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사역 당시의 황제,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
누가복음 20장
티베리우스 카이사르는 복음서에서 주로 "가이사"로 간단히 언급되고 있다. 그는 AD 14년부터 37년까지 다스렸으며, 예수님의 청소년기와 성년기에 황제였다. AD18년에 헤롯 대왕의 아들이자 갈릴리의 통치자였던 헤롯 안티파스는 이 황제를 기념하여 디베랴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이곳은 갈릴리 호수 남단의 온천 지역에 위치했는데 오늘날에도 이곳에 남아 있다. AD26년 티베리우스는 본디오 빌라도를 유대 총독으로 임명했는데, 그는 AD36년 티베리우스에 의해 파면될 때까지 총독으로 있었다. 누가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사역 시작연도를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라고 밝히고 있다(3:1). 이 연대시를 근거로 AD 25년부터 29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지만, 정확한 해석에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성경에서 티베리우스가 언급된 곳 중 가장 잘 알려진 부분은 로마에 세금을 내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마 22:15-21: 막 12:13-17; 눅 20:20-26). 종교 지도자들이 납세 문제에 관해 예수님을 시험하려 하자,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 은전을 언급하시며 답변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5절). 동전에는 티베리우스의 초상과 '존엄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아우구스투스는 선황)라고 새겨져 있었다.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으므로 하나님 한 분께만 자신을 드려야 한 것이었다.
“누가복음 20장”, <스페셜 성경>, p.131.
유다에 부임한 제5대 로마 충독(A.D.26-36년).
빌라도는 예수님의 재판을 주관했으며, 예수께 십자가형을 언도하였다. 로마 사회의 중상류 귀족 가문 출신인 빌라도는, 세례 요한이 활동하기 직전에 감독관(praefectus)이란 직위로 유다에서 복무한 적이 있었다(참조. 눅3:1).
그 당시 그는 수리아의 로마 총독 보좌관 밑에서 군사적인 임무를 수행했던 것 같다. 비기독교적인 자료에는 빌라도에 대한 언급이 아주 적다. A.D. 약 115년경에 기록한 타키투스의 저술 속에 빌라도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Ann. Xv. 44.4), 마치 복음서 이외의 신약에서 그에 관하여 언급한 것처럼(행3:13; 4:27; 13:28; 딤전6:13), 그리스도의 죽음과 관련하여 아주 간단하게 언급했을 뿐이다. 필로와 요세푸스는 유대교에 대한 빌라도의 적대감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특별히 황제의 초상이 새겨진 휘장을 사용하거나, 빌라도와 황제의 이름이 새겨진 방패를 걸어 놓음으로써 유대인들의 감정을 자극하였다. 또한 빌라도는 성전의 보물들을 압수하여 막대한 재산을 긁어모았다. 그래서 필로와 요세푸스는 빌라도를 고집 센 강탈자이며 잔인한 포학자라고 묘사하였다. 눅13:1에도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잔인하고도 극악한 사건에 대한 언급이 있다. 예수님의 재판에 관한 복음서의 기록에서(마27장; 막15장; 눅23장; 요18:28-19:42),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사주를 받은 군중들의 압력 매문에 판결을 바꾸어 버리는 비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빌라도의 포악하고 과격한 성격은 결국 그를 총독의 직위에서 쫒겨나게 만들었다. 어떤 사마리아의 거짓 선지자는 자기가 그리심산에서 성전 기물들을 다시 찾아내겠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러자 많은 유대인들이 이 기적을 보기 위하여 그리심산으로 몰려들었다. 이때 빌라도는 군중들이 모여 반란을 일으키려는 줄로 성급하게 판단해 버리고, 모인 자들 가운데 몇 명을 죽여 버렸다. 이 일이 화근이 되어 사마리아 지방에서 격렬한 폭동이 일어났는데, 결국 이 사건 때문에 빌라도는 로마로 A.D.36년에 소환당하였다. 빌라도의 말년과 죽음에 대하여 정확한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다. 전설에 의하면 가이우스 칼리쿨라 황제 때 자살했다는 말도 있고, 네로 황제 때 참수형을 당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빌라도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순교를 당했다는 전설도 전해내려 온다. 마27:19에는 빌라도의 아내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전승은 그녀의 이름이 프로쿨라라고 밝히고 있다. 빌라도와 프로쿨라는 지금도 에디오피아 교회의 절기에 추앙을 받고 있으며, 프로쿨라는 희랍 정교회에 의해 추앙을 받고 있다.
