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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목구정의 거미줄 걷는답시고 --- 내가 하도 어리숙해서, 나의 목구정에 거미줄이 끼어도, 내가 아닌 주변의 갖은 정상인들 땜시 나의 숨이 막힐 듯한 고로 --- 끼역끼역 나가던 일터에서 보았던 그냥 보고 넘기기 아까븐 책 한 권을 잠깐 만지작대다가는 참으로 안타까분 기분에 --- 그리고 나를 떨게, 자르르 느끼게 할진저, 하여 --- 일방적으로 책의 일부를 번역해놓고, 갑갑할 때마다 읽어보곤 해온 것이다.
이 책(원제: Gypsies)이 한국의 어느 출판사에서 출간될지 또 안 될지는 모르나, 하여간 출간되면 나는 찾아서 읽어볼 거시다.
하도 급하게 허덕대듯 책을 읽다가 이렇게 공짜로나마 내용을 번역해봤으나,
오로지 나의 감동만 허벌댈 번역문이 되었을 것이다.
읽으실 분들은 부디 알아서 대충 읽으시기 바란다.
다만 집시들, 특히, 이젠, ‘롬 집시’라고 불리는 집시들 생각하면 가슴이 흔들리고 만다는 이 죔생의 무자제, 무절쩨, 무쌍씩에다가 설라므네,
결국은 까뼈움, 니미럴, 이리도 밋밋한 일썅을 잘도 참아대는
때딴한 인꽌들! 쉬민들에 삐해 늘 가배야바, 허벌어
참으로 까뼙꼬, 허뻘때는 이 화상이라...
암튼 쐬주 1/55잔 같은 동경을 담아 이렇게 올려보는 나의...
헤헤, 펄펄피딕피딕....거리는 나의...
이 고질병 창자에 담고 해우소 들락거리기라니....
(2004.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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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이 책은 잊힌 사람들을 위한 책이자, 수세기 동안 우리와 더불어 살면서도 별종으로 남았던 이방인들에 대한 내 사랑의 고백서이다.
집시들은 진보와는 무관하게 끝없는 현재, 영원하고 영웅적인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들은 마치 영원성에 대한 완만한 충동만을 알고 역사의 변경에서 방랑하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듯이 보인다. 그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들의 사회조직은 쉼 없이 유동하면서도 내면적인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집시공동체의 내부적인 응집력과 연대성은 그들 사회의 근간이자 유일한 지속적인 통일성을 지닌 강하게 결속된 가족에서 비롯된다. 그런 가족들이 모여 그들이 쿰파니아(kumpania)라고 부르는 좀더 큰 집단을 이룬다. 그런 집시집단은 고도로 활동적이라서 옛 관계들과 연합들은 새로운 관심의 전이에 따라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반복한다. 그들은 비밀스런 접촉망을 통해서 서로의 관계를 유지한다.
유대인들과는 달리 그들은 메시아를 숭배하지도 않으며 위대한 역사에 대한 의식도 없다. 그들의 전통은 세대에서 세대로 구전되는 강렬한 깨달음을 통해서만 계승된다. 그들의 기억은 4세대 내지 5세대를 이어가지 못한다. 또한 그들이 죽고 나면 아무도 그들이 살았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신화도 없고 전설적인 영웅들도 없으며 그들이 탄생했다는 설화도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드넓은 방랑의 역정을 정당화할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지금까지 집시를 연구한 대부분의 학자들이나 작가들은 집시들이 이동하는 지리적 측면이나 그들이 주로 머무는 나라들을 기준으로 그들을 칭명하려고 애써왔다. 하지만 그런 시도보다 큰 오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정착생활을 하거나 준-유목생활을 하거나 또 어쩌면 자신들을 기꺼이 외부인들의 호기심의 대상으로 제공하는 집시들도 소수나마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에스파냐의 지타노(Gitano)들, 영국의 집시들, 독일의 신티(Sinti)들, 루마니아의 루다리(Rudari)들, 헝가리의 유랑악단들이 그런 집시에 속할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순수한 유랑집시인 ‘롬(Rom) 집시들’과는 달리 고유의 풍습을 상실하고 문화적 변용의 길을 걷고 있다. 롬 집시들은 거의 모든 대륙을 망라하는 광활한 지역을 유랑하며 그들의 풍습을 지켜가고 있다. 