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시대를 위한 새 기독교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저자 : 존 셸비 스퐁
스퐁 주교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코네티컷에서 태어나 코네티컷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952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를 졸업했으며, 1955년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성공회 신학교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성 바울로 대학교에서 명예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5년부터 1957년까지 노스캐롤라이나주 더함의 성 요셉 성공회 교회에서 사제로 사목했으며, 1957년부터 1965년까지는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의 성 요셉 성공회 교회에서 사목했다. 1969년부터 1976년까지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성 바울 성공회 교회에서 사목했으며, 1976년 3월 6일 뉴왁교구 교구의회선거에서 교구장으로 선출되어 2000년까지 사목했다.
목차
머리말 -이 책을 쓴 이유 : "신에게 솔직히"에서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까지
제1장: 출발점: 옛것은 지나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제2장: 유신론의 종말을 보여 주는 징조들
제3장: 자의식과 유신론: 출생 때부터 시암 쌍둥이 (Siamese Twins)
제4장: 하나님을 넘어서지 않고도 유신론 넘어서기
제5장: 유신론적 왜곡 이전 본래의 그리스도
제6장: 기독교를 사로잡는 유신론 지켜보기
제7장: 기본적인 기독교 신화 바꾸기
제8장: 성육신 교리를 넘어선 예수: 비유신론적 신성
제9장: 원죄는 나가고 악의 실체는 들어오다
제10장: 전도와 세계 선교를 넘어서 유신론 후기 보편주의로
제11장: 그러면 기도는 또 어떠한가?
제12장: 미래의 에클레시아(교회)
제13장: 왜 그것이 문제인가?: 에클레시아의 대중적 모습
제14장: 미래 속으로 진입할 용기
머리말 - 이 책을 쓴 이유 : "신에게 솔직히"에서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까지
우리의 성숙한 미래는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의 상황을 진정으로 이해하도록 이끌어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삶을 영위해 가는 사람들처럼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원하신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라는 작업가설(working hypothesis of God) 없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계속 서 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더불어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아간다.
......... 하나님은 세상에서 연약하고 무력하시다. 바로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방식, 우리를 돕기 위해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분의 유일한 방식이다. -디이트리히 본회퍼
내가 이 책에서 이룩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나의 스승이자 친구였던 분이 지난 세기에 시작하였던 일을 진일보시키자는 것이다. 그분의 성함은 존 아더 토마스 로빈슨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쓴 책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김준우 역, 한국기독교 연구소, 200)에 대한 응답으로 실제 실천적 삶을 살기 전까지 목회하는 동안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다 마치지 못한 일을 마치기 위함이다.
세상의 기독교 학자들 가운데 존 로빈슨만큼 더 친한 친구라고 생각한 분이 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너무나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나처럼 그분도 주교였다. 주교라는 역할에서 무엇보다 먼저 사람들이 바라는 바 기대 속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야 우리 둘의 특이한 경험을 통해 맺어진 인연을 다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그분도 나처럼 수많은 저술을 통하여 상아탑 속의 학문적 기독교와 회중석에 앉아 있는 신자들 사이의 골 깊은 괴리를 메우려고 애쓰던 저술가였다. 셋째로 그분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평생 섬기는 교회에 깊이 헌신적인 분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를 통하여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그렇게도 강요하려 애쓰던 신학적 속박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매우 언짢게 여기던 분이었다.
내가 그랬던 것과 똑같이 로빈슨도 종교와 인간의 성(性)이 서로 만나는 접점에서 빚어진 공공연한 논쟁으로 휩싸인 자기 나라의 양심 속으로 뛰어들기도 하였다. 그는 영국에서 순수 도덕론자들이 벌이고 있는 로렌스(D. H. Lawrence)의 소설 "차타레이 부인의 사랑' (Lady Chatterley's Lover) 출판금지 운동에 반대하였다. 내 쪽에서 보면 그러한 일은 동성애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과 교회 생활 속으로 완전히 끌어들이기 위한 싸움이었다. 존 로빈슨과 나는 비록 세대의 차이는 있을망정 기막히게 비슷한 인생 행로를 걸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신학 수업 행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그분의 작은 책 “신에게 솔직히" (Honest to God)였다. 이 책은 대영제국의 일요판 신문 선데이 옵서버(Sunday Observer) 제 일면의 "우리의 하나님 이미지는 버려야 한다!"(Our Image of God Must Go!)는 전단 표제와 더불어 발행되었다. 로빈슨의 생애가 확 바뀌어버렸다. 이 책은 전통적으로 기독교를 이해해 오던 방식에 대한 과감한 타격이었다. 이 책은 당시 교회의 성직자 계급 가운데 불과 제2위 성직인 주교보였던 분이 낸 것이다. 그의 직함은 울위치의 주교(Bishop of Woolwich)였다. 울위치는 템스강 남쪽 런던 교외를 주로 관할하는 사우스워드 교구에 속해있던 한 작은 분할 교구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에서 로빈슨은 교회 회중석에 앉아 있든 교회동창회에 소속되어있든(교회에 다니다가 그만둔 교인들을 가리킴-역자주) 상관없이 일반 보통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분명하고 직설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학계 안에서 진행 중이던 논쟁들을 개진하였다. 그분은 독자들에게 성서의 비신화화를 주장하던 루돌프 볼트만의 저작과 종교 없는 기독교를 주장하던 디이트리히 본회퍼, 그리고 하나님을 더 이상 인격적인 한 존재(a being)로 정의할 수 없고 대신 비인격적인 모든 존재의 근원(the Ground of All Being)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폴 틸리히를 소개하였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굉장하였다. 이 책은 선술집 술좌석에서, 택시 운전사와 더불어, 차 마시는 자리에서, 또는 저녁 밥상에서, 심지어 습관처럼 교회 다니기를 오래 전에 멈춘 사람들의 가정에서조차 토론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위협을 느끼고 겁을 잔뜩 먹은 전통적 교회 지도자들은 즉각 그들의 익숙하고 해묵은 신학 주장들을 수호하기 위하여 반격하였다. 그래서 켄터베리의 대주교 마이클 램지(Michael Ramsey)를 필두로 교회 고위 당국을 방어하려는 사람들이 옛날부터 취하던 방식대로 로빈슨의 메시지를 수용할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부인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그 메시지보다는 그 메시를 보낸 사람을 공격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실제 그렇게 로빈슨을 공격하였다.
모슬렘 교도들이 살만 러쉬디(Salman Rushdi.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나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한 인도계 영국 소설가. 1988년에 출판한 소설 The Satanic Verses가 코란과 모하메드와 이슬람 신앙을 공격한 것이라 하여 많은 모슬렘교 도들의 분노를 자아내었다. 그 결과 인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금서 조처하였고, 1989년 이란의 호메니이는 러쉬디를 죽여 없애야 한다는 칙령을 내리는 바람에 여러 해 동안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 역자주)의 목에 현상금을 걸기 전까지 그 선례가 없었던 종교계의 부정적 비난이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로빈슨은 언론에서, 독자들의 편지 가운데, 라디오 톡쇼에서, 그리고 전국 강단으로부터 오명을 뒤집어쓰고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야심 많은 성직자들은 이른 바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다 1:3)는 기치 밑에 마치 그러한 고정된 신앙 교리라도 있었던 것처럼 이 젊은 주교를 공격함으로써 교회 경력을 쌓았다.
로빈슨은 이게 그에 앞서간 많은 훌륭한 영적 지도자들이 겪었던 같은 운명을 겪게 되었다. 그는 즉시 교회 주변으로 밀려났고, 동료 성직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으며, 그의 위신과 신망을 지키기 위하여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교회 경력은 뒤틀어지고 말았다. 흔히 그와 비슷한 연배나 받은 교육, 그리고 가정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교구의 상급 주교가 되기 전에 그저 몇 년 동안만 주교보좌 혹은 작은 지역의 주교 노릇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로빈슨의 경우 마치 주교 보좌직에 영원히 운명 지어진 듯하였다. 마침내 그는 캠브리지에서 가르치기 위하여 주교 보좌직을 사임하였다. 그러나 이 위대한 대학교에까지 교회의 긴 팔이 뻗쳐 그를 기피하게 하는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50년대 로빈슨이 주교에 임명되기 전 그 대학교 교수직을 잘 수행한 적이 있었는데도 다시는 캠브리지 대학교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보통 신학교를 갓 나온 사람이나 맡게 되는 비교적 낮은 자리인 트리니티 칼레지의 교목으로 그의 생애를 마치게 되었다. 그는 교회에서 전혀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채 1983년에 작고하였다.
