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국부인은 양귀비의 자매이다. 극도의 호사 생활을 하였다.

장훤의 도련도(궁주의 여인이 옷을 만들고, 다듬는 내용으로, 궁중 여인을 그렸다. 사녀도라고 한다.

주방의 환선 사녀도이다.
(이 그림들은 모두 진적이 아니고 송나라 때의 모사본이다. 그러나 진적의 맛을 많이 남긴다. 무덤 벽화에는 사녀도가 실제로 그때 그린 그림이라서 비교가 된다0

무덤의 벽화 그림이다. 종이에 그린 그림과는 맛이 다르지만 이것은 진품이다.
** 중국 회화사를 말할 때는 線描에서 시작하여 발전하였다고 한다. 사녀도도 그림의 기본은 線으로 형상을 먼저 그리고, 채색을 하였다.
장훤(張萱 714-742 활동 )과 주방(周肪
장훤은 京兆 사람으로 대표적인 궁중 화가이다. 인물화를 잘 그렸고, 안마, 병풍 그림, 사녀화에 뛰어났다. 특히 당의 사녀화라고 하면 장훤과 주방 두 사람을 꼽는다.
성당기와 중당기인 8세기 중, 후반에는 기존의 회화 전통이 유례 없는 번영을 누린 시기이면서 변화와 개혁이 일어나는 시기이다. 종교화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동시에 궁중의 사녀와, 화조화, 안마(말 그림)가 독립된 장르로 발전한 시기이다. 남아 있는 분묘의 벽화에서 사녀화를 위시한 궁중회화를 엿볼 수 있다.
이 시기는 당 현종이 총애하였던 양귀비가 궁중의 주인공이었다. 사녀화에서 인물 묘사는 양귀비의 뚱뚱한 체구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미녀의 형상이 풍만하고 둥근 얼굴이 하나의 표본이 되었다. 이 시기에 사녀화를 그린 궁중화가 장훤과 주방이 나타났다.
장훤은 생전에는 크게 평가받지 못 하였다. 그러나 송의 휘종(조길)이 장훤의 작품 두 점을 모사하여 남기므로 장훤의 평가가 달라졌다.
장훤은 궁중에서 벼슬을 살면서 황실의 생각이나 의향에 따라서 그림을 그렸다. 궁정과 황족의 그림은 실제로 그들의 생활상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장훤의 그림 중에 괵국부인유춘도는 휘종이 모사한 작품이지만 원작에 거의 가깝다고 말한다. 양귀비이 셋째 언니인 괵국부인이 말을 타고 나들이를 하는 장면을 그렸다. 배경은 없이 인물만 그렸다. 양씨의 세 자매(한국부인과 진국부인)의 호화로운 생활을 보여주는 동시에 안사의 난 이전의 통치 계급들의 방탕한 생활상을 기록한 그림이라고 말한다.
장훤의 ‘도련도(搗練圖)’가 더 유명하다. 부녀자들이 명주를 가공하는 전 과정을 그렸다. 도련도도 궁중 생활을 묘사한 것이다. 도련도에서 인물형상의 표현을 중요시 하였다. 정취가 풍겨나오는 부분을 주의깊게 묘사함으로 그림의 분위기를 더욱 더 생활 현장의 모습과 밀착되도록 하였다.
장언원의 ‘역대명화기’에서 장훤과 주방을 비교하였다. 주방은 장훤보다 후대의 궁중화가로서 사녀화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였을 때의 화가이다. 장훤의 기법을 따랐으나 더 숙련된 그림을 그렸으리라 생각한다. 주방의 시대에는 장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주방의 평가는 최상이었다. 오늘에 와서는 장훤을 더 높이 평가한다.
주방은 안사의 난이 끝난 뒤에 궁중화가로 활동하였다. 종교화도 그렸지만 궁정생활과 귀족 사녀화를 주로 그렸다. 그의 그림은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심양박물관의 잠화사녀도(簪花仕女圖)와 대북 공궁 박물관 소장 직공도(職貢圖)이다. 환선사녀도(紈扇仕女圖)가 대표작이라고 말한다.
<환선사녀도>
궁중 부녀자들이 생활을 몇 조로 나누어서 두루마리로 그렸다. 궁정 안의 신분이 다른 여성들을 섬세한 묘사를 통하여 각각이 서로 다른 성품과 기질을 표현하였다. 깊은 내원의에서 생활하는 궁녀들의 마음으로 느끼는 우울함과 원망도 표현하였다고 말한다.

700년 경의 영태공부 묘의 벽화이다. 궁중여인의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당나라 때의 그림이다.
첫댓글 저희가 지금 임모를 하고 있는 그림이 장훤의 도련도라 친근감이 ... 관심있어서 더 감사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