“빌라도”, <스페셜 성경: 아가페 출판사>.
첫댓글 가이사(Caesar)
로마왕 줄리어스의 성으로 B.C 3세기 이후 로마 최대 가문의 이름. 황제를 뜻하는 독일의 카이저(Kaiser), 러시아의 짜르(Tsar)라는 용어의 합성어이다. 그 후 권세가 커져 역대의 성을 가이사라고 하였다. 그 가문 중에 가이우스 율리우스 가이사(BC 120경-44. 3. 15)가 가장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황제가 되지는 못했다.
[1] 예수님 탄생 때의 아구스도 (눅2:1).
[2]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줄 때 있던 디베료 (눅3:1).
[3] 선지자 아가보가 안디옥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천하에 큰 흉년이든다고 예언 할 때 있던 글라우디오 (행11:28).
[4]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있던 네로 (행25:11).
복음서에서는 세금과 관련하여 막 12:13-17 나타나며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기름부음 받은 왕(가이사)이라고 하였다는 죄목으로 고소를 당하였다(눅 23:2).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KCM사전>
엄밀히 말하면 독일의 카이저와 러시아의 짜르가 로마의 가이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가이사=로마 황제로 보면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티베리우스 황제 때 예수님이 사역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장코뱅 네, 공감합니다.
빌라도(Pilate)
뜻 : 창을 가짐
본디오 빌라도는 유다 사마리아 에돔을 다스린 로마의 다섯째 총독(주후26-36). 창을 잘 쓴다 하여 빌라도라 불렀다. 유대인에게 도전 로마 군대를 예루살렘의 헤룻 궁으로 옮겼고 예루살렘에 황제 화상이 있는 군기를 걸고 경 배케 하고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을 학살했다. 그의 제일 큰 과오는 예수를 못 밖은 일이 었다. 산헤드린의 밤 회의에서 결박했으나 사형권은 총독에게 있다. 고소 사실을 변명하지 않는 예수를 이상히 여겼다(막 15:5). 갈릴리 사람인고로 부봉왕 헤롯에게 보냈다(눅 23:7). 헤롯은 다시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냈다(눅 23:6-12). 빌라도는 유월절 특사로 예수를 석방하려 했으나 군중의 동요를 두려워 하여 아내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형 선고를 내려 죽이게 했다(마 27:19). 누가에 의하면 그는 예수가 유대인의 왕임을 공공연하게 용인했다(눅 23:3).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KCM사전>
사도신경에 빌라도가 거명되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을 시사해 줍니다.
빌라도는 잘 알아도 티베리우스 황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포스팅을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2000년 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건은 역사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선 신약성경의 4 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하나같이 이 일을 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독교 바깥에서도 이를 전한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예수가 /// 티베리우스 황제 /// 재위 중에 극형을 당했다”고 썼고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빌라도가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다”고 전했다. 2세기 그리스의 풍자작가 사모사타의 루키아노스와 마라 바 세라피온은 예수가 처형당한 사실을 확인한다.
https://v.daum.net/v/20240331110214419
책 내용을 잘 정리했네요. 그 책을 읽으면 성경을 아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박종순 목사의 신앙상담] 사도신경에 나오는 빌라도는 어떤 사람인가
https://v.daum.net/v/20231218030712340
로마 역사가 “본디오 빌라도 선고로 예수 십자가형” 언급
https://v.daum.net/v/20231214030909467
예수님 사역 당시의 로마 황제와 유대의 총독에 대한 글을 유용하게 잘 보았습니다.
위정자들도 하나님의 역사 경영에서 좋게든 나쁘게든 쓰임받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의 아내가 처형 전날 밤에 예수님으로 인해 꿈에서 많이 힘들어했다는 것 까지 성경에 기록될 정도였다는 것이 역사성을 더 높여주네요. 빌라도가 손을 씻고 예수님과 대화한 것 까지, 유대인들이 그 피 값을 자신들과 자손들에게 돌리겠다고 맹세한 것 까지...성경은 매우 과학적이고 문장들이 하나도 그냥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 실감합니다.
네, 성경에는 과학은 아니지만 과학적이고 논리학은 아니지만 논리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경을 서랑하는 것 같습니다.
@장코뱅 네, 두분의 댓글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