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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서상진 세계잡지연구소장
親睦會會報(친목회회보, 1896.2~1898.4. 통권6호) (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2.12.07
잡지(雜誌)의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것을 말함’이라 되어 있다. 그 종류에는 주간・격주간・월간・계간・년간 등이 있다.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것이니 당시의 사회적 이슈나 사건들이 주요기사로 되어 있어 그것들을 보면 당시의 변화하는 사회를 읽을 수 있다는 점으로 잡지의 중요성을 말할 수 있다.
무엇이든 최초는 중요하다. 첫사랑이 그렇다 하고, 첫 여행지가 마음속에 낭만과 환상과 달콤한 추억으로 간직되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정말 그게 다일까? 고고학자들이 먼지만한 화석에 열중하고 실오라기 같은 흔적을 찾아 쉼 없이 연구를 하는 것은 그것이 한 시대로 들어가는 문(門)이라는 진리를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잡지가 나오기 전, 책은 대중과는 거리가 먼 특별한 계층의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했다. 책은 특별한 배움을 위해 있는 것으로 배움 또한 특수한 계층을 위해 존재하는 뚜렷한 획을 보여주는 높은 담과 같은 것이었다.
일정 기간 문자를 익히지 않으면 읽어도 그 뜻을 풀지 못하는 고문서들과 달리 잡지는 일반대중을 겨냥한 책이었기에 최초의 잡지에 대해 귀동냥이라도 해두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최초의 잡지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 잡지들이 태어난 당시의 상황을 아이 낳는 산실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최초의 잡지가 왜 중요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일찍이 서양의 문명에 개화의 문을 열었고 그 문명을 흠모하여 이웃을(우리나라) 짓밟으며 실험과 발전의 대상으로 삼았던 시대라 우리에게는 그 시대가 황폐 그 자체요 암흑세상이었다. 그런 시대에 선각자가 있어 책이라는 것으로 대중을 깨우치려 했다는 것은 요즘 보는 종교의 부흥회 못지않게 흥분해야 할 일인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잡지에 대한 사전지식을 알아보기로 하자.
우리나라의 최초의 잡지라 불리기 위해서는 다음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바로 우리나라의 언어로, 우리나라 사람이 쓰고, 우리나라 사람이 만들어, 우리나라 땅에서 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죠선독립협회회보 16호(1897년 7월 15일).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 중 16호 (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2.12.07
이런 전제 조건을 바탕으로 논한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정치단체이기도 한 독립협회가 기관지로 낸 <大朝鮮獨立協會會報(대조선독립협회회보, 1896.11.30.~1897.8.15. 통권18?호로 종간)>가 그에 해당한다. 그러나 최초의 발행에 의의를 둔다면 <親睦會會報(친목회회보, 1896.2~1898.4. 통권6호)>를 잡지역사의 최초 자리에 두어도 무방할 듯하다.
비록 일본에서 창간되었으나 조선관비 유학생단체에서 유학생들의 사상과 소식을 다뤘고 우리 언어로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1896년은 세계사적으로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The Korean Repository(더 코리안 리포지토리) 6권 10호(1897년 10월 아펜젤러) (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2.12.07
다음으로 <The Korean Repository(더 코리안 리포지토리, 1892.1~1899.6 종간)>를 꼽는다. 미국인 선교사 프렝클린 올링거가 영문(英文)으로 조선에서 간행하여 조선인이 읽을 수는 없었으나 내용이 주로 우리나라의 풍습이나 속담 등을 담았기에 이 또한 외국인이 간행한 최초의 잡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발행인 올링거는 사랑하는 아들 2명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는데 우리나라에서 외국 어린이가 최초로 양화진(현 절두산순교성지)에 묻혔다는 아픈 기록도 있다.
이런 교두보적인 잡지의 출현이 있고 나서야 진정한 우리의 잡지가 간행되었는데 앞서 말한 독립협회가 창간한 <대조선독립협회회보>가 한 달에 두 번 간행됨으로 우리나라 잡지의 시대를 열었다. 독립협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1896.4.7~1899.12)>을 낸 곳이기도 하다
또한 1892년 9월 부산에서 일본인이 일본거류민을 대상으로 일본어로 간행한 <鷄林(계림)>은 우리나라 잡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부산에서 간행된 잡지임으로 기록상 올려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본격적인 잡지 <少年(소년, 1908.11.1.~1911.5.15. 통권23호)>이 나오기 전까지의 잡지들은 친목, 종교, 각 지방 학보 등으로 잡지다운 잡지라 할 수가 없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기여서 그랬던가, 나라가 어려운 시기여서 그랬던가, 아무튼 그런 선각자가 있었기에 우리는 국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믿는다.
잡지가 ‘Magazine’으로 처음 사용된 것은 영국에서부터다. 영국인 에드워드 케이브가 1731년 <젠틀멘스 매거진>이라는 종합월간지를 창간하면서부터인데 ‘창고’ 또는 ‘저장소’라는 뜻을 가진 매거진이란 말이 ‘지식의 창고’란 뜻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그럼 세계 최초의 잡지는 언제 나왔을까? 우리나라보다 230여 년 앞선 1665년에 프랑스인 ‘데니드 살로에’가 창간한 <Le joumai des savants(르 주르날 데 사방)>이 그 주인공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가진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있을 법한 일일까?
한편에선 이보다 2년 앞선 1663년에 창간된 독일의 정기간행물인 <Erbauliche Monats Unterredungen(에르바울리헤 모나츠 운테르둔겐)>을 최초의 잡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럼 우리와 가까운 소위 동양의 이웃들의 사정은 어떠했을까? 중국 최초의 잡지는 <察世俗每月統記傳(찰세속매월통기전, 1815.8.5)>으로 영국인 선교사 ‘월리엄 밀른’이 창간했는데 이 잡지는 기독교 전파를 목적으로 중국어로 만든 잡지이다. 선교의 깃발을 나부끼며 세계를 정복하려는 수단의 하나였다. ‘잡지(雜誌)’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곳도 중국이었다<中外雜誌(중외잡지, 1862~1868)>.
일본 최초의 잡지는 1867년에 창간된 월간 <西洋雜誌(서양잡지)>로 일본인 ‘아나가와 슌조’가 목판 인쇄로 창간하였다. 제호에서도 암시하듯 내용은 주로 유럽문화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위의 비교에서 보듯 잡지가 발간되는 순서대로 문명국이 되어 간다. 유럽 250여 년, 중국이나 일본도 80년에서 30년 앞서 잡지가 출현했던 것이니 그것이 미친 역사의 변천과 속도 또한 그러하지 아니한가. 어려운 범어를 가진 불교의 전파 속도에 비해 번역 성경을 통해 활발한 전도가 가능했던 기독교처럼 문자는 역시 힘을 가진 문명의 무기이다. 그 무기의 선봉은 잡지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