로빈슨은 "신에게 솔직히"를 출판한 뒤 그를 공격하는 무수한 사람 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일에 나머지 생애를 다 소비할 수밖에 없어서 그 책에서 시작한 과업을 다 마치지 못하였다. "신에게 솔직히는 로빈슨 당시의 교회에서 퍼져 나오는 하나님 이야기 (God-talk)가 왜 로빈슨이 속한 세상에서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는지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 책은 문제를 진단만 하고 가까스로 새로운 방향으로 가기 위한 개요만 제시한 것밖에 없는 불충분한 것이었다. 하나님 신앙으로 충만한 이분이 보기에 문제는 하나님의 실재 문제에 있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실재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다. 문제는 전통적으로 이 하나님을 선포해 오던 낡은 방식에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로빈슨은 과거 기독교의 종교적 패턴을 해체하는 일에 중요한 진전을 이룩하였다. 그는 아무런 효력도 없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지적해 낼 수 있는 과업을 아주 분명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내일을 위한 신앙 충만을 재건하고 재정립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더 어려운 일이다. 로빈슨이 이러한 과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에 대한 암시는 본회퍼가 "종교 없는 기독교" (religionless Christianity) 또는 로빈슨 자신이 "세상적 성결"(worlldly holiness)이라고 부르게 된 것을 발전시키라고 교회에 촉구한 것에 대하여 그가 열광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건 과업은 결코 완수되지 못하였다. 어쩌면 그 당시에는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새로운 신학 언어와 새로운 신학 분위기가 발전되자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이룩하고자 하는 많은 일의 씨앗이 바로 로빈슨 의 그 책에 들어있다. 존 로빈슨이 나의 신앙 선배였던 것은 의심할 수 없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는 또 나의 영적 아버지여서 나는 그가 가고자 했던 길을 신중하게 따라 걸으려 하였다. 그러한 사실이 내가 지금 쓰려고 하는 이 책의 발단에 대하여 약 절반가량을 설명해주고 있다.
나머지 설명의 절반은 내가 1998년에 출판한 책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 책은 새로운 세대를 위하여 로빈슨이 촉구한 철저한 개혁을 다시 촉구하고 전근대적인 성서적 교리적 개념은 로빈슨이 살던 때보다도 20세기 말에 이르러 더욱 더 그 뜻을 전달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하려던 노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책이 나온 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간추려서 마치 마틴 루터가 95개조 논제를 성문에 내걸었던 방식대로 불가피한 개혁의 일환으로 논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게 된 12 논제를 인터넷에 올렸다. (주3) 긍정과 위협 두 가지 반응을 다 최대한도로 유도해내기 위하여 나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자극적인 말투로 이 논제들을 개진하였다. 그렇게 한 것은 효과 만점이었다. 12 논제와 그 책에 대한 반응들은 많은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 책이 출판 된 뒤 처음 15개월 동안에 나는 독자들로부터 무려 6천 통이나 되는 편지를 받았다. 아직까지도 그 편지의 총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이제는 무려 만 통을 넘어서게 되었는데, 한 책에 대한 반응을 보여준 편지들치고 아주 놀랄만한 굉장한 숫자였다. 내가 보낸 메시지가 심금을 울렸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을 보여준 편지들은 단순히 그 숫자 이상으로 내가 출판하였던 다른 책들에 대한 반응보다 상당히 특이하였다. 첫째로 약 3대 1의 표차로 부정적인 것 보다 긍정적인 편지가 더 많았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내 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대체로 교회 같은 현존하는 기관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때 몰림 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글로 써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고 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내가 전에 출판한 책들에 대한 반응은 최소한 처음에는 부정적인 편지가 긍정적인 편지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긍정적인 편지가 더 많다고 하는 것은 내 경험 가운데 중요한 변화를 뜻하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둘째로 이 편지들이 보여 주는 주목해 볼 만한 사실은 그 편지의 내용을 분석해 볼 때 약 90%나 되는 대다수 긍정적인 반응은 평신도들이 보여 준 것이었다는 점이다. 어떤 독자들은 교회에 다니다 그만둔 사람들이었다. 어떤 독자들은 어떤지 가장 연약하고 불안한 가느다란 실오라기에 달려있듯 간신히 제도권 교회의 교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독자들은 특히 미국과 세계의 좀 더 공공연한 종교 생활 가운데 확신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신앙공동체 안에 팽배한 가치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마지못해 침묵의 자세로 교회 생활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미국 남부지방의 성서 지대(Bible Belt)나, 미국 중서부 작은 마을 아니면 놀랍게도 아프리카의 복음주의 지역에 살고 있는 분들이다. 이러한 분들 가운데 대부분이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의문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했을 경우 교회가 가르쳐 준 "계시된 진리"(revealed truth)나 또는 성서가 확인해 준 것에 그저 묵묵히 복종하는 것 외의 다른 자세를 취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배웠던 때의 일을 말하고 있었다. 편지를 보내 온 사람들은 내가 탐구하고자 하는 것에 공명(共鳴)하였다. 그분들은 내가 한 말 가운데서 그들 자신의 신앙 문제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고 또 새로운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책 가운데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되는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들이 어딘가 이상하고 특이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런 식의 느낌을 갖는 사람들은 자기들밖에 없다는 막연한 느낌과는 반대로 나와 더불어 어떤 일체감을 느꼈단 것이다. 거듭해서 이 편지들은 "주교인 당신이 이러한 일들을 말하고 글로 쓸 수 있다면, 아마 교회 안에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여지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었다. 많은 경우 이 긍정적인 편지들은 장문이었고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자기들을 이해해 줌직한 어느 누군가에게 삶의 이야기들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부정적인 편지들을 분석해 볼 때 마찬가지로 여러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부정적인 편지들 속에 나타난 적대감은 노골적이었다. 나에게 공공연한 여러 딱지가 붙게 되었는데,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 것 가운데 하나이고, 무신론자. 적그리스도, 위선자, 사기꾼, 악마의 화신, 교회의 매춘부 같은 것들은 그래도 다른 것 보다 활자화할 만한 것들이었다. 어떤 편지들은 주교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교회로부터 추출하거나 면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심지어 어떤 편지는 나를 죽이겠다는 것을 포함하여 징벌적인 행동을 취하겠다고 위협하면서 개인적으로 자기들의 의도를 수행하겠다고 알려주기도 하였다.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리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편지들이 보여주는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 적대의식이 아니다. 90%가 넘는 대다수가 바로 성직자들, 다시 말하면 안수받은 성직 신분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온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평신도와 성직자들 사이의 현저하게 정반대되는 차이는 많은 사실들을 보여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 골 깊은 이해의 차이가 어디에 있나 살펴본다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편지에 나타난 안수받은 성직자들은 전통 신조의 변화를 제안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죄악이라고 공격하면서 자기들의 전문영역을 맹렬하게 수호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평신도들은 교회 생활의 벼랑 끝에 서서 살아가고 있고 새로운 가능성을 수용하는 일에 열려있음을 볼 수 있다. 안수받은 성직자 동료들 가운데 내 책에 반응을 보여준 분들은 교회 지도자들의 옹졸한 방어에 흥미를 잃었으면서도 내가 그들이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새 시대의 말(accents)로 하나님을 말하려 하는 것을 크게 환영하는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만일 나의 성직자 동료들이 자기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그 문제를 말할 수조차 없다. 언제나 내가 공개 강연 할 때마다 보통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주는 사람들은 교회의 변두리에 있거나 교회를 벗어난 분들이고, 부정적 반응을 보여 주는 사람들은 교회의 직분을 가진 분들이다. 아마 가장 다루기 어려운 청중은 성직자들로만 이루어진 모임에 참석한 분들일 것이다. (주4) 한 번은 미국 동부지역 어느 유명한 대학교에서 일련의 강의를 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공식 임명된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패널이 나흘에 걸친 강연이 끝난 뒤에 반응을 보이기로 하였다. 패널리스트 가운데 한 분은 그 대학교의 천문학 교수였다. 그다음에는 같은 도시에 있는 다른 대학교 신학부에서 온 고위 행정직에 있던 분이었다. 셋째 패널리스트는 성공회 사제였는데 그분은 전에 신학교 교수와 아프리카의 선교사였던 분이었다. 이 세 분의 반응은 나를 놀라게 하였다.
