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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7. 09.
전고체배터리가 전기차 시대를 열 돌파구라고도 하지요. 리튬이온배터리보다 충전시간이 짧고 부피·무게당 에너지밀도도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기술발전의 추세를 보면, 전고체배터리가 나오지 않아도 전기차 보급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내연기관차 대비 성능·원가 경쟁력은 빠르게 높아질 것이고, 전기차 시대로의 이행도 예상보다 더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3가지 포인트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1. 돈이 기술을 이끈다, 전기차에 한층 더 몰리는 투자금
2. LCA 관점에서도 전기차는 좋아질 일만 남았지만, 내연기관차는 더 나빠질 수도
3. ‘열’을 지배하는 자가 전기차를 지배한다
우선 최근의 전기차 보급과 전망에 대해 살펴보고 그 다음에 3가지 포인트에 대한 설명 이어가겠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의 지난달 전망에 따르면, 올해 전기차(플러그인 포함) 판매대수는 435만대로 작년보다 4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계 전기차 판매대수는 불과 4년 전인 2017년에야 연간 100만대를 넘었는데요. 올해는 이미 1~4월 판매대수만 152만대에 달합니다. IHS 마크잇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판매대수는 2025년 1184만대로 2020년의 5.3배로 증가할 전망입니다.
▲ 일본 최대 공조장치 회사인 다이킨은 최근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최대 50% 늘릴 수 있는 에어컨용 신 냉매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 다이킨
장기 전망치도 점차 상향 조정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최근 발간한 ‘전기차 장기전망 2021’에서 “전기차의 미래가 전례 없을만큼 밝다”며 “성장이 한층 가속될 것”이라고 썼습니다. BNEF는 추가적인 정책·조치가 나오지 않는 ‘현행 시나리오’를 우선 제시했는데요. 세계 승용차 판매대수에서 제로 에미션자동차(ZEV·대부분이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4%에서 2040년 70%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번 보고서엔 도로교통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실질 제로로 만드는 ‘넷 제로(Net 0) 시나리오’가 처음 추가됐는데요. ‘넷 제로 시나리오’에선 2030년에 ZEV가 세계 승용차 판매대수의 60%(5500만대)를 차지합니다. 현행 시나리오에선 2030년 세계 승용차 판매대수의 34%(3200만대)가 ZEV입니다. 즉 BNEF는 앞으로 9년 뒤에 전기차가 적게는 신차 판매의 34%, 많으면 60%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한 겁니다.
한편 언스트앤영(EY)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2033년이면 전세계 전기차 판매가 내연기관차 판매를 넘어설 것”이라며 “시기를 기존 예측보다 5년 앞당긴다”고 했습니다. EY는 또 유럽은 2028년, 중국은 2033년, 미국은 2036년에 전기차 판매가 내연기관차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최신 예측치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요. 전기차 보급 스피드가 더 빨라질 수 있는 이유 3가지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처음 2가지는 외부 환경적인 것이고요. 마지막인 3번째는 기술 자체의 향상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의 자동차산업 생존과 지속 성장에도 직결되므로, 업계나 투자자 모두 이 부분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 일본전산(Nidec)은 전자, IT제품에서 쌓은 모터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근 모터,인버터,기어박스를 통합한 전기차 핵심 부품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 장악을 노리고 있다. / 일본전산
◇ 1. 돈이 기술을 이끈다, 전기차에 한층 더 몰리는 투자금
기술개발에는 막대한 돈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투자가 있어야 가능해 지겠죠. 돈이 몰리는 곳에 기술·인재가 넘쳐나게 마련입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이렇게도 얘기하더군요. “돈과 인재만 충분하다면, 기술은 어떻게든 해결되더라”고요. 지금의 전기차 업계가 딱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동차의 탈탄소 즉 전기차 분야에 전세계 투자자들의 돈이 점점 더 쏠리고 있습니다. 금융정보회사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작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 채권·론의 투·융자액은 7400억달러로 2019년보다 60%나 많았습니다. 또 GSIA에 따르면 탄소중립 관련 글로벌 투자금의 총 규모는 무려 3경원에 달합니다.
