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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짖는 소리
커다란 감나무가 있는 그의 초가집 사립문 앞에는 널찍한 마당이 있었다. 바람 부는 날에는 황톳빛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그 마당에서, 그는 같은 또래의 동무들과 아랫도리는 온통 발가벗고 꼬추를 달랑거리며 뒹굴고 놀았다. 그가 어릴 때 쳐다보던 그 감나무는 꽤 도 높았고 그 옆에는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는 우물가에서 노는 아이들이 위태롭다고 둥글게 만든 시멘트 독관을 그의 어깨높이만치 올려놓았었는데 그는 어른들 몰래 발돋움을 하고 그 우물 속을 들여다본 적이 더러 있었다. 그는 어릴 때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높은 감나무 맨 끝에 있는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감을 쳐다보고 저것은 어떻게 딸까하는 그런 걱정이나 하다가 놀러 온 이웃집 아이를 붙잡고 마당 한편에 있는 짚더미 위에 올라가 ‘고생받기’나 하였다. 뒤엉켜서 어찌어찌 발을 걸어 넘겨놓고는 깔아뭉개는 것이다. 밑에 깔린 녀석의 배 위에 개구리처럼 납작 붙어서 힘을 주고 눌러대면 녀석은 나중에 숨이 차서 할딱거리며 고함을 지르는 것이다. “항복! 항복!” 그러면 털고 일어나 풀어주는 놀이였다. 그는 자신이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고생받기’가 참 재미있는 놀이였는데, 어떤 때는 마땅한 상대가 없어 이웃집 계집애 또래하고 억지로 ‘고생받기’를 하다 보면 어른들은 괜히 호통을 치는 것 같았다. 그 짓은 머스마끼리 하는 것이지 가시내 하고 하면 안 된다고, 계집애하고는 소꿉 살이나 하라고 하였다. 그렇게 놀다가 갈증이 나면 우물가로 달려가 우물의 두레박에 담겨 올라와 있는 우물물을 꿀꺽꿀꺽 마시다가 괭이처럼 살그머니 깊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곤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른들한테 들은 그 우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린 그의 시야에 비친 그 우물은 우선 시커멓고 커다랗게 뻥 뚫려있는 끝없이 신비스런 블랙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빛에서 어둠으로 들어섰을 때처럼 침침해지는 눈을 비비며 그 끝없는 공포의 구멍 속으로 시선이 빨려 들어갔다. 우물 입구의 파아란 이끼가 보이고 차곡차곡 둥글게 쌓아올린 돌들의 끊임없는 연속이 있는 저 아래 하고도 그 밑에 한참 내려가서야, 자세히 보면 반짝이는 물결이 작은 동전만 한 크기로 보일 듯 말 듯하였다. 그는 그것을 느끼기 시작할 때 더럭 겁이 나서 우물가에서 물러서곤 하였다.
여름날 밤, 저녁이 되면 그 마당에 멍석이 깔리고 모깃불이 피워오른다. 거기 앉아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배는 통통하게 부르고 종일 뒹굴고 노는 것도 고단해 쓰러지면 잠이 들곤 하였다. 자다가 살포시 눈이 떠지면 하늘에는 검은 비로드에 은빛 나는 보석을 뿌려놓은 듯 별이 총총하고 한줄기 하얀 모깃불은 머리를 얼기설기 풀고 그 하늘 끝 간데없이 올라가고 있는데 어른들은 아직도 자지 않고 부채를 설렁설렁 흔들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매캐한 모깃불 냄새와 어른들의 이야기 소리는 그의 잠을 깨우고 그 신기한 이야기는 그 분위기와 어우러져 그의 잠을 달아나게 하였다. 어른이 된 그가 아직 그 이야기를 잊지 않는 것은 당시에도 그것은 거짓말 같지만, 재미있는 호랑이 곶감 같은 옛날 얘기가 아니고, 실제 이야기의 진원지가 되는 곳이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서늘한 우물이어서 어린 나이에도 실감이 나게 머릿속에 각인(刻印)되었기 때문이었다.
여름에 퍼 올리면 이빨이 시리도록 차갑고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면서 따스하던 그 깊고 깊은 우물물, 그가 어머니 뱃속에 들기도 전인 예전에, 가뭄이 심하던 해가 있었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동원되어 그 우물을 파기 시작했단다. 옛사람들이 오래했다는 말로, 석 달 열흘을 줄기차게 팠는데 아무리 깊게 파도 물이 비치지 않아 기진한 사람이 죽기도 하였단다. 어느 날 드디어 땅속에서 물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할 때 그 속에서 땅을 파던 사람이 올라와서 상기된 표정으로 하던 이야기인데, 그는 땅속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움 메에~” 송아지 우는소리가 마당한쪽에 매어놓은 것처럼 들리더니 누군가가 싸리비로 마당을 쓰는 소리도 싸악-싹 들렸다는 것이다. “아무개야아~ 밥 묵어라아~” 멀리서 아이를 길게 부르는 소리도 들리고, “꼭기오- 꼬꼬댁 꼭꼭” 닭들이 날갯짓을 치는 소리, 그 깊은 곳에서 그런 소리가 너무나 생생하게 들려온다는 것이다. -그게 정말일까? 진짜일까? 아니야 순 거짓말일거야, 땅은 아무리 파도 땅밖에 안 나오는걸-. 그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땅을 파고 묻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무슨 땅속에 또 세상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거짓말 같지도 않았다. 보통 땅을 판다는 것은 거죽만 파는 것이지 저 우물과 같이 끝없이 깊게 판다면 땅속 세상의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는 어느 날 그 우물을 청소한다고 바닥으로 내려가는 어떤 아저씨를 보았다. 그 아저씨는 두레박줄을 타고 한참을 내려갔다가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야 바지를 둥둥 걷은 채로 올라왔다.
