햇빛을 가린 채 머물러 있다. 시인의 시선은 하늘에서 땅으로 옮겨진다. 해바라기와 석류꽃이 피어있다. 해바라기의 노란 색깔과 석류의 붉은 색은 다소 어둡던 분위기를 밝게 해준다. 시인은 냇가로 눈길을 옮긴다. 문맥상 셋째 구와 넷째 구는 서로 바뀐 경우다. 시에서는 가끔 이처럼 강조하고자 문맥을 앞뒤로 바꿀 때가 있다.
먼저 넷째 구를 살펴보자. 조용하던 냇물이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분명 시인이 살고 있는 곳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다만 구름만 잔뜩 머문 찌푸린 날씨다.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냇물이 불어날 까닭이 없다. 이에 대한 해명은 셋째 구에서 찾아야 한다. 먼 산에서 지형에 따라 내리는 비로 인해 불어난 개울물이 시인이 머무는 마을 앞의 개울까지 이르러 콸콸 흘러내린다. 장마철 한 여름의 모습을 표현한 시다.
집에서 맞은 이 가을
누구와 함께 기뻐하리
석양빛 단풍에 비쳐
그림보다 곱구나
갑자기 서쪽 바람 일고
기러기 날아가니
혹시 친구의 편지를
전해오지나 않을까
秋堂眺望與誰娛 추당조망여수오
夕照楓林勝畵圖 석조풍림승화도
忽有西風吹鴈過 홀유서풍취안과
故人書信寄來無 고인서신기래부 (시집 권4)
堂(집 당) 眺(바라볼 조) 望(바랄 망) 誰(누구 수) 娛(즐길 오)
照(비칠 조) 楓(단풍나무 풍) 勝(나을 승) 畵(그림 화) 圖(그림 도)
忽(문득 홀) 吹(불 취) 鴈(기러기 안) 過(지날 과) 信(소식 신) 寄(붙일 기)
저무는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가을 분위기가 외롭다. 저무는 가을 산을 함께 감상할 사람이 없어 더욱 아쉽다. 시인은 기우는 태양을 주목한다. 붉은 태양이 곱게 물든 단풍 산을 비쳐준다. 석양빛과 어울린 단풍의 모습은 그림보다 아름답다. 그래서 쓸쓸했던 시인은 다소 위안을 받는다.
이런 정서는 다시 바뀐다. 어둠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서쪽에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갑자기 쓸쓸한 기운이 일어난다. 이어 먼 하늘에는 기러기 한 떼가 지나간다. 늦가을의 분위기는 점차 높아간다. 시인은 문득 하늘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를 바라보며 친구를 그리워한다. 외로운 심정을 달래며 친구의 소식을 기다리는 것이다. 늦가을 산촌의 쓸쓸한 정서가 표현된 작품이다.
우뚝한 봉우리
찬 하늘에 솟았고
뜰 아래엔 국화 꽃
몇 송이 남아있네
마당 쓸고 향 피우는
일밖에 다른 일 없는데
종이 창문에 햇살 비쳐
마음처럼 밝구나
群峰傑卓入霜空 군봉걸탁입상공
庭下黃花尙倚叢 정하황화상의총
掃地焚香無外事 소지분향무외사
紙窓銜日曒如衷 지창함일교여충 (시집 권4)
群(무리 군) 峰(봉우리 봉) 傑(호걸 걸) 卓(빼어날 탁) 庭(뜰 정) 尙(오히려 상)
倚(기댈 의) 叢(떨기 총) 掃(쓸 소) 焚(태울 분) 香(향기 향) 紙(종이 지) 窓(창 창)
銜(머금을 함) 曒(빛날 교) 衷(가운데 충)
조용한 겨울 아침이다. 산촌의 겨울 아침은 맑고 산뜻하다. 오두막 앞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언제 보아도 멋이 있다. 아침저녁 늘 대하는 봉우리는 빙긋이 웃어주는 친구이다. 차가운 겨울 하늘에 우뚝 솟아 있는 그 모습은 장엄하다.
그런데 뜰 아래쪽에는 때늦게 핀 국화 몇 송이가 남아 있다. 아직 완전히 시들지는 않은 것 같다. 초겨울 추위가 매서워도 국화의 고결한 모습을 모두 시들게 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평온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시인은 마당을 쓸고 향을 피워 마음을 바르게 한 뒤 독서한다. 아침 햇살이 창호지에 비친다. 따뜻한 햇살이 창호지를 통해 전해지면 방은 밝고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해진다. 시인은 평화롭고 따뜻한 정경에 마음이 평온해 진다. 산촌의 겨울 오전은 이처럼 평화롭다.
【4】 집승정 시에 이은 시(1)
다음 시는 퇴계가 경북 예천 근처에 있다고 하는 집승정(集勝亭)의 시를 보고 그 시의 운자에 이어 쓴 시 10수 가운데 첫 번째 시이다. 이 시는 당시에 중국 문인들에게 알려질 만큼 유명했다고 한다. 퇴계는 철학적 생각을 시로 표현한 경우가 많지만 이 시에는 정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시를 나누어 감상하기로 한다.
새벽 알리는 호각 소리
침상 머리에 들려오는데
먼 산성에
고운 누각이 숨어있네
아전들이 일어나건
닭이 울건 관계없이
간 밤 달게 자고
꿈에서 깨어나네
角聲催曉落牀頭 각성최효락상두
縹緲山城隱畵樓 표묘산성은화루
吏起鷄鳴渾不管 이기계명혼불관
遊仙枕上夢初收 유선침상몽초수 (시집 권5)
角(뿔피리 각) 催(재촉할 최) 曉(새벽 효) 牀(침상 상) 頭(머리 두) 縹(아득할 표) 緲(아득할 묘) 隱(숨을 은) 樓(누대 루) 吏(아전 리) 鷄(닭 계)渾(모두 혼) 管(관계될 관) 遊(놀 유) 夢(꿈 몽) 初(처음 초) 收(거둘 수)
위의 시는 그 가운데 첫 번째 시이다. 새벽 호각 소리를 들으며 지은 시다. 고을을 경비하는 산성의 새벽 점호를 재촉하는 호각 소리가 들려 온다. 시인은 관리들이 오갈 때 머무는 관사에서 잠들었다가 새벽잠을 깬다. 새벽 공기를 가르는 산성의 호각 소리가 침상 머리까지 들려 온다. 갑자기 들려오는 호각 소리는 산성에서 급한 상황이 발생했거나 멀리서 급한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전체 시의 흐름을 보아 산성의 일상 새벽 점호를 재촉하는 호각 소리로 보인다. 요즘 군부대에서 군인들을 깨우기 위해 부는 기상 나팔 소리라고 보면 된다. 시인은 군인이 아니기 때문에 애써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다. 잠자리에 누운 채 떠오르는 생각을 시에 담는다. 그림처럼 고운 누각이 서있는 산성이 떠오른다. 고운 누각을 배경으로 하여 산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다.
