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하나님의 자녀 내면에서 마음 작용의 겉 사람이 끝나고 그 너머의 속사람(지성소)으로 하나 된다.
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다고 해서 다 마음 너머의 속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다. 판다(파스)를 만물로 번역한 것이 몸과 마음인데 그 너머의 생명이 빛을 깨닫지 못한다.
2. 본론
“만물(판다)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판다 디 아우트 에게네토,카이 코리스 아우투 에게네토 우데 헨 호 게고넨)
“판다(만물)들이 그를 통하여 하나 되었고(과거 디포넌트) 그리고 그가 없이는 어느 것 하나도 된 것이 없다(과거 디포넌트)” 하나님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것으로 오해하게 번역하였다.
가. 하나님의 자녀 내면에서 마음 작용의 겉 사람이 끝나고 그 너머의 속사람(지성소)으로 하나 된다.
하나님 자녀의 내면에서 생명의 빛으로 변화되어야 겉 사람(몸과 마음)이 끝나고 생명의 빛(속사람)으로 하나 되는 일을 말씀하고 있다. ‘판다(만물)’들은 내면에 있는 십사만 사천의 모든 속성이 진리의 말씀(흐레마)으로 변화하여 모두 하나님의 군대(신부)가 된다. 하나님은 이들의 주인으로서 다스리신다.
이 문장에 ‘기노마이’가 세 번 쓰였는데 하나 됨이다. 앞에 나오는 두 단어는 디포넌트 동사로 쓰였고, 마지막 한 단어는 완료 능동태로 쓰였다. 판다(내면의 모든 심리 현상, 심사만 사천)들이 하나님에게 헌신하여 하나가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내면에 있는 각종 번뇌 망상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아니라 모두 죄로 인한 것이다.
번뇌 망상을 모두 초월하면 예수의 거룩한 신부가 된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두 파로이미아(비사)로 된 내용이다. 예수께서 휘장을 찢는 것으로 온전한 마음을 초월하신다.
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다고 해서 다 마음 너머의 속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많고 많은 번뇌 망상(파스)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마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들도, 짐승을 잡아먹고, 돈도 벌고, 손해도 보고, 억울함도 당하고, 마음속으로 온갖 나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들을 정결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웃고 갈 일이다.
노아 방주를 완성하고 나면, 정결한 짐승 일곱 쌍과 부정한 짐승 두 쌍이 노아의 내면에 드러난다. 말씀에 의한 백이십 년간의 긴 훈련을 지났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들을 방주 안으로 이끄신다. 정결한 짐승이든 부정한 짐승이든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다. 이것들을 방주 안에서 말씀으로 훈련하여 모두 온전하게 정결한 짐승으로 변화시켜 방주 밖으로 이끄신다. 그리고 이 정결한 짐승을 제물로 드리게 되는데 이는 노아 자신을 드림이며, 몸과 마음을 진리의 말씀으로 초월하는 내용이다.
종교인들과 학자들이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였다고 해서 오해하여 생겨난 일이다. 그래서 이치에 맞지도 않은 해석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다. 판다(파스)를 만물로 번역한 것이 몸과 마음인데 그 너머의 생명이 빛을 깨닫지 못한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그) 빛이라(요 1:4).”
(엔 아우토 조에 엔, 카이 헤 조에 엔 토 포스 톤 안드로폰)
“그의 안에 생명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으니(미완료) 이 생명은 그 사람들의 그 빛으로 계속해서 나타나시니라(미완료).”
‘판다, 파스’를 ‘만물’로 번역하였는데 판다 속에 생명의 빛이 있었다. 생명의 빛은 믿음의 선진(예수)이 함께 하였으나 내면의 각종 심리 현상들과 번뇌 망상들이 처음에는 이 (생명의 그 빛)를 깨닫지 못하는 상황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