“아저씨 우물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어요?”
“그럼- 우물 바닥에서 가만히 앉아 들으면 이 세상소리와 똑같은 소리가 땅속 세상에서 들린단다!”
아저씨는 둥그런 눈으로 올려다보는 이 꼬마의 어깨를 두 손으로 어루만지시며 웃음 띤 얼굴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네가 땅 위에서 무슨 소리를 지르고 놀았는지 아저씨가 맞춰볼까?”
“어떻게요?”
“우물 속에서 들으면 땅속 세상에서 너와 똑같은 아이가 노는 소리가 들리거던….”
아하, 그거 참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고생받기를 하고 있을 때 땅속에 사는 나와 같은 아이도 고생받기를 할 것이고, 그러면 어른들의 이야기가 틀림없는 사실이 아닌가,
그도 어른이 되면 꼭 우물 속에 한번 들어가 보리라 생각하면서 놀고 있던 어느 날, 사립문 틈으로 커다랗고 시커먼 개 한 마리가 느닷없이 대가리를 디밀고 나타났다. 그는 우뚝 서서 눈이 둥그레 개를 바라보는데 개도 툭 튀어나온 눈으로 바보같이 그를 쳐다보더니 무엇을 발견했는지 와락 달려들었다. 아마도 그의 벗은 아랫도리에 달랑거리는 불알을 물려고 덤벼드는 것 같았다.
“엄마야!” 그는 소리치며 정말 불알에 요령 소리가 나도록 도망을 쳤다. 그런데 그 검둥개도 번질번질한 코를 벌름거리며 그의 벌거벗은 궁둥이가 닿을 듯말듯 하면서 줄기차게 쫓아오는 것이다. 그는 필사적으로 도망을 하다가 보니 이제는 더 도망갈 곳이 없는 담벼락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후다닥 뒤돌아서서 두 다리를 딱 버티고 전투태세로 설 수밖에 없었다. 쫓아오던 검둥개도 화들짝 놀라서 두 발을 찌익 버티고 멈추어 섰다. 개는 더 가까이 덤벼들지 않고 뾰족한 코를 쳐들고 이빨을 드러내며 맹렬히 짖어대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개 짖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허연 이빨만 있는 대로 드러내고 개의 목에 튀어나온 울대 만 숨 가쁘게 벌름거릴뿐, 이리저리 날뛰면서 분명히 사납게 짖고 있었다. 귓등 뒤로 세운 성난 갈기에 푸른빛이 이글거리는 눈, 목을 하늘 높이 쳐들고 죽어라. 짖어대는 데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상한 개다. 그는 더럭 겁이 났다 그는 개와 마주 서서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개는 악을 쓰고 있었으나 길길이 뛰기만 할 뿐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있었다.\
“이눔의 개야! 짖어라. 짖어! 소리를 내 크게 짖으란 말이다!”
그는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결국에 그는 개를 향해 목에 핏대를 세워 그가 개처럼 마구 짖어댔다.
“컹컹! 컹컹!”
그러나 그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그는 눈을 떴다. 갈비뼈가 앙상한 가슴이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무슨 이런 꿈이 꾸일까, 개꿈이라더니-목청이 없고 아가리만 딱딱 벌리던 그 사나운 개가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가끔 멀리서 들려오던 개짖는 소리도 오늘따라 하나도 들리지 않고 컴컴하고 적막한 곳에 그는 누워 있을 뿐 이었다 비릿한 약 냄새와 땀에 밴 이불의 냄새, 쥐똥과 빗물에 얼룩진 낮은 천정이 어둠 속에서 눈앞으로 밝아져 오고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뼈만 남은 그의 허연 다리에 굵고 시퍼런 정맥이 드러난 채 뱀처럼 구불구불 엉켜있는 것이, 거기 남의 다리처럼 버려져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베게 밑으로 손을 뻗쳐 아내 몰래 숨겨놓았던 담배와 라이터를 찾아냈다.
-이걸 피우면 죽는다고 했는데….- 그는 담뱃갑으로 입을 가져가 한 개비를 이빨로 물어 뽑아 불을 붙였다. 코앞에서 궐련의 끝에 당겨진 빠알간 불을 그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파르스름한 연기를 피워올리며 마른 종이에 물기가 젖어 오르듯이 불은 타오르고 있었다. 빨아 당기지 않아도 그것은 결국에 서서히 조금씩 다 타버리고 말 것이다. 생담배 타는 냄새가 후각을 찔러왔다. 그는 한 모금을 빨아서 깊이 들이마셨다. 카악! 가슴이 크게 고동을 치며 치솟았다 꺼졌다. 콜록! 콜록! 꺼억! 꺼억! 그 기침 소리는 그의 가슴 저 밑바닥에서 내장과 갈빗대를 울리며 그의 목젖을 통과하지 못해 그 속에서 몸부림치며 공명(共鳴)을 계속하고 있었다. 화닥닥 다락방 문이 열리며 아내가 총알처럼 튀어들어 왔다.