사제는 부정적이었고, 신학부 행정가의 반응은 타당치도 않고 또 모호하고 모순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천문학자의 반응은 감사하다는 것과 함께 열광적인(ecstatic) 것이었다. 사제와 행정가 두 분은 인쇄된 원고를 가지고 왔는데, 나의 강연을 듣기도 전에 그들이 보일 반응을 미리 준비하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사제의 반응 진술은 너무나 놀랍게도 노골적인 위협이어서 내가 살고 있지 아니한 세계에 그가 살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는 실제로 반지성적 무지를 장려하는 사람들을 찬양하였다. 그의 가장 불필요한 언급은 자기는 "하나님을 안전 보장물”(a security blanket)로 이용하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신학부 행정가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잘 알려진 나의 견해에 대하여 아주 반대되는 자세를 취하면서 이 기회에 그 문제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밝히려 하였는데, 사실 이 주제는 강연 가운데 언급한 적도 없었다. 어쩌면 그는 이러한 기회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것 같다. 오직 천문학자만 내가 알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내가 발전시키려고 애쓰는 생각을 듣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나에게 깊이 감사한다고 하였다. 그는 내가 전달한 말이 자기 개인 영성 생활을 깊이 연마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서 교회를 대표하는 성직자들이 자기들의 신앙 이야기를 말할 때 사용하는 언어가 더 이상 오늘의 세계에 그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될 때 얼마나 큰 위협을 느끼고 있는지 나는 줄곧 커다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분노를 말하고, 적대감을 표시하며, 방어 자세를 취하면서 엉뚱한 다른 문제로 방향을 돌려가며 공격을 퍼붓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실제로 그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의 징후를 나타내는 것이다. 특별히 그 강연장에서 체험한 것은 내가 의사를 전달하려는 대상 청중은 위협을 느끼는 사제로 대표된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운 해답을 추구하는 천문학자로 대표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다시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책으로 말미암아 유발된 편지에서 얻은 통찰이 이러한 대학 현장에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재확인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가 출판된 뒤에 이어 나는 그 내용을 가지고 광범위하게 미국, 캐나다, 영국, 스코트랜드, 웨일즈 전역을 돌면서 강연하였다. 그렇게 하는 동안 청중들의 질문들을 다루면서 나는 그 책에 포함된 사상을 더 깊이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다. 청중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의 사상 전개가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서히 나는 내가 나의 신앙 전통을 지키기 위해 둘러쳐 놓은 안전 울타리(safety barrier)를 넘어서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 안전 울타리를 지켜오던 터였다. 뿐만 아니라 전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신학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한 체험은 나의 기분을 돋우어 주는 일이자 동시에 두려운 경험이기도 하였다. 나는 점점 더 분열되어가는 두 세계, 즉 교회의 세계와 청중들의 세계에 관계를 유지해야 할지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나는 영국의 돈 큐핏(Don Cupitt), 뉴질랜드의 로이드 기링(Lloyd Geering), 미국 캘리포니아의 로버트 펑크(Robert Funk)와 같은 나보다 앞서 이러한 지경에 도달한 것이 분명한 동료들을 기억해 내게 되었다. 내가 믿기로 그들은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내가 전에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결론들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제 나는 그들이 걸어간 삶의 길과 내린 결론 쪽으로 이동해 가고 있는 것일까? 내 생각에 그들은 추방된 사람이 된 것뿐만 아니라 자진해서 자기들을 양육해 준 신앙과 더불어 화해를 추구할 필요가 전혀 없는 후기 기독교 세계의 일원이 된 분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과격하게 나의 신앙체계를 한 걸음 비켜서야 할지 또는 넘어서야 할지 분명치 않았다. 그러나 로빈슨의 책 "신에게 솔직히”
와 나 자신의 책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둘 다 넘어설 때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하지만 어디서 이 여행길이 끝날지 나는 보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가 나의 스승들의 책. 이를테면 특히 폴 틸리히와 그 밖의 다른 분들, 칼 발트, 돈 큐핏, 노만 피팅거(Norman Pirtinger), 리처드 할로웨이(Richard Holloway)같은 분들의 책을 새롭게 읽었는데, 이번에는 그들의 유명한 책들보다 그들의 생애 마지막 즈음에 나온 그분들의 생애를 특징지어주던 책들에 중점을 두면서 다시 읽었다. 그들도 역시 내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것을 많이 느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분들의 마지막 저서들을 보면 그들은 많은 대표적인 교회를 특징지어 주던 전통적 경계선에 구애받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나에게 아주 분명하게 보이는 길을 걸어갔다. 틸리히는 심지어 그가 마지막으로 쓴 책들 가운데 하나를 '경계선에 관하여"(On the Boundary)라는 제목을 붙였고, 큐핏은 "하나님 이후(After God)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으며, 할러웨이는 "신 없는 도덕성"(godless morality)에 대하여 썼다. 존 로빈슨의 미망인 릇(Ruth)은 나에게 로빈슨의 생애와 자기 생애 가운데 해결을 보지 못한 신학적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주었다.
나의 뜻깊은 신학교육을 발전시켜 주었거나 함께한 분들은 내가 보기에 하나님의 경이로움을 탐구하는 순례길이 무섭고 두려운 것이 되었다 해서 가던 길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분들의 생애를 특징지어 주었던 수준 높은 솔직함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러한 것을 알게 되자 나 또한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또한 진리가 나를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가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나의 신학교 교훈(校訓)이었던 "진리를 찾으라, 진리의 출처로 오라.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라고 하는 교훈이 나를 압도하였다. 내가 내 앞길을 볼 수 없다는 것과 그것을 보고 두려워서 나의 탐구를 멈춘다는 것은 별개 문제다. 나를 어디로 인도하든 상관없이 나는 나의 순례길을 계속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책의 독자와 강연 청중들과 나눈 대화는 나에게 많은 새롭고 탐구되지 아니한 길을 분명하게 해 주었다.
내가 이 길 가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진리에 대하여 마음 문을 닫는 것이고,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의 전부라고 지레짐작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용납될 수도 없고 또 우상숭배적인 것이다. 하나님과 어느 한 사람의 하나님 이해가 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성장을 멈추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진리 탐구를 죽이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교회가 나에게 그러한 것을 요구하기라도 한다면 더 이상 그러한 교회에 소속되어 살고 싶지 않다. 나처럼 교회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러한 생각은 무서운 결론이자 자유에 대한 상쾌한 경험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밟았던 여행의 내면적 과정이었는데 그것을 통하여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에서 도달한 결론들이 결코 나의 삶이나 목회 생활의 마지막 결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었다. 전에 내린 결론들을 되돌이켜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잠정적 결론이었던 것이다. 그 책과 그 책으로 말미암아 갖게 된 대화는 나의 독자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체험이었던 것이 분명하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독자들 또한 나에게 문을 열어주는 체험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나의 과제는 그 문 너머에 무엇이 놓여있건 상관없이, 또 나에게 안락한 것이 되건 말건 상관없이 열린 그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는 초대를 포함하고 있고, 진실로 이 초대야말로 나의 책임이다.
