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의(義)와 축복‘만’ 적은 책이 아니라 죄와 벌에 대해서‘도’ 적은 책입니다. 율법과 복음은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고, 칭의와 성화는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을 알고서 구분선 아래의 칼빈의 경건과 기도를 읽으시면 더 이해가 잘 되고 은혜도 받을 것 같습니다.
죄와 벌
"저희는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패괴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호 9:9).
선지자 호세아는 백성들이 너무나 큰 죄악에 빠져 그로 인한 징벌에서 헤어날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넘어졌다면 누군가가 손을 뻗쳐서 그를 다시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는 진흙탕 속에 빠진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그 진흙탕에서 건져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수렁에 자는 회복의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완전히 파멸되어 소용돌이 속으로 깊숙이 빠져버린 자에게는 손을 내밀어 봤자 헛수고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무엇보다 먼저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깊은 수렁에 빠진 자들이라고 말했음을 기억하십시오. 인간이란 원래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깊은 수렁 속에 빠져 헤어나기 힘들지라도 하나님을 경멸하고 원망하기보다는 날마다 하나님께 회개하는 마음을 갖고, 더 깊은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죄를 짓는 인간을 보시며 하나님은 변함없는 자비와 은혜로 참고 기다리시지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더욱 조롱하는 죄를 짓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당신을 조롱하고 배역하는 자들의 죄악에 상당하는 징벌을 반드시 행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 기도
능력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밝히 보여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눈던 가운데 방황하지 않고, 죄의 어두움을 좇지 않게 하심이며, 죄악의 잠 속에서 헤매지 않게 하시려는 것임을 압니다. 간절히 바라옵기는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말씀으로 늘 깨어 있게 하시고, 더욱 우리 자신을 채찍질하여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며 주님을 위해 우리 자신을 사용 해주옵소서. 주님께서 영원히 내 안에 계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영광과 안식을 취할 때까지 인도해 주옵소서. 아멘.
찰스 에드워드, 『존 칼빈의 경건과 기도』, p.10.
첫댓글 [율법의 세 번째 용도] (third use of the law):
하나님의 율법은
"첫째", 초등학문으로서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기능이 있고,
"둘째", 인간의 악함과 행동을 억제하는 역할이 있다.
그에 더해진 "셋째" 목적이자 용도는 신자들에게 성화(sanctification)의 길과 방향을 제공하는 것이다.
루터교(Lutheran) 전통은 율법의 처음 두 용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개혁파(Reformed) 신학자들은 "율법의 세 번째 용도"에 자리를 제공하며,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해 성장하는 개념인 성화를 더욱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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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그렌츠 등, [신학용어사전].
존 오웬의 글에서 보았던 것을 다시 보니 좋네요^^
@노베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카페와 작성자님이 자주 강조하시는 거죠? 구분은 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개혁주의가 다른 개신교 그룹에 비해서 칭의의 결과인 성화를 더욱 강조하는 것도 압니다.
빠져나오기 희박한 깊은 수렁에 빠지기 전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222
깊은 수렁에서 건져주시는 주님의 손을 의지하여 성화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길 소원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40:1-4 )
아멘! 저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믿음을 담으신 아파르님의 깊은 댓글에 저도 아멘! 합니다.
아멘22
오늘 칼빈의 글을 보니 존번연의 천로역정이 생각나네요. 좁은문으로 가던 크리스찬씨가 낙심의 늪에 빠지죠..
그때 조력씨가 손을 내밀어 건져주며 했던 말 "왜 징검다리(하나님의 약속)를 찾지 않았소?" 입니다.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하나님사랑, 이웃사랑 ,마22:39)을 잊지않는 자들에게 하신 주님의 언약을 기억하는 것이 신앙의 징검다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칼빈의 교훈도 참 감사합니다.
아파르님이 정확하게 보신 것 같아요. 동의합니다!
천로역정은 Pilgrim's Progress , 天路歷程인데요. Progress는 "전진", 진행을 의미하므로 순례자의 전진도 좋고요. 마이클 호튼도 칭의 이후 성화를 /// 은혜안에서 "전진"하는 길 /// 로 표현했습니다.
그 전진하는 과정에서 각종의 역경과 난관을 만나는데요. 참 성도는 견인을 합니다.
@장코뱅 아~ 그렇군요! 설명 감사합니다
@아파르 공감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 카페 게시판 중 가장 젊은 개혁주의자인 마이클 호튼의 글도 종종 올리겠습니다.
@아파르 님의 풍성한 댓글에서 제가 배움을 얻습니다.
재밌는 예시네요. 하나님의 말씀의 징검다리로 건넌다면 수렁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겠습니다. 말씀을 떠나지 않으면 패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하게 죄를 지으면 민족이든지 개인이든지 반드시 형벌이 따른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보여 주셨음을 기억하며, 항상 성화의 길을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가야겠어요.
좋은 의견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유념해야 할 부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