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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의 기초
1. 국악의 개념
국악(國樂)은 우리나라의 음악이란 뜻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역사를 국사(國史)라 하고, 우리나라 말을 국어(國語)라 하는 것과 같다. 즉 우리 민족의 고유성(固有性)과 전통성을 지닌 민족의 음악이 국악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린 음악이거나 또는 한국적 토양에서 나온 새로운 음악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오늘날 국악이라 불리는 음악 속에는 요즈음 새롭게 창작된 음악, 흔히 신국악(新國樂) 또는 창작국악(創作國樂)이라 부르는 음악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2. 국악의 역사
국악이란 이름은 조선 말엽 고종때 장악원(掌樂院)에서 부터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외래 음악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서양음악에 대한 우리나라 고유한 음악이라는 뜻으로 국악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음악의 역사라는 것은 미술․문학․연극․무용 등의 예술문화는 물론 정치․경제․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음악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외부 세력의 침략과 끊임없는 항쟁으로 그 수난이 많았다 할 것이다. 더구나 고려․이조시대의 사대주의 사상에서 비롯된 역사의 어두운 면에서 우리 음악은 너무나 고독했다. 당악이 들어오면 당악을 추종하고, 아악을 들여와 국가 대사에 사용하고, 향악 보다 이들 음악만이 격조가 높은 양, 이것이 우리의 음악인 것처럼 착각하고 추종하여 번창하였지만, 그 음악을 밑거름으로 더욱 우리의 음악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꽃피우려 했던 옛 음악인들이 있어 오늘날 우리의 음악을 알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외래의 그 어느 것보다 찬연한 음악으로 살아 있다.
가. 상고 시대
우리 나라의 상고 시대 음악은 군장 국가를 이루고 살던 각 부족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행하여지던 의식음악이었다.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의 <위지> 동이전에 기록된 당시의 생활 풍습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곧 고구려에서는 동맹(東盟), 부여에서는 영고(迎鼓), 동예에서는 무천(舞天)이라 하여 추수를 마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남녀 노소가 노래와 춤으로 즐겼다는 기록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나. 삼국 시대의 음악
고구려에서는 거문고가, 가야에서는 가야금이 창안되어 이 시대의 음악사를 주도했다. 또, 문화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이 시대는 중국, 서역의 음악이 전래되었고, 삼국의 음악이 중국, 일본에 진출하는 등 전례 없는 국제교류시대가 전개되었다. 악기 거문고는 진(晉)나라에서 보내온 중국의 칠현금을 왕산악(王山岳)이 외형은 그대로 두고 구조를 개조하여 새 악기를 만든 후, 이 악기를 위한 일백곡을 지어 연주를 하니 갑자기 '검은 학'이 내려와 춤을 추므로 '현학금(玄鶴琴)'이라 이름 붙였는데 훗날 '학'자가 빠지고 '현금(玄琴)', 즉 거문고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제의 음악문화는 지리적인 조건으로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인 시기는 늦으나 5세기~6 세기 사이에 중국 남송과 북위 등에 고구려 못지 않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백제에서는 고(鼓)․각(角)․공후․쟁․우․지․적(笛) 등 일곱 가지 악기가 사용되었다. 이들 악기는 중국 남조의 청악(淸樂)과 유사하다. 한편, 백제 의 가요로 유명한 정읍사(井邑詞)가 있고, 곡목만 전해지는 방등산․무등산․지리산 등 이 있다.
신라의 음악문화는 삼국 중 중국과의 국제교류가 가장 저조했다. 6세기경에 신라에 수용된 가야금은 신라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당시 신라악은 대부분 가야금과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편성이다. 통일 전의 <신열악>․<사내악>․<미지 악> 등 고악(古樂)은 가야금을 수용한 이후, 곡이 세련되게 바뀌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또한 신라 음악사를 보면, 조상제사, 연희 등에 소용되는 음악을 위해 둔 것으로 해석되는 '음성서(音聲署)'라는 국가음악기관을 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 다.
다. 통일신라시대
이 시대는 불교음악이 본격적으로 전래되었으며, 궁중에서는 삼현삼죽(가야금․거문고․비파․대금․중금․소금)이 주축을 이루는 향악의 전통을 수립하였다. 상류사회 지식계층에는 거문고를 중심으로 한 금가(琴歌)의 문화가 맥을 이루었으며 민간에서는 고대의 제천의식을 수반했던 국중대회의 전통이 팔관회(八關會)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한 이 시대의 특징으로 범패를 들 수 있다. 이는 불교의 의식음악으로 830년 신라의 진감선사가 당나라에서 배워 옥천사에서 가르쳐 불교음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한편 신라의 향가는 진성여왕 2년(888)때 위홍과 대구화상이 편찬한 삼대목이란 향가집은 전해지지 않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처용가, 헌화가, 서동요 등 10여곡이 전해지고 있다.