이어 새벽닭도 길게 운다. 그 무렵 아전들도 잠에서 깨어난다. 바깥에는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모두 새 아침을 맞기 위해 이처럼 바쁘게 움직인다. 그래도 시인은 늦장을 부려보기로 했다. 평소 생활에서 벗어난 여유를 누리고 싶은 것이다. 한가한 시상이 담긴 산성의 새벽 풍경이다. 이어 두 번 째 시를 보기로 한다. 해 저무는 산 속의 절간이다.
해 저무는 산사에
푸른 산 얼굴 감추고
고요한 어둠 속에
종소리 들리네
화가 시켜 종소리를
그리게 하고 싶지만
은은한 종소리
먼 하늘로 사라진다네
薄暮禪居隱翠峰 박모선거은취봉
鐘聲來自有無中 종성래자유무중
倩工欲畵烟鐘景 천공욕화연종경
其奈聲聲入太空 기내성성입태공 (시집 권5)
薄(엷을 박) 暮(저물 모) 禪(고요할 선) 翠(푸를 취) 峰(봉우리 봉) 鐘(종 종) 倩(청할 청) 烟(연기 연) 景(경치 경) 奈(어찌 내) 空(빌 공)
저무는 산 속의 절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느낀 바를 표현한 시다. 조선 시대의 절은 일반 불교 신도에게는 불법을 닦는 도량이었다. 반면에 유교를 받드는 선비들에게는 산수가 빼어나고 조용한 산 속의 절간이 독서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퇴계도 용수사와 청량사를 찾아가 독서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관계로 당시에는 일반 유학자와 스님간에 상당한 교류가 있었으며, 서로 시를 주고받았던 사례도 많았다. 이들이 서로 종교와 사상 이념은 달리했을 지라도 문학으로 서로 사귀었던 것이다. 그러나 퇴계에게 그런 시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퇴계는 그러한 감정의 표현을 절제했던 것 같다. 이제 이 시로 들어가 보자.
산 속의 절에 어둠이 찾아온다. 이로 인해 병풍처럼 절을 두른 봉우리는 푸른 얼굴을 숨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만물이 변해 가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이는 현대의 영화나 드라마 촬영에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전개되는 장면을 담는 기법과 같다. 푸른 산 빛이 검게 물든다. 사방은 이내 어둠이 내렸다. 만물은 하던 일을 멈추고 쉬어 가는 밤을 맞는다. 산사의 밤은 평온하게 깊어간다. 적막한 밤이다. 고요함도 지나치면 도리어 그 멋을 잃는다. 이는 적막감으로 이어지다가 급기야 고독이나 두려움으로 바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에 소개된 산사의 밤이 이렇게만 지난다면 싱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둠을 타고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 온다. 시인은 종소리가 고독을 막아 주는 위안의 대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매우 반갑다. 고요함 뒤에 들려오는 종소리는 시인의 마음을 울린다. 이제 퇴계는 고요한 밤 산사의 종소리를 음미하는 시인이 된다. 순간 그는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종소리를 어디에 담아 두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림 잘 그리는 화가가 있다면 그를 불러 지금 들려오는 이 종소리를 그대로 그려두고 싶었다.
요즘처럼 녹음기가 있다면 그 소리를 담아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사백여 년 전의 시대에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물론 사진기도 없는 때였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 자기가 느낀 바를 남겨 두기 위해서는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퇴계가 종소리를 그려두자는 것은 녹음기나 카메라가 없던 시대의 순수한 발상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퇴계 옆에는 화가가 없어 그 종소리를 그려 둘 수 없다는 점이다. 퇴계가 안타까워하는 사이 종소리는 하늘 멀리 사라지고 만다. 시인 퇴계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종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 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종소리를 그린다는 점이다. 청각적 심상을 시각 매체로 옮긴다는 의미다. 이는 감수성이 뛰어난 시인이라야 표현해낼 수 있는 부분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 절간 종소리가 들리다가 멀리 사라지는 구나 하는 식으로 덤덤하게 지나쳐 버리기 마련이다. 이런 데서 퇴계의 시인적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감각 표현을 남긴 이로 조선 중종 때의 기녀 황진이를 들 수 있다. 황진이는 동짓달 길고 긴 밤을 한 허리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속에 고이고이 접어 두었다가 사랑하는 임이 오신 밤에 실처럼 한 올 한 올 펴겠다는 시조를 남겼다. 긴 시간을 잘라 보관했다가 사랑하는 임과 함께 보내겠다는 표현이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표현의 고운 시조이다.
시인 퇴계에게도 그런 면모가 보인다. 황진이의 시조에는 과감한 의지가 표현되어 있다. 반면 퇴계의 시에는 종소리를 채 그리지 못한 미련이 담겨 있다. 미련이 담긴 퇴계의 시에는 아쉬움과 여운의 멋이 있다. 이런 점을 통해 퇴계는 도학자이면서도 다정다감한 시인이었다는 점이 확인된다. 이와 함께 퇴계가 스님과 관련해 지은 시 한 수를 더 감상하기로 한다. 눈 쌓인 길이라는 시다.
강가를 끼고 돌던
한 갈래 오솔길
높더니 낮아지고
끊겼다가 이어지네
눈 깊이 쌓여
인적이 끊겼더니
저 구름 너머
스님이 찾아 왔네
一徑傍江潯 일경방강심
高低斷復遶 고저단복요
積雪無人踪 적설무인종
僧來自雲表 승래자운표 (시집 권3)
徑(길 경) 傍(곁 방) 潯(물가 심) 斷(끊을 단) 復(다시 복) 遶(돌 요) 積(쌓을 적) 踪(발자취 종) 雲(구름 운)
강원도 평창의 섶다리
【5】 집승정 시에 이은 시(2)
지난달에 이어 집승정 시의 운자에 이어 쓴 시 열 수 가운데 세 번째 시와 네 번째 시를 감상하고자 한다. 세 번째 시는 먼 곳의 숲을 바라보며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정감을 표현한 것이다. 먼 곳의 풍경을 담은 시다. 시인은 화가가 먼 곳의 풍경을 원근법을 적용해 스케치하고 적절한 색을 넣어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는 것처럼 시에 풍경을 담는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그림처럼 고운 시를 그림이 담긴 시라고 했다.