로와라(Rowara) 집시들, 캘더래쉬(Kalderash) 집시들을 포함한 정통집시들은 러시아에서 미국, 오슬로에서 이스탄불, 말라야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에 이르는 세계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 중에서도 롬 집시들은 낡은 부족연합을 엄격히 고수하려는 유랑집시들 중에서도 예외적이고 독특한 면모를 보인다. 그들이 유랑하는 지역은 광범위하여 유럽과 북아메리카대륙을 비롯한 서구의 시골은 물론 산업지대와 도시를 망라한다. 이처럼 다양한 유랑집시들과도 다른 롬 집시들의 유랑지역은 주로 출입제한구역, 사막과 황야뿐 아니라 서양의 침략자들에 의해 쫓겨나거나 백인들로 대체된 원주민들의 정착지도 아우른다. 롬 집시들은 스스로를 특권을 향유하는 “사냥꾼들”로 규정한다. 내가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집시들은 바로 이런 롬 집시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더욱 넓은 세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여행열망은 단순한 방랑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미지의 친족을 만나기 위해, 그들의 자녀를 낳아줄 신부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동종번식을 피할 수 있게 하는 다른 부족의 여성들을 부족의 일원으로 맞이하여 결혼하기 위해 방랑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문화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문화를 항구적으로 쇄신하는 참신한 물결을 몰고 다닌다.
그들이 이용하는 기독교나 이슬람교 따위의 겉치레 종교들 밑에 숨은 그들의 진정한 종교는 조상숭배의 형태로 남아있다. 그들의 법체계 즉 크리스(kris)는 그런 조상숭배관념에 기초한 마술로부터 강력한 위력을 추출해낸다. 그들을 결속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외에 그들이 방심하지 않고 지켜온 비장의 언어, 즉 산스크리트에서 갈라져나온 로망스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집시들은 그들의 문화적 영속성과 정체성을 치밀하고 체계적인 보호막으로 숨겨서 지켜왔다. 때문에 그들의 실재 삶은 흔히 정반대로 비쳐지기도 한다.
내가 점을 칠 수 있는 것도 이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점성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사실들을 수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줄기차게 집시들을 둘러싸는 기이하고 신기한 후광(아우라, 오러)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오러는 그들을 가혹하게 취급하는 외부인들에게 저주를 퍼붓거나 그런 취급을 예방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자산을 제공한다. 하지만 롬 집시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점도 치지 않는다.
미국의 어떤 집시부족은 점술을 고도로 조직화하여 돈벌이에만 항상 급급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이 사기행각 혐의로 발각되어 법정에 서는 경우가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기도 한다. 구성원들 중 대부분의 어린이와 모든 여성을 내세워 구걸을 일삼는 이 가제(Gaje) 집시(롬 집시들은 이들을 집시로 취급하지 않는다)들은 롬 집시 어린이들이나 여성들이 다른 사람들과 유대관계나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하는 다양한 요인들 중 하나이다. 가제들은 자신들을 하찮게 보이도록 만드는 헝클어지고 더러운 겉모습 때문에도 경멸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타인들에게 그런 외모로 은근히 무례를 범하면서 오히려 기쁨을 느낀다. 물론 그들이 일반인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일반인들과 직접 대면할 때는 일관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듯이 보이고, 그들이 감내하는 결핍 그리고 일반들과 그들이 섞일 수 있는 여지를 빼면 그들이 거론하기 원치 않는 문제에 대해서도 완전히 무관심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만큼 가제들은 일반인들을 현혹하는 면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롬 집시들은 가제들이 흘리고 다니는 그런 엉성한 점술에 진실이 담겨 있다고 믿을 만큼 순진한 사람들을 경멸하기도 한다.
