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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조춘숙
말 씀 사무엘상 10장 1-13절
제 목 사무엘의 예언 성취 [12]
사울은 암나귀를 찾아 나섰다가 사무엘을 만나게 되었고 그 곳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그토록 원하던 왕이 자신일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엄청난 말을 듣고 나서 사울은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누구나 왕을 꿈꾸지만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깊이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선택이 된 이상 사울은 왕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잃어버린 암나귀를 아버지에게 데려다 주기 위해서 노력한 것처럼 잃어버린 이스라엘백성을 하나님께 인도해야 하고 블레셋을 물리치는 직임을 수행해야 합니다.
수가 작은 베냐민지파인 사울로써는 부담이 되는 일일 것입니다.
사무엘은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부으며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셨고 하나님 기업의 지도자로 삼았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이제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써 맡은 사명을 감당하며 이스라엘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왕으로써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멜렉 즉 왕의 호칭보다는 지도자 즉 족장이나 두령의 수준으로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왕은 사울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과 성도들의 영원한 왕은 하나님입니다.
지금 세상사람들과 교회와 목회자들까지 이 세상에서 힘을 가진 왕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힘이 있는 왕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 세상의 속성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이 힘을 가진 왕이 되기 위해서 변하고 있는 것은 아주 큰 문제입니다.
저는 우연히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께 반세기 안에 큰 교회와 목회자를 세우실 계획이 있거든 자기를 세워달라고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그 목사앞에는 엄청나게 많은 교인들이 예배당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에 자기는 큰 교회를 갖게 되었고 많은 성도들이 모이게 되었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전했습니다.
거기까지는 그가 기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면 얼마든지 대형교회에서 목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거슬린 것은 내가 기도했기 때문에 받았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대형교회에 대해서 비판하는 말을 들어서 기분이 나빴는지 나는 하나님께 기도해서 대형교회를 받았는데 기도하지 않아서 작은 교회를 하는 것이 자랑이냐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습니다.
그 말에 따라 교인들은 아멘을 외쳤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주어진 만큼 감당할 뿐이지 서로 경쟁상대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울이 기도해서 왕이 된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릇에 따라 드러나는 모양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왕 하나님께서 많은 양들을 맡겨 주셔서 대형교회의 목회자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고 더 조심하고 겸손하게 교회와 성도를 섬기며 진리의 말씀만을 잘 선포해야 합니다.
수가 적은 교회보다 많은 영혼을 맡겨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책임을 더 크게 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나는 겸손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진게 없다고 해서 겸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 심령이 가난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진심으로 심령이 가난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왕보다는 하나님의 종이 되고 세상에서 높은 자가 되기보다는 하나님의 의로 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겸손한 하나님의 종은 하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을 것이고 의로 부한 자는 하나님께서 많은 곳에 사용하시며 그를 높이실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것이 많거든 더욱 낮아지기 바랍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성별된 사람에게 하는 종교적인 의식입니다.
지금 사울에게는 병에 든 기름을 붓고 있지만 삼상 16장 1절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다윗을 찾아가라고 하실 때는 뿔에 기름을 채워서 부으라고 명령을 하고 계십니다.
사울에게는 지도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시고 다윗에게는 이새의 아들중에서 한 왕을 보았다고 말씀하시므로 사울과 다윗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기 위해 길을 예비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고 다윗을 통해 그리스도의 탄생을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례요한이 자신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온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일 뿐이라고 소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사명을 받고 행할 뿐 죄를 사해 주실 수 있는 메시야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세례요한처럼 자신의 사명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세례요한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른다고 해서 예수님의 자리를 탐했다면 그는 하나님께 영원히 버림받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울 역시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워주셨을 때 그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면 위대한 왕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고 그의 뿌리로 예수그리스도가 오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워주셨다는 것도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은 하나님이라는 것도 모두 잊은 채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다가 버림을 받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에게 뿔병으로 기름을 부어 주신 것은 뿔은 힘과 능력과 권세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가 하나님을 찬송할 때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서 일으키셨다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뿔이 되신 분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능력과 권세와 힘으로 사단을 물리치고 구원의 역사를 성취시키셨습니다.
번제단과 분향단의 뿔이 사방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주님의 능력은 백성이 어느 곳에 있을지라도 보호하시고, 사마리아 땅끝까지 복음을 통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위대하신 분이 바로 여러분을 위해 피 흘리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위에 여러분의 영생의 축복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무엘상 10장 2절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를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를 인하여 걱정하여 가로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난 후 세가지 예언을 합니다.