올해 상반기 전세계 기업의 ESG 회사채 발행액은 2568억달러로, 작년 상반기보다 3.4배 증가했습니다. 특히 발행이 급증하고 있는게 탈탄소 등으로 용처를 좁힌 환경채인데요. 올 상반기 발행액은 전체의 63%인 1628억달러에 달했습니다. 물론 전기차에 투자되는 돈은 이 중 일부이겠지만, 최근 사례로 볼 때 전기차에 돈이 점점 더 몰린다는 것이 전기차 기술의 경쟁력 향상, 더 빠른 보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최근 업계 관계자들 얘기에 따르면 ‘전기차 분야에서 유망해 보이는 기업엔 국내외 투자자들이 줄을 서 있는 상황'입니다.
전기차는 증권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도 활발하죠. 지난 2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테슬라 재무상태가 급격히 좋아지고 있다고 썼습니다. 작년 12월말 현재 자기자본 비율이 42·6%로 5년 전보다 30%포인트 상승, 도요타(2021년 3월 기준 37·6%) 등을 웃돌았다는 겁니다. 전기차 판매가 크게 늘어난 것 외에도 주가상승을 살려 공모증자를 실시한 것을 주 원인으로 분석했습니다. 테슬라는 작년에 공모증자를 실시해 122억7000만달러를 조달했습니다. 차입은 억제해 부채는 22억달러 증가에 그쳤습니다. 이에 따라 작년 12월 말 테슬라의 보유현금은 193억달러로 5년 전의 16배로 증가했습니다. 매출성장률, 자기자본비율, 유동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눈 유동비율 등 3개 항목에서 이미 도요타·폴크스바겐을 앞선 상황입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중국 전기차회사 샤오펑입니다. 샤오펑은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에 이어 지난 7일 홍콩거래소에 중복 상장했는데요. 자금 조달액은 140억 홍콩 달러, 한국 돈 2조원에 달합니다. 샤오펑은 이 돈을 개발과 생산력 증강에 쏟을 계획입니다. 기존 자동차회사에선 불가능한 방식이죠. 샤오펑이 전기차를 팔아 이익을 낸 뒤 이를 재투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샤오펑은 2019년 본격 판매를 시작했고요. 올해 1~6월 전기차 판매가 전년보다 5배 성장하긴 했지만, 대수는 3만1000대에 불과합니다. 자본시장의 힘, 투자자의 힘으로 전기차 기업에 동력을 불어넣는 것이죠.
▲ 한온시스템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초고전압·대용량 전동 컴프레서'(작은 사진)가 내년 초 현대차가 출시하는 차세대 전기차 아이오닉5에 탑재된다. 사진은 현대차가 아이오닉5를 양산하기 전 제작한 콘셉트카 '45'로 세단과 SUV 중간 형태인 CUV(크로스오버 유틸리티 차량). / 한온시스템 제공
◇ 2. LCA 관점에서도 전기차는 좋아질 일만 남았지만, 내연기관차는 더 나빠질 수도
전기차 보급이 더뎌질 수 있다고 보는 근거 중 하나로 LCA(Life Cycle Assessment·전과정평가)를 들 수 있는데요. 자동차의 생산과 에너지 생성, 주행, 폐기, 재활용 등 라이프 사이클 전체에서 CO2 배출량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배출가스 낮추기 경쟁이 기업별 평균연비(CAFE·Corporate Average Fuel Efficiency) 기준이지만 향후엔 LCA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CAFE 기준, 즉 주행 중 상황만 평가하는 현행 규제로는 전기차의 CO2 배출량이 제로지만, LCA에서는 제조·발전·폐기 단계의 배출량 등이 더해집니다.
저는 내연기관차가 빨리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LCA 관점에서 내연기관차·하이브리드카에 나름 장점이 있다는 것에도 동의하지만, 그것이 전기차 보급을 늦추는 요인은 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럽처럼 재생에너지 비율이 절반에 달하는 지역이라면 LCA에서도 전기차가 단연 유리할 것이고요. 아시아권처럼 화석연료 발전 비중이 아직 높은 나라에서는 LCA 상의 전기차 탈탄소 효과가 반감되긴 하겠지만, 결국엔 개선될 겁니다.
