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을 향한 수도자의 노정 (이상헌 평전)
8) 하늘 섭리의 최전선 미국을 가다
7. 디스니월드, 라스베이거스에 가다
넓고도 넓은 푸른 평야와 한없이 펼쳐진 고가도로의 그물, 그 도로를 달리면서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도로망의 발달이 과연 미국에 무엇을 가져왔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로마는 사통팔달한 도로망을 이루어 놓고도 망했다. 한 때 흥했다가 망한 모든 문명국의 말로는 모두 로마의 예를 따랐다. 도로는 물질 즉, 자본과 제품 그리고 기술 등을 나르는데 그쳤고, 생명적인 것을 나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질주의는 죽은 것이요, 생명적인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평야의 푸름은 희망과 생명을 상징하고 있지만, 죽음의 그물에 갇혀 질식하고 있다. 도로망이 발달하면 할수록 이 나라 국민이 지니고 있는 생명력은 그 활성을 잃고 낙망과 절망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도로는 희망을 얽어매는 죽음의 그물이 되어서는 안 되고 생명성과 희망을 북돋아 주는 혈맥이 되어야 한다. 영양분을 공급하는 동맥이 되어야 한다. 살아 있음은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대변자를 말한다.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청교도들은 생명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도로망의 확대와 더불어 죽음이 생명을 제압하였다. 따라서 미국은 생명이 고갈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미국을 살리기 위하여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도로를 생명의 혈맥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살아 있는 생명이 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이 나라의 희망을 조락에서부터 구하여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서이다.
7월14일(수)
새벽 5시에 기상한 후 부모님 재판을 위해 기도했다. 일동과 함께 출발하여 오전 8시50분경에 나이아가라폭포에 도착했다. 11시까지 경이로운 대자연의 거대한 폭포를 여러 각도에서 감상했다. 즉, 육상과 전망대, 유람선, 폭포 밑 소안(沼岸)등을 관람하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12시경에 워싱턴을 향해 출발했다.
뉴욕주, 마사츄세츠, 코네티컷, 펜실바니아, 메릴랜드를 거쳐 밤 10시경에야 워싱턴의 숙소인 여관에 들었다. 오늘도 10시간의 긴 여행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도착하여 매우 감사했다. 운전기사 와 문사장의 수고가 많았다. 달리는 차안에서 이정표에 적힌 영어 단어를 보며 공부했다.
7월15일(목)
새벽 6시에 기상하여 아침식사를 마친 후 9시경에 국회의사당을 향해 출발했다. 도착하여 1층, 2층을 둘러보았으며 하원의원의 개회 광경을 지켜보았다. 다음에는 555피트 높이의 워싱턴 기념탑에 이르러 1976년 워싱턴 집회 광경을 회상해 보았다. 10시30분경에는 그곳 성지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다음 워싱턴교회에 이르러 내부를 시찰하고 그곳 유치원도 둘러 보았다.
오후에는 우주항공박물관에 들러 각종 항공기와 우주선 그리고 항공기 발달사에 관한 영화를 시청했다. 오후 4시가 넘어서 링컨기념관을 관람하고, 알링턴국립묘지에 이르러 케네디 묘지, 보초 교대식 등을 구경했다. 또한 제퍼슨기념관을 둘러보았는데, 그의 명언이 인상적이었다.
다음에는 워싱턴타임스사에 들러 린다 양으로부터 기념품을 받았다. 저녁에는 박보희 총재 댁에서 저녁식사를 대접 받았다.
7월16일(금)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일본어 원고를 교정한 후 아침식사를 하였다. 8시경에 호텔을 출발하여 디즈니 월드로 갔다.
오후1시경에 노스 캐롤리아니주에 이르러 뉴요커호넬에 전화하여 재판장의 부당한 유죄판결의 소식을 들었다. 18개월 금고, 벌금 2,500$이라는 것이었다. 일행은 솟구치는 울분을 억제할 수 없었다.
우리는 차 안에서 아버님을 모시고 초창기에 불렀던 노래를 부르면서 더 굳세게 싸울 것을 다짐했다.
7월17일(토)
새벽 6시에 기상하여 8시에 호텔을 떠나 오후 2시경에야 플로리다 뷰스턴의 케네디우주센터에 도착했다. 각종 우주선에 관한 전시물과 우주여행에 관한 영화를 관람하고 시 월드(Sea World)에 이르러 각종 분수환상극장, 마법사와 돌고래 쇼, 상어 쇼, 큰돌고래 쇼 등을 관람했다.