시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 작품의 창작 과정도 예술 작품 창작 과정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한시에서 시인은 화가가 풍경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처럼, 제한된 한시 형식의 틀 안에서 명암과 색상을 조화시킨 풍경을 그려내기도 하며, 글자와 행 사이에 압축된 정감을 갈무리해 둔다.
그렇기 때문에 한시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알아내기 위해서는 유치원 꼬마들처럼 보물찾기를 해야 한다. 꼬마들은 선생님이 작은 돌멩이 아래나 나뭇가지 사이, 잔디 뿌리 밑에 꼭꼭 숨겨 둔 보물이 적힌 쪽지를 찾아야 선물을 받는다. 어릴 때 보물 적힌 쪽지를 찾아냈을 때의 기쁨을 떠올리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마찬가지로 한시에서 시인은 글자와 행 사이에 소중한 보물을 숨겨 둔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유치원생처럼 보물을 찾아야 한다. 시인은 선생님이 되어 보물을 여기저기에 숨긴다.
시인은 보물 쪽지를 쉽게 찾게도 하고 아주 비밀스러운 곳에 숨겨 독자를 고민하게 한다. 그렇지만 독자가 그것을 찾았을 때, 기쁨과 함께 한시가 지닌 독특한 맛을 느끼게 된다. 이제 시인이 숨겨둔 보물을 찾으러 산촌을 찾아가 보자. 시에 담긴 그림을 감상한다.
「먼 숲의 흰 연기」
고요한 긴 숲이
먼 마을 에워싸고
빈 골짜기에 바람 일어도
아득해 들리지 않구나
태평성대 모습이
없다고 말하지 말지니
산을 두른 아침 연기
보면 알겠네
「遠林白烟 : 원림백연」
漠漠脩林傍遠村 막막수림방원촌
風生虛籟杳無聞 풍생허뢰묘무문
太平莫道無形象 태평막도무형상
看取朝烟一帶痕 간취조연일대흔 「시집」 권5
漠(아득할 막) 脩(길 수) 傍(곁 방) 遠(멀 원) 村(마을 촌) 虛(빌 허) 籟(소리 뢰) 杳(아득할 묘) 莫(말 막) 道(말할 도) 形(모양 형) 象(모양 상) 看(볼 간) 取(취할 취) 朝(아침 조) 烟(연기 연) 帶(띠 대) 痕(흔적 흔)
아침이다. 긴 숲이 마을을 보호하듯 에워싸고 있다. 마을 앞에는 개울이 흐를 것이다. 뒤에 산이 있고 앞에는 개울이 흐르는 전통적 시골 마을이다. 시인은 건너편 마을을 주목하면서 느낀 바를 시에 그려낸다. 숲은 마을 뒷동산에 푸르게 자란 소나무를 의미한다. 우거진 소나무는 겨울철 모진 바람을 막아 주기도 하고, 가을철에 떨어진 솔잎은 농가의 불쏘시개로 이용되었다. 솔잎은 당시 땔감으로 매우 인기가 높았다.
연기도 많이 나지 않고 화력도 적당하여 밥을 짓거나 간단한 요리를 하는데 아주 좋은 땔감이었다. 그렇지만 소나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베지 않았다. 그리고 소나무를 재목으로 사용하고자 벨 경우,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승인을 받아야만 했으며 국가 기관에서는 공식적으로 이를 보호했다.
요즈음 이 소나무는 큰 수난을 받는다. 소나무를 베어내고 산을 밀어내더니 아파트를 짓는다. 이어 음식점․유흥업소가 줄을 이어 들어선다. 아스팔트를 도로를 만들더니 조용하고 공기 맑은 산에 사는 소나무를 닥치는 대로 옮겨 심는다. 소나무는 하소연도 못한 채 도시 한 복판에 심겨져 쉴 새 없이 달리는 자동차에서 내뿜는 매연과 소음 때문에 아주 힘겹게 살아간다. 옮겨 심어도 제대로 목숨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
겨우 목숨이 붙은 소나무는 사는 게 고생이다. 소나무는 떠나온 산이 그립다. 맑은 공기와 새 울음소리는 더욱 그립기만 하다. 그저 그리울 뿐이다. 옮겨갈 수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울며 살다가 일생을 마칠 일이다. 이렇게 산에서 살고 싶어하는 나를 산에 그대로 두고 내가 그리우면 사람들이 찾아오면 될 텐데.
다시 위의 시로 돌아간다. 소나무는 겨울철에 모든 초목이 시든 뒤에 푸른 모습으로 산을 지키며 높푸른 기상을 드러낸다. 이처럼 소나무가 우거진 골짜기에 바람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멀어서 느낄 수는 없다. 골짜기는 바람이 멎은 잔잔한 상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시에서 아침 연기가 사라지지 않고 머무는 것으로 보아 바람의 이동이 없다고 봐야 한다.
이 시에서 시인이 강조하고자하는 것은 후반부이다. 백성의 삶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다. 3구에서는 지금이 태평성대라고 말한 것이다. 4구는 그 이유를 해명한 것이다. 산허리에 아침 연기가 빙 둘러 있는 것이 곧 태평스러운 시대라는 의미이다. 푸른 산과 흰 연기는 좋은 색상의 배치이다.
푸른 바탕의 산에 흰 연기 모습이 퍽 정겹게 느껴진다. 흰 연기는 집집마다 부지런한 아낙네가 곤히 잠든 식구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우물에 물을 길어 밥을 짓는 연기이다. 물론 이 연기는 남정네가 농가의 큰 재산인 황소의 아침 여물을 삶는 연기도 포함된다.