단순화해서 생각해보면, 내연기관차는 LCA가 앞으로 나빠질 수 있지만, 전기차는 앞으로 더 좋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연기관차는 점점 더 가혹해질 배출가스 규제를 맞추기 위해 더 많은 돈과 자원을 투입해야 합니다.
LCA가 나빠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모든 노력이 자동차의 본질적 성능 향상과 무관하다는 것이죠. 극단적인 배출가스 저감노력은 내연기관차의 성능을 오히려 떨어뜨릴 겁니다. 소비자는 제품의 성능 향상을 기대할 수 없는 차(내연기관차)에 앞으로 더 많은 돈(배출가스 저감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현 시점에서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환경 부하’를 한번 비교해 보죠. 로이터가 아르곤연구소 분석모델을 활용해 자료를 내놓았는데요.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3와 내연기관차인 도요타 코롤라를 전과정의 CO2 배출량으로 비교해 보았습니다.
전력생산의 23%가 석탄화력인 미국에서는 모델3가 1만3500마일(2만 1725km) 주행한 시점부터 코롤라보다 LCA가 나은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반면 노르웨이에서 주행하는 경우를 상정하면, 모델3가 코롤라의 LCA보다 좋아지는 주행거리 기준이 8400마일로 훨씬 짧아집니다.
전기차 충전에 쓰는 전력이 100% 석탄화력 발전에서 나온다고 가정하면, 주행거리가 7만8000km에 도달해야 LCA가 코롤라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연구기관에 따라 전기차에 더 유리하거나 불리한 수치가 나오기도 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감안하더라도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LCA에서 더 나쁜 평가를 받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기 어렵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물론 엔진 열효율을 더 높인다든지, 하이브리드 기술력, 원가경쟁력을 더 높이는 방식으로 내연기관차의 LCA를 높이는 것도 가능은 하겠지만, 전기차와 비교했을 때의 개선효과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내연기관차의 핵심인 엔진에서 에너지 효율 1% 올리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물론 그 어려운 일이 현재 계속 진행되고는 있습니다) 반면 전기차에서는 앞으로 효율을 10%, 20%, 30% 더 끌어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배터리 외에도 전기차의 에너지 효율을 크게 끌어올릴 부분이 많기 때문인데요. 이것이 바로 3번째 포인트로 연결됩니다.
▲ LG전자는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캐나다의 마그나와 합작법인 ‘LG 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설립한다. LG는 전기차 파워트레인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마그나는 설계·생산을 맡아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다는 전략이다. / LG전자 제공
◇ 3. ‘열’을 지배하는 자가 전기차를 지배한다
현재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는 리튬이온배터리입니다. 단점으로 지적되는 긴 충전시간, 낮은 에너지밀도도 차츰 개선되고는 있는데요. 배터리 분야의 기술 발전은 원가를 낮추는 쪽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테슬라나 폴크스바겐이 배터리 가격을 현재의 절반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아마도 달성 가능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또하나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전기차에서 주행거리를 늘리는 것이 배터리 성능 향상에만 달려 있지 않다는 겁니다.
최신 뉴스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난 7일 일본 최대 공조장치 회사 다이킨은 전기차용 에어컨 냉매 신제품을 개발, 2025년까지 실용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새로 개발한 냉매를 쓰면 전기차 주행거리를 최대 50%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회사는 밝혔습니다. 도심형 소형 전기차 기준이긴 하지만, 여름철에 에어컨을 계속 사용하는 경우라면, 1회 충전으로 200km를 달리는 전기차의 경우 주행거리를 최대 100km 늘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발표 수준이기 때문에 실제 적용시 효과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아무튼 최대 50%의 주행거리 향상이라는 것이 어마어마합니다.
다이킨에 따르면, 전기차용 에어컨 냉매 가격은 현재 대당 30만원 전후입니다. 미국의 허니웰, 듀퐁 등이 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다이킨이 새 냉매를 60만원에 판다고 한다면, 전기차 주행거리를 최대 100km 늘리는데 30만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셈인데요. 만약 이를 배터리 등의 추가 탑재를 통해 해결하려면 몇배 이상 비용이 더 들겠지요.
