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복음교회, 2022년 12월 25일
♱기도로 마음을 모읍니다♱
[공동체고백] 사도신경
[어린이시간] 어린이 찬양; 121장(기쁘다 구주 오셨네), 127장(그 어린 주 예수)
말씀; “아기예수를 만난 사람들(눅2:22-25)”
[광 고]
-오늘은 성탄주일입니다. 예배 중에 성탄감사헌금 드립니다, 공동식사 있습니다, 식사 후에 성탄축하제가 있겠습니다.
-송구영신예배는 따로 모이지 않겠습니다. 그 의미를 잘 새기고 새해 첫날 주일예배에서 뵙겠습니다.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①드디어 여야가 10,29참사 국정조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유족들의 뜻에 따라,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②화려한 불빛에 드리운 그늘로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의 빛이 비취게 하소서.
③부끄러운 옛 모습을 벗고 완전히 새로운 해(2023년)를 맞이할 수 있도록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④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교회식구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성시 교독] 교독문 120번(성탄절2)
[찬 송] 122장(참 반가운 성도여)
[강 론]
참 선지자가 오셨습니다(마7:15-27)
오늘은 성탄주일입니다. 성탄의 의미는 어린이 예배 때 살펴보았고, 오늘은 산상수훈 마지막 시간으로 성탄의 의미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왕이시고, 제사장이시며, 선지자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들도 예수님의 현존으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군림하려는 사람들 틈에서 섬김의 왕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연결해 주는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처럼 참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는 “양의 옷”을 입고 “속이고 노략질 하는 이리”를 조심하라는 경고가 있습니다(15). 양의 탈을 쓴 늑대는 예수님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흔히. 교회 밖에서만이 아니라 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목사가 성도들을 노략질하는 모습뿐 아니라 성도들이 목사를, 혹은 서로를 노략질하는 모습도 많습니다(목사만 성도를 노략한다고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민(民)에 봉사해야 하는 대통령과 위정자 혹은 공무원이, 기업인 혹은 선량한 모습을 한 노동자 등이 양의 탈을 쓴 이리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양의 탈을 쓴 늑대 즉, “거짓 선지자를 삼가(15)”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성탄주일에 우리에게 오신 아기예수가 참 선지자인가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제자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참 선지자이시고, 우리가 그의 제자라면 우리도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표적과 가르침대로 우리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이 참 선지자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참 된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더욱 그리할 것입니다.
참 선지자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열매는 그 사람의 ‘행위’의 결과뿐 아니라 그 ‘존재함’까지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표적을 삼으셨는지 또, 어떤 삶을 사셨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존재함’은 표적(sign)입니다. 밤을 새워 양을 치던 목자(이리가 아닙니다)가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눅2:12)”을 보면 메시야임을 확증할 수 있었던 것처럼, 참 선지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릅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메시야는 ‘왕궁의 요람’이 아니라 ‘마구간의 구유’에 뉘이신 분입니다. 참 선지자이신 아기예수께서 요람이 아니라 말구유에 뉘어진 것처럼 우리교회가 참 교회라면 화려한 요람이 아니라 소박하고 순전한 구유라는 표적(sign)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를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아니라는, 그래서 함께 할 수 있는 목사라는 확신이 들게 하는 것은 내가 가진 힘이나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이 아니라 소하고 순한 교회를 추구하는 모습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삶이 아니라 생명의 삶(구유에 뉘인 아기)이 우리의 근저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16,17절을 읽겠습니다. 우리의 근저가 이런 생명이라면 우리의 지향도 그렇게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이라는 뿌리에서 시작된 선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입니다. 참선지자인 예수그리스도께서도 아기였을 때는 구유에 뉘어지셨고, 장성하여서는 평생을 약한 사람들을 일으키시고, 병든 사람을 고치며, 죽은 사람을 살리는 좋은 열매를 맺으시다가 십자가라는 최상의 열매를 맺으시며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물론, 성부께서는 이런 분을 십자가에 그냥 두지 않으시고 부활시키셨죠!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처럼 생명에 뿌리를 두고 선한 열매 많이 맺는 사람들이 되기를 이 성탄주일에 기도합니다.
22절을 읽겠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 하며.....”.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교인들은 자신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23)”라고. 즉,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인 것이죠. 그러면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 즉, 참 선지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죠? 삶의 열매입니다.
교회 안에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가득 찬 것 같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들 말입니다. 마태는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을 대비하여 설명합니다. 24절부터 27절까지를 묵상하겠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아닙니까?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기를 축복합니다.
말씀마치겠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참선지자이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곳이 교회라 하더라도 거짓 선지자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 말입니다. 참선지자이신 예수그리스도처럼 생명에 뿌리를 둔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 많은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우리 가운데 말씀을 듣는 일까지도 지겨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처럼 말입니다. 참선지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인생의 파고를 견디고 이겨낼 뿐만 아니라 비바람을 헤치고 나가 천국에 이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 송] 123장(저 들 밖에 한 밤중에)
[주님의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