아내는 이른 아침부터 불을 지펴 가족의 아침 식단을 정성껏 마련한다. 그리고 남편은 황소의 아침 먹거리로 어제 저녁에 베어 둔 풀을 잘게 썰어 소죽솥에 넣고 등겨를 뿌리고 낫으로 푸른 호박을 듬성듬성 썰어 넣어 끓인다. 이 정도면 황소의 아침 식사 대접이 융숭한 편이다. 그 이유는 아마 오늘 힘든 일을 시켜야 하기 때문이리라.
농가에서 황소에게 힘든 무논을 갈거나 산에 있는 돌이 많은 밭을 갈게 할 경우, 이처럼 푸짐한 아침상을 차려 주는 법이다. 파란 풀이 익어 누렇게 되고 등겨와 호박이 적당히 익어 황소의 맛난 아침 여물이 익을 무렵, 아내는 아이들을 깨우고 식사를 재촉한다.
남편은 식사하기 전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소여물을 황소에게 먼저 퍼준다. 황소가 여물을 맛있게 먹는 동안 그는 식사를 하고 소와 함께 들판으로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농가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먼 곳을 주시하는 시인의 상상을 통해 농가의 아침 풍경을 그려봤다. 퇴계는 먼 산촌의 푸른 산을 빙 두른 아침 연기를 보며 농민의 일상을 그려내고자 했다. 퇴계는 소박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백성의 모습을 통해 태평 시절을 표현했다.
이 시는 때묻지 않은 자연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농민의 순박한 삶과 그들이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담은 시라 하겠다. 다음 세 번째 시는 석양 무렵 다리에 비친 광경을 담은 시다. 역시 먼 곳에서 보여지는 경치를 표현한 시다.
「다리에 비친 석양 빛」
옛 나루터 긴 다리
눈에 들어오고
저무는 구름 잔잔한데
까마귀 둥지로 돌아오네
높은 데서 멀리 바라보니
시흥이 넘실대고
지는 해 고운 노을 따라
깊은 생각에 잠기네
「長橋落照 : 장교락조」
古渡長橋入眼看 고도장교입안간
歸雲平遠暮鴉還 귀운평원모아환
主人登眺饒詩興 주인등조요시흥
思在明霞落照間 사재명하락조간 「시집」 권5
渡(나루터 도) 橋(다리 교) 眼(눈 안) 歸(돌아갈 귀) 雲(구름 운) 鴉(까마귀 아) 還(돌아올 환) 登(오를 등) 眺(볼 조) 饒(넉넉할 요) 興(흥취 흥) 思(생각 사) 明(밝을 명) 霞(노을 하) 落(떨어질 락) 照(비칠 조) 間(사이 간)
나루터가 눈에 들어온다. 작은 개울은 징검다리가 있어 건너기가 수월하다. 그렇지만 폭이 넓은 강에는 다리나 배를 통해서만 건널 수 있다. 이 시에 나루터와 다리가 등장한다. 그런데 배는 보이지 않는다. 옛 나루터라는 표현에서 현재 주민들이 배로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이용해 강을 건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리는 나무로 만든 다리를 말한다. 강원도 영월과 평창, 안동의 하회 마을에 놓은 섶다리, 안동 영주의 무섬마을에 놓인 나무 다리를 말한다. 옛사람들에게 나루터는 미운 정 고운 정이 오가던 곳이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떠나 보내는 이별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여성 한시에서 이별의 아쉬운 정을 표현하는데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 나루터다. 그래서 나루터는 이별의 정한을 묘사하는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다리는 나무로 만든 것인데, 이쪽 마을과 저쪽 마을을 연결하는 주요한 도로 역할을 한다. 외나무다리도 있겠지만, 대개 농촌에서는 농민들이 힘을 모아 다리를 만들고 보수한다. 가을 철 추수가 거의 끝날 무렵에 주민들은 건너 마을과 이쪽 마을 대표가 만나 다리를 보수할 날짜를 잡고 인력 동원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나서 토목 공사 자재를 마련한다.
【6】 집성정 차운 시(3)
집승정 시에 이어 지은 다섯 번째 시이다. 이 시에도 퇴계의 풍류와 멋이 담겨 있다. 봄 꽃 핀 마을을 찾은 기쁨을 표현한 시다.
「당동의 봄꽃」
멀고 아득한 땅에
봄 내내 핀 꽃
천 더미 비단결 이루어
마을 입구를 비추네
정자에서 술 마시니
흥이 넘쳐나
이 봄을 따라 가
꽃 근원을 묻고 싶네
「堂洞春花 : 당동춘화」
一春花事發玄坤 일춘화사발현곤
錦繡千堆映洞門 금수천퇴영동문
亭上百杯餘興在 정상백배여흥재
欲隨春去問花源 욕수춘거문화원 「시집」 권5
花(꽃 화) 煎(기름에 지진 음식 전) 內(안 내) 房(방 방) 歌(노래 가) 辭(말 사) 玩(즐길 완) 花(꽃 화) 衫(적삼 삼) 梅(매화 매) 兄(형 형) 春(봄 춘) 事(일 사) 發(필 발) 玄(검을 현) 坤(땅 곤) 錦(비단 금) 繡(수놓을 수) 堆(쌓을 퇴) 映(비칠 영) 洞(마을 동) 亭(정자 정) 杯(잔 배) 餘(남을 여) 興(흥취 흥) 隨(따를 수) 問(물을 문) 源(근원 원)
당동은 경북 예천 고을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시의 앞머리에서 이 마을이 멀고 아득한 땅이라고 소개한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현재 이곳이 멀고 아득하다는 것은 결국 저쪽에 상대적인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곳은 현재 시인이 있는 이곳에서 일정하게 떨어진 지리적 공간일 뿐만 아니라 정서적 의미에서도 이곳과는 구분된다.
그러므로 저편 공간으로, 현재 시인이 머무르고 있는 조용한 시골 마을과 거리를 둔 복잡한 도시를 떠올릴 수 있다. 이는 퇴계가 평소 마음 속에 둘로 나누어 생각하는 시골과 도시의 개념이기도 하다. 평화로운 이곳은 복잡한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자연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이제 퇴계와 함께 봄꽃 향기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원문 한시의 1구는 지리적 공간과 계절적 배경을 설명한 것이다. 시골 마을의 봄이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한시의 2구를 보자. 이곳에서는 봄 내내 꽃이 가득 핀다. 시골 마을에 봄꽃이 피어 비단이 산더미처럼 쌓인 것 같다고 한다. 온 마을에 꽃 잔치가 벌어져 동네 입구에서부터 봄꽃이 길손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래서 먼 길을 오고 가는 사람도 행복하다. 화사하게 핀 꽃 때문에 모두 마음이 밝아진다. 이렇게 봄은 즐겁고 희망이 넘친다. 꽃을 보고 마음이 즐겁지 않을 사람은 없다.
