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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시 사파 마을을 다녀오다
남 두 현 명예교수(약학대학)
봄날씨가 풀리자 몸이 근질근질거려 인도차이나 반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판시판(Phan Xi Păng)산(3,143m)을 트레킹하기 위해 베트남을 찾았다. 이 산은 베트남 서북부 라오까이(Lào Cai)성과 라이쩌우(Lai Châu)성에 걸쳐 있는데, 이 두 성은 중국 윈난(雲南)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관계로 판시판산은 아마 차마고도 및 메리설산과 인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항공을 타고 4시간 걸려 하노이 노이바이(Noibai)공항에 도착하여 쌀국수로 점심을 먹은 후 버스를 타고 라오까이성 사파(Sapa)로 출발하였다. 하노이와 사파의 거리는 약 315km로, 5시간 정도 걸려 늦게 사파에 도착하였다. 사파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피서지로 건설된 마을이라고 한다. 이 도시는 해발 1,500m에 위치하고 있으며, 봄가을에는 매달 평균 16일, 여름에는 24일 안개에 싸여 있어서 구름 도시로 불린다. 특히 여름에는 따뜻하고 다습하며, 겨울에는 춥고 고습한 날씨로 가끔 눈이 내리므로, 사파를 방문하기에는 가을과 봄이 가장 좋다고 한다. 도착한 날도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불밝힌 사파 시내에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안개에 싸인 호텔
이 산악지역 곳곳에 흐몽(Hmong)족, 저이(Giay)족, 떠이(Tay)족, 자오(Dao)족, 사포(Xa Pho)족 등 여러 소수 민족들이 마을을 이루면서 흩어져 살고 있다. 다음날 오전 사파에서 남서쪽으로 5km 떨어진 흐몽(Hmong)족의 깟깟(Cat Cat) 마을을 찾았다. 깟깟의 어원으로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고양이가 많아서 그렇게 불리웠다는 설도 있지만, 흐몽어로 모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도 한다. 흐몽족은 계단식 다랭이논을 경작하며 살고 있다. 깟깟마을 입구의 상점에서는 흐몽족의 전통의상을 대여해 주고 있었는데, 의상이 매우 화려한 데 놀라웠다.
흐몽족 전통의상 대여상가
깟깟마을 입구
깟깟마을의 다랭이논
깟깟마을 중심부
티엔사 폭포
깟깟마을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700,000동(3,5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입구에 있는 나무 표지석에 1m 및 1.3m의 표지가 있었다. 아마도 1m 이하의 어린이는 입장료가 무료이고, 1.3m 이하는 소아로 입장료가 할인된다는 뜻인 것 같다.
입장료를 내고 깟깟마을로 내려가니 다랭이논 전망대가 있었다. 또한 내려가는 길에 고기를 숯불로 훈제하는 가게들이 있어서 정겹게 느껴졌다. 30분 정도 내려가니 깟깟마을 중심에 도달하였다, 이 곳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고, 이 개울에는 시(Si)교와 알루(A Lu)교라는 2개의 다리가 놓여 있었고, 어린이를 위한 간단한 놀이 시설도 설치되어 있었다.
뒤돌아보니 이 개울 위에는 깟깟폭포가 흘러 내려오고 있었는데, 아내가 전통의상을 입은 아가씨 옆에 새치기하여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깟깟마을을 둘러본 후, 내려온 길 반대편으로 여러 야생화를 보며 20여분 걸어서 깟깟(Cat Cat)교로 나왔다.
바구니를 짊어진 자오족 여성
따반마을 중심부
다랭이논의 물소들
전망대에서 본 다랭이논
다랭이논 배경으로
거기서 다시 호텔을 거쳐 동북쪽으로 13km 떨어진 자오(Dao)족의 따반(Davan) 마을로 갔다. 자오족 남성은 거의 일하지 않는 반면 대부분의 바깥일은 여성들이 하는데, 이 여성들은 천으로 된 옷을 입고 늘 바구니를 짊어지고 다닌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이전에 중국 윈난성에 갔을 때 여성들이 바깥일 모두 하고 남성은 집에서 여러 오락을 즐긴다는 모계중심사회의 나시족 생각이 났다.