“당신, 왜! 왜 그래요! 죽으려고 그래요!
그는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한여름 무더운 날 개가 더위를 이기지 못해 혀를 빼물고 헉헉거리듯이 그는 축 늘어져 온몸을 떨었다. 괴로움으로 이지러진 그의 얼굴을 아내는 물수건으로 땀을 닦아주며 움푹패인 눈을 들여다보고 달래듯이 말했다.
“당신 이러면 나 정말 기운 빠져요. 당신은 나을 수 있어요. 우선은 환자가 병을 이긴다는 투지가 필요하대요. 의사가 그랬어요. 여보! 용기를 내세요!”
정말 수십 번 여러 사람에게서 들어온 소리였다. 그는 땀을 닦는 아내의 손을 가만히 끌어당겼다. 아내는 아직 예뻤다. 그의 검고 쭈그러진 피부와는 대조적으로 아내의 얼굴은 매끈하고 탄력이 있었으며 그 입술은 붉었다. 그와는 열 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아내는 이제 농염한 서른둘의 여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못한지도 오래된 것 같다. 그가 실직 하고 여기저기 떠돌면서 그가 살던 조그만 아파트도 비워야 했고 전세방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아내는 돈벌이하겠다고 나섰고, 그는 그 즈음부터 아내와 둘이서 밤에하던 ‘고생받기’에도 지고 있었다. 어찌어찌하여 시도를 해보았으나 아내가 원하는 정상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그는 번번이 실패했다. 그럴수록 재도전을 하려는 그를 아내는 나중에, 조용히, 정중하게, 거절했다.
“당신 나이가 몇이에요. 몸 생각을 하셔야죠.”
“......”
그는 화가 치밀었다. 그것은 그것마저 무능해져 버린 자신에 대한 울화인지도 몰랐다. 그는 아내에게 협조를 구하는 대신에 혼자 잠자리를 다락방으로 옮겨버린 것이 이제 그의 병석이 될 줄이야, -여보 인제 그만 내려오세요-
그는 아내가 다락으로 올라오거나 그렇게 말해주기를 기대했지만 아내는 영 그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의 기침이 안정되자, 아내는 그의 머리맡에 물을 떠다 놓고 물수건도 다시 빨아다 놓고 약봉지를 점검해보며 시간 맞춰 약을 챙겨 먹으라고 신신당부하면서 그리고 돌아서 나갔다.
-당신 요즘 뭐 하러 다니는 거야!-
그는 아내의 뒤통수에다 대고 빽 소리치고 싶었으나 입을 다물었다.
조그만 다락의 봉창문 틈새로 한줄기 밝은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빛은 영사기의 광선처럼 곧고 엷게 퍼지면서 그 속에 뽀오얗게 떠도는 먼지들을 떠올렸다. 작은 미립자의 먼지들은 빙글빙글 돌면서 그가 누워있는 다락방 이불 위로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그는 수개월동안 거기 누워 있으면서 이제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빛의 각도와 질량만으로도 지금의 시각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머리맡에서 충실하게 재깍거리고 있던 탁상시계도 치워버리라고 한 지 오래였다. 그는 몸은 겨우 움직일 지경이라도 이상하게 머리와 귀는 밝아져 옴을 느꼈다.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 초침의 소리를 붙잡고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오전 열 시쯤 되었겠군. 셋방이 많은 이 동네의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골목에 따스한 햇볕은 지금 깃을 드리웠을 것이고 거기 하릴없는 동네 여자들이 모여들 그런 시각이었다. 골목을 내려다볼 수 있는 그의 다락방은 그녀들이 앉아 노는 평상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고성능 안테나처럼 잘 들려왔다. 그녀들은 그저 조그만 이야깃거리라도 있으면 참새처럼 모여서 쪼아대고 쉴 새 없이 지절거렸다. 아무런 소득도 결론도 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종미엄마, 요새는 또 어디 다른데 나가는 모양이던데….”
“보험회사인가 어딘가 벌써부터 나가잖아요”
“신랑이 아파 누웠으니 먹고는 살아야지”
“아니, 그런데 그 여자 야하게 화장하고 다니는 거 보세요. 보험회사에 다니는 게 아닌 것 같더라고?”
“남편은 저렇게 눕혀놓고 자기는 마음이 편한지 원, 그 여자 밖에 나가면 누가 그런 줄 알겠어요. 하기는 남편이 아프기 전부터 그렇게 나다녔지만, 무슨 남자 홀리려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진하게 눈화장까지 하고는 화려한 옷에다 뾰족구두랑 신고 또각또각 다니잖아요!”
“그럼 뭐 울고 다녀야 하나, 그 보험회사 같은 데는 모르긴 해도 남자상대도 많이 한대잖아요, 좀 잘 보여야 보험계약도 많이 올릴 것이고….”
“보험 계약이요? 흥, 종미네가 어떤 남자하고 다방에서 다정하게 나오는걸 차순이 엄마가 봤다잖아요.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더라는데….”
“뭘 그렇기야 하려고, 아이구- 아비 죽으면 애들이 불쌍해지지….”
“불쌍하기에는 죽는 사람이 젤 불쌍하지, 산사람이야 어떻게든 안 살려구”
“아니 종미아버지 무슨 병이래요?”