봄에는 어떤 꽃이 필까. 요즘 아이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개나리․진달래․목련․벚꽃․아카시아라고 선뜻 대답할 것이다. 이러한 대답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아파트 단지나 학교 오가는 길에서 이러한 꽃을 쉽게 만났기 때문에 본 것을 정직하게 대답한 것일 뿐이다. 아이들의 대답을 자세히 따져 보면, 그들 생각 속에 예로부터 우리의 산과 들에 피던 봄꽃 대신 새로운 봄꽃이 기억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꽃 또한 봄에 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대답 가운데 옛날 우리 땅에 피던 우리의 봄꽃은 그리 많지 않다. 이는 우리가 사는 시대와 환경이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진 데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는 대부분의 공간이 시골 분위기의 조용한 공간이 아니라 네온사인 불빛이 찬란하고 소비 문화가 판치는 곳이며, 공해에 강한 나무가 봄 꽃나무로 주변에 많이 심겨져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렇게 느낀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보고 자랐던 우리 땅의 봄꽃들을 알려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풍경이 안동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이른봄에 아이들과 함께 학가산 기슭의 작은 마을이나 청량산 근처 산 마을을 찾아가면 된다. 작은 마을에 듬성듬성 자리잡은 시골 집 마당이나 밭둑에 한두 그루의 살구꽃이 예쁘게 피어 온 마을을 환하게 밝혀 준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의 앞뒤 산에도 울긋불긋 진달래가 피어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이 꽃들이 우리 강산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었다. 연 분홍빛 고운 봄꽃은 파릇파릇한 새싹과 함께 봄 동산을 그림처럼 곱게 수놓았다. 이러한 우리의 봄꽃은 「고향의 봄」 가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가사에 그려진 고향의 봄 마을을 먼저 이해해야 위의 시에 담긴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가슴 설레는 고향 마을이다. 온 산천에 꽃 피는 봄이 왔다. 산골짜기에 샘물이 졸졸 흐르고 산새는 즐겁게 지저귄다. 초가의 앞마당에는 크고 작은 장독이 정겹게 놓여 있고 그 곁에는 울타리를 두른 작은 텃밭이 있다. 이 밭에서 마늘․부추․배추 등 양념과 채소를 기른다.
그리고 마당 한 쪽에는 강아지 집과 돼지우리․소 외양간․닭장이 나란히 있다. 그래서 집집마다 마당에 채소를 가꾸어 자급자족하며 부업으로 가축도 기른다. 할아버지는 마당 한쪽에 살구나무 한두 그루를 꼭 심어 둔다. 그리고 집 주변의 밭둑에는 복숭아나무도 심는다. 나무가 손자 녀석 키보다 훨씬 커지면 열매를 맺는다. 할머니는 손자 놈이 찾아 왔을 때, 그 과일을 따서 건네 주신다.
그래서 산골 마을에 봄이 찾아오면 살구꽃이랑 복숭아꽃이 피어 마을을 울긋불긋 꽃동네로 만든다. 이와 함께 앞산 뒷산에는 진달래가 피어 산골 마을은 꽃 대궐이 된다. 이 노래를 부르면 어릴 때의 고향에 대한 많은 추억이 되살아난다. 문득 외할머니의 포근한 정이 그리워진다. 어머니의 흰 웃음도 떠오르고 사랑 방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도 들려온다. 먼 옛날이 그립다.
살구꽃 이야기를 더 들어 보자. 살구꽃은 피어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 살구꽃은 4월에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7월 무렵에 파랗던 열매가 누렇게 익어간다. 특히, 씨앗은 기침이나 기관지염을 치료하는 한약의 약재로 이용된다. 복숭아꽃도 나무에서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다. 한창 피었을 때를 놓치면 그 꽃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다.
경북 영덕에 복숭아밭이 많은데, 해마다 복숭아꽃이 피면 그 광경이 볼 만하다. 살구꽃과 복숭아꽃은 멀리서 봐도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아도 그 모습은 변함이 없이 아름답다. 가까이서 보면, 새 색시가 곱게 단장한 것 같다.
그리고 진달래는 참꽃 또는 두견화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4월에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수술은 열 개이며 암술은 한 개인데 수술보다 길다. 안동 지방에서는 여성들이 이 꽃을 따서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동그란 전을 부쳐먹었는데, 이것을 화전(花煎)이라 부른다. 지금도 이 풍속은 안동 지방의 민속놀이 가운데 하나로 계승되고 있다.
그리고 안동 지방의 여성들이 남긴 내방가사(內房歌辭)에는 이 화전놀이를 소재로 하여 지은 작품이 많다고 한다. 옛날 옛적의 아이들은 산과 들에 뛰어 놀다가 배가 고프면 산에 핀 진달래꽃을 따서 먹었다. 입에 넣어 씹으면 맛이 시큼하다. 한참 뒤에 혀와 입술은 짙은 보라색으로 변한다. 그 무렵,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깔깔댄다. 자기 입술은 바라보지 못한 채 남의 것만 보고 이렇게 흉을 보는 것이다.
이제 위의 시와 연결해 정리하기로 한다. 이렇게 고운 봄꽃이 이 마을 저 마을에 피어 마을마다 꽃물결을 이룬다. 봄꽃이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은 아늑함이 있다. 그래서 나그네는 여행이 힘겨워도 꽃 핀 마을에서 편히 쉴 수 있다. 꽃 피고 술이 익는 마을은 어디나 고향의 아늑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인도 마을 사람도 모두 기쁘게 즐겁다. 그 즈음 시인은 정자에서 술을 마신다.
그렇지만 선비로서 멋을 지니며 마시는 술이기에 품위를 잃지 않는다. 시인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젖고 술기운 때문에 절로 흥겹다고 한다. 흥이 절로 넘쳐나 어깨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을 정도다. 시인은 봄 꽃 곱게 핀 정자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따라 행복하고 즐겁다. 기분이 좋을 만큼 마신 술 탓에 멋스러움의 경지는 더욱 깊어진다.
