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20241006) 조성현 목사
눅9:24-26
눅9: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눅9: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눅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너무 익숙해서 ‘이래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성경에서 인간의 죽음은 그저 자연 속에 있기에 죽음보다 더 고귀한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다른 무엇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라고 가르칩니다.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다른 무엇도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차이를 인문학과 신학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아는 그 기준을 무너뜨립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하여 우리 인간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는 시간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
1.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가치
창1:26-28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종교의 영역속에서 인간의 가치는 초라해 집니다. 그 이유는 신의 가치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교의 긍정적인 부분이 강조될 때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이것이 부정적인 부분으로 강조가 되는 시점에는 신과 대조되는 인간의 가치는 초라해지는 것입니다. 종교는 이러한 심리적인 문제를 극대화 시키고 그것을 통하여 인간을 지배하였습니다. 오늘날 이단이나 특수한 종교색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이와 같은 부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 문제가 맞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독교, 특히 교회는 철저하게 성경을 통하여 판단을 하고 기준을 삼고 있습니다. 결국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가치를 생각해 보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선인가 악인가의 문제는 철학적 질문이자, 오늘날 인간의 고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고민입니다. 성경이 처음 창조 되었을 때 인간의 가치를 설명한 것은 창세기 1장입니다. 특히 26절에서 28절에 기록된 인간의 창조의 설명은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설명이 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 물론 하나님의 형상이 외형적인 것이 아닌 특징 혹은 성질을 의미함을 현대 신학에서 이야기 하고 있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다른 창조물과는 다른 하나님과 비슷한 무엇인가를 인간에게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피조물에 대한 관리자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단어는 바로 26절과 28절에 나오는 ‘다스리게 하자’입니다. 현대신학에서는 이를 ‘관리자’라는 칭호로 해석합니다. 즉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보호와 관리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맞기셨다는 것으로 이는 다른 피조물과 구별이 되는 부분인 것입니다.
셋째, 복을 주셨다. 인간의 가치에 대하여 성경은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피조물이라는 것으로 성경은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성경은 다른 종교들과는 다르게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의 의해 가치를 가진 존재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2. 원죄의 둘레가 인간을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창3:17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원죄를 설명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은 최초의 죄’일 것입니다. 원죄는 현재의 나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최초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고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면서 생겨난 죄입니다. 그러나 이 죄는 계속해서 인간의 피 속와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적으로 반복이 되는 인간의 죄를 고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창세기6:5-6의 말씀입니다.
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후 성경은 인간들의 죄를 계속해서 고발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는 죄를 짓고 있음을 고발합니다.
결과적으로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고 배우는 사람들은 인간들의 계속된 죄로 인해 ‘인간은 죄인이다.’라는 공식을 확정한 것입니다. 심지어 천주교와 일부 교회에서는 여자가 먼저 선악과를 먹었고 남자에게 주었기 때문에 여자가 더 죄인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올바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결론은 자기 합리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세에 종교의 타락으로 인간의 가치를 저버렸듯이 오늘날도 인간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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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수님의 음성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눅9:25 눅9: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우리가 지금 기억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존재의 가치’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25절의 말씀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사명과 연관이 됩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가치있는 것은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면서 기대했던 것이 있었듯 말입니다.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다시 기억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를 통해서만 우리는 권능자,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원죄와 과거의 죄가 사라졌음으로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자유인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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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간의 가치를 높여야 하는 이유는 그러한 존재만이 예수님의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3:16-18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누가복음 9장 26절의 말씀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눅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예수님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의 임재를 강조한 것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증인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이 기억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고 계신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성경에 반복됩니다. 결국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이 다시 요한복음 3장을 통하여 그리고 성경 전체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이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통하여 다른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구원의 의미를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자신의 부정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가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회복 할 수 있는 귀한 존재가 될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스스로를 구덩이에 넣고 인간 스스로 자신을 학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지만, 다른 이를 저주하므로 자신을 보호하려 합니다. 창세기를 통하여 창조의 목적을 밝히시고 인간을 사랑하심을 선포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다시 한 번 오늘 우리의 마음에 되살아나게 하옵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는 회개의 마음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나게 하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사명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통하여 성령님의 귀한 권능자가 되길 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간증)
존재의 가치: 인간의 가치는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의 굴레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성령님과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세상에 예수님의 증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