전에 쓴 책에서 나는 기독교 역사 가운데 현재 기독교가 당면한 의미심장한 문화적, 신학적 문제들을 효과 있게 자신을 가지고 충분히 분석하였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바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방향은 발전도상에 있다는 것에 관하여 단지 미숙한 사상과 암시만 보여 주기 시작했을 뿐이라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우리가 결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단지 암시(hint)일 뿐이라고 격하되는 것을 보면 놀랍지 않은가! 과격할 정도로 철저하게 개혁된 기독교의 개요가 그 책에 제시되었지만. 거기서 내가 이룩한 것이라고는 개혁된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상세하게 설명하였다고 하기보다 어때서 옛 신조가 그 효력을 상실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나 자신의 생애 가운데 완성되지 못한 것이어서 지금 나는 그 일에 몰두할 준비가 된 것이다. 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제기한 해답되지 않은 질문들이 지금 전달되기를 바라 크게 소리쳐 외치는 가운데 나의 마음속에 차고 넘치고 있다. 빈사 상태에 있는 유신론을 넘어서서 보는 하나님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가? 도대체 이러한 하나님이 문제나 되는 것일까? 성육신 속죄, 삼위일체와 같은 전통적 신학 개념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 경우 그리스도란 누구신가? 이 인물이 한때 자기가 받던 존경을 지금도 우리에게 그것을 명하고 있는가? 내가 촉구하는 개혁이 실제로 실현된 경우에도 기독교가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나를 앞선 많은 동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비전 앞에서 침묵을 지키든가 아니면 더 이상 들을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교회로 말미암아 환멸을 느끼면서 나의 생애를 마감할 것인가?
이러한 굉장히 혼란스러운 문제들과 씨름하는 동안,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제기해 주던 점점 분명하게 떠오르는 깨달음을 마음에 품고 있는 동안에, 나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준 초청을 받게 되었다. 성공 주교로 은퇴하기 약 일 년 전에 하버드 대학교로부터 2000년도 월리엄 벨덴 노블 기념 강좌의 강사로 초청한다는 편지가 온 것이다. 이 초청에는 캠퍼스 안에 있는 로웰 하우스에서 주재학자로 머물러도 좋다는 제안이 들어있었다. 그 뒤에 공식적인 초청장이 왔는데 내가 학교에 머무는 동안 하버드 신학부에서 한 클래스를 맡아 교수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노블강좌는 거기서 행한 강연을 어떻게 해서든지 꼭 출판해야 한다는 필수조건이 따르는 강좌였다. 이것은 정말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에서 내가 도달한 한계를 넘어서 공개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그리고 이른바 포스트 모던 기독교의 출현과 그 모양새에 대하여 좀 더 충분히 탐구하기 위하여, 내 자신을 격려하는 데 필요한 뜻밖의 놀라운 기회였다. 한편 하퍼 콜린스 출판사는 기독교의 장래 모습을 명확히 설명해 줄 스퐁의 마지막 책 출판을 간절히 바라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출판사장 스티븐 한셀만과 편집장 존 루돈은 즉시 출판 계약을 제의해 왔다. 이렇게 해서 이 책을 산출하게 될 두 원천 물줄기가 합류하게 되었고, 현재 이 책을 쓰는 모험적 사업이 태어난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실은 이 책 내용이 2000년 3월에 하버드대학교에서 행한 윌리엄 벨덴 노블 강좌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는 그 강연 내용을 다소 확대하였는데 그것은 나의 사고(思考)를 위한 알맞은 상황을 마련하고 좀 더 충실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기 위해서이다. 나는 일부러 내가 자라온 기독교의 전통적 경계선을 넘어서 신앙 속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하여 새로운 용어를 개발하려고 노력하였다.
나는 오늘 새로운 기독교의 미래를 입안하기 위하여 기독교의 전통적 문자주의를 옆으로 밀어냄으로써 존 로빈슨과 합세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고, 조금이라고 자기들의 종교 신념체계가 도전받으면 위협을 느끼고 겁먹는 전통적인 종교인들의 적대적인 저항을 피할 수 없겠지만 그것을 감수할 만반 준비도 되어있다. 역사는 나에게 경계선을 넘어서는 사람들에게 의례히 이러한 적대적 반응이 따라온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종교기관의 교권도 넘어서려고 할 것이다. 기독교는 교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독점해 오고 있다. 기독교는 언제나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될 것이며 나 또한 그 길 위에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기독교 자체를 포함한 그 어떤 인간의 체계(human system)도 과거의 독점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오늘의 세계는 그런 유(類)의 부족종교(tribal religion)를 위해서 안식처(haven)를 제공하기에는 너무나 좁다.
이러한 미래의 기독교 가운데 나는 또한 전통기독교가 마련해주고 있다고 착각하는 가짜 안전(pseudo-security)에서도 벗어나려고 한다. 우리가 넘어지려고 할 때 언제나 하나님의 영원한 팔이 붙들어 주실 준비가 되어있고(신 33:27) “만세반석"(주 5))이신 예수님을 영원히 붙들어 주시리라 하는 것은 모두 초자연적인 아버지(父性) 신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미숙한 인간을 만들어낸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결코 내가 지금 마음속에 그려보는 기독교의 결과물일 수 없다. 그것보다 오히려 나는 근본적으로 종교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할 새로운 인간성이 대두되고 있음을 보고 또 환영하는 바이다. 이 머리말 서두에 있는 제사(題詞 epigraph) 가운데서 읽을 수 있는 바와 같이 디이트리 본회퍼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더불어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아간다"는 사실을 잘 관측하였다. 나는 인간 상황의 근본적인 불안전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것을 기꺼이 수용하는 데서 뜻깊은 자유를 보고 있다. 인생의 불안전성 가운데 그것을 대처해 나갈 수 있게 안전을 마련해 준다고 하는 타협을 모르는 종교적 약속은 내가 보기에 인간을 어린애 같은 의존적인 존재로 남아있도록 고안된 기만적 망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었다. 그것은 모든 종교적 망상과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미래로 진입해 가자면 단념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본회퍼가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는 "성숙한 시대이다.
이 책에서 나는 이 용감한 새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과격할 정도로 철저하게 다시 형성된 기독교의 비전을 명확하게 설명해 보려고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 미래의 기독교가 2천 년 전에 이 신앙 전통이 태어나도록 추진해 주었던 신앙체험과 여전히 지금도 잇대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나의 생애와 목회경력 가운데 마지막 신학 서적이 될 가망성이 많다. 그리고 이 책이 단지 현재 신앙의 비적합성에 대한 공격이 되기보다 미래의 신앙이 지닌 능력을 보여 주는 비전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 책을 교회 교단의 출판 허가 없이 내놓는다. 나는 이 책을 와서 한번 들어보라는 초청장을 내기 위해서 썼고 또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새 길을 가봄으로써 유신론을 넘어선 하나님의 실재 속으로 들어가. 후기 기독교 세계의 언어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 내가 이러한 목표를 달성했는지 못 했는 지는 독자들의 결정에 맡기려고 한다.
나는 하버드 대학교의 저명한 기독교 윤리학 교수이자 윌리엄 벨덴 노블 강좌의 책임자인 피터 고메즈 박사에게 훌륭한 배움의 전당인 하버드에서 강연할 수 있도록 초청해준 데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 전에 이 강좌를 맡았던 분들의 성함을 훑어보니 한스 킹. 리처드 니버. 폴 틸리히, 윌리엄 템플, 그리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임자 존 로빈슨과 같은 저명한 인사들이 들어있는 것을 보게 되어 한 편 깊이 감사하면서도 다른 한 편 송구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리고 또 하버드 대학교의 다이아나 엘크교수와 하버드기념교회의 부목사이자 드류 대학교 방문 교수인 종교심리학 부교수 도로시 오스틴 박사에게 내 아내 크리스틴과 나에게 기쁨을 주고 말동무가 되어 주었고 그분들이 사감으로 있었던 로엘 하우스 아파트에 기쁨으로 머물 수 있도록 해준 데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 이러한 신나는 배움 공동체 안에 살면서 하버드 대학생들과 교수와 학교 직원들과 날마다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 자체가 기를 돋우어 주는 일이었다. 이 책이 나올 수 있게 해 준 그 세 분들에게 이 책을 헌정한다는 것 자체가 나의 특별한 기쁨이다.