라. 고려 시대의 음악
고려 시대에는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온 편종, 편경, 축, 어 같은 중국의 고대악기에 의한 이른바 아악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그 밖에 당악과 향악이 있었는데, 당악은 삼국 시대에 들어온 당나라의 속악을 발전시켜 만든 음악으로, 당비파, 쟁, 당적, 피리,퉁소, 장구, 박 같은 악기로 연주하였다. 그리고 향악은 당악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전해지던 우리 나라 고유의 음악이다. 당시 아악이나 당악 보다 크게 성하였는데,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악보로 <서경별곡> <한림별곡> <정과정> 등이 있다. 태조와 혜종을 거쳐 광종때부터 가악이 숭상 되었으며 불사인 연등회나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천풍. 산신. 하백을 제사하는 의식인 팔관회가 봄과 가을에 각각 열렸다. 당악이란 당의 음악만을 뜻하는 이름이 아니고 중국 역대 속악을 지칭하는 이름으로서 송대의 사곡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속악은 우리나라 고유 음악의 이름이었다. 본디 이 속악은 당악이나 아악보다 더욱 성행되기도 하였으며 또 여기(女妓)에 의하여 흔히 연주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의 향악은 향악기 및 사뇌․삼국악․양부악의 전통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통일신라의 향악을 계승하였다. 중엽에는 동래에 귀양살이를 하던 중 거문고를 어루만지며(撫琴) 노래하였다는<정과정(鄭瓜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금곡(琴曲)이 출현, 이 는 우리말 가사를 가진 조선조의 <진작(眞勺)>으로 이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후기에 들어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유풍이 점차 사라지고, 아악의 전통도 주변 정치상황 에 기인하여 문란해졌다. 이 시기 음악문화는 전기에 수입된 아악과 당악이 고려 후기 의 혼란기를 통해서 점차 쇠퇴해 가는 일면과 이런 사회상을 반영한 새로운 노래들이 대두된 것이 또한 하나의 특징이라 하겠다.
마. 조선 시대의 음악
조선 시대에는 세종 때에 박연(朴堧)이 임금의 명에 따라 악기를 개량하고, 악곡도 지어 악제(樂制)를 개혁함으로써 조선 시대 특유의 음악을 이룩하였다. 특히 성종 때에는 <악학궤범>이 편찬되었다. 이는 당시의 악기와 노래, 춤 등 음악에 관한 모든 것을 그림을 곁들여 설명한 것으로, 당시까지의 국악을 총정리한 것이었다. 특기할 것은 이 시대에 가사와 시조가 생겨났고, 판소리라는 서민층 음악이 생겨난 일이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정도전에 의하여 새로운 작가(作歌)를 보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세종때에는 새로 <관습도감>과 <악기도감>을 만들어 음악의 체제를 완비하였다. 박연․남급․정양, 맹사성과 같은 이론가에 힘입어 음악 사업을 활발하게 벌여 아악의 부흥, 향악의 창작, 악보 창안․간행을 하였다. 아악기 제작으로 악기를 자급자족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는데, 당시 중요한 악기제작으로 편경(編磬)과 편종(編鐘)을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간보 창안 및 악보출간을 들 수 있는데,<정대업>․<보태평>․<치화평>․<취풍형>등의 신악이 이 기보법에 의해 악보화되었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속악보는 용비어천가를 가사로한 여민락 만․문묘악 그리고 세조실록 악보에 전하고 있는 정대업․보태평 등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형식적 궁정 음악이 퇴조하는 반면에 평민 계급의 음악인 가곡. 가사. 시조. 잡가. 판소리 등이 현저하게 대두된다. 가곡은 조선 초 <만대엽>으로 비롯되어 <중대엽> <삭대엽>으로 발달한 예술적 가곡이며.. 가사는 비교적 장편의 성가(聲歌).. 그리고 시조는 서민적이면서 통속한 노래에 속한다. 잡가는 순연한 민간의 통속가로서 <선소리> 와 더불어 두 산맥을 이룬다. 잡가는 좌창에 속하며 모두 12잡가로 구성된다. 판소리는 일종의 극가(劇歌)로서 대개 숙종. 영조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영조 무렵에 고개를 든 판소리(타령 또는 잡가)는 문헌 유진한(柳振漢:1711~1791)의 만 화집(晩華集)에 춘향가 200구(句)가 있고, 송만재(宋晩載:1769~1847)의 판우회에는 12마당이 들어있다. 그 중 현재 춘향가․심청가․흥부가(박타령)․수궁가(토끼타령;별주부전)․적벽가(화용도)의 다섯마당만 전하고 배비장전 이하의 7곡은 가사 또는 곡을 잃었기 때문에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판소리는 한 사람의 창자(唱者)와 고수(鼓手)와 함께 긴 이야기를 소리와 몸짓․아니리(말체)로 끌어 가며 청중을 울리고 웃기는 대중음악이다. 소리나 아니리의 여러가지 표현에 맞는 동작을 취하는 것을 발림(科)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수가 북을 치며 "좋지"․"얼씨구" 등 감탄사나 흥을 돋구는 말들을 간간 히 하는데, 이것을 추임새라고 하며, 이는 장단을 정확하게 치는 만큼이나 중요한 요소 가 되고 있다. 판소리 초창기 인물로 우춘대(禹春大)를 비롯하여 권삼득(權三得)․모흥갑(牟興甲)등을 꼽을 수 있고, 그 후에도 박유전(朴裕全)․염계달(廉季達) 등 헤아릴 수 없는 명창들이 많이 있다. 이 판소리 외에도 조선후기의 민속악은 많은 분야가 새로 생겨났다. 즉, 서울지방의 잡가(12잡가), 절간에서 타락한 우바새(男)나 우바이(女)들이 절간으로 혹은 민가로 돌아다니면서 재주를 피우고 소리를 하는 사당패 음악, 남도 무악계의 시나위와 이 시나위에서 파생되어 점차 체계를 잡은 산조(散調) 등이 있다. 그 외 별곡과 함께 장가에 속하는 노래로 단가(短歌)인 가곡과 대조를 이루는 가사가 있다. 이는 음악중심인 가곡과 달리 사설이 중심이 되는 노래다. 시절가라고도 하는 시조는 가곡의 사설을 차용하지만 음악의 형식에 있어서 가곡처럼 5장이 아닌 3장으로 되어 있고,1장의 박자수도 가곡보다 적어서 가곡을 단순화한 것이 바로 시조라 할 수 있다.