“글쎄, 처음엔 기침을 많이 한다고 결핵이라는 것 같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야? 병원에 입원했다 가 갑자기 퇴원을 하잖았수”
여인네들은 소리를 좀 죽이는 것 같았다.
“암 같대요. 폐암, 가망이 없대요.”
“종미아버진 그걸 아는가?”
“모르겠지, 그걸 말할 수 있겠어요,”
“쯧쯧, 어쩌다가 그런 몹쓸 병이 걸렸다지.”
“그 양반 너무 술, 담배를 많이 해서 병이 왔대요. 종미엄마가 그러는데 어쩌자고 그렇게 퍼마셔 대고 담배는 또 하루에 세 갑씩이나 줄담배를 태웠대요, 글쎄….”
“아직은 나이 마흔 고비 밖에 안됐는데 그놈의 술 담배가 사람 망쳤지, 웬수야 웬수….”
그의 입가에 알지 못할 쓴웃음이 스쳐갔다. 소리는 줄을 이어 들려왔으나 그는 듣지 않으려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술? 담배…? 그는 실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여편네들아 내가 뭘 모르고 있다고? 난 다 알 수 있단 말이다-. 의사가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더 불편할지 모르니 집에 가서 조용한 곳에 누워서 요양하는 것이 낫다고 하더라면서, 아내가 그를 부축해 택시를 태울 때 그는 도대체 무슨 병이라서 그러냐고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걸 알아서 무얼 하랴? 아무리 명의라 하더라도 고통을 자각하는 환자 자신보다 더 정확한 진단은 하지 못하리라. 죽을 것이냐? 살 것이냐? 적어도 그것만은 그 자신이 육체의 영감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수개월 전, 그는 일하다가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는데 전에 같지 않게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목구멍이 이상해져 서인가? 그는 며칠간 담배를 줄였는데 그래도 기침은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담배를 끊으면 괜찮겠지…. 그래서 그는 즐기던 담배를 억지로 끊어버렸는데 그래도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기침은 점차 목구멍을 조여 오는 것 같았고 점점 몸속 깊숙이 자리를 잡는 것 같으면서 빈 통나무를 울리듯이 쿵쿵 속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이미 늦어 있었다. 그 고통스러운 기침의 메아리는 지난날들의 언덕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것임을 그는 지금 생각하는 것이다.
그날, 회사의 작업장에는 몇몇 순진한 애들이 나와 있었지만 이미 작업라인은 끊어지고 썰렁한 분위기 속에 일손이 잡힐 리가 없어 서로 눈치들만 보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 비밀리에 노조를 결성하고 주동이 된 몇몇 녀석들이 출근을 저지시키며 조직적인 파업을 하고 있는 터였다.
“이동식 직장님, 사무실로 오세요. 사장님이 부르십니다-”
그가 침울한 얼굴로 작업라인을 이곳저곳 점검하고 있을 때 스피커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사장이 출장 중이었는데 부랴부랴 돌아온 모양이었다. 무언가 한소리는 들을 것이라고 각오한 바 있었다. 그가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로 향해 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사장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고 책상 위의 재떨이가 덜컥거리고 있었다. 사무실 직원은 출근 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모두 고개를 푹 숙인 채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동안 한참 사장이 혼자서 분풀이를 했던 모양이다. 그가 들어서자 사장은 그를 쏘아보더니,
“이리 들어오시오!”
칵, 뱉고는 사장실로 큰 걸음을 옮겼다. 그가 따라 들어가며 조심스레 문을 닫자마자,
“아니 이 직장, 당신은 현장 책임자면서 애들이 그 짓 하는 거 몰랐단 말이오!”
“......”
“이거 봐요, 당신 우리 회사에 십 년 이상이나 고생해가며 직장장 된 사람이 그거 하나 막지 못하고 뭐하고 있는 거요!”
“......”
그는 입도 떼지 않았으나 사장은 뭔가를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알고 있었으면서 가만있었다는 거 묵인 했다는 거 아니오? 당신은 관리자요, 관리자! 가장 현장의 동태를 잘 파악하고 보고해야 하는 중요한 현장의 총책이란 말이오!”
안경알 너머의 사장 눈알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사장은 지금에 와서 현장 총 관리자의 중요성을 떠들어대지만 언제 직장장인 그의 건의사항을 진지하게 검토한 적이 있었던가, 임금인상에 대해서도 동종의 타 업체 보다 많이 주지는 못할지라도 같이는 주어야 애들을 다독거릴수 있다고, 그가 누차 건의할 때마다 지금 회사의 사정이 어떠니, 국가의 경제까지 들먹여가며 여차 까부는 놈은 모조리 짤라버리겠다고 하지 않았나, 이까짓 공장 않으면 그만이지, 그런 놈들 데리고 할 바에는 문을 처닫아버리겠다고 흥분했던 위인이었다. 어찌보면 사장보다 먼저 늙는 것 같이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지기 시작한 그가 사장의 책상머리에서 눈을 내리깔고 계속 입을 다물고 있는 모양이 사장도 조금은 측은했던지 목소리를 차츰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알았으면 왜 내게 보고를 하지 않았소, 일이 벌어지기 전에 수습을 해야할 일이 아니요!”
사장은 그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말소리도 한층 더 부드러운 톤으로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물음을 던졌다.
“이 직장, 당신 지금 나이가 몇이오? 그 나이에 어디 갈 데가 있어요?”
그는 속으로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다.
