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정리: 2002.4.13(일)
07:00옥계동-08:10지능선1-08:30지능선2-08:50옥계동갈림길-09:15구인월갈림길-09:20덕두산-09:30헬기장-10:00바래봉-중식-11:00출발-11:35팔랑치-12:20부운치-13:20세동치-13:50임도길-14:00청소년수련원-14:30수철리
새벽 2시. 집을 나와 88올림픽 대로로 접어든다. 건너편 행주산성의 연이어진 나트륨 가로등 불빛이 강물에 반사되어 멋지다. 광주에서 지리산 들머리까지 두어 시간이면 족했는데 이곳 수도권에서는 대여섯 시간 정도는 잡아야 할 까마득한 거리다. 과거 지리산을 수월하게 올랐던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가 속이 쓰리다. 이른 새벽 고속도로는 답답함이 없다. 천안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붙인 후, 대전을 지나 통영 간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어둠 속에 숨어있는 과속 단속 카메라를 주의하며 쏜살같이 새벽 공기를 가른다. 기나긴 오두재 터널을 빠져나오자 좌측으로 기나긴 검푸른 덕유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대학시절 지리산을 찾기 전에 먼저 올랐던 산이 덕유산이었다. 지리산을 오른 후에는 지리산의 지형과 식생이 비슷한 아우 격인 덕유산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자주 올랐건만 최근에는 오르지 못했다. 덕유산 휴게소에서 도착하니 어둠이 걷힌 오전 5시가 약간 넘은 시각이다. 우거지 국밥으로 이른 아침을 먹고 커피도 한잔 마신다. 죽어있던 핸드폰을 켜니 남원O적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지리산 I.C를 빠져나오자 정남 방향에 뾰족한 덕두산이 바라보인다. 지리산의 막둥이 덕두산. 지리산의 관문이며 태극 종주의 시발점인 덕두산. 인월서 솟아오른 덕두산에서 지리산의 능선이 시작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예상외로 그리 많지 않다. 지리산을 수십 차례 올라 보고서야, 비로소 이 덕두산을 알게 된다. 이곳에서 시작된 서북 능선은 바래봉과 세걸산, 고리봉을 거쳐 정령치에서 관통 도로로 잠시 맥이 끊겼다가, 만복대를 거쳐 성삼재에서 맥이 다시 한번 끊긴 후, 종석대와 노고단에 연결된다.
덕두산을 오르는 들머리는 구인월 마을을 지나 오르거나, 옥계 저수지 길을 이용하면 된다. 어디로 오르건 일단 덕두산에 오르면 광활한 지리산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차에서 내리니, 옥계동 초입에 선홍빛의 개철쭉과 노란 개나리, 연분홍의 벚꽃이 지천이다. 지리산 자락도 이미 봄이 완연하다. 도착한 지 5분도 안 되어 남원O적과 포옹을 나눈다. 4개월 만의 지리산 동행이다. 그동안 새 학기를 맞이한 학교와 가족 이야기에 대화를 꽃피운다. 정각 7시가 되어서 산행을 시작한다. 옥계 저수지를 돌자 우측 먼 곳에 바래봉이 보인다. 저수지의 외곽 임도를 따라 계속 오르면 운봉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게 되고 바래봉을 오르게 된다. 저수지를 끼고 걷다가 중간쯤에 폐가옥과 축사가 있는데 이곳을 올라차면 구인월쪽에서 올라오는 능선 길과 함께 만나 덕두산에 이르게 된다. 작년 봄 바래봉에서 덕두산을 거쳐 인월로 하산하며, 이곳의 지형을 유심히 살폈었다.
축사를 지나 좁게 열려 있는 산길을 찾아 능선을 향해 오른다. 주변에는 기계톱으로 잘려나간 나무들이 참혹하게 나뒹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가끔 이용하는 이 길은 희미하다. 정식 등산로는 아니다. 얼마 걷지 않아 모호하던 길마저 숨어 버렸고, 덕두산 정상 쪽을 머릿속에 그리며, 산비탈을 따라 천천히 오른다. 아직 물오르지 않은 나뭇가지를 잡자 힘없이 부러져 나간다. 날씨는 따사롭지만 바람이 분다. 얼마 오르지 않아, 우측 앞이 훤해 오며 덕두산에서 왼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에 올랐다. 능선 길에는 가는 철삿줄과 망이 처져 있다. 이 철망은 덕두산 정상까지 이어지고, 바래봉을 따라 이어진다. 바래봉 정상부근과 이곳 주변의 산 전체가 목초지로 가꾸어져서 등산객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고 덕분에 지금은 덕두산이 이렇게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다.