내리막길을 내려가 다리를 건너니 따반 마을이 나타났다. 따반 마을을 지나 논둑에 따라 난 길로 다랭이논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랭이논 중간의 농가에는 예전 우리나라에서 보던 외양간이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자오족은 물소를 견인용 일소로, 돼지와 닭은 식용으로 기른다고 하였는데, 논에는 자유롭게 노는 물소와 닭들을 볼 수 있었다. 아직 논에는 풀만 자라고 있어서 물어보니, 이곳은 고산지대라 일모작밖에 할 수 없는데 아직 모심기하기 전이라고 했다. 논길을 나와 보니 몇몇 민박집이 보였고, 1시간 30분 걸친 방문을 마치고 당인민위원회 사무실과 초등학교가 있는 곳으로 나왔다. 여기에서 버스를 타고 다랭이논 전망대에 올라 사진을 찍은 후 호텔로 돌아왔다.
사파 시내 광장
한국문화의 날 플랭카드
사파 중심부 상가
사파 입구의 호수
한국음식점
점심을 먹은 후 사파 뒷산인 함롱산에 오르기 위해 사파 중심부를 지나갔다. 다행히 오후에는 안개가 완전히 걷혀 사파 시내를 깨끗이 볼 수 있었다. 사파의 인구는 약 6만 명이라고 하는데, 시내 중심에는 각종 공연을 할 수 있는 넓은 광장이 있었고, 가는 날이 장날인지 광장에서는 ‘한국문화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국 땅에서 한국어가 쓰인 플랭카드와 김치 체험 부스를 보니 감개무량하였다. 상가 중에 한국음식점이 딱 한 곳 있었는데, 한국에서 요리를 배워온 베트남인이 운영한다고 했다.
사파 시내를 지나 함롱(Hàm Rồng)산(해발 1,750m)에 올랐다. 함롱산의 고도는 설악산(해발 1,708m)보다 높지만, 사파가 해발 1,500m인 까닭에 그다지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함롱의 뜻은 ‘용의 턱(Jaw of Dragon)’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하늘과 땅이 함께 있던 시절에 두 용 형제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하느님이 번개를 치고 폭풍우를 일으키는 바람에 하늘과 땅이 갈라지게 되었다. 이 때 형 용은 앞으로 달려 하늘로 갔지만, 동생 용은 그러지 못해 땅에 남게 되어 이곳에 함롱산을 만들고 살게 되었다고 한다.
함롱산 산행길 용의 상
산행 중간 지점의 정원
정상의 연꽃
함롱산 정상
사파 시내 배경으로
함롱산은 검은 석회암 바위산이다. 입구를 지내 오르니 12지신에 해당하는 여러 동물들의 조각들이 놓여 있었고, 산행 중간 지점에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정원을 지나 검은 바위산을 올라 구름 마당(cloud yard)을 거쳐 함롱산 정상에 이르렀다. 다시 함롱산 정상 전망대를 거쳐 사파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반대편으로 돌아 구름 마당으로 나와 하산하였다. 전체 산행 시간은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버스에서 본 은폭포
은폭포 (자료화면)
3일째 아침 조식 후 판시판을 산행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사파 서남쪽으로 20여km 떨어진 들머리인 짬톤(Tram Ton)에 도착하였다. 짬톤으로 가는 길에 높은 폭포를 볼 수 있었는데, ‘탁 박(Thac Bac)’이라는 폭포라 했다. ‘탁’은 폭포라는 뜻이고, ‘박’은 은(silver)이라는 뜻이니, ‘은폭포’인 셈이다. 이 폭포의 높이가 200m에 달한다고 하며,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폭포라고 했다. 버스에서 사진을 찍었으나, 폭포 윗부분은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질 않고, 아래쪽은 차창에 의해 얼룩지게 나왔다. 자료화면을 찾아보니 이 폭포를 따라 계단길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폭포를 감상하며 오를 수가 있다고 한다.
