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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작권 (펜을 든 손보다 중요한 권위)
3. 원본의 신뢰성 (사라진 원본보다 위대한 정경)
4. 교리와 해석 (성경은 무오하나 내 신조는 아니다)
5. 명제적 진리 (정답 리스트가 아닌 살아있는 관계)
6. 계시의 핵심 (하나님의 성품은 오차가 없다)
7. 해석적 결론 (내 안경을 성경이라 부르지 마라)
결론: 문자를 넘어 숨결로
결국 무오성이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으셨다는 확신입니다.
문자라는 껍데기를 지키느라 그 안의 숨결을 놓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이제 지적 곡예를 멈추고, 성경이 전하는 하나님의 정직한 얼굴을 마주하시길 바랍니다.
월튼의 성서해석 51
성경 무오성, 지키려는 집착이 가두는 진실
우리의 솔직한 당혹감
“성경은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말, 다들 믿으시죠?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가끔 이런 질문이 올라옵니다. “왜 이 복음서와 저 복음서의 숫자가 다르지?” “현대 과학으로 여호수아의 태양 사건을 어떻게 설명하지?” 우리는 그때마다 두 갈래 길에 섭니다. 무조건 눈을 감고 믿거나, 아니면 억지로 끼워 맞추는 ‘지적 곡예’를 부리거나.
7가지 무오성 가이드라인
신학자 존 월튼과 브렌트 샌디는 우리에게 정직한 길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진짜 붙들어야 할 무오성의 7가지 기준입니다.
첫째, 성경은 CCTV가 아닙니다. 사건은 실제지만 기록 방식은 고대인의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태양이 멈췄다’는 여호수아의 기록은 지축 정지 보고서가 아니라,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승전 문학’의 고백입니다.
둘째, 펜을 든 손보다 ‘권위’를 보십시오. 누가 썼느냐는 고고학적 퍼즐보다 중요한 건, 그 텍스트를 확정하신 하나님의 대리적 권위입니다. 저작권 논쟁에 신앙을 걸지 마십시오.
셋째, 사라진 원본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완벽한 원본 한 장은 없지만, 수천 년간 이 말씀을 보존하여 우리 손에 들려주신 ‘정경’의 역사 자체가 무오한 기적입니다. 오타 몇 개가 하나님의 뜻을 가릴 수 없습니다.
넷째, 나의 교리를 성경과 혼동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무오하지만, 내가 배운 교단 신조는 ‘해석’일 뿐입니다. 내 바가지는 깨질 수 있어도, 성경이라는 샘물은 마르지 않습니다.
다섯째, 성경을 규칙 리스트로 만들지 마십시오. 성경을 “해라, 하지 마라”는 도덕 정답지로 축소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살아있는 관계를 놓칩니다. 성경은 정답지가 아니라 초대장입니다.
여섯째, 핵심은 ‘하나님의 프로필’입니다. 출애굽 인원이 몇 명이냐보다 중요한 진실은 “하나님은 고통받는 자를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품에는 단 1%의 오류도 없습니다.
일곱째, 내 안경을 벗으십시오. ‘젊은 지구론’ 같은 나의 특정한 신학적 해석을 무오하다고 우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독선입니다.
문자의 감옥에서 나오기
여러분, 성경 무오성은 싸우기 위한 ‘무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음을 전하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으셨다는 ‘안도감’입니다. 이제 지적 곡예를 멈추고, 성경이 전하는 하나님의 정직한 숨결을 마주하십시오. 하나님은 종이 위에 박제된 분이 아니라, 오늘 당신의 삶 속에서 숨 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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