이 책이 구성되고 집필되는 동안 나는 또한 하버드 대학교 신학부에서 "공중 설교의 제 문제"라는 제목의 강의를 하고 있었다. 이 책을 위하여 발전시키고 있던 사상들이 내 강의와 논평에 언급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생들의 명석하고 창의력 풍부한 머리로부터 나오는 사상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나의 사상을 확대할 수 있는 또 다른 좋은 기회였다. 교역학 석사(M. Div.)학위 공부를 하던 이 학생들은 20대 초반부터 50대 후반에 걸친 연령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로 하여금 거듭 나의 사상을 분명하게 다듬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아마 내가 그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전통적 속박 (boxes)을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말없이 허용해 준 것(tacit permission)이었을 것이다. 내가 목회하기 위해 신학 훈련을 받을 때에는 전혀 다루어 보지도 못하던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가 서로 함께 씨름할 때 강의실에는 활기 넘치는 자유가 있었다. 나는 그때도 그랬지만 오늘 지금도 이 신학생들이 다음 세대의 제도권 기독교 생활에 미칠 큰 영향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독교계의 성공회, 장로교, 루터교, 침례교, 유나이티드 어브 크라이스 트(UCC), 유니테리안 유니버살리스트, 모라비안은 물론 세계 신앙의 대 가족 가운데 유태교, 불교를 대표하는 이들 미래의 성직자들로 말미암아 내가 촉구한 기독교 개혁이 성취될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중략)
제14장: 미래 속으로 진입할 용기
-신조는 나에게 살 수 없는(unlivable) 곳이 되었다.
<캐서린 포드(Katherine Ford), 하버드 대학교 신학부 대학원생>
때때로 지도에 그려있지 않은 길을 가던 여행자가 갈 길을 인도해 주는 비전을 보게 되면, 길 찾은 것에 대하여 대단히 기뻐하게 된다. 하버드 대학교 신학부 학생 하나가 지금 자세히 설명하려고 하는 이 연구의 결론으로 나를 인도해 주는 빛이 되어 주었을 때, 나는 그와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학생은 아주 특출하고 놀라운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 여학생의 이름은 캐서린 포드였다. 친구들은 모두 그 여학생을 캐시라고 불렀다. 그 여학생은 교역학 석사학위(M.Div)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은 그의 가부장적인 교회로부터 소외당하였기 때문에, 안수받기를 원하는 것조차 마음에 확실하지 않았다. 그 여학생은 말의 노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아주 열렬한 페미니스트였다. 그처럼 그 여학생은 자기가 경험한바 대로는 그가 꼭 가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교회가 길을 열어주기나 할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여학생은 흔히 안수받기 위하여 밟아야 하는 과정을 계속 받기로 작정하였다.
교실에서 설교한 "대중 설교의 문제점들"이라는 설교에서 그 여학생은 자기 인생에서 당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들을 아주 강력하게 분명히 설명하였다. 그 여학생은 우리 앞에 극히 침착하게 조용히 서있더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천천히 큰 홍수에 직면한 어느 마을에 대하여 말로 잘 그려 보여 주었다. 억수같은 비가 가차 없이 오랫동안 내려서 강물이 위험할 정도로 불었다. 마을 사람들은 소중한 것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래주머니를 쌓는 조(相)를 편성하였다. 모래주머니로 만든 담이 높아졌지만 홍수는 더 빨리 붙었다. 이내 물은 들판을 덮었고 처음에는 밀을 침수시키고 다음에는 캐놀라(canola)라는 채소를.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양파를 침수시켰다. 사람들은 집안에서 안전하기를 바라는 가운데 그들의 눈앞에서 모든 생계가 파괴되는 것을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곳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삶의 뿌리가 너무나 깊게 박혀 있었다. 그들은 농장과 마을에 간직한 소중한 것들에 완전히 부착되어 있어서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계속 강물은 불어났다. 이제 강물은 집 일 층을 뒤덮었다. 그들의 과거를 상징해 주는 가족사진들이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들 자신의 의미 자체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의 육체적 생명 유지 또한 위협을 받았다. 마을을 뒤덮은 홍수가 지하로 스며들기 시작하였고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이제 그들의 집은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그곳에 머문다면 그들도 죽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무언가 강력하고 저항할 수 없는 것이 그들 속에 있어서 현재 있는 그곳에 계속 머물도록 몰아붙였다. 이성적으로는 그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그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캐시 포드는 학급 동료들이 열심히 귀를 기울이도록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을 사용하며 그 홍수 장면을 묘사하였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이 여학생이 그러한 이미지와 주제를 가지고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그 여학생의 살인적 홍수에 대한 상징적 설명에 사로잡힌 우리 모두와 더불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하는 사도신경에 있는 말을 서두로 기독교 신조에 대한 말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이 사도신경은 홍수난 마을처럼 "내가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고 그 여학생은 말했다. 그런 다음 신조들이 형성되던 역사를 죽 설명하였다. 그 여학생은 발전 도상에 있는 자기의 신조 정의를 펼치면서, 신조들은 "논쟁에 대한 대응." "누구는 기독교 신앙 안에 있는 사람이고 누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려고 고안된 것이다. 신조란 경계선을 그어주는 도구"(border-marker)라고 덧붙였다.
그 여학생은 계속해서. 그 어떤 기독교 신조도 "충분한 신앙선언"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신조란 단지 논쟁에 대한 기독교 공동체의 교회적 대응일 뿐이라는 것이다. 논쟁을 벌인 모든 문제들은 방치되었다고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신조들 안에 "사랑에 대한 언급도 없고 예수의 교훈에 대한 언급도 없으며, 우리의 몸과 영혼 안에 현재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언급도 없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 대한 언급도 없다"고 하였다.
그 여학생은 신조들은 마치 수 세기에 걸쳐 우리 위에 내린 비와 같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신앙고백 형식이나 그들이 만든 밀실(密室)밖에서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규격화하면서 그 신조들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 신조들은 우리의 땅에 스며들었고 우리의 가치관을 형성하였으며, 심지어 우리의 생활공간인 내심의 억측 속으로 들어왔다. 우리의 종교도 마치 우리가 가진 신조들 속에 "한 방을 한 방울씩” 구체화한 것처럼, 우리에게 "심각하게 위험한 하나님 교리”를 주었다고 하였다. 그것은 우리의 들판을 덮었고 기독교인들이 생계유지 수단으로 수확해야 할 농작물 자체를 파괴하였다고 하였다. 그것은 우리의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전 생명을 마시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조는 "그 홍수처럼 우리의 전통적 종교의 주거지를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도 이 신조와 그 신조에서 생기는 규정들이 너무나도 막강하게 우리의 정서 안에 있기 때문에 심지어 우리가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영혼을 죽이고 있는 파괴적 문서라고 판단을 내렸을 때조차 여전히 이렇게 속삭인다. "너는 떠날 수 없다. 만일 방황하게 되면 너는 잃어버린 자가 될 것이다. 너 있는 곳에 머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머물 수 없다. 그 대가가 너무나 크다. 이러한 신조들은 그의 아들의 죽음, 불신자 저주, 여성들의 복종, 십자군의 피비린내 나는 대량 학살. 심판의 공포, 동성애자들을 향한 분노, 노예제도의 정당성을 생기게 한 하나님을 우리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그 여학생은 역사가 보여주던 하나님을 더 열거 하였다. 즉 "신조들 속에 구체화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세상의 자녀들 가운데 어느 자녀를 선택하는 한편 다른 자녀들을 거절하는 신이다. 피의 제사를 요구하는 아버지, 진노하는 아버지, 가부장적 혼인의 아버지, 남성 안수와 여성 복종의 아버지, 이성애적 특권의 아버지, 문자적이고 영적 노예의 아버지이다."