롬 집시들과는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또다른 집시들은 서로에게 도둑질을 강요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머무는 땅이나 타인들의 땅에서 최소한의 말먹이, 땔감, 감자, 채소나 과실, 그리고 그들이 “놓아기르는” 닭들의 모이 따위를 훔쳐오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런 집시들 역시 철저히 가제 집시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기에 여타 모든 전설들이 그렇듯 '집시들은 도둑들이다'라는 전설도 과장된 것이다. 집시들 모두가 도둑으로 몰릴 정도로 처벌을 받아야 했다면, 그들은 오히려 밴을 타고 세계 여행이나 즐기거나 거대한 저택에서 갖은 향락을 누리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공개적인 적대감에 포위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폭력과 비인간적인 억압을 상대할 만큼의 정치적인 힘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는 흔히 그들에게 자행되는 개인적인 폭력과 학대에 신경질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그들의 불가해한 반응을 신기하게 여겼다. 나는 세심한 관찰을 통해 그들이 외적인 억압을 받을 경우 격화되는 개인적인 증오나 고통을 감내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나의 집시 양아버지 풀리카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에 대한 만용은 너무나 자주 삶에 대한 비겁으로 이어진단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쓴 것은 출판 편집인이자 나의 친구인 마이클 V. 코더가 집시와 함께한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 속에는 핵심적인 진리가 담겨있다고 역설하면서 집시들에 관한 글을 써보라며 나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내가 집시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독특한 가정환경 때문이었다. 특히 12세의 아들이 집을 떠나 먼 여행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경이로울 정도로 넓었던 부모님의 열린 마음 덕분이기도 했다. 또한 훗날 내가 터득한 능숙하고 유창한 집시 언어 구사력은 집시들이 나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나는 어느 날부턴가 내가 “우리, 롬 ...”이라는 말로 나를 지칭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내가 얼마나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내가 그들과 함께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중략]
소련과 중부유럽 국가들의 집시들은 국가로부터 방랑생활을 중단하라는 줄기찬 압력을 받으면서 이른바 “생산적인” 사회에 통합되어 가고 있다.
[중략]
유랑하는 집시들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들을 사회에 통합시키기 위해 시행된 그토록 다양한 시도들이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방랑자들의 노래를 부른다.
장 요르(Jan Yoors)
1966년 뉴욕에서
(pp. 13-15)
나는 지금도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압도적인 창공의 무한함, 순간의 영원함, 단순한 낮의 연속이 아닌 무궁한 밤, 지린내 풍기는 찝지름한 진흙탕 식수, 끝없는 변화를 위한 도전, 황야에 휘몰아치는 먼지들, 드문드문 꾸벅거리며 졸고 있던 몇 그루 관목과 황혼처럼 슬피 울어 예는 바람, 위안만 흘리는 밤하늘, 밤바다를 건너느라 씩씩거리는 말들, 천막을 뒤집어쓴 마차들의 행렬과 밥짓는 모닥불, 멋모르고 뛰노는 아이들과 짖어대는 개들, 텃도둑놈들과 오랫만에 흥분한 경찰들, 롬 집시들의 소박한 기품, 그들의 넘치는 야성과 매력, 벌거벗고 함께 물장구 치던 한낮의 호수, 황혼을 향해 터벅터벅 내 영혼을 데리고 걷던 그 길...
내가 처음으로 집시들의 숙영지에 다가가자 더럽고 사나운 누런 개들이 사정없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15개의 천막 마차들이 반원형으로 늘어서 있어서 길에서는 집시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은 집시여인들이 입은 옷의 색깔은 짙었고, 그 여인들의 눈은 크고 인상적이었으며, 강하고 하얀 이빨은 아름답고 검은 피부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귀와 목과 팔에 걸친 갖가지 금붙이들은 그 여인들의 색조를 더욱 현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검푸르고 윤택하고 긴 머리칼은 땋아서 노끈으로 묶었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낡고 두툼한 치마를 입고 있었다. 내가 그 여인들을 보면서 받은 첫인상은 그 여인들은 건강하고 생명력 넘친다는 것이었다.
작은 아이들은 무리지어 맨발로 온 숙영지를 휘저으며 뛰어놀았다. 그중 몇은 누더기를 걸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발가벗은 채로 동물의 새끼들처럼 까불대기도 했다.
[중략]
집시들이 그렇게 우리 마을을 지나간 것은 늦은 봄날이었다. 당시 12세이던 나는 나의 친아버지가 내게 이야기해주시곤 했던 신기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집시들이 마을의 주변의 넓은 공터에 자리를 잡기 전날 밤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것이리라. 내일이면 그들은 머문 흔적도 거의 남기지 않은 채 떠날 것이 분명했고, 남는 것은 그들이 왔다갔다는 소문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들이 모닥불을 피운 자리는 주변보다 약간 어두웠고 잡초들은 뽑히거나 짓밟혀 있었다.