20여 분 후 짬톤(1,900m)에 도착하였다. 판시판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는데, 산의 생김새를 따서 ‘기울어진 큰 바위’라는 뜻의 후아시판(Hủa Xi Pan)이 와전되었다는 설도 있고, 소수 민족 흐몽족이 ‘진달래가 피는 산’이라 부른 것이 유래가 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응우옌(Nguyen) 왕조 시기인 1905년 프랑스의 지도 제작을 도운 베트남 관리 판반선(Phan Văn Sơn)의 이름이 와전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판시판 관리사무소에 입산 신고를 한 후 산행을 시작하였다. 안개 속에 비가 뿌렸지만, 처음은 비교적 평탄한 길이라 힘들지 않게 올랐다. 작은 개울을 건너기도 하고 이 지역의 키 큰 황벽나무와 개울에서 노니는 물소들을 볼 수 있었다. 1시간 30분 산행 후 제1캠프(2,200m)에 도착하였다.
짬톤 들머리
산행길
물소들
제1캠프
제1캠프를 지나 제2캠프로 출발하였다. 조금 지나 쉼터가 나와 잠시 쉬었다. 그 위로 판시판 정상으로 가는 케이블카 선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여기서부터 산행길이 제법 가팔라지면서 철 계단과 철 사다리가 놓여 있기도 하였다. 특히 산행길 양쪽으로 조릿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한국산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2시간 걸친 산행 후 제2캠프(2,800m)에 도착하여 왕뚜껑 라면에 밥을 말아 식사를 하였다.
중간 쉼터에서
철 계단
조릿대군락지
철 사다리
제2캠프
점심 후 잠시 쉬었다가 판시판 정상으로 등정을 다시 시작하였다. 조금 치고 올라간 후 산허리를 감아 가면서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를 볼 수 있었다. 마침 안개가 살짝 걷혀 사파 쪽 경관을 잠시 볼 수 있었다. 50분 후 한 산봉우리에 올랐는데, 여기가 정상이 아닌지 저 멀리 있는 산봉우리에 케이블카 탑승장이 보인다. 일단 그곳까지 가야 하는데, 두 봉우리 사이에 깊은 계곡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가파르게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야 하는 모양이다.
안개 걷힌 사이로 보이는 사파
케이블카 선을 보며
첫 봉우리에서 본 판시판 정상
비를 뿌린 후라 미끄러워진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내려온 후 반대편 봉우리로 올랐다. 3,000m의 고산지대라 철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 두어번 쉬어가며 올라 케이블카 정상 탑승장에 도착하였다. 일행 중 한 분은 고산증세가 나타난다면서 아주 힘들게 오르기도 했다. 케이블카 탑승장(해발 약 3,000m)에 오르니 그 옆에 5층 높이의 대종탑이 있었으며, 층마다 종이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는데, 매일 일정한 시간에 울린다고 한다.
판시판으로 오르는 철계단
안개 속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케이블카 승강장
대종탑
케이블카 탑승장 앞에는 2동의 절 건물이 보이고, 거기에는 정상까지 가는 산악열차 탑승장이 있었다. 물어보니 케이블카 정상 탑승장에서 판시판산 정상까지 걸어가면 20분 정도 걸린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산악열차를 타고 가겠다고 하였으나 나는 걸어서 정상에 가기로 하였다.
케이블카 승강장 앞쪽 높은 계단을 오르니 두 채가 나란히 있는 빗반젠(Bich Van Zen) 사원(해발 3,037m)이 나타났다. 이 사원은 본채와 2동의 요사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베트남의 불교 전성기인 짬(Tram) 왕조시대의 건물 양식으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이 사원을 지나 다시 넓은 높은 계단을 오르니 21.5m 높이의 아미타대불 동상이 자리잡고 있었고, 대불 4면에는 사천왕상이 지키고 있었다. 이 대불은 20톤의 구리를 사용하여 만들어졌다고 하며, 17m 높이의 동화사 통알약사대불 석조 동상보다 높다. 대불 내부는 3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이 중 1층은 대중을 대상으로 설법하는 법당이라고 했다.