-사장님이 진즉에 내 말을 듣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닙니까!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입니까! 책임이라도 지고 그만두라면 그만두겠습니다!-
버럭 소리를 지르고 문을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그는 꾹 참았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겨우 셋방살이를 면해 조그만 아파트에 할부금을 넣으며 사는 것에 행복해있는…. 그는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사장실의 문을 나왔다. 사무실 직원들이 일제히 우울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는 시선을 피하면서 그는 사무실의 계단을 내려서 현장 쪽으로 걷고 있었다.
-김만용, 그 젊은 녀석은 이미 그때 내 마음을 꿰뚫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가 어떤 낌새를 채고 있을 때, 녀석이 조용히 찾아왔었다.
“직장님은 나설 입장이 못 되는 것을 잘 압니다. 나중에 사장한테는 몰랐다고 하십시오. 우리가 잘 되도록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이젠 실력행사뿐입니다!”
“아직은 안 돼! 회사사정도 조금은 참작을 해야지, 때가 되면 내가 앞장을 설 테니, 날 믿고 기다려”
“직장님처럼 그런 식으로 해서는 백날 해봐야 안됩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해야지!”
평화적인 방법으로 건의를 해봐야 안 된다 는 것을 그들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더 속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 모두 실력행사로 맞서자! 자네는 직속상관인 나도 못 믿겠다는 이야긴가?”
그는 직장장의 위엄으로 김만용을 노려보기까지 했으나 그 녀석은 자신만만했다.
“너희끼리 파업 하는 걸 내가 그냥 두지 않는다면…?”
“그래도 이번엔 꼭 할 것입니다!”
김만용은 결연한 걸음걸이로 돌아갔다. 그는 멍하니 녀석의 뒤통수나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뚫린 기분이었다. 사장을 찾아가서 그들의 파업을 이실직고하고 자신을 무시하는 버릇없는 놈들을 혼내 줄 것인가? 그런 생각도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녀석들의 주장도 옳지않은가, 그는 스트라이크가 일어나기 얼마 전까지 사장실과 현장으로 발걸음을 오가며 갈등 속에 빠져 있었었다.
사장은 그가 평소 공언 하던 대로 문을 닫지는 않았다. 계산을 해보았겠지, 그리고 적당한 선으로 수습된 며칠 후에 회사는 정상 가동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는 날, 점심을 먹고 난 그가 운동장의 게시판을 지나고 있을 때 안 보이던 공고가 하나 붙어 있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조직을 재편성한다더니 인사발령 공고였다. 아니 그것은 직장장인 그도 전혀 몰랐던 사장의 일방적인 인사명령 이라 해야 옳았다. 거기 직장 이동식의 이름도 있었다. 직장 이동식을 보전과장으로 승진시키고, 반장 김만용은 직장장으로 승진시킨다는…, 점심때 반찬으로 먹은 콩나물 대가리가 식도에서 꾸물꾸물 하는 것 같았다.
“과장니임- 축하합니다!”
뒤돌아보니 김만용이 녀석이 야릇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거 봐라, 당신의 묵인은 당신을 위해서가 아닌가?- 녀석의 얼굴에 그렇게 써져 있는 것 같았다. -망할 자식- 그는 과장이라는 직책을 보란 듯이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그는 그 길로 사장실의 문을 노크했다.
“사장님 보전과장직을 저는 맡지 못하겠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직장장으로 만족합니다!”
좀 흥분한 그의 표정을 사장은 멀거니 쳐다보았다. 그리고 안타깝다는듯이,
“이봐요, 이 직장. 난 당신을 생각해서 결정한 것이오. 당신 우리 회사에 그만큼 있었으면 이제 승진할 때도 되었지 않소. 당신 나이가 몇이오. 아이들하고 싸우지만 말고 위에서 처리해봐요. 이제 아이들은 당신을 따르지 않아요. 김만용이 그 녀석이 끌고 다니잖습니까?”
그는 억울했다. 이 사람에게 무엇을 더 설명하고 주장해야 할 것인가.
“한번 해봐요, 내가 보조할만한 대리를 하나 붙여줄 테니까,”
사장도 그가 배우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얼굴을 붉히고 사장실을 물러섰다.
답답한 가슴으로 집에 오니 아내는 반겨주었다.
“당신 과장으로 승진했다면서요?”
“......”
“김 반장이 느닷없이 ‘과장님 사모님이세요’ 하기에…”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이거야!”
그는 멋모르는 아내에게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기분 나쁠 것도 없죠, 월급도 오를 테고”
아내는 마냥 명랑하기만 했다.“
“미끼야, 날 몰아내려는….”
그는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가 스스로 치졸한 생각이 들었으나, 대충 눈치를 챈 아내는 잠시 침울하다가 다시 밝아지며,
“너무 그렇게만 생각할 건 없잖아요. 이제야 당신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생각해 보세요”
-이런 어리석기는- 그는 화가 치밀었다.
“보따리를 싸버릴 거야!”
삐어져나온 그의 소리에 아내의 반응은 전에 없던 것이었다.
“아니 당신은 주는 떡도 못 먹어요! 해보지도 않고 못하겠다는건…. 그리고 당장 보따리를 싸서 어쩌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내는 입을 다물었지만,
-당신은 정말 그렇게 능력 없고 자신 없는 사람이었어요-
아내의 소리 없는 신음이 그에게 더욱 찌릿하게 전해왔다. 나는 정말 그런 놈이었노라고, 그는 아내에게 말할 수 없었다. 실속이상으로 자신의 남편을 훌륭하게 생각하고 의지하며 기대를 걸고 살아가고 싶은 아내의 욕심을 나무랄 수만은 없었다. 그래, 져서는 안 된다.
