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독점적 상권을 부여받은 육의전과 시전상인들은 금난전권을 이용해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백성들의 피땀으로 배를 불린 이들은 온갖 부귀를 누렸다. 그중 하나가 애저찜. 당시 내로라는 돈 많은 시전상인들 사이에서 애저찜을 먹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단다. 지금의 '잇백'과 비슷한 맥락이었으리라. 문제는 죽은 새끼돼지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던 것. 태어나기 직전, 어미 뱃속의 새끼돼지로 애저찜을 요리하게 된 연유다. 어디 새끼만 꺼내면 끝인가. 덩달아 다 자란 어미까지 잡아야 했으니 부르는 게 값이었을 터다. 그들은 맛이 아니라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애저찜을 찾았다.
애저(哀猪)는 슬픈 새끼돼지다. 어미 뱃속에 있는 새끼돼지가 불쌍하다고도 해석할 수 있고 바깥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죽은 새끼돼지가 불쌍하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죽은 '새끼돼지(亞猪)'를 먹는 것이 '슬프다(哀)'고도 풀어진다. 어찌되었거나 슬픈 새끼돼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