그 여학생은 다양한 교회 교인들이 신조의 "살 수 없음"(unlivability)과 전통적으로 정의된 것대로 하나님 아버지의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자질을 말하려고 노력했던 방법들을 검토했고 또 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개혁 끝 언저리에서 조금씩 깎아 내거나 어설프게 땜질을 하면서 그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관한 언어를 좀 덜 남성적인 것으로 만들고 좀 더 포괄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긍정적인 진전이라고 시인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기에는 모자라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여학생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진짜 문제는 "하나님은 한 인격체가 아니다. 하나님은 여러 존재들 가운데 한 존재(a being)가 아니다. 하나님은 존재(Being)자체"라는 점이라고 하였다. 캐시가 결론에 도달했을 때 교실 안에는 충격으로 아찔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존재 자체인 이 하나님은 생명의 아버지가 아니다" 하고 일격을 가했다. "이 하나님은 생명이다." 우리가 가진 신조들은 이 신조들 자체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에서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이 계속 사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결론지었다.
나는 이 재능 있고 하나님 충만한 젊은 여성의 말에 경이와 놀라움을 가지고 귀를 기울였다. 강력한 말들을 가지고 그 여학생은 현재 교회가 가진 딜레마의 골자를 아주 명민하게 포착하였다. 그 여학생은 현실을 파악한 것뿐만 아니라 또한 거부할 수 없는 비전속에 그 현실을 구체화하였다. 동급생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한 것처럼, 그 여학생은 드물게 보는 '예언자와 시인"을 겸한 사람이었다. 그 학생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리고 교회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가 가진 유일한 의문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제기했을 경우에도 교회는 그 여학생을 그 체제 안에 그대로 살도록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말하려고 애썼던 것은 교회 전통주의자들이 들어줄 수나 있는지, 아니면 그 학생이 알고 있는 대로 교회는 그 학생의 비전을 수용할 수나 있는 것인지 아무런 확신이 없었다. 그 학생은 교회의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는 그 신조들, 그리고 기독교 신앙체계를 자기나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 그 신조들을 떠나갈 수 있는 능력을 자기 교회 안에서 분별하지 못했다. 그 학생은 자기와 신앙공동체가 향하여 갈 수 있는 새로운 장소를 발견할 수 있게 해 주는 탐색이 교회 안에서 진행 중인 것을 볼 수 없었다.
캐시 포드는 그의 비교적 간략한 그러나 의미심장하고 명민한 학생 설교 안에서 내가 이 책에서 말하기 시작한 모든 질문들을 잘 포착하였다. 정말로, 그 학생은 나의 자서전적 체험을 포착했던 것이다. 나는 교회라고 하는 이 기관의 제한하는 경계선 안에서 언제나 편안하게는 아니더라도 평생 동안 신실하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 그 교회는 나에게 명예와 지위와 지도직과 영향력이라는 선물들을 주었다. 나는 교회의 안수 받은 종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나의 생을 사랑하였다. 나는 결코 교회가 해를 입는 것을 소원해 본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이 기관이-혹은 이 교회가 전통적으로 선포해온 기독교 신앙이-우리의 유신론 후기 세계에서 극적인 변화 없이 계속 살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도중 어디에선가 우리 기독교인들은 효율적인 자기 개혁을 시작할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 우리는 우상 숭배에 반대하여 다른 사람들은 경고해 왔지만, 정작 우리 자신을 위한 경고 소리는 귀 기울여 듣지 못했다. 우리는 거듭 또 다시 마치 우리가 경험해 온 하나님이 우리의 성서나 신조 그리고 교리의 언어 안에 포착될 수 있다거나 포착해온 것처럼, 그리고 그 언어로 묶일 수 있다거나 묶어 온 것처럼 행동하였다. 기독교 역사 내내 우리는 마치 하나님은 신적 존재에 대한 무한한 진리를 소유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보호되고 방어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행동해 왔다. 우리는 우리 손 아귀 안에 하나님께로 가는 출입구를 쥐고 있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다. 우리가 가진 상징들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언어(words 교리나 신조를 가리킴- 역자 주)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이른바 "구원받은 사람 들"의 공동체 안에 세운 제단 앞에 머리 숙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제외해 왔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 수 없고" (can not know) 오직 하나님을 체험할" (can only experience)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어떤 것이라고(is) 말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우리가 하나님에 관하여 말할 때, 우리는 우리의 체험의 특색을 묘사하기 위하여 찾아낼 수 있는 인간의 언어가 무엇이든지 그것을 덧붙여 가면서 하나님 체험을 "마치 어떠어떠한 것처럼" (as if)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캐시 포드가 주목한 바와 같이 우리 기독교인들은 흔히 그 "마치 무엇 무엇과 같은 것"(as if)을 바로 "이것이다"(is)로 대체해 왔다.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은 이시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자처해 오면서, 그 공간을 우리의 개념들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강력한 신 체험 안에서 살고 있다. 나는 그 체험의 내용을 가리켜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러한 것이 실재함을 믿는다. 나의 삶이 만나서 몰두하게 된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 초대 교회의 사람으로 말미암아 묘사된 초상화 안에 가장 의미심장하게 현재하고 있다. 이처럼 나에게 예수라는 분은 이 하나님에게로 들어가는 출입구이시다. 그분의 생애는 내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생명을 반영해 준다. 그분의 사랑은 내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사랑을 반영해 준다. 그분의 존재는 내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존재의 근거를 계시해 준다. 내가 예수 안에서 만난 하나님은 나를 불러 충만한 삶을 살고, 낭비하듯 아낌없이 사랑하고, 그리고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존재가 되라고 하신다. 내가 이 모든 일을 행할 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만들고 실재적인 것이 되게 한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이 하나님을 단순히 개인적인 것으로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부로 체험한다. 나에게 교회란 바로 이 하나님이 가진 의미와 신비 속으로 기꺼이 여행하려는 자발성으로 말미암아 함께 결속된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그 여행은 기관 유지가 우리의 궁극적 가치관과 증언을 결정짓는 곳, 그리고 우리가 가진 교회적인 또는 교리적인 언어로 하나님을 정의해 왔고 또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곳으로부터 반드시 우리를 데리고 멀리 떠나야 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너무나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의 지하수마저 이제 부정적인 성격과 내용의 빈약과 무지와 억압의 조류가 붙어남으로써 오염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바탕을 둔 종교 처소가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분별해 낼 수가 없다. 그곳은 남아서 죽게 되어있는 처소가 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나로 하여금 행동을 취하게 만든 인식들이다. 나는 이제 이 예수에 대한 신앙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든 정치적 윤리적 타협들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다. 나는 우리의 인간성이 지닌 타고난 것들(the givens), 이를테면 피부색, 성별, 성적인 선호태도 (sexual orientative)에 바탕을 둔 질식할 것 같은 신학, 가부장적 구조, 지속적인 편견들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그 어느 누구라도 우리의 교리들을 변경할 수 없는 것 혹은 우리의 거룩한 책들(성서를 말함-역자 주)이 오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부추기는 정신상태(mentality)를 반드시 떠나야 한다. 나는 기적과 마술의 하나님. 초자연적이고 침입하는 권능을 가진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확실성의 약속,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허깨비 같은 환상, 변경 불가능한 계시의 수혜자라는 억지 주장, 그리고 심지어 나는 옳다는 것을 알려는 신경증적 종교욕망을 반드시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나는 결코 하나님 체험을 떠날 수 없고, 내가 그리스도라고 부르면서 "나의 주님"이라고 공언하는 분 안에서 발견한 신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떠나갈 수도 없다.