역으로 생각하면, 같은 주행거리의 전기차 만들 때 배터리를 적게 넣어도 됩니다. 배터리가 적게 들어가니 비용이 줄테고요. 무거운 부품인 배터리를 줄임으로써 차량의 모든 성능이 함께 좋아지는 효과도 누릴 수 있습니다.
다이킨이 발표한 신냉매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아직은 뉴스 정도로만 받아들이면 될 것 같고요. 전기차 성능 향상에서 배터리를 빼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열관리 시스템’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배터리만큼 중요해지는 것 같고요. 어쩌면 전기차의 열을 가장 잘 관리하는 자가 전기차 시장을 지배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기차에서 열관리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하면요. 배터리의 전기에너지 가운데 20%는 열로 바뀌어 버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터나 인버터 등에서 열이 많이 발생하는데, 예전에는 이렇게 발생한 열을 대부분 공기 중으로 방출시켰지요. 또 배터리는 추울 땐 데워줘야 하고 뜨거워지면 식혀줘야 하는데요. 이게 모두 에너지 낭비죠. 그리고 배터리는 적정 온도 유지가 생명인데요. 온도를 세밀하게 관리해주면, 전기차의 주행거리나 수명을 많이 늘릴 수 있습니다.
또 겨울철 실내 난방을 할 때 따로 히터를 튼다면 전기 낭비가 심할 겁니다. 하지만 모터·인버터·배터리 등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활용한다면 어떨까요? 그만큼 전기를 아낄 수 있으니, 같은 배터리로 더 멀리 갈 수 있을 겁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다이킨의 신냉매를 쓴다면 냉방용 전기를 크게 줄일 수 있을테고요.
이렇게 전기차의 열관리 시스템에는 열이 이동하는 여러 갈래의 경로, 회로가 필요한데요. 이런 경로를 각각의 상황에 최적화된 모드로 그때그때 바꿔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최신 전기차들을 중심으로 이런 효율적인 열관리가 적용되고는 있는데요. 아직 개선 여지가 많습니다. 특히 아직 전기차가 보급된지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데이터 축적을 통해 성능이 계속 개선되고 있는 중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열관리 시스템을 개선해 폐열을 완전히 활용할 수만 있다면, 1회 충전 주행거리를 40~50% 늘릴 수 있다고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내연기관차에서 연비를 1~2% 개선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주행거리 40~50% 개선이라면 정말 꿈같은 수치이지요.
전기차의 열관리 시스템이 최적화되면 3가지가 동시에 좋아집니다. 주행거리가 늘어나고요. 충전속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터리 수명을 늘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죠. 현행 전기차의 문제점을 한꺼번에 개선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개선효과는 이 열관리 시스템을 채택한 전기차의 브랜드가치, 잔존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해당 브랜드의 전기차 매력을 높이고 소비자의 재구매를 유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테슬라는 자체 개발한 통합형 열관리 시스템을 쓰는데, 현재로선 가장 비싸고 정교한 시스템으로 보입니다. 다른 자동차 회사들은 대부분 한국 한온시스템, 프랑스 발레오, 일본 덴소, 독일 말레, 미국 보그워너 등의 제품을 조합해 쓰는 것으로 보입니다. 좀더 세부적으로 말씀드리면, 한온시스템, 덴소 정도가 열관리에 관한 통합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는 회사이고요. 덴소는 내연기관차 열관리 시스템에서는 세계 1등이지만, 전기차의 경우 주고객인 도요타가 아직 전기차를 대량 보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살짝 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체 개발의 테슬라를 제외한다면, 한온시스템이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의 열관리 시스템 일괄 납품할 수 있는 최대 업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발레오나 말레도 열관리 부품을 납품하고는 있지만, 이들은 아직까지 컴퍼넌트(부품) 단위이고, 시스템 전체를 납품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전기차 주행거리 향상에 중요한 또 하나는 모터·인버터·기어박스로 구성된 ‘e파워트레인’입니다. 배터리 성능이 그대로라도, e파워트레인 효율을 향상시킨다면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죠. 또 e파워트레인 성능을 높임으로써, 더 적은 양의 배터리로 같은 주행거리를 달릴 수 있게 됩니다.