나는 포장도로를 벗어나 기다란 잡초들을 헤치며 그들의 숙영지를 향해 걸어갔다. 어른들은 아무도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국땅을 밟는 듯한 색다른 감정을 느꼈지만, 내가 그들을 화나게 한 듯한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 또래의 집시소년 몇 명이 나를 보기 위해 달려왔다. 짓밟힌 잡초들은 나의 세계와 그 소년들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스페인어로 말을 걸었는데, 그것은 내가 스페인어를 그들과 대화하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로 잘 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당시 모든 집시들은 안달루시아, 플라밍고 음악과 춤, 태양과 만사닐랴 술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방랑자들을 스페인이나 러시아, 헝가리나 루마니아에서만 떠도는 사람들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집시소년들은 서투른 독일어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어린이들 사이에는 본시 서로 만나기 전부터 통하는 뭔가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것이 있었다. 소년들은 나에게 말(馬)들을 구경시키면서 건강한 말과 그렇지 못한 말을 구분하는 고도의 기술을 선뜻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들은 나의 서투른 반응도 개의치 않는 듯이 보였다. 그 순간을 통과의례로 이해한 나는 말을 손으로 만지는 쓸데없는 짓까지 해보이면서 그들의 판결을 기다렸다.
그 소년들 중 한 명은 나노쉬라고 불렸다.
[중략]
나노쉬는 다른 집시들은 자신들을 “롬”이라고 부르며, 롬은 “사람”이란 뜻이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들은 집시가 아닌 모든 외부인들을 “가제”라고 부르는데, 가제란 말은 “뜨내기 농부들”로 번역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하면서 나의 눈을 응시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약간 주저하는 듯이 들렸고 나는 뭐라 분명히 말할 수 없는 경멸의 느낌 같은 것을 받았다. 나는 그 순간 그들이 나를 애매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 가제들이 롬들에 대한 편견들을 갖고 있듯이, 롬들도 우리나 가제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집시소년들이 서로를 부르는 이름을 유심히 들으면서 라에치와 푸치나라는 두 가지의 다른 대표적인 이름을 배우고 기억했다.
[중략]
(pp. 43-45)
나는 집시 무리에 다시 섞였다. 이 무리를 이끄는 대장의 이름은 부출로(Butsulo)였는데, 그는 내게 풀리카의 유랑극단을 만날 때까지 함께 머물러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들은 마차 뒤에 놓여 있던 여물통처럼 생긴 통에 건초를 깔아 내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말이 덮던 담요를 덮고 잤다. 그들은 나를 잘 대해주었고 나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롬 집시에 대한 보잘것없는 지식으로 그들을 웃게 만들기도 했는데, 사실 그건 분수도 모르고 들뜬 기분에 자랑만 하고 싶은 만용에 불과했다. 그들은 나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을 것이기에, 적어도 풀리카(Pulika)만은 분명 나를 보면 반가워할 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풀리카를 만나기 전 몇 주간 함께 여행을 했다. 그러나 나는 어느덧 나는 함께 여행하던 그 이상한 사람들을 다소 불편하게 느꼈고 그러자 모험에 나선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풀리카, 루파, 요조, 코레, 푸치나, 케자, 말라, 보티, 나노쉬가 너무도 그리웠다. 하여간 어느 날 우리는 드디어 만났다. 지난 가을부터 내가 잊지 않고 있던 그 말들은 오래전에 팔렸다고 했다. 내가 기억했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이 지금은 달라져 있었다.
(pp. 55-57)
시골사람들은 닭을 도둑맞으면 으레 집시가 훔쳐갔다고 여겼다. 집시들은 때로는 기독교도들의 어린이를 유괴한다는 의심을 사서 가혹한 대접을 받았다.
