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規詞(자규사) 자규에 부치는 글 / 端宗(단종)
月白夜蜀魂啾
월백야촉혼추
含愁情依樓頭
함수정의루두
爾啼悲我聞苦
이제비아문고
無爾聲無我愁
무이성무아수
寄語世上苦勞人
기어세상고로인
愼莫登春三月子規樓
신막등춘삼월자규루
달 밝은 밤 두견새 울 제
수심에 젖어 누대머리에 기대었네.
네 울음소리 슬프니 나 괴롭구나.
네 소리 없었던들 내 시름 없을 것을.
세상 근심 많은 이들에게 이르노니
부디 춘삼월엔 자규루에 오르지 마오.
千里遠遠道(천리원원도) / 王邦衍(왕방연)
千里遠遠道美人別離秋
천리원원도미인별리추
천만리 머나먼 길 고운 님 여의옵고
此心未所着下馬臨川流
차심미소착하마림천류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川流亦如我嗚咽去不休
천류역여아오열거불휴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두견새우는 청녕포(노래)-심수경
이만진 작사 한복남 작곡
왕관을 벗어놓고 영월 땅이 웬 말이냐
두견새 벗을 삼고 슬픈 노래 부르며
한양천리 바라보고 원한으로 삼 년 세월
아 ~ 애달픈 어린 임금 장릉에 잠들었네
두견새 구슬프게 지저귀는 청령포야
치솟은 기암절벽 굽이치는 물결은
말해다오 그 옛날의 단종대왕 귀양살이
아 ~ 오백 년 그 역사에 비각만 남아있네.
청령포라는 지명은 1763년(영조 39년)에 세워진 단종유지비에 영조가 직접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는 글씨를 써서 내렸고, 이것을 화강석 비좌 위에 올려진 비신에 새겼다. 비(碑)의 뒷면에는 1763년 9월에 원주감영으로 하여금 비를 세우게 하였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고, 지명을 청령포(淸泠浦)라고 썼다. 이로 보아 청령포라는 지명은 유래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다리 영도교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떠날 때 정순왕후가 여기 까지 나와 배웅했다고 한다.
이후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영 이별 다리, 영영 건넌 다리 라고불렸다고한다 뒤숙종때 다리를 보수하고 한자로 영도교(永渡橋)라고 했다 한다.
첫댓글 李光洙의 端宗哀史, 金東仁의 大首陽,
배호님의 영월애가(단종애가)나 근자애 왕사남의 OST를 생각나게 합니다...
좋은 글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