정상으로 가는 산악열차(자료화면)
빗반젠 사원
아미타대불
아미타대불 아래 부분
아미타대불(자료화면)
아미타대불 옆으로 평탄한 길이 나타났는데, 이 길이 ‘탄반(Thanh Van)’이라 불리는 깨달음의 길이다. 길가에는 여러 수도승의 석상이 있었으며, 이들은 득도한 베트남의 고승들인 걸로 보인다. 약 300m의 깨달음의 길을 지나 다시 계단을 오르니 낌손바오탕(Kim Son Bao Thang)사원(해발 3,091m)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사원에도 몇 채의 요사채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11층 높이의 사리탑이 가장 눈에 띄었다. 아 사리탑에는 3곳의 회랑이 있고 각 회랑에는 금색으로 칠한 나한상이 놓여 있었으며, 탑 위에는 구리빛의 첨탑이 장식되어 있었다.
깨달음 길의 수도승 석상
낌손바오탕 사원의 입구
11층 사리탑
사리탑을 돌아서니 가파른 계단이 이어졌고, 이 계단을 올라서니 판시판산 정상(해발 3,143m)이 나타났다. 정상에는 베트남 국기 앞에 피라미드형의 청동 표지가 놓여 있었는데, 이 표지는 소련 공학자가 1985년 설치하였다고 한다. 그 앞에는 넓은 전망대가 있었지만 구름으로 인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여기에서 산악열차으로 올라 온 일행들을 만나 같이 산악열차를 타고 케이블카 정상 탑승장으로 내려왔다.
판시판 정상 표지
판시판 정상 전망대
거기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가파른 길을 잘 오르지 못해 처음부터 케이블카로 올라오겠다고 고집하였다. 가이드와 함께 아내는 걸어서 판시판 정상을 다녀왔다. 모두 케이블카 탑승장에 모인 후 케이블카를 타고 모두 하산하였다.
이 케이블카는 선월드 판시판 회사에 의해 2016년 정상 인근까지 설치되었다고 한다. 한 대당 탑승 인원은 35명인 대형 케이블카이며, 운행 거리는 6.3 km, 고도 차는 1,410m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다고 하며, 운행 시간은 편도 약 20분이 소요된다. 케이블카로 내려오면서 멋진 판시판의 운무를 감상할 수도 있었고, 높은 폭포도 볼 수 있었다. 이 폭포가 그 은폭포인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케이블카를 타고
판시판의 운무
판시판 폭포
케이블카 사파 승강장
안개 속의 기념품 상가
케이블카를 타고 사파 승강장으로 하산한 후 사파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버스로 1시간 이상 달려 라오까이성의 성도 라오까이(Lao Cai)시로 나왔다. 이 도시는 홍허(紅河ㆍ홍강)를 국경으로 중국 윈난(雲南)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홍강은 윈난성 북단에서 발원한 후 판시판에서 유래한 물줄기와 합쳐져서 베트남 통킹만까지 흘러가는 1,125㎞의 대규모 하천으로, 1970년대 중-베트남 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이 벌어졌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윈난성 남부 끝 무역도시 허커우(河口)시와 중월우의교(中越友宜橋ㆍ베트남어로 끼에우교)를 통해 연결되고 중국과 베트남이 이 지역 개발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오늘날 양국간 경제교류의 최전선이 되었다. 이에 따라 홍강은 ‘붉은 강’에서 ‘황금의 강’으로 변했고 라오까이시는 중화경제가 동남아로 확장하는 교두보가 되었다.