나는 결코 나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무이한 길이라고 두 번 다시 주장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궁극적인 어리석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는 "나를 위한" 유일한 길임을 말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은 내 체험이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다시는 하나님께 이르는 모든 다른 길. 이를테면 힌두교를 믿는 인도, 불교를 믿는 중국과 티베트와 미얀마, 이슬람교를 믿는 중동, 유태교 국가인 이스라엘, 거기서 수백만 사람들의 삶이 거룩한 것(the holy)을 찾아 성실하게 걸어온 나라들을 휘감고 도는 길들이 합당치 않다거나 심지어 보잘것없는 2류의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러한 길들이 그릇된 길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유배된 우리들이 함께 다시 한 번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장소를 발견할 수 있기 바라며,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유배지의 익숙한 신조들과 신앙 상징들을 떠날 것이다. 내가 더 이상 행할 수 없는 것은 살 수 없는(unlivable)곳에 머문다는 뜻이다. 떠나는 것이 얼마나 어렵든지 상관하지 않고, 어렵지만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대안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신앙 전통이 다시 살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내가 이 책에서 여행한 길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미 위험하고 종교적으로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나는 유신론을 넘어서서 그러나 하나님을 넘어서지 않고 걸어왔다. 나는 하나님 체험에 대한 인간의 설명은 그 자체대로 실제로 하나님이 누구시며 무엇이냐는 데 대한 묘사가 아닌 것을 인식하고 유신론이 죽게 내버려 두었다. 유신론과 무신론 사이의 옛 논쟁은 내가 보기에 잘못된 것만이 아니라, 내용이 빈약하고, 김빠진 맥주처럼 흥미 없는 바보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맥 빠진 논쟁을 고의적으로 넘어서 나아간다. 나는 그것을 초월한다. 그리고 내가 논쟁할 때에는 유신론 후기의 하나님, 한 인격(a person)이 아니라 인간의 개인적 특성 (personhood)을 살찌우는 능력의 원천인 하나님, 여러 존재 가운데 한 존재가 아니라 바로 존재의 근원, 모든 존재가 흘러나오는 원천인 하나님에 대하여 말 할 수 있게 해주는 말들을 먼저 찾기 시작한다.
나는 이제 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여 나아갔다. 그리고 교회도 나와 함께 이동하여 나아가 기를 감히 요구하는 바이다.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교회를 거부하기 때문이 아니라 만일 우리가 지금 교회가 있는 그곳에 그대로 머물면 기독교인들로서 고백하는 신앙이 죽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교리적 왜곡의 홍수가 우리의 들판을 파괴하였고, 우리의 지하수를 오염시켰으며, 어제의 신앙고백을 오늘 우리가 살 수 없는 곳이 되게 하였다. 앞으로 가는 것이 대단히 많이 두렵다 해도 우리에겐 아무런 대안이 없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하여 잘 못 망상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하려 드는 것은 끝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가 여전히 믿는 채 가장하면서 아무리 크게 악을 악을 써도 그것 또한 도움이 안 된다. 근본주의는 마침내 더욱 더 큰 망상으로 끝나고 만다. 그것뿐만 아니라 무언가 좀 더 인정받는 지위를 갖고 있는, 좀 더 선망받는(cachet) 새 방향으로 교회를 고쳐 만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즉 교회가 사회 개량 운동, 자조적(自助的) 상담. 그리고 영성지도 (spiritual directive)노력에 초점을 맞추는 자유주의적 해결책들도 근본주의적 히스테리가 죽은 것만큼이나 똑같이 죽은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정의하여 "근본주의자들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하는 일종의 반동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설 땅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다른 대안들이 합당치 않다면 우리가 가진 유일한 대안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밖에 없다. 아무리 투쟁(tugs)이 격심하다 해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속삭이는 내면의 소리가 아무리 두렵고 줄기차도, 우리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머무는 위험이 죽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캐시 포드가 옳았다. 핵심 문제는 "하나님은 한 인격체가 아니다. 하나님은 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존재 그 자체이다"라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근본적인(radical) 하나님 이해로 우리가 나아가면 다른 모든 것은 변화한다. 그리고 그것은 극적으로 변화한다. 진실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격렬하게 변화한다. 만일 하나님이 초자연적 권능을 가진한 존재가 아니라면, 예수도 그 존재가 성육신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예수는 종류는 다르지 않지만 그 도(度)는 여러분이나 나와 다른 것으로 정의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주장 가운데 과거의 기독론 대부분은 와그르르 붕괴되고 만다. 그런데도 그러한 주장이 14세기 이래 일종 소수인의 보도(report)로 기독교인들 사이에 존재해 오고 있다. 만일 하나님이 한 존재가 아니라면 그 어떤 인간 계급도 이 존재의 계시를 받은 선택된 사람, 이 존재의 진리 수용자, 또는 이 존재의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한 주장 가운데 종교적 불안전을 조장하면서 모든 교회의 권력 주장들도 사라진다. 교황은 그 일자리를 잃게 되고 따라서 모든 추기경들, 대주교들, 주교들, 사제들, 그리고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임명을 받고 이 유신론적 신의 종들로 안수받았다는 사람들, 또는 땅 위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교구 목사라는 사람들도 그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러한 것들 가운데 그들의 신뢰를 두었던 사람들도 근본적 인 불안전지대(islands of insecurity)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밑바닥으로부터 다시 건설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초자연적 유신론으로부터 우리의 하나님 정의를 변화시킬 때, 우리가 기도에 대하여 주장했던 모든 것들도 무효가 되고 기도는 필요 없게 되거나 아니면 다시 정의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보다도 교회 고위당국자들이 하나님의 길을 사람들에게 해석해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모든 것들도 단념 포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한때 안수받은 사람의 기도와 미사와 주장들 위에 두었던 모든 능력도 빠른 속도로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왜 이러한 변화를 그렇게도 철석같이 강경하게 거부하고 또 그 변화를 그렇게도 심하게 무서워했는지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변화를 일으키는 와중에 우리는 지독한 상실감과 외로움과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가까이 살펴본다면, 우리는 개인적 욕구를 넘어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일의 적극적인 결과들을 식별할 수 있는 곳을 볼 수 있게 된다. 일단 그 변화가 일어나면, 우리는 비현실적 예상들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일단 우리가 급진적으로 다시 정의된 하나님 견해를 가지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다시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들 처럼 하늘 부모의 보호를 탄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의 원천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얻고 또 그 원천에 가닿은 어른으로 기도하게 된다. 어떻게 에클레시아가 그러한 것을 행하도록 우리를 돕게 될 것인지 하는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다루어야 할 부분이다.
우리의 하나님 이해가 변화될 때, 우리가 서있는 도덕적 발판도 바뀐다. 윤리를 위한 전통적 근거는 사라질 것이다. 만일 우주를 다스리는 유신론적 존재가 없다고 하면, 법을 준 사람도, 또는 변경할 수 없는 법을 성서 본문 속에 써넣은 불손가락 또한 없다. 따라서 그러한 모든 주장들도 다 내버려야 한다.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단순히 성서를 인용하는 사람들도 그들의 도덕적 잣대가 비뚤어진 것이고 만연한 불안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하나님 견해로 방향을 바꾸면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 난맥상이 가져오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도덕적 주장들은 더 이상 효력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한 주장들은 자의식의 충격을 다루기 위해서 고안된 적용 장치로 생겨난 것이며 더 이상 우리의 두려움을 진압할 수 없다. 단순히 신의 보호를 얻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복종해야만 하는 뜻을 가진 유신론적 신은 없다. 우리가 덕스러운 삶을 통하여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호의와 축복을 가진 하늘 아버지, 우리의 공포에 질린 연약한, 그러나 순종하는 삶에 상(賞)을 줄 하늘 부모는 없다. 그래서 윤리적 논의는 그것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근거를 찾아내야 하고, 그것을 검토해 볼 새로운 맥락이 발견되어야 한다.
만일 존재의 근거가 거룩하다면, 다른 사람의 존재를 감소시키는 행동들은 죄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 근거를 둔 도덕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출현한다. 이러한 새로운 도덕성 가운데서 무모한 편견들은 아무리 거룩한 경전들을 인용한다 해도 더 이상 긍정될 수 없다. 흑색은 아름답다. 그것이 존재를 증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한편 인종차별주의는 존재를 감소시키기 때문에 악이다. 페미니즘은 존재를 증진 향상시키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인 반면,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주의는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에 악이다. 동성애자의 자존심은 존재를 증진 향상시키기 때문에 인생 가운데 나타나는 신의 표식(sign)이다. 반면에 동성애 혐오는 존재를 억압하기 때문에 악이다. 신학적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신학적 탐구는 생명을 확장시켜 주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인 반면, 배타적 진리를 소유했다는 종교적 주장들은 진리 자체를 망쳐놓고, 우리의 사상규격 (thought-forms) 안에 하나님을 가둘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죄악된 것이다.