7월18일(일)
새벽4시에 기상하여 5시에 김관해씨와 함께 경배식을 가졌다. 9시경에 출발하여 디즈니월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목마 타기, 인조 해저탐험, 배 타고 세계아동 순방, 각국 유령의 세계 구경, 호상의 뱃놀이 등을 하였다.
점심식사 후에는 배우 채플린의 영화를 관람한 후 지하 동굴을 거처 중세시대 생활풍습, 아프리카 정글 내의 각종 동물을 구경했다.
오후에는 디즈니월드의 개장 10주년 기념 행렬을 구경하였다. 하루 종일 구경한 것 같은데, 겨우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하였다. 끝으로 대통령관에서 역대 대통령과 미국사 발전을 구경한 후 하루 일정을 마쳤다.
우선 디즈니월드에 원지의 규모에 놀랐다.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로 규모가 놀랄 만큼 대단히 컸다. 건물양식은 중세풍의 첨탑식이 많았으며 환경을 환상적으로 꾸며 놓았다. 가는 곳마다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휴식처를 마련해 놓았다. 구경할 오락물의 대부분이 역사, 지리, 풍물, 유물 등에 관계되는 것들 이어서 오락적이면서 동시에 교훈적이었다. 특히 미국의 강대함과 웅대함을 인식시키려는 의도를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었다.
미국의 대통령관에는 미국을 오늘까지 이끌어 온 대통령의 치적과 공로가 소개되고 마지막으로 링컨의 입을 통한 그의 교훈적인 연설에 청중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미국의 과거는 확실히 하나님에 의하여 인도되어 왔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모습은 디즈니월드의 시설 속에는 나타나 있지 않았으나 이 전설과는 대조적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이 없이 전부 노출증에 걸려 있으며 그것이 사회의 풍기와 도덕의 퇴폐를 가속화시키고 있었다. 디즈니월드에서의 관광은 즐거움의 대상인 과거와 개탄과 빈축의 대상인 현재가 대조적이었다. 즉, 시설물은 즐거움과 배움의 대상이었으나 관객은 개탄과 우려의 대상이었다.
그 외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각 입장구에서의 입장 처리가 대단히 신속하고 질서가 있었다. 목욕탕에서 인간은 다 동일한 사람으로 환원하듯이 미국사회는 노출증에 걸려 질서가 성립될 수 없는 동일 육체인간으로 화해 가고 있었다. 노출증의 사회적 확산이 사회를 소돔처럼 병을 일으키게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7월19일(월)
오전 11시에 호텔을 떠나 오후 1시30분발 비행기로 출발했다. 2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4시경에 시카고 공항에 도착했다. 새로운 비행기로 환승한 후 오후 7시경에 라스베가스에 도착했다.
짐을 찾은 뒤 부협회장 빌스타의 안내를 받아 예약한 호텔에 도착했다. 숙소의 방을 배정 받고 큰 가방을 열어보니 양복 한 벌이 분실되었다. 오를랜드에서 누군가의 손을 탄 듯 했다.
김진문과 함께 일정을 짰다. 그랜드 캐년과 후버댐을 관광하기로 했다.
7월20일(화)
6시경에 호텔을 출발하여 3인승 혹은 8인승의 비행기를 타고 2시간 동안 그랜드 캐년을 구경했다. 계곡의 준엄함과 웅대함이 장관이었고 인공호수도 볼 만하였다.
오전10시 가까이 되어서야 마을의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후버댐에 이르렀다. 11시30분까지 구경했다.
먼저 라스베이거스의 유래와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리스베가스’라는 말은 본래 몰몬교의 말로서 ‘잔디밭’이라는 뜻이다. 이곳에 처음 몰몬교가 정착하였으나 지금은 그 외의 여러 종교와 혼재해 있다.
주변의 캘리포니아, 아이오핀, 아리조나 등에서 도박은 불법으로 간주하여 도박꾼을 추방하였다. 그러나 황무지인 이곳에서는 도박을 허락했기 때문에 이곳에 도박꾼이 모이기 시작하여 드디어 최근의 도시를 이뤘다. 그 전까지는 허허벌판이었다. 동부에도 추방당한 도박꾼들이 모여서 시를 이룬 곳이 있는데, 애틀란티시가 그곳이다.
그랜드 캐년과 후버댐은 1000만 년 전 평지였던 곳이 지각 변동에 의하여 꺼져 내려앉은 곳이 이곳 그랜드 캐년이다. 계곡의 평균 넓이가 14리, 깊이가 1리, 계곡의 길이가 280리이다.
이 지대는 사막과 비슷한 광대한 황무지로 식물이나 초목이 거의 살지 못하고 있어서 비가 오면 계곡이 범람하여 홍수를 일으켜 하류지역에는 피해가 막심하였다.