그는 그때부터 과장의 회전의자에 걸터앉았다. 사장은 그의 애로를 능히 짐작하셨음 인지? 대학을 나온 명석한 젊은이를 대리로 직책을 주어 그의 옆자리에서 그를 보필하도록 배려해주었다.
“과장님 결재해 주십시오.”
그는 그 젊은 대리가 작성해온 서류를 뒤적여보았다. 학교라곤 초등학교밖에 못 나오고 줄곧 현장에서 배워온 그에게 그것은 어려운 도면해독을 해야 하고, 그나마 문자라곤 외국어 투성이였다. 적당히 눈치로 넘어가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에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이것이 무언가?”
-예, 이것은 이러이러한 것입니다-
그 젊은이는 잘 모르는 상사에게 친절했다. 정말 그에게는 구세주 같은 젊은이였다. 그러나 모르는 횟수가 거듭할수록 짜증이 나는 모양인지, 그에게 들고 온 서류를 앞에 놓고 처음부터 설명하다 가도 시들해지며 입가에 묘한 웃음을 흘리는 것이 잦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그것부터도 모르느냐는 식의 경멸로 느껴졌다. 그는 젊은 대리 녀석의 태도가 쥐어박고 싶었지만,
-참아라, 다 모르는 내 탓이려니-
그는 공부를 해보려고 관련서적을 사들고 집에 가서 끙끙거리며 펼쳐보았으나 그것은 글자부터 모르는 것이 더 많았고, 나중에는 눈마저 침침해졌다.
-빌어먹을, 나도 이젠 별 수 없이 늙었구나-
그는 늙는다는 것도 신경질이 나서 책을 내던져버렸다. 날이 갈수록 그의 바닥을 알게 된 김 대리는 일의 처리과정에서 자신에게 편리한 대로 적당히 처리해도 과장은 모르고 넘어가는 허수아비가 되고 있었다.
“아니 이 과장, 일이 어떻게 이 모양이요! 이과장이 검토한 거요 안 한 거요!”
어느 날, 서류뭉치를 들고 온 부장이 벼락같은 고함을 질렀다.
“......”
“당신, 회사를 말아먹을 작정이오!”
“......”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깨지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는 깨지는 데는 김 대리의 방패였다. 무언가 낛시바늘 같은 갈고리를 느끼면서, 그는 벗어나 보려고 애를 써보았다. 김 대리를 달래보려고 그를 불러 부드럽게 말했다.
“김 대리, 내가 잘 모른다고 실무자 선에서 일이 그렇게 되나?”
그의 궁색한 추궁에 김 대리는 입이 튀어나와 있다가,
“시작은 제가 했지만 과장님도 몇 번이나 봤잖습니까!”
그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삐어져 나오고 있었다. 모르면 과장자리를 물러나시지, 김 대리의 말꼬리에는 그런 의미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이자식아! 니가 과장 다 해먹어라!-
그는 그렇게 버럭 소리를 치려다가 참았다. 생각해보니 그에게 화를 낼 일이 아니었다. 그와 김 대리가 결국에는 그렇게 되어 갈 것을 사장은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장은 인간 이동식을 다시 한 번 키우기 위해(?) 사장실로 그를 불렀다.
“이 과장, 윗사람 하기가 그래서 어렵다는 게요. 잘 다독거려서, 모르는 것은 젊은 사람한테라도 배워야지, 그렇다고 김 대리가 이 과장한테 감히 대들리는 없지 않소, 과장은 과장인데….”
나이보다 젊어 뵈는 사장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안경알 너머로 그를 안쓰럽다 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묵묵히 입술을 깨물었다. 사장은 그에게 높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태도에 대해서 장황하게 훈시를 하였다. 나중에 등을 돌리고 나오는 그의 뒷덜미에 사장은 혼잣말처럼 한마디 덧붙였다.
“이 과장, 당신은 어째 사람 한 사람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한단 말이오.”
그러면서 안타깝다는 듯 혀를 끌끌 차는 것이다. -사람 한 사람도- 그 소리가 가슴에 씹혀왔다.
이튿날, 그가 낸 대답은 사표였다. 사장은 참으로 딱한 사람이라는 듯 그를 바라보다가 너그러이 말했다.
“그래서야 되겠소, 이 과장. 우리 회사에서 오랫동안 고생했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봐요.”
“그만두겠습니다.”
구차한 소리는 하기 싫어 단호히 말하고 돌아서는 그의 뒤통수에 사장의 시선이 무슨 할 말이 남아있는 듯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사장은 그가 그만두게 된 것은 결코 사장인 자기 탓 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었음을…….
사표를 내고 자리에 돌아오니 김 대리가 머리를 떨구고 말했다.
“과장님, 앞으로는 잘해 보겠습니다.”
“그건 자네 탓이 아니네!”
김만용이도 찾아왔다.
“과장님 섭섭합니다.”
