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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마태복음 21:1~11)
* 본문요약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에 있는 벳바게에 이르시자
제자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자
수많은 무리들이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하고 찬양하며 주님의 뒤를 따릅니다.
찬 양 : 88장(새 88) 내 진정 사모하는
130장(새 140) 왕 되신 우리 주께
* 본문해설
1.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1~7절)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보라 너희 왕이 너희에게 오시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스가랴 9:9)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 나귀 새끼(2절) :
일반적으로 전쟁에 나가는 왕은 말을 타고, 평상시에는 나귀를 탑니다.
이것은 말이 전쟁과 승리를 상징하고 나귀가 평화와 겸손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심으로
평화와 겸손의 왕이심을 더욱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 주가 쓰시겠다(3절) :
‘주께서 그것을 필요로 하신다’는 뜻입니다.
2. 무리들의 반응(8~11절)
8) 무리의 대부분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질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이 사람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신 ‘예수’라고 하는 선지자라” 하니라.
- 호산나(9절) :
‘호산나’는 “하나님이여 지금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라는 뜻입니다.
* 묵상 point
1. 겸손하신 평화의 왕
1) 왕으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는 예수님(1~2절)
드디어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십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받기 위해 들어가시지만,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에는
이 땅과 하늘의 왕의 자격으로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사람을 지옥의 멸망으로 미혹하려는 저 악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승리의 왕의 자격으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십니다.
그래서 승리의 왕의 표시로 나귀새끼를 타고 들어가시고,
군중들은 승리의 왕이신 예수님을 환호하며 맞이합니다.
2) 그러나 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5~9절)
그러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하신 모습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다른 왕들의 경우에는 군사들이 그 뒤를 따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는 조직화 되지 못한 오합지졸들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축하하고, 왕이신 예수께 충성하리라는 충성의 표지가
고작 낡은 겉옷과 나뭇가지입니다.
그리고 로마의 개선장군처럼 늠름한 흰말을 타신 것이 아니라
초라한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3) 그러나 이 모습은 예수님이 평화의 왕이시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겉보기에 한없이 초라하게만 보이는 예수님이
실상은 이 세상을 구원하실 만왕의 왕, 하늘과 땅의 왕이십니다.
오합지졸로 보이는 그의 백성들은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고 관장할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처럼
독재와 강압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닙니다.
사랑과 겸손함으로 다스리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4) 우리를 섬기시는 겸손하신 예수님(7절)
세상의 왕들은 오직 자기의 감정이 중요할 뿐입니다.
백성들이 어찌 되든 자기 왕권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백성들에게 자기가 존귀한 자로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자기가 힘 있는 자로 보이게 하려고 권력을 사용합니다.
오직 자기만이 이 나라의 왕이 될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 온갖 것으로 포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그의 백성을 구하시려는 일에만 자기의 힘을 쓰실 뿐입니다.
자기 권세를 나타내기 위해 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자도 아니고,
자기를 존귀한 자로 보이게 하려고
힘없는 백성에게 과도하게 권력을 사용하는 자도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버리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백성에게 평강을 내리시기 위해 스스로 낮은 자가 되어
평범한 사람도 잘 타지 않는 어린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살리시는 가장 강력한 능력의 왕
강력한 철권으로 다스리는 세상의 나라는 모든 것이 조직화 되어
겉보기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처럼 보이지만
그 힘과 능력으로 단 하나의 생명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온 세상 만민을 살리시기 위해 지금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 묵상 :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 역시 세상의 다른 기관들보다 초라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복음의 말씀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이 말씀에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의 힘을 가지려 하지 말고
겸손한 평화의 왕이신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당신의 눈에 예수님이 어떤 분으로 보이십니까?
세상의 힘과 말씀의 권세 중 어떤 것이 더 큰 힘으로 보입니까?
2. 예수님의 최후의 한 주간의 시작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이 일로
예수님의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에서 남은 한 주간 동안 가장 의미 있고 핵심적인 일들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 주간의 끝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신 후
말씀하신 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시게 됩니다.
● 묵상 :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의 사역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예수께서 그 일들을 어떤 마음과 어떤 자세로 임하셨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십시오.
3. 왕의 행렬에 참여한 자들
1)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는 예수님 : 승리하신 왕의 행렬(8~11절)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행렬은
승리하신 왕의 행렬입니다.
모든 마귀를 완전히 박멸하시고 온 세상 만민을 다 심판하신 후에,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는
마지막 때의 승리의 행렬을 미리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기에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그 앞에 빨간 카페트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겉옷과 나뭇가지들이 깔려 있으나
예수님은 최후의 승리의 행렬을 보이셨습니다.
2) 이 땅과 하늘의 왕이신 예수께 드리는 찬양의 예배(8~9절)
그리고 동시에 이 행렬은 하나의 예배 행위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이
각자 자기의 믿음대로 예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때 예수님의 왕의 행렬에 참여한 자들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➀ 나귀의 주인(2~3절)
예수님의 명을 따라 제자 중 둘이 맞은편 마을로 가서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려 했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나귀 새끼는 무엇을 하려고 푸느냐고 묻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주가 쓰시겠다고 말하자
그 사람이 곧 끌고 가도록 허락합니다.