첫 번째 예언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인데 사울의 아버지가 암나귀는 찾아서 안심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아들이 돌아오지 않아서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베냐민 경계 셀사는 라마 근처의 성읍이며 벧엘 남쪽에 위치하면서 베들레헴과 가까운 곳에 있었고 라헬의 묘실은 사울이 자기의 집 기브아쪽으로 지나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울은 아버지의 두 마음을 전해 듣습니다.
암나귀를 찾은 기쁨과 아들로 인해 염려하는 마음입니다.
사무엘은 그 말을 라헬의 묘실 곁에서 듣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라헬의 묘실 곁에서 듣게 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라헬은 야곱의 네명의 아내중에 가장 사랑받던 아내이며 요셉과 베냐민의 어머니입니다.
야곱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기 때문에 남편이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알았을텐데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라헬은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훔쳐서 떠났습니다.
남편의 신앙을 알면서도 온전한 신앙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그녀가 낳은 베냐민의 후손이 바로 사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바로 라헬이 야곱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았지만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한 부분입니다.
라헬은 야곱이 벧엘에서 아버지 이삭이 있는 헤브론으로 올라가던 노중에 베냐민을 낳게 되었습니다.
산고가 너무 심하여 아기를 낳다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라헬은 아기 이름을 고통과 슬픔의 아들이란 뜻으로 베노니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아기를 베노니라고 부르지 않고 오른손의 아들이란 뜻으로 총애와 탁월함을 의미하는 베냐민이라고 불렀습니다.
베냐민은 희망적이고 긍적적인 이름입니다.
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날 때 어미와 아비의 마음이 달랐던 것입니다.
아기를 보는 어미의 마음은 베노니였고 아비의 마음은 베냐민이었던 것입니다.
암나귀를 찾아 기뻐하시는 마음과 아들인 사울이 돌아오지 않아서 염려하는 마음처럼 온전한 신앙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백성을 염려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사울은 첫 번째 예언을 통해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통해 베노니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베냐민이라는 온전히 돌아온 이스라엘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진정한 오른손의 아들 즉 하나님께서 총애하는 아들로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마음이 이 예언에 담겨 있습니다.
두 번째 예언은 라헬의 묘지에서 조금 더 가면 상수리나무가 있는데 그곳에서 벧엘로 올라가는 세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고 있고, 한 사람은 떡 세덩이를 가졌으며,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아무 상관없는 사울에게 문안하고 떡 두덩이를 줄 것이라는 것이 두 번째 예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들 중 얼마를 왕인 사울에게 주시겠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떡을 주시면서 그가 백성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지 않아도 왕으로써 살아갈 충분한 몫을 주시겠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든 일을 감당할 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것을 확실하게 믿는다면 다윗처럼 기다릴 것이고 만약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울처럼 사망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사울은 왕으로써 자기의 몫을 챙기기 위해서 백성들의 것을 착취하고 다윗과 영광을 나누지 않기 위해서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시고 세워주셨다는 것을 욕심안에서 잊어버렸기 때문에 미련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성도들 역시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세우셨다는 것을 잊게 되면 욕심을 갖게 되고 시기와 질투로 인해 실패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지 않으면 어둠에서 길을 잃게 될 것입니다
아기들에게 사과를 줘보면 본능적으로 큰 것을 집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배워서 큰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인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죄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욕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세상을 버리지 않으면 본능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늘 다른사람보다 차원 높은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인간의 차원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자신을 어떤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그의 의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을 살았어야 했습니다.
세 번째 예언은 하나님의 산 즉 그의 고향인 기브아에 도착했을 때 선지자들이 산당에서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브아에는 블레셋사람의 영문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당시까지만 해도 블레셋 족속이 이스라엘의 경내에 영문을 설치하고 행정을 관리하면서 이스라엘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하여 수비대를 두었다고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을 지나 예언하는 선지자 무리를 만나게 하신 것은 왕이 된 사울은 블레셋을 물리쳐서 이스라엘을 구하고 선지자들과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6절에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이 충만한 가운데 각종 악기를 가지고 찬양하며 말씀을 전한 것처럼 사울 역시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충만한 가운데 찬양하며 말씀을 전하는 새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자연스럽게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파는 현이 열 개인 하프 모양의 현악기이고, 소고는 탬버린과 유사한 악기이며 저라는 악기는 갈대나 뿔등으로 만든 플루우트와 같은 피리입니다.
수금은 비파와 같은 현악기로서 걸어가면서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오늘날의 기타와 비슷한 악기라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찬양할 때 모든 악기를 동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자신의 흥에 겨워 악기를 두드리고 노래하는 것과는 다르게 예언 즉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전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렇게 세가지 예언을 사무엘에게 받았습니다.