중월우의교(베트남 측)
건너편 중국 허커이
야간열차 침대칸(자료화면)
라오까이역으로 가서 저녁 9시 30분에 하노이역으로 출발하는 야간 침대열차를 탑승했다. 침대열차 침실은 2층 침대가 양쪽으로 놓여 한 칸당 4명이 취침할 수 있었다. 침실 내부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고, 객차 양쪽에는 화장실과 세면장이 있었다. 밤새 8시간 달려 새벽에 하노이역에 도착하였고, 쌀국수로 아침을 먹은 후 하롱베이로 떠났다.
하노이에서 2시간 반 정도 달려 동쪽으로 170㎞ 떨어진 하롱만(Ha Long Bay)에 도착하여 크루즈를 타고 관광에 나섰다.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 베트남 개국 초기에 외적이 바다를 통해 베트남을 침략했을 때, 하늘에서 어미용과 새끼용이 내려와 불과 여의주를 내뿜어 바다 곳곳에 바위섬을 만들면서 적들의 배를 침몰시켜 베트남인들이 전쟁에 승리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이후 이곳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한 용들은 임무가 끝났지만 하늘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에 살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이곳 이름이 하롱(下龍)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하롱만에는 2000개 가까운 크고 작은 섬들이 널려 있어 한국의 한려수도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하롱만은 자연이 빚어낸 아기자기한 절경으로 인해 1994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우리 일행은 시간 관계상 크루즈를 타고 혼가쪼이(Hon Ga Choi, 닭싸움섬)를 지나 바다 동굴인 승솟 동굴(Hang Sung Sot)과 하롱만을 조망할 수 있는 티톱섬(Dao Ti Top)을 탐방하였다.
혼가쪼이(Hon Ga Choi)는 거인의 몸을 작은 발로 지탱하고 있는 위태로운 자세로 인해 멀리서 보면 거센 파도에 언제든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이지만, 그 작은 발로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여 하롱만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멀리서 보면 병아리 한 쌍이 입맞춤하는 것처럼 보여 키스바위라고도 불린다. 승솟 동굴(Hang Sung Sot)은 바닷물과 용암이 만나 만들어진 하롱만의 여러 바다 동굴 중 대표적 석회암 동굴로, 환상적 아름다움으로 인해 ‘놀라움’이란 뜻의 승솟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티톱섬(Dao Ti Top)은 가파른 면과 경사진 면, 길고 평평한 모래사장이 있으며,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꼭대기에 하롱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유리 가가린과 함께 우주비행에 나섰던 러시아 우주인 게르만 티톱이 1962년 호치민 주석과 함께 이 섬을 방문했는데, 이 섬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이 섬을 가졌으면 하고 요청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호치민 주석은 이 섬이 베트남 국민의 것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하며, 대신 이 섬을 티톱섬이라고 명명하고 섬 입구에 티톱의 동상을 세워주었다고 한다
혼가쪼이(키스바위)
승솟 동굴
티톱섬 전망대에서 하롱만 배경으로
베트남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2007년 한국생물공학회 회원으로 호치민대학교와 학술교류를 위해 호치민시(사이공)를 방문하였으니 16년 전 일이다, 이 당시 본 호치민시는 허름하기 그지없는 남루한 시골 도시 모습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호치민시 외곽에는 고층건물을 짓기 위한 건설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와 달리 오늘날 내가 본 베트남은 상당히 개발된 도시 형태를 갖추었다. 특히 관광지 주변에는 국제적 수준의 리조트나 시설들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10년이면 산천이 변한다고 하더니, 베트남도 그동안 눈부시게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약 1,600km에 걸쳐 길게 뻗어 있어 한반도 남북 길이의 2배에 해당하며, 국토 면적도 33만km2로 한반도의 3배에 이른다. 또한 인구도 1억 명 가까이 되어 한국 인구의 2배이다. 빠른 속도로 산업화할 수 있는 국가적 기반과 여건을 마련하고 있는 베트남은 앞으로도 눈부신 발전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라는 정치 체계와 곳곳에 남아있는 소련(러시아)의 잔상들은 아직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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