나귀 새끼의 주인은 예수님을 왕으로 믿었던 자입니다.
그는 왕의 명령이니
그 명령대로 자기의 나귀를 주께서 쓰시도록 그대로 드린 것입니다.
● 묵상 :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요, 우리의 왕이시라고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말로만 왕이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그가 우리의 왕이 되심을 보여 드리십시오.
주께서 나에게 무엇을 명하시면
왕께서 하시는 명령이니 그 명령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으로 그가 나의 왕이심을 보여 드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➁ 겉옷을 펴고 나뭇가지를 깔아드리는 자들(8절)
제자들이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자,
예수께서 그 위에 올라타십니다.
그러자 많은 무리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서 예수께서 가시는 길 위에 펼쳐놓고,
나뭇가지를 꺾어 길 위에 깔며 예수님의 가시는 길을 예비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왕이심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돈이 없는 가난한 자들이니 겉옷을 펼쳐 가시는 앞길에 깔아드렸고,
그나마도 안 되는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 깔아드렸습니다.
대부분 속옷을 입지 않는 자들이니
겉옷을 깔아드렸다면 몸에 걸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들은 주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자기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이고 예배입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여 주께로부터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께 무엇을 드리고,
내가 무엇으로 주님을 섬길까를 생각하며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참된 예배입니다.
4. 호산나를 외치며 따르는 무리들
하지만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를 외치며 찬양하던 이 무리의 대부분은
불과 한 주간도 못 되어 예수님을 향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라’하고 외치며 예수님을 모욕하고 희롱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을 따라서 호산나를 외치던 무리를
조금 더 세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를 외치며 찬양하던 이 무리가
불과 한 주간도 못 되어 그렇게 형편없는 자로 변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분석하는 일을 통해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장차 주님께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따르는 무리
이 무리 중에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확실히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처음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출발하실 때부터
줄곧 예수님을 따라왔던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이들은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더욱 그들의 믿음을 굳건히 합니다.
이들은 길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전하고 알렸습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수난을 받으실 때에 잠시 그 곁을 떠나기도 했으나
주께서 부활하신 후 다시 모여 초대교회의 핵심 구성원들이 됩니다.
2) 다른 생각을 품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러나 똑같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고 나뭇가지를 꺾어 길에 깔고
종려나무를 흔들며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를 외치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불과 며칠이 되지 않아 예수님을 향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라’하고 외치는 자들이 됩니다.
➀ 자기의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따르는 무리
➠ 위기가 닥치면 곧 세상 사람들처럼 변하고 말 사람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첫째 무리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 그 논공행상에 참여하여
한 자리 차지할 생각을 가지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치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나 속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겉으로는 주님을 믿는 백성들처럼 보이나
생각은 온통 자기의 일이나 세상일로만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심판 날에 의로운 자들 중에서 먼저 이들을 골라내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속으로 이들을 던져 넣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➁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생각 없이 따르는 무리
다른 생각을 가진 둘째 무리는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저 사람들이 길에 자기의 겉옷을 펴고 나뭇가지들을 펴며
호산나를 부르고 예수님을 따르니
무슨 큰 일이 일어났나보다 생각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믿음도 없고 영적인 비전이나 꿈도 없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호기심을 만족할 거리를 찾을 뿐입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믿음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에서 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들은 성가대의 아름다운 찬양으로 은혜를 받고
목사님의 감동적인 설교에 눈물을 흘리지만,
믿음을 가지고 반응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마음에 감동이 되어 감상적인 반응을 했을 뿐입니다.
➂ 탄식하는 바리새인들(요 12:17~19)
다른 생각을 가진 세 번째는
무리가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를 외치는 것을 바라보며 탄식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요한은 예수께 호산나를 부르며 찬양하는 무리를 바라보며
탄식하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증거합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 있으나 하나님의 일에 적대감을 가진 자들입니다.
누구보다도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고 행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하는 자들입니다.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그것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지의 여부를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거부하고 훼방을 놓습니다.
이런 자들은 열심히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일이 훼손됩니다.
➠ 이런 부류에 속한 자들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교회를 이끄는 자들입니다.
오직 겉모양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으로
교회를 이끌려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사람의 심령의 상태를 더 중요하게 보시는 주님의 뜻과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자들이 교회의 중요한 직책을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더 많은 세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시련을 당합니다.
● 묵상 : 당신은 위의 사람들 중에 어떤 부류에 속한 자입니까?
이들이 모두 왕의 행렬의 자리에 있었으니,
오늘날로 하면 예배의 자리에 모두 참여하고 봉사에도 열심히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왕의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참여했고,
어떤 이는 왕께 참된 영광을 올려드리면서 참여했으나,
어떤 이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참여했고,
어떤 이는 남이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을 구경만 했으며,
다른 이들은 다른 사람이 영광 올려드리는 것을 못 마땅히 여기며 불평을 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마음으로 예배와 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 기도제목
1. 겸손하게 우리를 섬기시는 평화의 왕 예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2.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3. 주께서 필요로 하신다고 말씀하실 때
내가 가진 모든 것뿐 아니라
내 몸까지도 주께 드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