그런 반면에, 시골사람들은 물론 도시사람들까지도 집시여인들에게 그들의 가장 은밀한 가족문제, 근심걱정, 실수나 과오, 비밀스런 욕망들을 고백하면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거의 모든 집시여인들이 점을 쳤다. 집시여인들이 점치는 법은 이렇다. 일단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고 정보원(源)을 확보한 다음에 특정지역의 분위기를 탐색한다. 길가에서 점을 치는 루파(Rupa)와 소녀들은 신뢰감과 정직함, 신비감을 자아내며 조용히 사람들의 손금을 봐주고 있었다.
내가 이런 손금보기에 흥미를 보이자, 루파는 목소리를 엄격하게 바꾸어 손금보기 같은 점치는 행동에는 이중의 터부가 있다고 내게 설명해주었다. 다시 말해서 점치기는 일반인들과 가제(gaje)들만을 대상으로 할 수 있고, 롬 여성들만 할 수 있으며, 특히 “롬 집시들을 대상으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로왈라 사람들의 평균체격에 비하면 깡마른 편인 루파는 똑바로 서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가제들에게 점괘를 말해줄 때의 눈빛은 강렬했고 태도는 신중했으며 목소리는 거의 속삭이듯이 낮고 허스키했다. 코레, 차야, 보티, 작은 티나는 그녀와 닮았지만, 몸집이 큰 요조, 케자, 푸치나, 말라는 풀리카와 훨씬 더 닮았다. 익살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검은 피부를 가진 루파는 “마이 칼리 이 무리 마이 굴리 아벨라(산딸기는 검을수록 달지)”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집시여인들은 가제의 손금을 읽고 운명을 이야기해주다가도 갑자기 행인들을 불러세우고는 손목을 잡아끌었다. 행인들은 집시여인들의 돌발적이고 뜻모를 의도가 담긴 그런 행동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떤 가제는 재미있어 했고 또 어떤 이들은 호기심을 느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이런 행동에 거리낌이나 불안감을 표시했다.
그 당시 나는 예언에 매혹되거나 늘 오락거리를 찾아다닐 만큼 어렸고 온갖 상상력으로 넘쳐났다. 낮에는 우리 무리들 가운데 점을 치는 여자들을 구경했다. 그 때문에 나는 루파로부터 꾸지람을 들었고, 또 내가 점술에 관해서 물어보면 단호하게 답변을 거부했다. 케자 역시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 점술에 대해서 물어보면 퇴짜를 놓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은근한 경멸의 미소를 보냈다. 하지만 루파의 꾸중과는 별도로 그녀는 내게 “롬들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아. 그런 건 저 바보 같은 가제들에게나 하는 거야.” 하고 따끔하게 말했다. 나는 루파가 설명하는 점괘를 구경할 때마다, 그녀의 점괘가 너무나 설득력 있게 보였다. 때문에 나는 그녀가 또 다른 세계를 꿰뚫어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우리는 저 멀리 소나무 숲이 아른거리고 히스 풀들만 드문드문 자라는 거대한 모래평원을 지나고 있었다. 제비들은 우리가 터덜터덜 지나온 먼지 자욱한 길을 가로질러 낮게 비행하고 있었다. 풀리카와 루파는 제일 앞의 마차 안에 요조와 함께 타고 있었다. 차야와 말라, 그리고 요조의 어린 신부는 지붕의 짚이 낮게 드리워진 농부의 집 근처를 지나갈 즈음 우리의 마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들판에 난 지름길로 앞서 가서 볼일을 본 다음 우리 마차가 다가오기를 기다릴 참인듯 했다.