이러한 꽃 찾은 나그네의 멋은 현대 시인에게서도 보여 진다. 청록파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조지훈의 「완화삼」이라는 시에서나그네 긴소매가 꽃잎에 젖고, 술 익는 강 마을의 저녁노을이라는 표현과 박목월의 「나그네」라는 시에서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이라는 표현이 그러하다.
박목월의 이 시는 조지훈의 「완화삼」에 화답한 시로 1946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완화삼(玩花衫)」이란 말은꽃을 즐기는 선비라는 의미이다. 이는 꽃을 감상하고 풍류를 즐기는 선비라는 의미인데, 위의 시에서 퇴계처럼 꽃을 감상하는 나그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시에 꽃 핀 마을을 찾은 나그네와 술이 무르익는 마을, 붉게 타는 저녁놀이 그림처럼 곱게 그려져 있다. 낭만적 정서가 아주 잘 표현된 작품이다. 퇴계의 시에도 이러한 낭만 정조의 표현이 발견된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구에서 봄의 근원이 어딘지 찾아가고 싶다고 한다. 누가 이처럼 아름다운 봄을 사람들에게 제공했는지 찾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철학적 의미도 담겨 있다. 하지만 퇴계는 어린 아이처럼 순진하게 질문을 던져 본 것이다. 이 질문에는 사 계절의 순환과 온 세상에 펼쳐진 자연 법칙의 신비에 대한 찬미도 들어 있다. 퇴계의 자연 사랑과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 시이다.
퇴계가 자연을 아끼고 즐기는 마음이 담겨 있다. 우리는 퇴계에게서 자연 사랑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퇴계는 봄꽃을 좋아했던 것 못지 않게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피는 매화도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매화를 매형(梅兄)이라고 불렀다. 퇴계의 매화 시를 보면, 매화를 친구처럼 여겨 시를 주고받은 것처럼 표현한 시가 있다. 퇴계의 시 가운데 매화 시가 많은 것은 퇴계의 자연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퇴계는 선비의 고결한 인품을 상징하는 매화를 그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것이다.
이제 퇴계의 시에서 감상한 봄꽃은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고, 산골 마을에서나 볼 수 가 있다. 여건이 된다면, 그 봄꽃을 감상하러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멋을 누리는 삶을 가르쳐 준다면, 아이들의 삶은 더욱 넉넉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지역과 문화, 그리고 자연을 보존해 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고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학대는 가까운 미래에 인간에게 큰 피해로 되돌아온다.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자연은 아파도 좀처럼 아픈 척하지 않는다. 그냥 참고 만다. 하지만 이제는 어머니처럼 오랜 아픔을 참고 있던 자연이 여기저기가 아프다는 소리를 낸다. 해일, 폭우, 폭설, 지진, 산불 등 기상 이변으로 오래 참았던 그 통증을 호소한다.
웬만큼 아파도 참고 넘기는 어머니 같은 자연이 말이다. 우리는 자연의 이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외면할 여유가 없다. 그래야 우리 아들․손자도 봄꽃 핀 마을의 멋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봄꽃 마을이 하나 둘 늘어났으면 참 좋겠다.
시멘트 공법 아닌 순수 목재 공법에 의해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다. 시공 과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소나무 가운데 가지가 둥그렇게 뻗고 든든한 녀석을 베어 와 강의 밑바닥을 파서 그것을 일정한 거리에 맞게 거꾸로 세운 뒤, 그 위에 발판으로 나무를 깔고 고정시킨 뒤에 잔디를 떼어 엎어놓으면 그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리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두 명이 함께 가기에는 너무 좁다. 그래서 저 편에서 사람이 건너오면, 이쪽에서는 그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저쪽 편에서도 그러해야만 했다.
이 다리는 기초 공사가 튼실하지 못하고 목재 골재를 사용했기 때문에 여름철 물이 불어나면 대부분 떠내려 가버리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는다. 장마철이 지나면 다시 보수 공사를 해서 가을 - 겨울- 봄까지 견딘다. 그 과정에서 농민들의 숱한 애환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 농민의 애환을 담은 다리가 시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멀리서 강물을 가로지른 다리를 보는 것도 정겹다. 석양빛에 반사되는 실처럼 가느다란 강물이 퍽 아름답다. 어느덧 시간이 조금 지난 것 같다. 태양이 서산을 향해 기울고 구름 빛도 저무는 기운을 띤다. 시인은 시선을 하늘로 향한다.
그 무렵, 까마귀가 날아든다. 해가 저무는 것과 무관하게 시인의 흥겨움은 강물처럼 넘실거린다. 시인의 감흥은 석양빛․고운 노을에 어울려 무르익는다. 그래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어쩌면 별 총총 뜨고 이슬 내릴 때까지 시적 감흥이 이어졌을 것이다. 순수 자연 시인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시이다.
【7】 집성정 차운 시(4)
집승정 시에 이어 지은 여섯 번 째의 시다. 학가산에 가을달이 뜬 밤의 정서를 담은 시이다. 달 오른 학가산을 찾아가 보자.
「학가산 가을달」
학가산 위
휘영청 달빛 밝아
여러 정자 누각이
수정 궁궐 이루었네
깊은 밤에
무현금 타는데
듣는 이 없다고
서운해하진 말아요
「鶴峰秋月 : 학봉추월」
鶴駕峰頭掛月輝 학가봉두괘월휘
亭闌渾作水晶微 정란혼작수정미
夜深手把無絃弄 야심수파무현롱
不恨如今聽者稀 불한여금청자희 「시집」 권5
無(없을 무) 弦(줄 현) 琴(거문고 금) 晋(진나라 진) 陶(질그릇 도) 淵(못 연) 明(밝을 명) 農(농사 농) 牛(소 우) 市(도시 시) 場(마당 장) 鶴(학 학) 駕(멍에 가) 峰(봉우리 봉) 頭(머리 두) 掛(걸 궤) 輝(비칠 휘) 亭(정자 정) 闌(무늬 란) 渾(모두 혼) 晶(수정 정) 微(작을 미) 夜(밤 야) 深(깊을 심) 把(잡을 파) 弄(연주할 롱) 恨(한 스러울 한) 如(같을 여) 今(이제 금) 聽(들을 청) 者(사람 자) 稀(드물 희)
학가산의 청아한 가을밤이다. 가을밤의 공기가 매우 맑다. 공중에는 둥근 달이 떠올라 사방을 환하게 비춘다. 시인은 문득 누군가 그리워진다. 계절이 가을이라서 더욱 그런가 보다. 가을 달빛 아래 핀 갈대꽃도 무척 아름답다. 풀벌레의 울음소리는 시인을 더욱 고독하게 한다. 사방이 조용하여 시인의 내적인 외로움은 더욱 깊어간다.