바. 근세
고종31년 갑오경장(甲午更張)이후 제국주의의 간섭과 침략으로 대한제국은 급속도로 붕괴의 과정을 밟게 되고, 이후 한일합방과 일제 식민지시대로 접어들면서 음악문화도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던 궁중음악은 왕실의 몰락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걸어야만 했으며 왕실을 위한 의식음 악(연향, 조회, 동가(動駕), 군례(軍禮)의 중단, 제례음악의 중지, 궁중음악인의 감소를 가져왔다. 갑오경장 직후만 해도 772명이나 되던 악사들은 차차 문화 말살정책으로 1917년에는 겨우 50여명만이 남게 되었다. 서양음악이 들어왔는가 하면 서양식 군악대가 창설되고 국악은 또다시 수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조선조 음악이 공연예술로 전환되는 시대적 변천과정을 겪으며,『조선악 개요(朝鮮樂槪要)』 『조선아악요람(朝鮮雅樂要覽)』 등 여러 가지 악서의 출판, 경종보, 대금보, 피리보, 당적보, 해금보, 아쟁보, 단소보, 현금보 등의 악보제작과 오선보로의 채보, 음반취입 등의 작업이 이루어져 조선조의 음악전통이 현대로 전승되는 과도기적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 1960년에 접어들면서 국악원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활발해져 중앙의 대소 연주를 비롯, 지방순회연주, 국외의 파견 연주, 국가 의식의 연주악, 문묘 종묘 등 연례적인 제악 연주 및 TV 라디오 방송을 통한 각종 연주회를 연 백회 이상 실시하여 국악 보급 활동에 전력을 다했다. 국립국악원은 아악이나 창작 국악뿐만 아니라 민속악(民俗樂)부분, 즉 판소리 산조(散調) 민요(民謠) 민속무용(民俗舞踊)까지도 포괄한 범국악(汎國樂)의 종가(宗家)로 군림해 왔다. 현재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노력들이 다양한 곳에서 벌여지고 있다. 국악인들의 끈질긴 집념과 60년대의 탈춤부흥운동, 70년대의 마당극, 풍물, 마당굿, 대동놀이 등 연희성을 띠는 연행예술운동의 진행으로 우리 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다. 풍물의 대중화는 서양음악에 밀리는 국악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또한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 우리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우리 국악을 세계속에 독특하고 훌륭한 음악으로 인정받게 하였다. 방송매체에서도 국악의 이론 등 다채로운 공연을 소개하고 있고, 이러한 폭넓은 활동은 현재 국악의 재평가, 정립으로 새로운 시도를 도모하고 있다.
3. 국악의 기초 이론
가. 율
국악에서 쓰는 음을 말하며 그 음에 고유한 이름을 붙여서 이를 율이라 하고 음이름은 율명이라 부른다. 우리 음악은 1옥타브 안의 음을 12개의 반음으로 나누어 사용하고 있다. 12율명은 <황종> <대려> <태주> <협종> <고선> <중려> <유빈> <임종> <이칙> <남려> <무역> <음종> 이다. 그러나 기보법에 표기할 때는 머릿글자만 따서 황, 태, 무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음계를 궁,상,각,치,우 또는 중,임,무,황,태 5음계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이가 많은데 이는 12율명 중 향악이나 민속 음악이 대부분 5음 음계로 되어 있고 악기의 기능에 따라서 5음계로 사용하는 것이지 5음계밖에 없기 때문에 5음계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나. 조(선법)
국악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조는 평조, 계면조이다.
평 조 : '솔-라-도-레-미'의 5음구성, '솔'로 끝남. 서양 음악의 장조와 비슷하고,
계면조 : '라-도-레-미-솔'의 5음 구성, '라'로 끝남. 서양 음악의 단조와 비슷하며, 시조, 판소리, 남도 민요에 많이 쓰인다.
다. 장단
국악에서는 성악과 기악에서 다같이 장구로 반주를 한다. 그때 반주는 일정한 리듬을 되풀이하는데, 그것을 장단이라고 한다. 장단은 정악 장단과 민속악 장단으로 크게 나뉜다.
민속악 장단에는 ① 진양(가장 느린 장단) ② 중모리(보통 빠르기의 12박) ③ 중중모리(중모리보다 조금 빠른 12박) ④ 자진모리(매우 빠른 12박) ⑤ 휘모리(가장 빠른 장단, 12박 또는 아주 빠를 때는 4박)⑥ 엇모리(빠른 12박) ⑦ 엇중모리(보통 빠르기의 6박) ⑧ 도드리(보통 빠르기의 6박, 정악에도 쓰인다)⑨ 타령(조금 빠른 12박) ⑩ 굿거리(조금 빠른 12박, 주로 무용 음악에 쓰인다), 세마치(조금 빠른 3박)등이 있다.
라. 농현과 요성
국악은 화음이 없이 선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음악이다. 따라서 선율을 구성하는 각 음이 음악적인 문맥 속에서 의미를 갖기 위하여 각 음마다 독특한 시김새를 갖는다. 즉 어떤 음은 떨고, 어떤 음은 끌어내리고, 경우에 따라 어떤 음은 변화를 주지 않고 평으로 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 음악을 구성하는 음 조직 속에서 각각의 음이 독특한 기능을 갖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음을 변화시키는 기능 가운데 중요한 것이 요성(搖聲)이나 농현(弄絃)이다. 요성은 성악이나 관악기 음악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이며, 농현은 가야금이나 거문고와 같은 현악기 음악에 주로 쓰이는 용어로 이 두 용어의 뜻은 같다. 농현에는 단순히 '소리를 떨어 표현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소리를 끌어 내리는 퇴성(退聲)이나, 소리를 밀어 올리는 추성(推聲)을 포함하기도 한다. 농현이나 요성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요소가 아니라 한국 음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음악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의 하나이다. 농현과 요성이 있음으로써 한국적인 음악의 표현이 비로소 가능하여 진다.
