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두 가지
요사이는 거의 걱정 없이 잘 지내왔다.
집이 있고 연금 들어오고 아내가 밥 세끼 챙겨주니 걱정이 있을 수가 없다. 연금이 많든 적든
들어오는 대로 그 금액에 맞추어 살면 되는 것이다, 그 연금이 5년간 동결되었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니 세상에 가장
편하게 사는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난 일요일부터 갑자기 두 가지 걱정이 생겼다.
하나, 자동차 보험 가입하기
가지고 있는 자동차 보험만기가 9월 28일로 다가오는데 갱신을 아직 못했다. 작년 재작년에는
모두 9월초에 했는데 올해는 늦었다. 딸이 너무 일찍 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미루었다. 월요일부터
준비를 한다고 우체국 스마트뱅킹을 확인하니 유효기간이 지나 송금을 할 수가 없다. 작년 8월에
개설해서 사용을 했는데 1년 단위로 연장하는 것을 소홀히 해서 중단된 것이다. 부리나케 차를 몰아
가까운 우체국으로 가서 다시 연장을 했다. 자동연장을 물으니 우체국에 오지 않아도 집에서
연장할 수 있다고 대답해준다. 내가 잊고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달포 전에 딸이 왔기에
아내는 연장하고 나는 너무 일러서인지 안 되어 그만 하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작년에 집을 사고팔고 하는데 ‘스마트뱅킹’이라는 것을 사용하니 정말 돈 한 푼 손대지도 않고
돈을 주고받을 수 있어 편했다. 주택 매매 시 쌍방이 중개 사무실에 앉아서 ‘돈을 보냈습니다.’ 하면
계좌 확인하고 ‘네, 잘 받았습니다.’하고 매매계약서에 서명하고 끝냈던 것이다. 중개수수료도
현장에서 계좌번호 불러주면 톡톡 몇 번하고 지불할 수 있었다. 그러면 영주증도 즉각 써준다.
다시 인터넷으로 보험사에 들어가 작년과 비교하니 보험료가 많이 올랐다. 그래 올 봄에
접촉사고가 나서 거의 돈 백 만원 가까이를 보험에서 지불을 하니 할증이 된 것이다. ① 우선
‘물적사고할증기준’을 50만원으로 했는데 사고가 난 차량의 수리비가 100만원 가까이로 두 배
늘어났기 때문이다. ② 작년 시중에 1억 원이 되는 외제차가 많으니 혹 사고가 나면 내 부담금을
없애기 위해 대물보험을 들었다. 혹시 몰라서 1억 원으로 견적을 받아보고 다시 2억 원으로
확인해보니 몇 백 원밖에 차이가 안 나서 10억까지 올려도 3천 원 정도만 차이가 나기에 그냥
10억으로 올려 계약을 했다. 그런데 올해 사고가 나서 할증된 금액이 158,000원 정도에서
230,000원으로 72,000원이 많아졌다. 그래서 할증되는 금액을 줄이겠다고 다시 1억 원짜리로
내려 확인하니 그것도 10억 원짜리와 크게 차이가 없다. 할 수 없이 보험가입액을 그냥
10억 원짜리로 계약을 했다.
할증되는 것은 사고가 나기 전에는 조금씩 할증이 되지만 사고가 난 후에는 할증금액이 생각보다
많아지는 것이다. 이제 나이 탓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작년 가을부터 올 봄까지 3건의 경미한 사고가 연달아 났지만 2건은 내 실수로 난 사고라
보험사에 알리지 않고 자비로 수리하고 말았다. 마지막 3번 째 사고는 다른 차를 받았기에
보험처리를 한 것이다. 아내는 은근히 운전을 그만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30년 운전을 해보니
차만큼 편리한 것도 없다. 그래서 1988년도에 차를 사고 제주도 여행부터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다녔다.
보험액을 이리저리 확인하고 결국 작년보다 더 강화 보완된 계약을 했다. 작년까지는 혼자서
일시불로 계약을 했는데 옆에 사는 딸이 카드로 계약을 할 수 있다며 자기 카드로 6개월 무이자로
계약을 해주었다. 물론 딸에게 매달 보험료를 지불해야하지만 말이다.
긴 연휴에 스마트폰뱅킹이 안 되면 보험 계약을 못하게 될까봐 한 걱정이었다.