공중에는 달이 떠서 온 세상을 비춘다. 사물이 대낮처럼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시야에 커다란 물체의 윤곽은 들어온다. 이곳저곳에 자리 잡은 정자와 누각은 달빛과 어울려 수정으로 장식한 궁궐처럼 은은하게 보인다. 겨울눈처럼 흰 달빛이 내려 산 전체가 달빛에 젖은 밤이다. 고요함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흐른다.
시인은 황홀하게 조용한 이 밤을 그냥 보낼 수 없다. 줄이 없는 거문고를 손에 잡고 연주해 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거문고에 줄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연주를 해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들어줄 관객도 필요하지 않다. 정자에 시인 혼자 올라서 소리 가 나지 않은 거문고를 연주한다는 말이다.
원래 무현금(無弦琴)은 중국 진(晋) 나라 때 도연명(陶淵明)이 이를 사랑하여 늘 가지고 다니며 흥을 돋우었다고 한다. 퇴계도 그처럼 멋을 부려본 것이다. 시인 퇴계의 멋과 풍류가 표현된 부분이다.
만약 이렇게 조용한 시각에 거문고 소리가 난다고 표현한다면, 이는 전체 시의 전개에 어긋난다. 그리고 멋스러움도 이내 사그라지고 만다. 그러나 시인 퇴계는 조용한 가운데 누리는 멋을 잃지 않는다. 자연 만물이 고요한 밤의 멋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 자신도 조용히 그 멋에 동참한다. 시인은 조심조심 그 멋스러운 밤의 신비로 빠져든다. 퇴계는 조용히 줄이 없는 거문고를 연주한다. 그러나 그의 귀에는 은은한 멜로디가 들려온다.
시인은 무현금 가락을 감상해줄 청중이 없다고 결코 서운해하지 않는다. 하늘의 달이 그와 짝해 주어 가을밤의 운치를 더해가기 때문이다. 이 즈음 그는 더욱 멋의 경지로 빠져든다. 고요한 가을밤, 달빛 아래 무현금을 타는 신선 같은 이미지의 퇴계는 분명 멋을 아는 시인이다. 자연과 함께 그 멋을 누리는 시인이다.
이처럼 자연은 자기를 아끼고 친한 사람에게 시인이 되게 한다. 다음은 집승정에 이은 시 가운데 일곱 번째 시로, 소를 기르는 목동의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다.
「노포 목동의 피리 소리」
석양 무렵
피리 소리 이어져
머언 풀밭까지
바람결에 실려가네
소먹이는 목동의
평생 즐거움은
노래 부르기 보다는
소 먹이는데 있다오
「蘆浦牧笛 : 노포목적」
一笛斜陽咽未休 일적사양열미휴
平蕪橫過斷原頭 평무횡과단원두
須知牧竪平生樂 수지목수평생락
不在商歌寓飯牛 부재상가우반우 「시집」 권5
笛(피리 적) 斜(비스듬할 사) 陽(볕 양) 咽(목멜 열) 未(아닐 미) 休(쉴 휴) 平(고를 평) 蕪(거칠 무) 橫(갈 횡) 過(지날 과) 斷(끊을 단) 原(언덕 원) 頭(머리 두) 須(모름지기 수) 知(알지) 牧(칠 목) 竪(아이 수) 生(살 생) 樂(즐거울 락) 在(있을 재) 商(음률 상) 歌(노래 가)寓(붙일 우) 飯(밥 반) 牛(소 우)
목동의 피리 소리를 소재로 해서 지은 시다. 석양 무렵이다. 목동의 피리 소리가 들린다. 석양 빛 고운 하늘에 청아한 피리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각적 심상과 청각적 심상이 섞여 시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목동의 피리소리는 바람결에 먼 초원까지 실려간다. 초원 너머에 있는 사람도 목동의 피리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시에 목동과 초원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곳에 대규모의 목장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 우리 산천에서 큰 규모로 소를 놓아기르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말을 대규모로 풀어놓고 키운 뒤 튼튼한 놈을 골라 원나라에 바쳤다는 기록은 남아 있다.
이 시에서 소를 키운다는 것은 소규모의 방목 형태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시의 목동은 시골의 아이다. 자기 집에 기르는 누렁 황소를 들판으로 몰고 나가 황소가 배불리 풀을 뜯어먹도록 했다는 의미다. 석양 무렵, 황소가 풀을 마음껏 뜯어먹으면 아이는 한가롭다. 그 무렵 아이는 이렇게 피리를 분다. 여유가 생겼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둠이 내려 사방이 어두컴컴해지면 아이는 소의 등에 올라타고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온다. 나이를 먹은 누렁 소는 길을 안내하지 않아도 방울을 딸랑거리며 자기 집을 알아서 찾아온다. 그 황소는 늘 다니던 길이기 때문에 주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정확히 주인집을 찾아온다.
황소는 시골의 훌륭한 일꾼이다. 밭을 갈고 수레를 끄는 등 많은 힘을 제공한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거의 집집마다 누렁 황소를 기른다. 자기 집에서 황소를 키울 만한 경제적 여건이 안 되는 농가는 남의 집 소를 길러 주고 소에게서 노동력을 제공받았다. 주인은 그에게 소를 빌려 주되, 1년 농사를 지을 동안 빌려 주었다. 농사가 끝나기 전에 소를 달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게 하면 그 집의 일 년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인정상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한쪽에서는 소를 맡겨 양육을 부탁하고, 한쪽에서는 그 소를 길러 주는 대신 소로부터 노동력을 제공받는 소를 농우(農牛)라고 불렀다.
그리고 형편이 아주 좋지 않아 송아지를 살 수 없는 농가에서는 평소 잘 알고 지내면서 살림이 넉넉한 사람에게 송아지를 한 마리 사달라고 한다. 그래서 서로 합의가 이루어지면, 어린 암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기른다. 송아지 양육을 맡은 농가에서는 그 송아지를 정성껏 길러 어미 소가 되면, 새끼를 낳게 해 두 마리 소가 된다.