라헬의 묘실앞에서 아비의 마음을 들을 것이고, 제사를 드리러 가는 사람들을 만나서 떡을 받을 것이며, 충만한 선지자들을 만나 여호와의 영을 받고 그들과 함께 찬양하고 예언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이 예언은 9절에 모두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예언을 주시고 그 예언을 성취시킨 것입니다.
이제 사울은 그 모든 징조가 하나씩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나라를 믿음으로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2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을 체험하는 종교입니다.
삶속에서 말씀으로 살면 체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안에서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거든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것 즉 미래에 나타날 사건들은 모두 믿음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게 하며 미래를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울은 세가지 예언이 모두 눈앞에서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확실한 믿음을 가졌다면 하나님은 사울을 높이 들어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미래를 미리 알려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이 없어 하나님을 끝까지 믿어드리지 못하고 사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사울처럼 여러분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체험했을 것입니다.
만약 은혜를 체험했거든 믿음으로 결단하여 하나님만 붙들기 바랍니다
7절에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징조는 임했고 이제 사울은 올바른 판단을 하여 기회를 따라 행할 때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도우실 것입니다.
징조가 임하도록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고 그것을 기회로 삼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하는 것은 사울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 여러분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많은 사람들이 나는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미혹할 것이니까 조심하고, 난리와 난리의 소문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 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기근과 지진이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일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시작하여 죄가 관영해지면 사람들이 너희를 즉 성도들을 환난에 넘겨주겠고, 죽일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핍박을 받는 상황이 되면 성도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고 배교하여 성도들을 잡아서 넘겨주고 서로 불신하면서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끝까지 인내를 가지고,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징조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대로 모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울이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면서 새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징조가 보이고 있는 지금 여러분은 구원을 위해서 믿음으로 인내하며 끝까지 견뎌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세에 나타날 일들을 모두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이겨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과 성도들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알려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5절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의 산으로 도망가야만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붕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고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기도의 자리에 있는 성도는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다가 세상의 힘을 가져야만 안전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에 세상으로 돌이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신 것은 생명을 잉태한 임산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잉태하여 죄를 낳고, 그 죄를 장성하게 키우기 위해서 악의 젖을 먹이는 자들은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저기에서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말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많은 이단교주들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고, 재림주라고 말하면서 많은 영혼들을 지옥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큰 표적과 기사로 택하신 자를 실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단은 교활하기 때문에 말씀 전체를 바꾸지 않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살짝 바꾸어 자신을 그 자리에 끼어 넣기 때문에 성경을 모르면 절대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미리 예언하시며 어떤 믿음을 가져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두 알려주셨습니다.
성도들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도 부어주고 계십니다.
사울에게 여호와의 영을 크게 부어주시고 징조가 임하는 것을 보게 하신 다음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신 것처럼,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성령을 부어주고 계십니다.
이렇게까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희생하시는데도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할 것입니다.
10절에 사울은 선지자의 무리를 만나서 충만함을 받자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에 사울을 알던 사람들은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하는 것을 보면서 사울이 언제부터 선지자였느냐고 수군거릴 정도였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시면 새사람이 되어 새 마음으로 변화 받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할 때 그 은혜를 쏟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믿음을 지키며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충만했을 때에는 예언하고 찬양하였지만 그 믿음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충만한 성도들과 같이 있거나 찬양을 하는 장소에 있으면 나도 믿음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하나님을 영원히 떠나지 않고 지금처럼 충만한 믿음으로 살겠다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과 멀어지거나 신나게 불렀던 찬양이 그치면 사울처럼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분위기에 따라 충만한 것은 감정을 믿음으로 오해 한 것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충만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성도들이 세상에 혼자 있을지라도 믿음을 붙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모든 선지자들과 지도자들은 모두 고립시켜서 홀로 있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깎으시는 방법이 바로 고난과 고립입니다.
그것은 홀로 있는 시간까지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충만할 수 있어야만 어떤 유혹이나 공격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홀로 있는 시간에 기쁨과 감사로 찬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의를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높여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선지자들의 무리와 함께 하며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셨을 때에는 자기가 어떤 사명을 받았고, 또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왕이 되자 그는 하나님을 가장 먼저 버렸고, 그 다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의 생명을 노리다가 도리어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충만함을 받은 사람도 그 은혜를 지킨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입니다
24절에 사울은 드디어 왕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모든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은 모든 백성중에 짝할 이가 없다고 하자 백성들은 왕의 만세를 외쳤습니다.
사울은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여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하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들을 통치해야 할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신 것처럼 사울도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높여주실수록 자신을 희생하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을수록 낮아지시고, 세상에서 부와 권세가 쌓을수록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의 자리에서 그 분을 높여드리며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다윗처럼 여러분을 높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