마. 기보법
기보법이란 음악을 표기하는 방법이다. 오늘날에는 서양 음악과 함께 도입된 오선보 기보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오선보를 사용하기 이전에 우리 나라에서 사용되었던 기보법은 율자보(律字譜), 궁상자보(宮商字譜), 공척보(工尺譜), 약자보(略字譜), 육보(肉譜), 합자보(合字譜), 정간보(井間譜), 오음약보(五音略譜), 연음표(連音標), 대강보(大綱譜), 선율보 등이 있었으며, 이러한 여러 기보법들 중에 육보, 율자보, 정간보는 현재까지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기보법이다. 특히 정간보는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창안하였으며 우물 정자 모양으로 상하좌우로 간을 나누고 그 안에 음 높이를 알 수 있는 악보를 표시한 기보법이다. 한 줄은 한 장단을 나타내며 한 간은 1박이다.예전의 단순한 음들의 표기법에서 벗어나, 복잡한 음들을 많이 표기해야 되는 점들을 고려하여 여러 가지 기호들을 고안하여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보법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오선보에 다양한 기호들을 표시하여 사용하고 있다
바. 악곡의 종류
1) 풍류
'풍류(風流)'라는 말을 '자연의 경지를 즐기어 시나 노래를 읊조리는 등, 풍아를 즐기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이는 대체로 선비나 조선 시대 중인 계층의 문화와 많은 연관성이 있는 듯 하다. 그리고 풍류방(風流房)이란 이러한 종류의 풍류 음악을 행하던 곳을 말하는데, 이 풍류방을 달리 율방(律房), 사랑, 사랑방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풍류방의 대표적 기악곡으로는 영산회상과 천년만세, 자진한잎 그리고 성악곡인 가곡, 가사, 시조 등이 있다.
2) 제례악
제례악은 환구단제(천신에 드리는 제사), 종묘대제(역대 제왕․왕후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에서 지내는 제사), 문묘석전제(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과 석유(碩儒)들에게 드리는 제사), 선농제(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며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드리는 제사, 선잠제(양잠의 창시자인 황제의 원비인 서능씨를 모시고 드리는 제사) 등이 있다.
3) 연례악
연례악은 궁중의 조회나 의식․연향 등에 사용되는 악(樂)․가(歌)․무(舞)를 말한다.
4) 취타
취타는 임금의 행차나 군대의 행진과 관련이 있는 음악이다. 대취타를 비롯하여 대취타의 태평소 가락을 변주한 관현 합주곡 취타, 그리고 역시 행악과 관련이 있는 길군악, 길타령, 별우조타령, 군악 등이 취타 계열의 음악에 속한다.
5) 판소리
노래하는 한 사람이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추어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1인 음악극의 한 형태이다. 노래하는 사람이 북 장단에 맞추어 노래하는 것을 '소리'라고 하고, 북 장단이 없이 말로만 대사를 읊어 나가는 것을 '아니리'라고 한다. 그리고 노래를 하면서 이야기의 내용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부채를 들고 갖가지 몸짓을 하는데 이것을 '발림'이라고 한다. 사람의 흥을 돋우기 위하여 하는 짧은 말을 '추임새'라고 한다.
6) 단가
단가는 그 음악 어법이 판소리와 같다는 점에서 판소리라는 종(種)의 류(갈래)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단가는 사설이 서사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서정시라는 점에서 판소리와 다르다. 단가는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관중들의 흥과 기대감을 돋우고, 창자의 목청을 가다듬기 위해서 부르는 짧은 노래이다.
7) 병창
한 사람이 가야금을 타면서 노래하는 연주 형태를 가야금 병창이라 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가야금 병창을 할 수도 있는데, 만일 여러 사람이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과 노래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지면, 그것은 가야금 병창이라 하지 않는다. 가야금 병창은 가야금 산조를 탈 수 있는 정도의 기량과 판소리를 부를 줄 아는 조건이 필요한 장르이다.
8) 잡가
전통사회에서 전승되어 조선말기에서 20세기초에 특히 성행하였던 노래의 하나로서 전문예능인들의 노래, 곧 기생․사당패․소리꾼과 같은 전문가들이 긴 사설을 기교적 음악어법으로 부르는 노래를 잡가라고 하며 이보다 단순한 비전문가들의 노래인 민요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따라서 민요는 별도의 전승 과정이 없이도 구전되지만 잡가는 반드시 스승으로부터 배우는 과정을 거쳐서 이어져 오고 있다. 불려졌던 지역에 따라 경기잡가, 서도잡가, 남도잡가로 나누며, 서서 부르는 입창(立唱:선소리)도 잡가에 포함된다.
9) 민요
어떤 민족이 살아온 삶의 모습과 과정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그 민족이 살아온 삶의 모습과 과정이 노래의 형태로 나타나 정착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민요에는 민중이나 생활 공동체의 미적 심성과 정서가 담겨있기 마련이고 자연 발생적 성격을 지닌다. 또한 일정한 규범이나 악보가 없이 전승되는 음악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모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민요가 어느 정도 파급되었는가에 따라 통속 민요와 토속 민요로 나누기도 하고 어느 지역의 특성을 가졌는가에 따라 경기 민요․서도 민요․동부 민요․남도 민요․제주도 민요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가) 통속 민요
이미 넓은 지역에 퍼져서 음악적으로 많이 세련된 민요를 말한다. 아리랑․밀양 아리랑․도라지 타령․방아 타령․강원도 아리랑․농부가․육자배기․수심가․ 천안 삼거리 등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민요들이 이에 속하며 음악적인 짜임새나 사설의 구성이 잘되어 있어서 주로 전문 소리꾼들이 부르기를 좋아하였고, 이에 따라서 더욱 널리 전파되게 되었으며 가락이 비교적 세련되어 있다.