가장 적극적인 기업이 일본전산(Nidec)입니다. 이미 PSA(푸조·시트로엥)와 FCA(피아트·크라이슬러)가 합쳐진 ‘스텔란티스(Stellantis)’에 e파워트레인(일본전산의 명칭으로는 e액슬)을 공급할 합작사를 설립했고요. 향후 유럽에만 2조원을 투입할 계획으로 우선 세르비아에 전기차 모터 공장을 세워 2022년부터 생산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일본전산은 자사의 모터를 중심으로 일본 관련 업체를 규합해 전기차에 필요한 구동계 전체를 세트로 자동차회사(혹은 IT회사)에 납품하고, 이를 통해 전세계 관련 부품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다시 정리해 보면, 열관리시스템, 공조장치(냉매 포함), e파워트레인(모터·인버터·기어박스 등) 등의 복합적인 효율 향상을 통해 배터리를 최대 절반만 쓰고도 같은 주행거리를 달리는게 가능해집니다. 이것은 앞으로 수년 내에 전기차 원가 경쟁력이 획기적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배터리 가격 인하만으로도 2023~2024년쯤이면 전기차 원가가 내연기관차 원가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열관리·냉매·e파워트레인의 비약적 개선이 동반될 경우, 전기차의 원가 경쟁력은 예상보다도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전기차 시대에 어떤 경쟁력을 가질지, 위 사례를 통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보면, 배터리와 공조장치, e파워트레인을 모두 가진 LG 같은 기업이 전기차에 올인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입니다. 위 구도대로라면, LG는 전기차 구동에 필요한 모든 핵심부품을 갖고 있지만, 하나 빠진게 있습니다. 바로 열관리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매물로 나온 한온시스템이 바로 열관리 시스템을 공급하는 회사이지요. 그리고 국내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전기차 시대로 갈수록 중요성이 점점 커질 회사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LG, 현대차 등 한국 기업들은 한온 인수전에 일단 모두 참가하지 않았는데요. 막판에 인수전에 들어올지 아닐지 현재로선 아는 것이 없습니다. 만약 인수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LG 같은 기업은 자체적으로 전기차 열관리 시스템 분야의 경쟁력을 갖춰나갈 필요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열관리 시스템은 앞으로 전기차 경쟁력에서 점점 더 중요해질테고, 특히 LG가 이미 갖춰놓은 포트폴리오에 더해짐으로 기대되는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즉 LG가 일본의 파나소닉(배터리)·일본전산(e파워트레인)·다이킨(공조장치)·덴소(열관리시스템)의 경쟁력을 합친 것과 같은 전기차 부문 통합경쟁력을 갖추고 이를 제대로만 쓸 수 있다면, 미래 자동차업계의 신흥 강자로 올라서는 것도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아직까지는 모든게 추측일 뿐이고요. LG가 모든 요소를 갖춘다고 해도, 실제 경쟁력과 매출·이익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거의 확실한 것은, 전기차로 이행하면 할수록, 엔진 중심 플랫폼을 가진 그리고 아직 그런 플랫폼 중심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기존 자동차회사의 영역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겁니다. 하드웨어 측면의 전기차 경쟁력은 위의 핵심부품 기술력을 가진 업체가 쥐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주제에서는 조금 벗어난 것이지만, 위의 관점으로 볼 때 현대자동차가 한온시스템 인수전에 뒤늦게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한온시스템이 현대차의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 등에 열관리 시스템을 납품하는 핵심 기업이기도 하고요. 또 산하에 현대모비스라는 글로벌 부품기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직까지 한온시스템의 인수전에 한국 기업이 들어오지 않고 있는데요. 한국이 자동차 분야에서 계속 성장 동력을 얻으려면, 전기차 전반에 대한 핵심 경쟁력 확보가 필수인데요. 한온시스템 같은 전기차 열관리 시스템의 글로벌 강자가 외국에 매각된다면, 경쟁력의 한 축이 사라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전기차 시대가 되면 한국의 자동차산업에 많은 위기와 변화가 있겠지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한국이 배터리·공조장치·열관리시스템·이파워트레인의 통합 세트 경쟁력을 높일 수만 있다면, 미래에 어떤 곳에서 전기차를 만들더라도 더 큰 기회와 충분한 먹을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원석 / 국제경제전문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