코레는 마차 앞쪽의 널찍한 나무판에 걸터앉아 마차야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는 듯이 말고삐를 아무렇게나 쥐고 있었다. 푸치나는 요조의 엉덩이 쪽 나무판에 발을 걸치고 드러누워 하늘을 응시하면서 손으로 말아 만든 시커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집시다운 자태로 앉은 케자는 끊임없이 울어대며 엄마를 찾는 그녀의 오빠 요조의 막내아들을 어르고 진정시키며 젖을 물리고 있었다. 그녀의 젖가슴은 둥글고 풍만했지만 아직 미혼의 젊은 처녀였기에 젖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나보고 들으라는 듯이 점괘에 관해서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혼자 읊조렸다. 내가 점괘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그녀가 어떻게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는 놀랍기만 했다. 그녀는 별 거리낌 없이 말을 했다. 케자가 해준 말의 요점은 ‘점을 쳐보고 싶은 욕심은 불안과 근심을 이기는 힘이 없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런 욕심은 만족을 주는 대신 예언에 대한 끝없는 탐욕을 낳는 충동적인 도박에 가깝기 때문에 돈을 낭비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통찰력을 상실하는 고통만 줄 뿐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점보기는 문제의 원인도 제대로 못 보게 만드는 “미친 짓”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점 보기는 도덕적인 고결성의 문제를 편의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헛된 자기 파괴적인 노력이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도 원치 않는 자멸적인 삶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점쟁이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차적으로 자신들의 두려움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하며, 좀더 흔하게는 희망을 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두려움은 종래에 소망으로 변질되는데, 왜냐하면 많은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생기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케자는 슬픔은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지만 두려움은 사람을 가난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로왈라 사람들은 “나무가 없으면 불이 꺼진다(비 카쉬테코 메렐 이 약).”라고 말하면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실천적인 면에서 볼 때 점괘의 확실한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어리석음을 끝없이 인내하면서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능력이 필요했다. 그들은 이런 능력에다가 특수하고 개인적인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어떤 거대한 일반원칙을 덧붙였다. 케자는 오랫동안 그리고 커다란 관용을 보이면서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는 세르비아의 어느 시골에 살던 어느 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유지는 늘 자신이 무서운 불치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느 날 사라예보의 한 의사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고, 의사는 그에게 전혀 이상이 없으니 두려움일랑은 아예 갖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불안이 가시지 않았던 유지는 끊임없이 다른 의사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다른 의사들도 번번이 처음의 의사와 같은 소견을 피력할 뿐이었다. 그는 니쉬와 벨그라데를 거쳐 불가리아의 소피아까지 찾아갔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두려움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절망한 그는 어느 점쟁이를 찾아갔다. 그 점쟁이는 그를 보자마자 그의 두려움을 간파하고는 의사들의 판단이 틀렸음을 그에게 증명해보이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래도 그는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점쟁이는 그런 그를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인 끝에 겨우 구원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상상의 병”으로부터!
카제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외로움을 달래거나 확신을 갖거나 불안이나 증오심을 투사하기 위해 점쟁이를 찾을 때도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또한 점을 봄으로써 일상의 지루함을 벗어나 생활의 양념 내지 이색적인 활력소를 얻을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했다.
(p. 124)
[중략]
모두가 그를 “백만장자”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다. 케자가 내게 “그는 백만 금을 가지지 않고 다 써버렸기 때문에 백만장자야”라고 말해주기 전까지 나는 그 호칭이 단순한 농담인줄 알았다. 물론 나는 그 당시를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많은 재산을 소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진 재산을 몽땅 써버렸기 때문에 부자였다는 사실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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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몽객님 ^-^ 감사해요 ! 정말 잘 읽었습니다 (꾸벅) ~ 이 책 꼭 찾아 읽어 보고 싶어졌어요 ㅋㅋ 좋은 날 되소서 ^-^* 덕분에 행복해졌어요 !★
그런데, 이 책 아직 한국에서는 번역출간되지 않고 있으니, 원서를 구입해보셔요^^
미치~ 마 아~ 몽객님, 번역글로 만족할래요. ㅎㅎㅎ
나둥.ㅎㅎ
헤헤 .. ^^* 언제 꼭 읽고 싶은 책 !★
* 한국에선 영어 텍스트를, 백만명이 각자 번역해서 본다. (백만번 번역)
그것도 자기만 보고 버리니까 후배들이 그걸 읽으려면 또 번역해야한다.
* 일본에선 한명이 번역 출판해서 백만명이 쉽게 볼 수 있다...
몽객님, 일본사람들이 번역에 목숨건다는게 맞나요?
맞다면 왜 그럴까요?
목숨까지 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인들이 한국인들보다는 훨씬 계획적-체계적-조직적으로 번역사업을 추진해온 것은 맞을 겁니다. 그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몽객의 깜냥으로는, 일본인들의 기질(약자는 확실히 짓밟아버리고 강자에겐 확실히 굽힌다: 그만큼 강자를 이기기 위해 강자를 철저히 배운다.)과 정치경제문화적 태도(일종의 '동도서기' 정신 같은 것)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