나) 토속 민요
어느 한 지역에 한정되어 불려지고 있는 민요들을 말한다. 통속 민요에 비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전문가보다는 비전문가들에 의하여 불려진다. 사설이나 가락이 비교적 소박한 대신 향토적인 특성을 깊이 간직하고 있고 그 마을의 삶과 정서를 함축하고 있는 훌륭한 문화적 유산이다. 지역마다 같은 이름을 가졌어도 그 가사나 가락이 서로 차이점을 가지고 있어 각기 해당 지역의 음악적 특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10) 산조
산조는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허튼 가락이란 의미로 19세기 말엽에 만들어진 기악 독주곡이다. 산조가 형성되었던 초기의 형태는 판소리의 특징적인 선율형태를 부분적으로 또는 즉흥적으로 묘사하는 형식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판소리의 표현 형식을 선택적으로 또는 기악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의 과정을 거친 후 비로소 오늘과 같은 하나의 독창적인 음악양식으로 발전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1) 시나위
육자배기로 된 기악곡으로 연주자들의 즉흥성이 많이 요구되는 음악이다. 전라도 지방을 비롯하여 경기도 남부․충청도 서부․경상도 서남부 지방 등에서 굿노래(巫歌)의 반주나, 굿춤(巫舞)의 반주로 연주되는 음악이며 연주내용은 호남지방의 남도계면조 음악이 중심이다.
12) 사물놀이
사물놀이는 꽹과리․징․장구․북의 네 개 타악기로 연주하는 리듬 합주로서 풍물놀이(농악)의 타악기 가락을 긴장과 이완의 원리에 맞게 재구성하여 실내 연주용으로 무대 음악화 한 것이다. 풍물놀이는 서서 연주하며 발림․춤사위․진풀이가 있고 연주 시간은 한정 없이 길며, 가락의 짜임새는 맺는 가락과 푸는 가락을 반복․교체한다. 이에 비해 사물놀이는 앉아서 연주하며 발림․춤사위․진풀이가 없다. 또 연주 시간은 대략 한 곡당 10~15분 정도이며, 가락의 짜임새는 느린 가락에서 빠른 가락으로 이행되는 점층적 가속의 틀로 짜인다. 느린데서 빠른데로 움직이는 틀은 전통 음악의 다른 장르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사물놀이의 전개 방식에서도 이 틀이 가락 짜임의 기본이 되어 있다.
가) 웃다리 풍물
경기․충청 이북 지역의 풍물 가락을 지칭하는 말이며, 이에 비해 호남 영남 지방의 가락은 아랫다리풍물이라 일컬었으나 지금은 전국 풍물권의 판도가 이를 벗어나 있어서 연주 곡목의 하나로 간주된다.
나) 우도굿
전라우도의 풍물 가락을 앉은반으로 다시 짠 가락으로 장고의 쓰임새가 돋보이며 다채롭게 변주된다.
다) 영남가락
별달거리가 있는데 굿거리의 변채가락으로 빨리 연주되어 힘있게 들리며 이 가락 연주 후에 대사를 외친다.
라) 비나리
신에게 기원을 올리는 노래로 사설은 창세 내력과 권세의 근원, 살풀이, 액풀이, 덕담, 축원뒷풀이(삼재풀이, 성주풀이)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음악의 짜임새는 전반부(살풀이․액풀이)는 자진모리 장단에 독창으로 주워 섬기며, 후반부(축원․덕담)는 회심곡 장단에 합창과 독창으로 노래한다.
마) 설장고 가락
원래 판굿에서 장고잽이들이 연주하던 가락인데, 60여년전에 전라도의 김홍집이라는 이가 혼자 발림하며 구정놀이․굿거리․덩덕궁이․세산조시․동살풀이․후두룩가락 등을 짜임새 있게 연주한 데서 유래되어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다. 그의 제자들에 의해 개인기가 첨가되어 연주되고 있다.
바) 남도배연신굿 노래
풍어를 기원하며 배에서 부르는 노래이며, 사설내용은 노젓는 소리․풍장소리․슬비소리로 짜여있다.
사) 바람맞이
풍물굿과 무속 음악의 결합으로 새로이 구성된 사물놀이의 연주곡목인데 얼림춤․씨춤․물춤․불춤․꽂춤판으로 구성된다
4. 국악기의 이해
가. 국악기의 분류
계열상 한국 고유의 「한국계」와 중국에서 전래된「중국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국립국악원에 보관되어 있는 국악기 종류는 60여 종이 넘으며, 이 밖에도 각지 민속음악이나 불교음악에 쓰이는 국악기의 수도 많다. 국악기 분류는 보통 제작재료 용도 연주법 등을 기준으로 한다.
