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49
아바타가 된 공자
영화 <아바타2: 물의 길>이 국내 누적 관객 천만을 넘겼다. 이 외화는 전 세계 흥행 1위를 차지한 아바타 시리즈다. ‘타이타닉’과 ‘터미네이터’를 만든 제임스 카메론의 마술이 언제까지 통할지 궁금하다.
하지만 연금술사가 된 카메론의 금화에도 흠집이 난 적이 있다. 중국에서다. 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던 <아바타>가 갑자기 상영을 중단하게 된다. 그 배경에 중국 정부의 개입이 있다는 의혹이 일었다. <공자>라는 영화의 개봉 때문이었다. 제작비를 배로 늘려 만든 <공자>는 중화를 과시하기 위한 중국 문화상품의 아바타였던 셈이다.
천안문광장에는 9.5m 높이의 공자 동상이 세워져 있다. 광장 맞은편에 걸린 6m 높이의 마오쩌둥 초상화보다 크다. 봉건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문화혁명의 몽둥이로 두들겨 맞던 공자가 마치 홍위병의 우두머리와 대적이라도 하는 듯하다.
중국 공산당이 지하에 감금했던 공자를 다시 불러내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첫째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이즘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통치이념의 재설계라는 시각이다. 즉 인(仁)을 바탕으로 하는 공자의 인정(仁政)·친민(親民)·화해(和諧)·대동(大同)과 같은 인본주의 철학을 마오이즘과 결합하여 '조화사회' 건설의 명제로 삼았다는 관점이다. 마오쩌둥의 민머리에 마르크스의 수염과 공자의 수염을 나란히 붙인다는 것이 어색하지만, 이는 후진타오가 말한 '유가사회주의'라는 진테제(Synthese)로 명료하게 설명된다.
중국 공산당이 집권을 강화하려는 통치술로 공자를 이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소위 ‘문화민족주의’재건이란 다른 차원의 역사문화혁명을 노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중화를 패권주의에 접목하고 그들의 전통문화를 선진문화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야심의 일단이 동북공정이고 공자의 소환이다. 미·중 정상회의에서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한 망언도 같은 맥락이다.
공자의 입술이 마르지 않는다.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공자가 죽은 적이 없어 그의 침으로 젖지 않은 종이가 없다. 심지어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뿌리 깊은 주자학적 세계관이 버젓이 공자의 경영술이란 변이를 일으켜 실용서적으로 출판된다. 공자로부터 대를 이어 세례를 받은 젊은이들은 하급 공무원이라도 하겠다고 고시원 쪽방에 갇혀 봄바람 같은 청춘을 LED 전등으로 선탠한다. 공자는 수많은 세미나의 단골 강사이고 학술모임에서 좌장을 차지한다. 뮤지컬에도 출연하고 주연배우로 사인회를 하다가는 논어 낭송대회 심사위원으로 뛰어간다. 알고 보면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까지 제사떡을 받아먹는 나라가 한국이다.
공자의 이름을 도용한 중국의 패권전략은 교활하다. 이른바 공자학원이다. 외양으로는 중국어 교육과 중국 문화를 홍보하는 민간단체인 듯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공자학원은 중국 국무원 교육부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2020년에만 104개국 354개의 공자학원에 총 1억6700만 달러라는 돈을 퍼부었다. 그들이 이렇게 많은 돈을 쓰면서 세계 각국에 공자학원을 운영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2010년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장 류윈산(劉雲山)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대외선전전략을 세워 우리에게 유리한 국제 여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외선전을 위한 문화영역을 확장해야 하며 공자학원을 잘 꾸려나가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공자학원을 설립한 나라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장 많은 공자학원이 있는 국가로 2020년 기준 22개 대학에 공자학원이 있으며 사단법인 형태의 서울공자아카데미도 있다. 이와는 별도로 19개 중·고등학교에서 공자학당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공자학원 교재들 일부가 공자를 일러 벼슬을 탐하고 농민을 천시하며 상민과 여성을 업신여기는 봉건주의자로 비하한다는 사실이다. 문화혁명의 몽둥이를 마저 치우지 못한 모양이다. 어쨌든 가치관이 정립되지 못한 청소년들이 중국 공산당의 체제 선전에 그대로 노출된다면 문제다.
최근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조직사건이 불거졌다. 사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공자학원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 유럽에서는 공자학원이 간첩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퇴출당하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공자학원의 실체를 파헤친 영화가 한몫했다. <가면>이란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2012년 캐나다의 맥마스터대학에 설치된 공자학원을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던 소냐 자오(Sonia Zhao)의 고백이 큰 반향을 가져왔다. 공자학원은 공자의 사상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친중 인사 양성과 마오이즘을 전파하는 중국 공산당의 선전기관이라는 폭로다. 이데올로기의 전장에 먼저 영화관을 짓는 것을 보면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가 예술 장르에서 이탈하는 일은 흔하다. 대중성을 추구하는 영화의 특성상 선동의 쓰임새로는 영화만큼 제격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레닌은 무성영화 시절에 예술 가운데서 영화가 중요한 혁명의 도구라는 점을 간파했고 스탈린은 영화야말로 가장 중요한 대중선동수단이라고 말했다. 레닌의 후계자로 칭하는 트로츠키 또한 영화만큼 강력한 프로파간다의 전사가 없다고 설파했다.
몇 년 전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영화로 제작되었다. 조선의 인조는 망한 명나라와의 신의를 내세우다가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이마를 땅에 찧는 삼궤구고두레(三跪九叩頭禮)의 치욕을 당했다. 청이 무너진 후에도 사대는 그칠 줄 몰랐다. 유생들은 명나라의 만력제에게 제사 드리기 위해 만동묘라는 사당을 만들고 일제강점기에는 숨어서까지 제를 올렸다. 그 폐해가 오죽했으면 임금 위에 만동묘지기가 있다고 노래를 지었을까 싶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성공한 듯 보인다. 어떤 주중대사는 신임장 제정식 때 방명록에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고 썼고 어떤 국회의장은 미국 하원의장에게 만절필동을 직접 써서 선물했다. 그 자구의 중의적인 뜻을 몰랐을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