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마음에 황토길이 좋다는 영암 기찬랜드로 향한다.
먼저 월출산이 훤하게 보이는 카페에서 차를 한 잔 하고, 낙지로 유명한 독천식당에서 점심 해결.
하지만 예전의 독천식당이 아니다.
낙지 양은 줄고 가격은 오르고.
물가가 이렇게나 뛰었나 싶다.
어쨌거나 배부르게 먹었으니 걸어야지.
처음 가보는 기찬랜드.
10일전까지 국화축제를 했던 곳.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국화가 곳곳에 활짝 피어 있다.
진한 국화향이 스멀스멀~
코끝에 기분좋은 향기가 머문다.
예기치 않은 행운이다.
영암읍성, 천황봉 구름다리, 여의주를 입에 문 용 국화꽃 터널 등 다양한 설치물들이 국화에 감싸여 있다.
트로트 박물관이 보인다.
엥? 트로트에 관한 박물관이 있다고?
느닷없고 생소하다.
헉 인당 입장료가 6천원이나 된다.
망설이고 있는데 경로 가격으로 두 명 4천원에 입장하란다.
경로라니, 거부하고 싶었으나 그래도 뭐 한 번 쯤 보는 게 좋겠지.
입구에 한 소녀가 노래 자랑에 나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형상이 있다.
나도 옆에서 한 가락~
트로트가 시작될 초창기 무렵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 대표 트롯 가수들의 프로필과 앨범 포스터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미자, 현철, 남진....장윤정까지 알만한 사람들의 이름들이 쭉 보인다.
나 역시 트로트 세대.
전시실 옆 한국생활사 박물관에서나 봄직한 옛 다방이 보이고, 젊은 날 한창 유행하던 음악 디제이가 촌스런 썬그라스를 끼고 노래를 소개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원하는 시대의 트롯을 골라 헤드셋을 착용하고 들을 수 있다.
난 2000년대 장윤정의 '어머나'를 골라 고개 까닥이며 들어 본다.
음질이 꽤 좋아 들을만 하다.
노래방도 보인다.
실제 노래도 부를 수 있단다.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라는 곡을 한 소절 신나게~
2층으로 올라 가니 온통 가수 하춘화에 관한 기록물들과 전시물들로 가득하다.
알고 보니 영암 출신.
입구에서 노래 부르던 소녀도 하춘화란다.
트롯 열풍을 일으킨 송가인이나 임영웅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보완이 좀 더 필요하지 싶다.
공연이라도 볼 수 있다면 모르지만 입장료는 너무 세다.
둘러보는 이들도 별로 없다.
젊은 친구들의 시선도 끌어 오려면 다양한 기획이 필요할 것 같다.
가야금산조 테마공원도 보인다.
고풍스럽고 멋스런 한옥에 국화 분재 전시를 겸하고 있다.
공연장에서는 맑고 익숙한 가야금 가락이 흘러 나온다.
무대에는 앉은뱅이 소파가 있다.
아무도 없는 텅빈 공연장 소파에 주저앉아 가야금 산조 가락을 듣는다.
가야금 소리가 이리도 고왔을까.
공연장이선지 소리가 무척 청명하고 귀에 쏙쏙 들어 온다.
전시관이 전통을 살린 고전미 잔뜩 품으며 아담하게 조성되어 있고 공간 활용을 꽤 잘해 놓았다.
이곳 역시 원하는 가야금 산조를 들을 수 있도록 감상실도 마련되어 있다.
둘이서만 둘러 보려니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무척이나 많은 정성과 품을 들여 만들어진 박물관이 외면받고 있는 듯하여 속상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쩝.
만개한 국화들을 둘러 보고 있는데 엄마의 급한 호출.
원래 계획했던 황토길은 밟아 보지도 못하고 부리나케 광주로 향한다.
하지만 고맙게도 느닷없이 만난 두 박물관이 풍성한 나들이를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