1) 제작재료에 따른 분류
가) 금부 (金部) : 편종(編鐘), 특종(特鐘), 운라(雲羅), 징, 대금(大金), 소금(小金)
나) 석부 (石部) : 편경(編磬) 특경(特磬) 의 2종
다) 사부 (絲部) : 거문고, 가야금, 대쟁(大箏), 당비파(唐琵琶), 향비파(鄕琵琶),양금(洋琴) 의 6종
라) 죽부 (竹部) : 지, 약, 적, 대금, 중금, 당적(唐笛), 퉁소, 단소(短簫), 당피리, 향피리, 세 피리, 날라리 의 12종
마) 포부 (匏部 박으로 만듦) : 생황(生簧) 의 1종
바) 토부 (土部) : 훈(塤), 부(缶), 나각(喇角) 의 3종
사) 혁부 (革部) : 진고(晉鼓), 노고(路鼓), 건고(建鼓), 절고(節鼓), 소고(小鼓), 좌고(座鼓), 무고(舞鼓), 용고(龍鼓), 갈고, 장구, 노도 의 11종
아) 목부 (木部) : 축(祝), 어, 박(拍) 의 3종
2) 용도에 따른 분류
가) 향악기(鄕樂器) : 한국 고유 향악에 쓰임 : 거문고, 가야금, 향비파, 대금, 향피리, 등 7종
나) 아악기(雅樂器) : 중국 상고시대 궁중음악 연주에 쓰이던 악기 : 편경, 편종, 특종, 특경, 약, 소, 지, 훈, 금, 슬, 건고, 응고, 뇌고, 진고, 축, 어, 부, 삭고, 영고, 영도, 도, 절고, 화, 생, 우 등 45종
다) 당악기(唐樂器) : 중국 민속음악연주에 쓰이던 악기 : 방향, 박, 교방고, 월금, 장구, 당비파, 해금, 대쟁, 아쟁, 적, 당피리, 퉁소, 태평소 등 13종
3) 연주법에 따른 분류
가) 관악기 : 대금, 중금, 당적, 지, 소, 적, 퉁소, 단소,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 태평소, 생황, 훈, 나각, 나발
나) 현악기 : 거문고, 가야금, 대쟁, 아쟁, 해금, 금, 슬, 월금, 양금, 와공후, 수공후, 대공후, 소공후
다) 타악기 : 편경, 편종, 특경, 특종, 방향, 운라, 자바라, 징, 대금, 소금, 박, 축, 어, 부, 갈고, 장구, 잘고, 진고, 좌고, 교방고, 용고, 건고, 중고, 응고, 뇌고, 노고, 뇌도, 노도, 영고, 영도, 소고
나. 국악기의 종류와 특징
편종(編鐘)은 16개의 종을 상단과 하단에 각각 8개씩 매달아서 사용한다. 종의 크기는 다 같고 그 두께가 조금씩 다른데, 종이 두꺼우면 소리가 높고, 얇으면 소리가 낮다. 각퇴(角槌:뿔망치)로 아래 둥근 표를 한 부분 즉, 수(隧)를 친다. 그 이유는 같은 종이라도 때리는 강도와 방법에 따라서 음색에 변화가 생기므로, 종 아래 정면에 둥글게 수형상(隧形相)을 마련하여 악사들이 아무데나 함부로 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우리 나라에는 고려 예종 11년 6월 송(宋)의 휘종(徽宗)이 보내 준 대성아악(大晟雅樂) 가운데에 편종 정성 16매와 중성 12매의 두 가지로서 등가(登歌)에 각 한 틀, 헌가(軒架)에 각 아홉 틀이 끼어 있었다. 조선왕조 세종 때에 박연이 개량하여 많이 제작하였으며, 지금도 편경과 함께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낙양춘(洛陽春), 보허자(步虛子) 등의 연주에 쓰이고 있다. 부드러운 소리는 못되나, 국악기 가운데서는 웅장한 음색에 든다.
편경(編磬)은 단단한 경석(磬石)으로 만든 16개의 꺾어진 모양의 돌을 매단 것으로, 편종(編鐘)과 짝을 이룬다. 각퇴(角槌:뿔망치)로 경의 긴 쪽 끝을 친다. 고려 예종 11년에 송(宋)에서 편종과 함께 등가에 정성(正聲)과 중성(中聲) 각 한 틀, 헌가에 각 아홉 틀씩 들어왔고, 공민왕 때와 태종 때도 편종과 같이 명에서 들어 왔다. 조선왕조 세종 때 박연이 개량하여 많이 제작했고, 지금도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 낙양춘(洛陽春), 보허자(步虛子) 등에 사용된다.
3) 거문고
삼국사기에 [처음 진(晋)나라 사람이 7현금(絃琴)을 고구려에 보내 왔는데, 왕산악이 원형은 그대로 두고 많이 고쳐 만들고, 백여곡을 지어 연주하매 검은 학(鶴)이 날아들어 춤을 추었다. 그래서 악기 이름을 현학금(玄鶴琴)이라 하였는데, 뒤에 현금(玄琴)이라 불리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거문고는 울림통 위에 6현(絃)이 얹어져 있다. 제 2, 3, 4현은 16개의 괘 위에 걸쳐져 있고 제 1, 5, 6현은 안족(雁足: 기러기발)으로 받쳐져 있다. 울림통은 위에는 오동나무, 밑에는 단단한 밤나무를 많이 쓴다. 줄은 명주실을 꼬아서 만들며 술대는 해죽(海竹)으로 만든다. 왼손으로 괘를 짚고 오른손 식지(食指)와 장지(長指) 사이에 술대를 끼우고, 줄을 내려 치거나 올려 뜯는다. 거문고는 그 소리가 그윽하여 예로부터 백악지장 (百樂之丈)으로 일컬어 학문과 덕을 쌓은 선비들 사이에 많이 숭상되어 왔는데 지금은 줄풍류, 가곡의 반주 등에 많이 쓰이며 최근에는 거문고 산조에도 출중한 멋을 나타내고 있다.