사실 의정부로 이사를 온 후 내가 차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서울로 글쓰기
모임에 가는 일 뿐이고 옆에 사는 딸이 내 차를 주로 사용한다. 재수하는 아들을 의정부에서 서울
노원구까지 매일 데려다준다. 또 시장 보러 갈 때는 아내와 같이 가서 두 집 물건을 사온다. 그래서
딸이 거의 내 차를 사용한다. 보험을 늦출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재수하는 손자를 매일
딸이 데려다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둘, 프린터 고장
매일 컴퓨터를 켜서 일기를 쓰고 인터넷으로 새 소식을 알아본다. 아침에 신문을 읽었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 인터넷 포털 ‘다음’에서는 10건의 일반기사와 사진기사 5건 2면을,
‘네이버’에서는 6건의 일반기사와 1건의 사진기사 5면(조선, 중앙, 동아, 한국일보와 YTN뉴스)을
보는 것이다. 물론 제목을 보고 알고 싶은 기사를 확인하는 정도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글쓰기 모임에서 회원들이 보내온 원고를 모아 편집을 해서 인쇄를
해가는 것이다. 이번 달은 30일 일요일인데 회원들이 원고를 미리 보내주지 못하고 마감에 임박해서
보내주기에 토요일 늦게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보내온 원고를 그냥 복사해서 올리는 것이
아니라 내 컴퓨터에 맞게 편집을 해야 하기에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인터넷에서 내가 필요한 기사를 복사 편집하고 인쇄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
인쇄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인쇄를 잘못 시행했다가 갑자기 종이를 치우고 인쇄를 중지시키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중지한 인쇄물을 지워야하는데 지워지지가 않는다. 그러니 다른
인쇄를 하려고 해도 앞에 내가 중지시킨 인쇄되지 않은 인쇄물이 있어 인쇄를 할 수가 없단다.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아 할 수 없이 제조사에 전화를 하니 지우는 방법을 메일로
보내주었다. 메일을 열어 차례대로 시행을 하니 중간에 내가 모르는 부분이 생겨 더 이상 진전이
안 된다. 할 수 없이 일단 포기하고 잤다.
다음날 인터넷으로 프린터기 회사 서비스 센터를 의정부에서 찾으니 있다. 전화를 하니 프린터
기계가 고장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 생긴 문제는 자기네가 할 수 없다고 다시 본사로 문의하란다.
본사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의문점들을 다시 이메일로 보냈으나 응답이 없다. 아마도 나에게
보내준 메일은 보내기만하고 받아보는 메일은 아닌가보다.
낮잠을 자는데 프린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어 잠도 오지 않아 다시 일어났다.
다음 주에는 추석연휴가 수요일까지 계속되고 목요일 금요일에 해결이 안 되면 글쓰기 모임에
필요한 유인물을 프린트해야 하는 나에게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하든 이번 주말까지
해결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 컸다.
다음날 하는 수 없이 옆에 사는 딸을 또 불렀다. 딸이 컴퓨터를 하기는 하지만 프린트 중지와 같은
그런 일을 해보지 않은 것은 나와 마찬가지이다. 다만 나보다 젊기에 같이 해보자고 부른 것이다.
회사에서 보내준 메일을 열고 해결방법으로 연결되는 인터넷 주소를 두들겨 들어가니 어제 본
내용이 나와 처음부터 다시 들어가서 하나하나 하라는 대로 따라했다. 어제 막힌 곳이 내 컴퓨터
아이콘을 찾아가라고 하는데서 내가 막힌 것이다. 내 컴퓨터 어디에도 컴퓨터로 들어가는
아이콘은 없다. 이번에는 딸이 내 PC로 가면 되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그곳으로 찾아가고
그 다음은 또 시키는 대로 해서 결국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도 딸이 화면을 보는 속도도 빠르고
머리 회전도 잘되고 조금 전에 본 것을 기억도 잘해서 문제를 잘 해결해 주었다.
3일간 끙끙대고 혼자서 하던 「걱정 두 가지」가 해결되니 다시금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실 살아가면서 걱정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걱정이 생기고 풀리고
또 다른 걱정이 생기고 풀리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풀리지 않은 걱정도 여럿 있다.
안 풀리면 그냥 넘기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내 인생에 걱정은 되지만 걸림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씁쓸한 미소 속에서 헛기침 아니 헛웃음을 짓고 사는 지도 모르겠다.
딸만 셋인데 아래 쌍둥이 중 막내가 40대 중반인데도 혼자 사는 것이다. 의정부의 모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또 미혼이니 신랑도 애도 없어 걸리는 일이 하나도 없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더라도 집으로 가는 길에 우리집에 자주 들린다. 와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엄마와 하고 가끔씩 무슨 「루미큐빅」이라는 숫자가 쓰인 작은 사각 플라스틱으로 하는 게임을
엄마와 하다 가기도 한다. 옆에 사는 큰딸도 시간이 되면 와서 같이 놀다 간다.
또 월급이라도 받는 날이면 집에 와서 나에게 외식이라도 하라면서 용돈도 자주 주고 간다.
연애지상주의자요 결혼예찬론자인 나로서는 막내딸을 볼 때마다 늘 애처롭다. 이제 결혼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딸을 보는 마음이 이렇게 안쓰럽고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하는가 하는 마음이
자꾸만 든다.
‘딸의 인생은 그냥 그 애의 인생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것은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진짜
걱정일 뿐이라는 생각에 막내딸을 보는 마음은 언제나 천근만근이다.
첫댓글 마치 딸이 아버지에겐 해결사이자 '걱정인형' 같은 존재네요. 잠들기 전 자신의 걱정을 인형에게 얘기하고 베개 밑에 두고자면 걱정이 사라지게 해주는 인형. 이런 딸이 있어 좋겠습니다. 난 왜 딸이 없는거야~~~ㅠㅠ
'걱정인형'이 무엇인지 알아냈어요. 과테말라 전통의상을 입은 손가락만한 인형이랍니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네요. 그렇게 걱정이 없어지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