가끔 쌍둥이 황소를 낳게 되면 한 마리는 소 양육을 맡은 사람의 몫이 된다. 이럴 경우, 뜻밖의 행운을 얻는다. 그런 다음, 어미 소와 송아지를 모두 판다. 이렇게 하여 맨 처음 송아지를 샀던 값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반으로 갈라 주인과 키운 사람이 갖는다. 이러한 방식을 배 먹이 라고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소 양육을 맡은 농가에서는 맡은 송아지를 아주 정성스럽게 키운다. 자기 재산을 불려주는 귀염둥이 송아지이기 때문이다. 행여 송아지가 작은 탈이라도 나면 큰 일이다.
그래서 자연히 소를 팔고 사는 시장이 형성되었다. 비교적 큰 고을에는 소를 팔고 사는 시장이 별도로 섰다. 이러한 시장을 한자어로 우시장(牛市場)이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동에는 용상동에 우시장이 있었다. 우시장은 보통 5-7일에 한번씩 선다.
일반 장이 서는 날에 우시장도 열린다. 장날이 되면, 우시장은 소를 팔고 사는 사람들로 늘 시끌벅적하다. 소를 파는 사람, 흥정하는 사람, 구경나온 사람들로 분주하다. 우 시장 주변에는 주점과 음식점이 꽤 많이 들어선다.
농가의 목돈거리인 소를 팔고 사는 장이니 만큼 많은 돈이 거래되는 까닭에 음식점이 많이 들어서 있다. 소고기 국밥과 막걸리는 이 당시 멋진 먹거리였다. 평소 고기 맛을 못 보던 농촌 사람들은 우시장에 와서 이 국밥과 막걸리로 시장기를 달랬다.
집집마다 한두 마리씩 소를 기르던 풍경도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농촌의 힘들고 어려운 일은 경운기나 트랙터가 대신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황소의 노동력이 필요 없게 되었다. 그에 따라 우시장도 그 필요성을 잃게 되어 근래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대신 대규모의 소 사육 시설에서 소를 키운다.
대기업에서도 이러한 사업에 투자하여 소규모의 소 사육은 점점 경쟁력을 상실한다. 그래서 농가에서 집집마다 황소 한두 마리를 기르던 풍경은 사라지고 말았다. 간혹 취미 생활이나 부업으로 소를 기르는 경우도 있지만 소의 노동력을 얻기 위해 기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요즈음의 황소는 조립식 철재 건물에 갇힌 채 배합 사료를 먹으며 자란다.
소는 풀밭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기억이 전혀 없는 돼지처럼 길러진다. 소를 풀어놓고 기르는 경우도 있지만, 황소에게 완전한 자유를 허용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소에게 풀을 뜯어 먹이던 소년 목동도 찾아볼 수 없다. 옛날 우리 풍속도에 그런 모습이 남아 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맨 발의 소년이 위의 시에 나오는 목동이다. 그림 속의 소년은 매우 촌스럽다. 그는 어김없이 입에 피리를 물고 있다. 소치는 목동의 모습이 퍽 낭만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 속에서만 우리나라 목동을 만날 수 있다. 조선 후기 평민 시인인 유동석이란 분의 「목동」 이란 시를 소개한다. 이 시의 주제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소 몰고 오는
맨 발의 소년
가을 산 빛
가득 물들었네
어서 가자 누렁 소야
헝클어진 머리 긁고
노래 길게 부르며
달 뜬 저녁에
돌아온다네
「목동(牧童)」
驅牛赤脚童 구우적각동
滿載秋山色 만재추산색
叱叱搔蓬頭 질질소봉두
長歌歸月夕 장가귀월석 「유동량(柳東陽)의 시」
牧(칠 목) 童(아이 동) 驅(몰 구) 赤(붉을 적) 脚(다리 각) 滿(가득할 만) 載(실을 재) 秋(가을 추) 山(뫼 산) 色 (빛 색) 叱(꾸짖을 질) 搔(긁을 소) 蓬(쓱 봉) 頭(머리 두) 長(길 장) 歌(노래 가) 歸(돌아올 귀) 月(달 월) 夕 (저녁 석) 柳(버들 류) 東(동녘 동) 陽(햇볕 양)
맨발의 소년이 달이 오른 저녁에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온다. 소년이 가을 산 빛에 물들었다고 했다. 소년이 가을의 울긋불긋한 단풍에 물들었다는 의미다. 시인은 소년이 가을 단풍뿐만 아니라 가을의 흥취가 흠뻑 젖어 들었다는 의미다. 소년은 헝클어진 더벅머리를 긁고 길게 노래 부르며 가을 정감에 물든 채 달 오른 저녁에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온다.
누렁 소는 배불리 풀을 먹었다. 소년도 가을 정취에 취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행복한 누렁 소와 멋을 누리는 소년은 흥겹기만 하다. 소년은 피리 대신 목청껏 흥겨운 노래를 부른다. 황소도 그 노래 소리에 기분이 좋다. 소년과 황소의 발걸음이 가볍다. 황소의 경쾌한 방울 소리와 소년의 노래 소리는 어둠 속에서도 조화를 이룬다.
이제 위의 시로 돌아가 마무리한다. 위의 시 마지막 부분에서 소를 치는 목동의 평생 즐거움이 노래의 흥겨움보다는 소를 알뜰하게 키우는데 있다고 했다. 이처럼 소는 당시 농가의 큰살림 밑천이었다. 누렁 소는 경제적 효용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노동력을 제공하여 우리 조상들과 아주 친한 동물이었다. 소는 성질이 순하고 부지런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소를 돌보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었다. 소년은 석양 무렵 소를 몰고 풀밭으로 나선다. 흰 구름 피어 있는 푸른 하늘 아래 파란 풀밭이 펼쳐져 있다. 촌뜨기 소년은 포근한 풀밭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파랑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의 곁에는 누렁 소가 맛난 풀을 뜯어먹는다. 녀석은 쉬고 싶으면 앉아서 새김질을 한다. 배가 부르다는 뜻이다. 왕방울 황소 눈은 너무 귀엽다. 눈썹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다.
사진 출처 : http://cafe.daum.net/six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