그는 현장을 대표하여 이제 그들의 힘으로 가엾어진 과장을 도울 재주가 없는 안타까움을 말하고 싶은 듯 했다. 그때, 김만용은 그가 밀려났던 직장자리에 앉아 이미 틀이 잡혀 있었고, 김 대리는 그가 나가면 과장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오냐, 두고 봐라. 더럽게 여기서 버티지 않아도 내가 설 자리는 또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나가는 마당에 하고 싶은 말도 그는 꾹꾹 눌러 참았다. 그가 목에 핏대를 세워 이야기해봤자, 그들이 웃지 않을 소리라곤, 그가 어릴 때 마당에서 ‘고생받기’ 놀이를 하면서 밑에 깔린 녀석을 깔아뭉갤 때 깔린 녀석이 숨을 할딱이며 지르던 소리, 항복! 항복! 그 외마디 비명뿐일 것 같았다.
그는 여름날, 뜨거운 길거리로 나섰다. 무작정 직장을 찾아나서 보았지만 아무 데도 그를 위하여 비워둔 자리는 없었다. 새로운 직장은 학력으로 그를 문턱에서 쓰러트렸고 나이로써 그를 늙은이 축에 들게 하였다. 그로써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예전처럼 현장에서 일부터 시작하는 것인데 그는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육체노동에서 이젠 이길 수 가 없었고 노임은 나이를 보고 주는 것이 아니기에 수입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러나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그를 지치고 지치게 하였고, 정말 견디기 어려워져갔다. 그즈음 이미 병은 가슴속 깊숙이 쳐들어와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의식하면서도 잊으려고 했는지 모른다. 점점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되어가는 삶을 영악스럽게 눈을 치뜨고 풀어나갈 오기마저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다락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는 다시 눈을 떴다. 1학년짜리 둘째 딸 종미가 학교에서 돌아왔는지 빠끔히 다락으로 머리를 디밀고 있었다. 어린 눈에도 아빠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아는지 눈은 지레 겁부터 먹고 있었다. 종미는 무릎걸음으로 지척지척 다가와서는 까맣고 커다란 눈으로 들여다보며,
“아빠, 괜찮아?” 한다.
그는 기름기가 다 말라서 피부가 하얗게 트실트실한 한쪽 손을 들어 딸의 머리로 가져간다.
“아빠, 얼른 일어나서 어린이 대공원에 가자. 응. 내 짝지는 어제 아빠하고 갔다 왔대!”
그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아이들을 보면 자꾸만 눈물이 핑 돌려고 한다. 그러나 아빠가 우는 것을 보여서는 안 된다. 아빠는 강인해야 한다. 그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말해주었다.
“그럼, 아빠는 꼭 낫는단다. 아빠는 이런 병쯤 이길 수 있어. 아빠가 일어나면 은미랑 종미랑 공원에도 가고 유람선 배도 타러 가자”
딸아이는 안심이 되는 듯 겁먹은 눈을 거두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늦게 장가들어서 늦게 얻은 딸만 둘이 있었다. 아내가 아들 하나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였지만 그는 마다하였다. 그는 많은 형제와 먹는 것으로 싸우면서 자랐고,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가난의 대물림을 면해보려고 얼마 안 되는 논밭전지 다 팔아 도시로 나가 이것저것 해보았으나 하는 것마다 잘 안 되고 집안이 기울면서 아버지가 그에게 남겨준 것이라곤 막노동이라도 해먹을 수 있는 튼튼한 몸도, 머릿속에 든 지식도 아니었다. 그는 때로 사는 것이 고달플 때 부모를 속으로 원망하기도 했으나 지금, 그 아버지의 눈물을 떠올리면서 가슴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피곤한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실 때 안주 없는 강소주로 한 잔술에도 취기가 오르시면 어린 자식들과 장난을 치며 즐기시다가도, 가끔 소리 없는 눈물이 맺히시는 것을 그는 보았다. 그때는 왜 그러실까 했는데 지금에 와서 그 아버지의 눈물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아빠 나 저기 골목에서 놀고 있을게 부르고 싶으면 불러 으응-”
종미는 아빠의 까칠한 손을 한번 만져보고 참새꼬리처럼 뒤로 묶은 머리를 달랑거리며 다락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종미야! 그는 딸아이를 부르고 싶었다. 큰아이가 오면 두 딸의 손을잡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은미야, 종미야! 아빠 말 잘 들어두어라. 아빠는 이제 일어날 수 없단다. 아빠는 죽는단 말이다. 죽는게 뭔지 아니. 이 세상에서 영 없어지는 거란다. 아빠가 맛있는 것도 사줄 수 없고 공부도 시킬 수 없게 된단다. 그러니까 너희 둘이는 큰아버지 댁에 가서 살아라. 큰아버지 댁도 가난하지만 잘 보살펴주실 것이다. 울지 말고 굳세게 살아야 한다.-
-엄마는 요?-
철모르는 종미가 눈을 반짝이며 물을 것이다.
-응, 엄마는……. 엄마는 아직 젊으니까 새로 시집간단다. 너희 데리고 엄마가 힘들게 살지는 못하잖니, 너희는 엄마한테 방해되면 안 된단다. 알았지!-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내가 그 말을 들으면 펄쩍 뛸 것이다.
-죽기는 왜 죽어요, 당신은 꼭 살 수 있어요!- 할 것이고, 그다음에는 체념한 듯,
-엄마하고 살아야지 어디로 보낸단 말이에요- 할 것이다. 아내는 원래 착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참으로 아내를 사랑하였다. 그는 젊은 아내를 데려와서 호강 한번 제대로 시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늘 미안하였다. 가슴에서 진한 통증이 밀고 올라옴을 느꼈다. 이제 곧 굉장한 고통이 발작함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 고통과 정면으로 맞서보려고 온 얼굴의 근육에 힘을 주었다.