후버(Hoover) 대통령 재직 시(1931-1935)에 댐을 건설하여 홍수를 막음과 동시에 거대한 발전소를 만들었다. 댐의 높이가 528피트이며 수면에서의 높이가 726.4피트로서, 한국의 소양감댐과 비견될 정도로 엄청나게 큰 규모이다.
MGM 호텔에서 감상한 쇼에 관해 언급하자면, 처음 쇼의 명칭은 비이치 보이즈(Beach boys)로서, 본래는 9명의 남자로서 구성된 악단 이름이었다. 지금은 동일한 단원이 공연하는 연극명이 되었다.
이 악단은 1960년대의 이름을 날렸는데, 주로 록클롤이라고 하며 미국인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섞인 오케스트라이다. 이 록큰롤의 특징은 노래나 기악이 소란하고 자극적이며 흥분을 유발하는 것으로서 195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이츠 보이즈(Beach boys)는 요사이의 록엔록에 비하면 비교적 온건한 편이다. 따라서 비이츠 보이즈의 창단 당시 연령층은 40대 이상으로,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일련의 향수를 느낄 수 있어 인파가 많이 모여들었다.
서부 개척 당시 한 지역의 개척이 끝나면 다음 세대가 부모를 떠나서 더 서부쪽으로 이동하여 다시 땅을 개척하고 그 다음대가 성장하여 다시 서부로 나가곤 했다. 그럼으로 부모를 모셔 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 오래도록 함께 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미국인은 부모를 모실 줄을 모른다.
비이츠 보이즈 외에 여자들로 구성된 악극단 예컨대, 제2부인 주빌리 공연단이 있다. 서부 개척 당시 남자가 먼저 서부에 도착하여 여자가 없어서 쓸쓸했다. 특히 이곳 라스베가스는 당시 은의 생산지여서 광부들이 먼저 모이게 되었다. 그들 남자들을 위로하고 돈도 벌 겸하여 이들 악단이 생겼다.
비이츠 보이즈의 공연을 보며 느낀 점은 첫인상이 고막을 찟는 것과 같은 소음과 기성이었다. 악기는 주로 재즈 밴드의 만도린, 벤죠북, 심벌, 전자올갠, 피아노 등이었다. 타악기, 현악기로 이뤄졌으며 관악기는 없다.
고막을 아플 정도로 울리게 하는 것은 난타를 하는 북과 심벌이었다. 미국인이 이 소음을 즐기며 노래의 음조에 맞춰서 율동하기 때문에 이에 청중이 갈채와 박수, 환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특히, 단원들은 능숙하게 청중을 유도하여 박자를 맞추게 하며 때로는 청중과 단원들의 호흡의 일치를 보이면서 청중을 흥겹게 해주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청중이 드디어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서 함성을 지르게 된다. 영어의 노래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서부 개척자들의 정신에서 유래된 모험성과 용감함을 비롯한 낭만과 고독, 향수와 희망 등의 감정이 노래와 기악에 담겨 있는 듯 하였다. 한편 음악의 소음과 기성은 고독과 현실불만에서의 탈출을 위한 몸부림으로 느껴졌다.
쥬빌리 쇼를 보면서는 유방도 가리지 않은 나체 춤이 자주 나왔다. 그러나 사극 즉, 삼손, 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가극화시켜서 무용화시킨 것은 나체에서 오는 추악함을 많이 감소시켜 주었다.
무대의 엄청난 크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무대 자체가 하강과 상승, 좌우 등 상하 전후 좌우로 움직였으며 또 관중석의 천정으로부터도 무대가 내려와서 그 위에서 무용과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무대가 다양하게 바뀌는 과정이 신속, 정확한 기동성을 보이는데 또한 놀라웠다. 이 같은 입체적인 무대의 조작과 함께 조명이 화려하고 찬란했다. 다양한 색채로써 노래와 기약의 조율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흐르고 있어 관중은 완전히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다만 원리적으로 볼 때, 나체 자체는 예술이 아니라 관객을 끌기 위한 외설이어서 불쾌한 생각과 감정을 누를 수 없었다. 때로는 추악함을 느낄 정도였다. 통일예술론에 의하면 예술은 윤리와 표리일체가 되어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7월21일(수)
새벽5시에 기상하여 아침식사를 한 후 9시 경에 출발하여 맥캐론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밟았다.
11시45분 발 비행기로 흰 눈이 덮인 록키산맥의 일부부인 시에라네 바다 산맥을 넘어 오후 1시경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김기석의 영접을 받고 그의 안내로 협회장인 더스트댁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흑인이 많이 사는 오크랜드에 있는 김연수의 최초 전도소를 둘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