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순이 아닌 논리 인과 관계를 서술하는 개혁 신학 ‘구원의 서정’에서 항상 강조하는 것은 동시성입니다. 이같이 개혁 신학 ‘구원의 서정’은 ‘세례 마술이나 시간을 들여 공들여 조립해야 하는 조립식 기계’가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개혁 신학 ‘구원의 서정’에서는 ‘외소’에서 ‘내소’에 이르는 기간을 ‘화살표(→)’로 표시하지만, ‘내소’와 ‘위로부터 태어나게 하시는 성령의 내주’와 ‘혈통(영적) 자권子權을 얻는 중생(거듭 남, 새 출생)’과 ‘회심’과 ‘법정 자권子權을 얻는 칭의’와 ‘점진 성화’를 표시할 때 ‘화살표(→)’로 표시하지 않고 ‘줄표(ㅡ)’로 표시해 동시성을 강조합니다.
♠ 외소→ 내소ㅡ중생ㅡ회심ㅡ칭의ㅡ점진 성화→ 영화.
혹은
♠ 일반(준비) 은혜: 외소→ 특별(구원) 은혜: 성령의 내주ㅡ중생ㅡ회심ㅡ칭의ㅡ점진 성화→ 영화.
아래에 옮기는 김홍전 목사님 <변개와 성신의 내주>에서 “변개”는 ‘회심(믿음+회개)’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배경색은 강조하려고 제가 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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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개와 성신의 내주
…(전략)…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중생은 중생한 새사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성신님 즉 그리스도의 신이 그 안에서 동시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과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신,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이 같이 거하시되 떠나지 아니하고 늘 거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강과 같이 흘러서 영원히 다함이 없다.”(요 4:14, 7:38) 하신 말씀대로, 성신님이 거하시다가 그 사람이 죄짓고 타락한다든지 해서 성신님이 거기서 떠나버리시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영원한 생명이 사람 속에 들어 있다가 그 사람이 잘못하므로 영생을 잃고 구원에서 떨어져 지옥으로 가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내가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이 영생의 큰 사실이 영원한 것과 같이 성신께서도 “내가 주는 생명의 물은 그 배에서 강과 같이 흘러서 영원히 마르지 아니하리라.”(요 7:38~39)고 말씀하신 대로 영원합니다. 이같이 성신께서도 우리에게 한 번 임하시면 확실한 것이지, 임하셨다가 웬만큼 나쁘면 떠났다가 그러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신께서, 그 사람이 거역하고 잘못해 성신을 슬여※) 버리는데도, 그 안에서 역사하실 때 전적으로 잘 순종하는 사람 속에서 역사하시듯 역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성신을 소멸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성신이 그 안에 거하시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신의 감화, 하고자 하시는 일, 그 생각 또 거룩한 정서 같은 것을 다 지워 버리고 사람의 육신, 혹은 육신의 정욕과 감정과 뜻과 생각을 가지고, 그것이 훌륭하다는 구실로, 그것이 마땅한 것처럼 보이는 유혹 때문에 하나님의 성신을 소멸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소멸하면 성신께서는 그 안에서 근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성신을 근심께 하지 말라.”(엡 4:30)고 하셨습니다.
* 김홍전 {중생자의 생활} (서울: 성약출판사, 초판 1985, 재판 7쇄 2010) 48쪽~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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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 박채동 주: “슬여”는 문맥상 당연히 성 삼위 성신(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거부하고 억제한다는 뜻임. 즉, ‘지워 버린다.’ 유사어로 ‘슬여 버리다.⇨슬어 버리다.⇨쓸어 버리다.’로 변주한 전라도 고어(古語)로 추측함.
첫댓글 좋은 글 나뭄 고맙습니다 👍 공감합니다 😁
방금 {중생자의 생활} 초판 ‘김홍전 {중생자의 생활} (전주: 도서출판 성약, 1985)’을 살펴보니, “슬여”는 “슬어”로 적혀 있습니다. “읍니다.”체 초판을 “습니다.”체로 개정하면서 오히려 더 고어체로 가 버렸네요.
교정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