4) 가야금
가야금은 울림통 위에 12현이 안족으로 받쳐져 있다. 울림통과 현을 만드는 재료는 거문고와 같다. 왼손으로 줄을 누르면서 오른손으로 뜯거나 퉁겨 소리를 낸다. 가야금의 모양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원래 것으로, 정악(正樂)에 쓰이는 풍류(風流) 가야금(법금)이고, 또 하나는 산조(散調)에 쓰이는 산조 가야금이다. 풍류 가야금은 줄과 줄 사이가 넓으나 산조 가야금은 줄과 줄 사이가 좁아서 빠른 곡을 타기에 편하다. 이 악기는 6세기 경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들어 신라 진흥왕 때에 신라에 전해졌다. 일본 나라(奈良) 정창원(正倉院)에 전하여져 오는 신라금(新羅琴)과 경주(慶州) 부근에서 발견된 토우(土偶)는 현재의 풍류 가야금과 같은 것이다. 가야금안 거문고와 같이 줄풍류, 가곡의 반주 등에 많이 쓰이며 산조가 생기면서부터 독주 악기로도 각광을 받아 우리 나라 악기 중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해금은 울림통에 연결된 2현 사이에 말총 활대가 끼어 있다. 울림통은 대(竹), 현은 명주실을 꼬아 만든다. 활대의 말총으로 줄을 문질러 소리를 낸다. 고려 때부터 사용된 이 악기는 정악과 민속악에 폭넓게 쓰이고 있다. 해금은 현악기이지만 관악에 반드시 편성되는 점이 특이하다.
6) 아쟁
아쟁은 울림통 위에 7현이 안족으로 받쳐져 있다. 울림통과 현을 만드는 재료는 거문고와 같다. 개나리 나무로 만든 활대로 줄을 문질러 소리를 낸다. 음색은 거칠은 편이나 웅장하다. 고려 때부터 사용된 이 악기는 지금도 정악과 민속악에 널리 쓰이고 있다. 산조를 포함한 민속악을 위해 만들어진 아쟁을 산조 아쟁이라 한다.
7) 양금
양금(洋琴)은 그 이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양에서 들어 온 금(琴)이다. 재래(在來)의 금 종류가 모두 명주실인데 반하여 양금은 철사로 되어 있다. 음 높이가 같은 네 가닥 짜리 구리 철사 14벌이 두 괘에 의하여 울림통 위에 좌, 우, 중앙 세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현재는 괘의 오른편은 사용하지 않는다. 대쪽으로 만든 채로 쳐서 소리를 낸다. 조선왕조 영조 때부터 사용된 이 악기는 영산회상(靈山會相)과 가곡(歌曲) 반주 또는 단소와의 병주에 많이 쓰이며, 금속성의 맑은 음색을 가지고 있다.
8) 징 (대금)
징과 대금(大金)은 동일한 악기이다. 문헌상으로 보면 용도에 따라 명칭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즉 종묘제례악에 사용될 때에는 대금으로 기록되어 있고 대취타, 무악, 농악 등에 사용될 때에는 징이라 부른다. 대금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왕조 성종 때 편찬된 악학궤범에 대금과 소금(小金)이 소개되어 있다. 종묘제례악에서는 아헌(亞獻)과 종헌악(終獻樂)인 정대업(定大業)에 편성되는데 아헌은 진고를 10번 침으로써 시작하고, 종헌은 대금을 10번 침으로써 끝남을 알린다. 또 농악에서 꽹과리는 잔가락을 치고 징은 매 장단 첫 박에 많이 친다. 꽹과리는 아무 것도 감지 않은 나무채로 치고, 징은 채 끝에 헝겊을 많이 감아서 치기 때문에, 웅장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낸다.
9) 꽹과리
꽹과리와 소금(小金)은 동일한 악기이다. 징처럼 용도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종묘제례악에 사용될 때에는 소금으로 기록되어 있고 농악에 사용될 때에는 꽹과리라고 부른다. 제향에 쓰는 소금은 끈에 용두를 새긴 채색한 손잡이가 있고, 붉은 칠을 한 망치로 치나, 농악에 쓰는 꽹과리는 징과 같이 홍사(紅絲) 끈으로 손잡이를 만든다. 종묘제례악에서는 정대업(定大業) 매박(每拍) 처음에 치고 특히 분웅에서는 매박 처음에 진고와 대금(大金)을 친 다음 소금을 계속해서 3번 친다. 농악에서는 상쇠는 땡땡한 음색에 높은 소리가 나는 것을 쓰고 부쇠는 이보다 부드러운 음색에 소리가 낮은 것을 즐겨 쓴다.
장고(杖鼓)는 그 허리가 가늘어서 세요고(細腰鼓)라고도 한다. 장고통은 나무로 만드는 것이 좋으나 금속도 사용한다. 왼편 가죽은 두꺼워 소리가 눅고, 오른편 가죽은 얇아 소리가 높다. 음을 더 높이거나 눅이려면, 굴레를 좌우로 움직여 소리를 조절한다. 왼편 가죽은 왼손 바닥으로 치고, 오른편 가죽은 채로 친다. 장고는 당악(唐樂)과 향악(鄕樂)에 쓰이고, 농악과 굿음악에서도 사용된다. 농악과 굿음악에서는 양 손에 채를 쥐고 친다.
11) 북
가장 오래된 악기로써 상고시대부터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타악기로 장구와 같이 가죽악기에 해당하고 모든 의식에 반드시 등장하였던 악기이고 전쟁중에도 사용하였다.
