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다른 종교들이 싸움 없이 더불어 사는 나라는 흔치 않다.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전쟁과 폭력이 현장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종교간의 갈등이 숨겨져 있다. 이 갈등은 언제나 생명을 앗아 가는 극한적인 대립을 수반한다. 그래서 타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은 가급적 피하면서 자신의 종교에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롭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우리 나라의 경우다. 종교학자들이 이 땅이 민족과 종교를 살펴본 뒤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종교가 이 좁은 공간에서 이토록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지?" 를 묻는다. 혹자는 남을 공격할 줄 아는 우리 민족의 고운 심성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5월에 접어들어 길거리에 나부끼는 현수막을 볼 때마다 왠지 심기가 불편하다.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석가탄일을 알리는 현수막과 청사초롱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 이 땅의 불교인들과 사회에서 거의 모두가 석가탄일을 최근에 와서는 '부처님 오신 날' 로 부르고 있다. 그 석가의 탄일을 부르는 이름에는 최선의 존대어가 표시되어 있기에 깊은 관심이 간다. 이에 반해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대상인 성자 하나님을 '예수님"이라 부르지 않고 '예수 탄생' 이라고 표기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우리의 언어 문화는 신앙의 대상을 부를 때 '님' 자를 언제나 수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예수님 오신 날에는 '님' 자를 철저히 떼고 불러야 하는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우리도 '예수'를 예수님이라 부르면서 그의 오심도 '예수님 탄생' 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거기에 대하여 같은 성직자를 부르는데도 불교와 기독교는 차이가 있다. 우리의 모든 언론 매체들은 불교의 성직자에게는 '님' 자를 붙여 '스님'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직자에게는 '님' 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목사' , '신부' 로 통한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불교의 성직자는 '중' 또는 '승려' 가 객관적으로 불러 주어야 할 호칭으로 알고 있다. 우리말 사전에 '스님'은 중이 그 스승을 일컫는 말로서 사승(師僧)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불교의 승려는 '스님, 이라 불러야 타당한 것처럼 일반화되어 있다. 더욱이 신문이나 방송이 이러한 오류를 범할 때는 참으로 난감한 느낌을 갖게 된다. 혹시 불교의 승려가 도덕적인 차원이 높거나 그들의 종교가 기독교보다 우원하다면 수긍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단순한 이해의 부족 때문에 이러한 표현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언어를 바르게 사용하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하겠다.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표현이 어느 특정 집단에서 발생된 것이라 보지 말고 우리 스스로 언어 정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