여러 다양한 종교 그룹이 보여주는 방어적 적개심은 존재를 향상시키지 않고 오히려 감소시키며 따라서 죄악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믿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개종하려는 선교 노력도 악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종교 전통 안에도 구체화한(incarnate) 진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나의 길만이 유일무이한 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켜야 한다는 시도들은 우리의 근본적인 불안전의 표시요 자기중심적 이기와 생존 지향적 인간성을 보여주는 표식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그것들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반대로 신앙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고 동등한 것으로 보아 공유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이러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해 왔다. 내가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이제 이 책의 결론을 내릴 때에도 나의 신앙선언 (statement)을 가지고 마치려 한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신앙인이다. 나에게 하나님은 영원히 실재적(real)인 분이시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나에게 예수는 하나님 현존이실 뿐만 아니라 나의 이해 능력을 넘어서 계신 하나님의 실재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관문이시다. 나는 기도의 사람이다. 나에게 기도란 생명, 사랑, 존재이신 하나님의 의미를 명상하는 것이요, 그 의미를 행동으로 내보이는 것을 뜻한다. 나는 윤리적으로 깊은 헌신의 사람이다. 나에게 윤리란 개인적이고 협동적인 행동을 통하여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과 사랑과 존재의 대행자가 되는 것을 뜻한다. 내가 얻기 위해 분투 노력하는 신앙의 특징적 표시는 어린애 같은 의존성이 아니라 침착 냉정한 성숙성이다. 나의 하늘 소망은 생명과 사랑의 원천이시요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영원성 안에서 나누고 공유할 능력에 있다.
유신론의 죽음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이 새로운 하나님 이해 가운데, 교회들은 행동 통제 기관 되기를 멈추고, 생명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일에 헌신하는 기관이 될 것이다. 예배는 생명 한복판에 계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경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기독교 교육은 특정 종교 선전 양식을 가지고 신자들에게 교리주입하기 보다 진리 탐구가 될 것이다. 공동체안의 생활은 충만하게 살고, 아낌없이 사랑하고, 우리가 될 수 있는 존재의 모든 것이 되게 하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믿어야만 되는 그 어떤 것(something to be believed)이 아니라 우리가 "살지 않으면 안 되는" (must live) 신앙, 우리가 들어오도록 초청하면서 우리 앞에 서 있는 비전이 된다. 나는 신조들을 넘어선 하나님, 성육신을 넘어선 그리스도, 우리 존재의 불안전을 감히 움켜쥐고 안전을 생산하는 어제의 교회가 만들어낸 속박들 (boxes)을 넘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삶의 방식을 선포한다. 이러한 분명치 않은 비전속으로 나아갈 준비를 갖춘다는 것은 속박하는 신조들과 폐쇄적인 성서를 가진 교회가 전통적으로 거하던 곳은 더 이상 살만한 곳이 못 된다는 인식을 정직하게 직시한다는 뜻이다. 만일 우리가 그냥 머물기로 작정한다면, 우리는 죽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캐시 포드가 관측한 바와 같이 우리가 생산한 채소가 파멸되었고 지하수는 오염되었다. 두려움 가운데 "그냥 머물러, 머물러” 하고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것은 더 이상 합리적인 것이 못된다. 그 소리는 그 자체의 파멸을 인정하는 히스테리 징조가 내는 소리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기관들처럼 그 한계를 넘어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비전을 갖기까지 우리는 죽음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무언가 새로운 비전을 그려보려 하였고, 나의 목표를 일러주려 하였으며, 그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걷지 않으면 안 될 방향을 제시하려 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적절한 것인가?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러면 논의를 다 마쳤는가? 물론 아니다. 그것은 실제적인가? 그렇다고 믿는다. 그것은 효과 있게 잘 되어 갈 것인가?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교회가 그 비전을 보고 거기 반응할 것인가? 어떤 교회는 반응하겠지만, 대부분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선택권을 준다면 많은 교회들이 변화보다는 죽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러면, 교회는 그 기관적 형태 안에서 죽을 것인가? 처음에는 교회 기관이 죽어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곳을 보고 반응을 보여 그리로 나아가는 소수의 개인들이 반죽 속의 누룩이 되고, 국에 친 소금이 되며, 어둠 속의 빛이 되어 결국 개혁을 주도할 것이다. 그들은 전 세계적으로 죽어가는 교회와 교단 안에 있는 개인적 신앙공동체의 원기를 돋우어 주는 새 생명의 원천이 될 것이다. 이러한 누룩 같은 존재. 이러한 새 생명의 태아(embryo)는 겁먹고 두려움에 떠는 교회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비판받고 위협당하고 쉼 없는 공격을 받아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그 비전을 포용하는 신앙공동체 편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앙공동체는 오늘날 우리 가운데 아주 작은 희망의 징조로 현존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이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안전을 거래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의 메시지나 심지어 그리스도에 대하여 과도한 억지 주장을 펴지 않는다. 그들은 그 출처를 묻지 않고 진리에 대하여 개방적이다. 그들은 또한 인생의 풍부한 다양성에도 열려있다. 그들은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는. 그리고 그 존재의 선물을 현시해 주신 그리스도 안에는 동(東)이나 서(西)도 없고, 부족이나 민족도 없으며, 남녀 동성애자나 그렇지 않은 자. 참된 신자나 이단자, 기독교인이나 유태교인, 모슬렘교인, 힌두교인, 불교인도 없다. 있다고 하는 것은 오직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하나님 충만한 인간성. 살기를 열망하는 것. 사랑하려는 열심, 감히 존재 하려는 것,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의 경이로움과 신비함 속으로 여행하기를 원하는 공동체가 있을 뿐이다.
내가 자신하는 것은 우리의 기존 구조 안에 이러한 신앙공동체들이 출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끝내 죽어가는 일당(黨 pack)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킬 것이다. 그들은 광범위하게 다양한 형태를 취하면서 자유로이 유포될 것이다. 그들은 안식을 모르는 사람, 굶주린 사람, 소외된 사람,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 개방적인 사람, 솔직한 사람, 의심하는 사람. 탐색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것이다. 조만간 그들은 서로 연합하고 새로운 합의점을 수립하면서 피차 친족 관계임을 인정할 것이다.
그 결과로 생기는 에클레시아는 사람들의 체험에 기초를 두지 계급욕 위에 두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모든 교단 노선과 이어서 신앙 노선들을 넘어갈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천년 뒤 사람들은 천년 사이에 끼어있는 이 새로운 개혁이 건설한 공동체가 우리 세대의 죽어가고 있는 기독교회의 후예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내 생각에 그 여부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yes)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공동체에 대한 평가는 내가 내릴 것이 아니다. 나의 임무는 단순히 이러한 진행 과정에 몰두하는 것뿐이다. 나는 믿는 신자로 나의 신앙 경계선들을 넘어서 가고자 뜻했지. 불신자라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나를 교육 형성해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그렇게 하였지. 그것을 부정하거나 해코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한 것이 아니다. 처소가 살 수 없는 곳이 될 때 사람들은 이동해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이동해 가기로 선택한 것이다. 나는 나와 함께 같이 이동해 가자고 다른 사람들을 초청한다. 신자로서 추방의 몸이 되자고, 철저한 기독교회 개혁이 일어날 수 있게 하자고, 그런 다음 신앙이 살 수 있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처소를 찾아내자고 초청하는 바이다.
나는 개혁을 환영한다. 나는 내가 그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그 개혁이 성공하기를 열망한다. 그래서 내 손자 손녀들이 "나에게 하나님은 실재적(real)인 분이에요. 예수님은 이 실재 속으로 들어가는 나의 관문이에요" 하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