12) 소고
소고는 딴 이름으로 매구북이라고도 한다. 매굿 즉 지금의 농악에 쓰이는 작은북으로, 손잡이가 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피리는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의 3종이 있는데 모두 8개의 지공(指孔)을 가진 죽관(竹管)에 겹으로 된 서(舌)를 꽂아 분다. 서는 대를 깎아서 만든다. 향피리는 고구려 때부터 사용되었고, 당피리는 고려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세피리는 조선왕조 후기부터 사용되고 있다. 세피리는 향피리나 당피리 보다 죽관이 가늘어서 입김이 통하는 내경(內徑)이 좁고 서가 작기 때문에 불기 힘든 악기이다. 따라서 당피리를 먼저 공부하여 힘을 얻고 향피리로 훈련을 쌓은 다음에 비로소 세피리를 부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14) 대금
대금은 중금, 소금과 함께 신라 삼죽(三竹)의 하나이다. 젓대라고도 부르며, 정악(正樂) 대금과 산조(散調) 대금이 있다. 여러 해 묵은 황죽(黃竹)이나 살이 두텁고 단단한 쌍골죽(雙骨竹)으로 만든다. 취공(吹孔) 1개, 청공(淸孔) 1개, 지공(指孔) 6개가 있으며, 칠성공(七星孔)은 하나 또는 두 개가 있다. 삼국 시대부터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 사용해 왔으며 영산회상, 여민락, 보허자, 낙양춘, 본령 등 정악에 사용되고, 시나위, 민요, 산조 등 민속악에도 쓰인다.
15) 중금
중금은 대금보다 작고 취공 1개, 지공 6개, 수개의 칠성공이 있으나 청공이 없는 것이 대금과 다르다. 중금을 만드는 재료는 여러 해 묵은 황죽을 쓰고, 쌍골죽은 쓰지 않는다. 중금은 청공이 없으므로 대금보다 음색의 변화가 적으나 맑고 고운 소리가 난다. 원래는 노래와 춤의 반주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16) 소금
소금은 중금보다 좀 작고 지공이 6개여서 중금과 비슷하다. 취공 1개, 지공 6개, 모두 7공이다. 고려 때부터 사용된 이 악기는 정악에 널리 쓰이고 있다.
단소는 퉁소보다 작고 지공이 뒤에 1개, 앞에 4개가 있다. 단소는 양금과 함께 악학궤범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조선왕조 후기에 생긴 듯하며 영산회상(靈山會相)과 자진한잎 같은 관현합주에 사용되고 관현합주외에 생황과의 이중주나 양금, 해금과의 삼중주 또는 독주에도 애용된다.
18)
나발은 국악기 중에서 유일한 금속 관악기이다. 나각처럼 한가지 음만을 길게 불어 낼 뿐이고, 선율은 없다.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세 토막으로 구분된 관을 밀어 넣어 짧게 간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문헌이 없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지금은 태평소, 나각, 자바라, 징, 용고와 함께 대취타에 쓰이며 농악에도 쓰이고 있다
소라의 뾰족한 끝에 구멍을 뚫고, 그리로 불어 소리를 낸다. 소라에 따라 그 소리가 저마다 다르다. 고려 때부터 사용된 이 악기는 군례(軍禮)에 사용된 예는 많이 보이고, 종묘제례악에도 사용되었다. 지금도 태평소, 나발, 징, 자바라, 용고와 함께 대취타에 쓰이고 있다.
20) 태평소
태평소(太平簫)는 쇄납, 호적(胡笛), 날라리라고도 한다. 피리보다 서(舌)가 작고, 관은 원추형이다. 지공은 8개이며, 제 2공은 뒤에 있다. 고려말부터 사용해 온 태평소는 음이 강하고 높아서 군중(軍中)에서 쓰였다. 지금은 대취타, 정대업, 시나위, 농악 등에 사용된다
문헌에는 생(笙)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박통 속에 죽관(竹管)을 나란히 꽂은 것이다. 죽관의 아래쪽 외면에 있는 구멍을 막으면 소리가 나고, 열면 안난다. 죽관 하단에 금속청(金 : 금엽)이 달려있어서, 하모니카와 같은 원리로 숨을 내쉬고 들여 마실 때 소리를 낸다.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백제에 생황이 있었고 서기 725년에 만들어진 상원사(上院寺) 종(鍾)에 그 모양이 새겨져 있다. 생황을 포부(匏部)에 넣는 이유는 입김을 불어넣는 통을 옛날에는 박통을 썼기 때문이며, 지금은 그것을 나무로 만든다. 우리 나라 악기 중 유일한 화음 악기인 생황은 단소나 양금과의 병주 또는 세악에 쓰인다.
좌고(座鼓)는 북 하나를 틀에 매달았다. 좌고는 고려사(高麗史)에도 악학궤범(樂學軌範)에도 보이지 않고, 단원(檀園)의 무악도(舞樂圖)에 보인다. 무악도에서 보면 춤 반주에 쓰이기도 하고 관악합주에 사용되며, 현악에는 쓰이지 않는다.
용고(龍鼓)는 북통에 용을 그리고 고리를 달았다. 북 가죽이 상하로 되게 허리 높이에 매어 달고 양손에 북채를 쥐고 친다. 사용된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용고는 태평소, 나발, 징, 자바라, 나각 등과 함께 대취타(大吹打)에 쓰인다.
24) 박
박은 6개의 판자쪽을 사슴 가죽끈으로 꿰어 만든 타악기이다. 한쪽을 가죽끈으로 묶어 놓았기 때문에 반대쪽을 잡고 부챗살처럼 벌렸다가 급히 모으면서 치면 큰 소리가 난다. 대개 음악을 시작할 때와 그칠 때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