강한 바람을 맞으며 산비탈을 치고 오르자, 덕두산이 정면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구인월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을 바라보는 능선 앞에 올랐다. 곧 옥계마을 쪽으로 내려가는 또 하나의 길을 흘려보내고, 덕두산 좌측 구인월 방향에서 올라오는 능선 길 쪽으로 따라붙는다. 이곳에서 바라보니 옥계 저수지가 제법 멀리 보였고, 우측 너머로 황산대첩비가 있는 화수리 마을이 보인다. 덕두산에 올랐다. 좌측 아래에는 산내마을이 보인다. 그 뒤로는 준봉의 삼봉산도 드높다. 하봉과 중봉을 지나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 만복대까지 시선을 찬찬히 옮겨가며 지리 주능의 파노라마를 만끽한다. 지리산에서 지리산을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덕두산과 바래봉이다. 삼정산, 삼신봉, 웅석봉, 성제봉에서 바라보는 조망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그 광활한 지리 능선을 보며 한숨을 토해낸다. 지리산이여. 당신을 바라보기 위해 천릿길을 마다치 않고 예까지 왔습니다.
작년 이맘때 올랐을 때는 황사에 조망이 좋지 않아서, 오늘은 어떨까 조바심도 냈지만, 그것은 한마디로 기우였다. 할미꽃이 곱게 핀 넓은 덕두산 헬기장을 지나 바래봉을 향한다. 바래봉 특유의 벗겨진 모습과 운봉에서 올라오는 임도 길이 다소 삭막하다. 같은 고도의 바래봉까지는 이십여 분이면 족하다. 바래봉 길을 걸으며 시선은 계속 동편의 지리주능에 머문다. 바래봉에서 다시 한번 지리주능을 하염없이 바라다본다. 삼정산에서 영원령을 거쳐 뻗어 오른 중북부 능선 끝자락인 명선봉이 까마득하다. 초지에 자리 잡고 앉아 음료와 과자로 요기를 하고 바래봉 샘터를 향한다. 오늘 바래봉은 산님이 없다. 감시사 앞 샘터에서 준비해온 중식을 끓여 먹으려 했으나 가스버너가 바람에 그을음만 내고 작동하지 않아 비상식 참치 죽으로 이른 점심을 먹는다.
오늘 산행은 거리가 짧고, 일찍 시작한 터라 시간은 상당히 여유롭다. 운봉에서 올라오는 임도 길을 만나 운봉고원의 풍광을 바라보고, 세걸산에서 고리봉, 만복대로 이어지는 서북 능선을 바라보며 산행은 계속된다. 산내면과 운봉면의 고도차가 너무나 확실하다. 바래봉부터 팔랑치 구간의 철쭉은 봄철에 많은 사람과 사진작가들이 찾는 곳이다. 꽃봉오리를 열은 철쭉들이 제법 눈에 띈다. 지리산을 걱정하는 사람들과 환경단체에서 보면 철쭉제라는 행사는 달갑지 않겠지만, 수익을 우선으로 하는 지방 자치단체의 입장도 있으니 어떡하랴. 바래봉은 매년 한철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벌써 이십여 년이 넘은 이야기이지만 지리산 철쭉 하면 세석고원이었다. 오월이면 아름답고 애틋하게 피어난 세석의 철쭉을 보고자 전국에서 많은 산님이 몰려들었고, 밤이면 세석고원 주변에는 텐트로 불야성을 이루었고, 그로 인해 세석고원이 결국 황폐되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세석고원의 복원을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다. 이제 세석고원의 철쭉은 전설 속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그 덕분에 현재 바래봉이 유명해졌으나 자연스럽게 피어난 세석의 철쭉과 인위적으로 조성된 바래봉의 철쭉을 비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상념에 잡혀 걷다 보니 부운치에 이른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부운 마을이 평화롭다. 이곳에서 잠시 자세를 취하며 헬기장 잔디에 따사로운 봄 햇살과 함께 몸을 맡긴다. 밤새 운전하고 온 탓인지 오후가 되면서 몸이 나른해진다. 이곳에 퍼질러 누워 낮잠을 즐기고 싶다. 세걸산을 앞에 두고 세동치에서 바로 하산을 한다. 세동치에서 청소년 수련원까지는 하산 시간은 1시간 정도. 세동치를 내려선 지 삼십 분도 안 되어 임도 길을 만나고 샛길을 따라 내려가자 울울창창 푸른 수목들이 가득하다. 약간의 고도차에 이렇게 환경이 다르다. 세걸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청소년 수련원에 도착한다. 잘 정돈된 체력 훈련장을 지나 아스팔트 포장 길을 내려가니 이내 수철리 마을이다.
평화로운 수철리 마을. 과거 이곳에 지리산 콘도를 만들려던 김철호 회장의 명성 왕국은 그 역사를 만들지 못하고 좌절하고 말았다. 그 당시 꿈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운 좋게도 운봉으로 나가는 버스 편과 곧 연결되고 운봉에서 모처럼 남원O적과 시간을 보내며 식사를 하였다. 오후 4시가 되어 남원O적과 이별을 고한다. 까칠하게 늙어간 남원O적이 오늘따라 외롭고 쓸쓸하게 보여 가슴이 아프다.
후기: 지난 금요일(4.19) 저녁. 삼십여년 대선배 O촌님을 인천역 차이나타운에서 만났습니다. O촌님께서 인천으로 전입한 저를 위해 특별히 마련해주신 자리였습니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설악산 매니아이며 지리산꾼인 O촌님과 산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었는데 저의 지리산 산행기를 대부분 기억하고 계셔서 놀라움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2002.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