-난 이겨낼 수 있다. 난 살아야 한다. 저 아이들과 아내를 나는 지켜야 한다. 난 못난 놈이 아니다. 날 비웃던 놈들 앞에서 보기 좋게 일어서야 한다.-
그는 고통을 참으려니까 갑자기 변의(便意)를 느꼈다. 아내가 요강을 올려놓으려 했으나 그는 그것만은 극력 반대했다. 그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움직이려 했기 때문이다. 다락의 봉창문 저 아래에서는 큰딸 은미가 돌아왔는지 동생을 데리고 노는 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왔다. -종미야! 은미야!- 그는 아이들을 부를까 하다가, -아니지, 나는 갈 수 있다- 뇌수를 찌르는 고통에 이를 악물며 그는 다락문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다락문을 밀치고 저 밑의 방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은 컴컴하게 깊은 우물 속 같았다. 그는 다락방 사다리의 나무로 된 양쪽 난간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두 다리를 사다리로 비스듬히 뻗었다.
그곳은 어릴 적에 발가벗고 놀던 그 마당이었다. 감나무가 옆에 있던 그 깊은 우물 속으로 내려가려고 우물의 양쪽 벽에 두 다리를 버티고 있었다. 그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겁이 났다. 시멘트로 된 독관의 벽을 지나고 새파란 이끼가 낀 둥그런 돌벽에 한발 한발 디디면서 그는 점점 두근거리는 가슴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우물 바깥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동식아아- 동식아아- 아이고! 동식아아!-”
어머니가 절규하는 소리였다. 그와 소꿉장난을 같이했던 옆집 딸아이 채분이 소리도 들렸다. 어머니는 채분이를 나무랐다.
“채분아! 너는 왜 동식이하고 같이 놀았으면서 우물에 들어가는 걸 말리지않았니!”
“동식이가 자신이 있다고 했어요. 들어가지 마래도 막무가냈어요, 어엉! 어엉!”
그 소리들은 꿈결처럼 점점 멀어졌다.
그는 이제 돌벽을 두 발로 버티지 않아도 되었다. 민들레 꽃씨처럼 부웅- 날아서 기분이 좋게 우물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윽고 그의 발바닥에 물이 닿는 소리가 찰싹 났다. 그는 가볍게 사뿐히 우물 속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우물물은 차가울 줄 알았으나 정말 따스했다. 발바닥 밑에는 고운 모래가 샘솟는 물 때문에 스멀스멀 발바닥을 간질이고 있었다. 그는 겨우 정강이밖에 닿지 않는 물속으로 쪼그리고 앉았다. 온몸이 따스하고 훈훈해져 왔다. 아! 아! 이렇게 아늑하고 편안한 곳이!, 어둑어둑한 우물 속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늑하고 고요한 가운데 발밑에서 샘솟는 따스한 물이 그의 온몸을 감싸며 맴돌고 있었다. 그는 참으로 행복했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우물을 둘러싼 돌벽에 귀를 갖다 대었다. 아! 이 밑에서 무슨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는 귀를 쫑긋 세웠다. 소리는 점점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것은 뜻밖에 아내와 두 딸의 목소리였다.
“은미야, 내일이면 네가 벌써 시집가는 날이구나. 종미도 이젠 대학 졸업하면 취직할 거고, 이제, 이 엄마 고생 다했다. 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정말 좋아 하실걸….”
아내는 말을 맺지 못하고 울먹이고 있었다.
“엄마, 엄마 혼자서 딸만 둘씩이나 키우며 대학까지 보내시느라 오랜 세월 고생 많으셨어요. 난 시집가도 엄마하고 같이 살 거예요“
은미도 목소리가 젖어있었다. 옆에 숙연해 있던 종미가 분위기를 바꾸느라 종달새처럼 지저귀었다.
“언니~, 거짓말마! 시집가면 마음 변할걸!”
아내도 웃고 은미도 종미도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도 구김이 없이 자란 해맑은 웃음소리였다. 그는 우물의 돌벽에서 귀를 떼었다.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 우물물 위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퍼져 나갔다. 그는 큰소리로 울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엉! 엉! 엉! 엉!
“여보게 성대가 잘려나간 개를 봤나? 쫓기면서도 짖을 수 없는, 그렇다고 물어뜯지도 못하는 바보같이 답답한 개를…….”
지나온 이야기를 끝낸 그가 앙상한 손가락으로 수염이 거뭇한 턱을 만지며 자리에 누운 채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던 그 모습이…, 할 말은 많았지만 말을 잃어버려야 했고,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으나, 끝까지 사람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내가 그를 다시 찾아 갔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다락의 계단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와 숨져있는 것을 두 딸이 발견했다고 하였다, 눈가에 흐른 눈물이 말라붙어 있었으나 아주 편안한 얼굴로……. 아무에게도 쫓기지 않는 고향의 우물로 돌아가는 꿈을 꾸며 그는 행복했으리라.
그 후로 그의 남은 세 가족은 어디론가 떠났다는데, 풍문에 듣기로는 그의 아내는 그가 죽은 지 삼 개월쯤 후에, 아이들은 큰집으로 보내고 재혼을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나는 그것이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헛소문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