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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11 본문 087~089쪽 |
01 ④ 02 ④ 03 ③ |
「주희와 진량의 왕패 논쟁」 |
해제 : 이 글은 당대 송나라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희와 진량이 왕도와 패도에 대해 벌인 논쟁을 설명하고 있다. 주희는 맹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개인의 내면적 도덕을 중시했다. 그는 하, 은, 주 삼대를 이상적인 국가로 보고, 그 이후에 전개된 역사는 온전한 형태의 도가 전수되지 않은 암흑기로 천리보다 인욕이 앞선 시대로 보았다. 이에 반해 진량은 도를 경영하는 방식은 변할 수 있지만 도가 훼손될 수는 없으며, 영웅적인 행위와 업적이 천지의 도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며 주희를 비판했다. 주제 : 주희와 진량의 왕패 논쟁 구성 1문단 :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계승한 주희의 정치철학 2문단 : 삼대 이후 도의 전수에 대한 주희와 진량의 논쟁 3문단 : 한고조와 당 태종의 통치에 대한 주희의 입장 4문단 :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주희를 비판한 진량의 입장 5문단 : 왕패논쟁의 배경과 주희와 진량에 대한 후대의 평가 |
01 내용 전개 방식 답 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④ 1문단에서 주희와 진량 두 사람이 왕도와 패도에 대해 논쟁을 벌였음을 알 수 있으며, 5문단에서 이들의 논쟁이 당대 송나라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로서 제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1문단에서 왕도와 패도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으나, 두 개념에 대한 주희와 진량의 의견 대립을 서술하고 있을 뿐, 각각의 개념이 적용된 사례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② 주희와 진량이 왕도와 패도를 두고 벌인 논쟁을 서술하고 있으나, 이들의 논쟁이 합의를 이루는 사건은 나타나 있지 않다.
③ 2문단에서 삼대 이후 전개된 역사에 대해 주희와 진량 두 사람이 왕도와 패도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을 뿐, 개인의 상황에 따라 왕도와 패도의 기준을 다르게 보는 관점에 대해 비판하고 있지는 않다.
⑤ 3, 4문단에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주희와 진량의 대립된 평가를 소개하고 있을 뿐, 이들 논쟁의 한계와 극복 방안은 나타나 있지 않다.
02 세부 정보 파악 답 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④ 1문단에서 주희는 맹자의 견해를 이어받아 덕치, 즉 왕도를 정치 철학으로 정립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주희의 입장을 따르는 성리학자들은 국가의 위기를 해결하는 길은 패도가 아닌 왕도에서 찾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1문단에서 맹자는 덕으로 인을 행하는 것을 왕도로 보고, 힘으로 인을 가장하는 것을 패도로 보았다. 따라서 맹자가 덕으로 인을 행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왕과 패를 나누었다는 것은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② 2문단에서 진량은 도가 실현되는 방식이나 도를 경영하는 군주의 방식이 갑자기 변할 수는 있어도, 도가 온전히 보존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훼손되어 세상이 갑자기 암흑으로 바뀔 수는 없다고 보았음을 알 수 있다.
③ 2,3문단에서 주희는 삼대를 이상적으로 보고, 한고조와 당태종에 대해 그들이 이룩한 공적이 아니라 매자의 도덕주의적 관점에 근거하여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주희는 한고조와 당 태종의 공적보다 내면의 도덕적 차원을 더 중요시 했다고 볼 수 있다.
⑤ 3문단에서 주희는 한고조와 당 태종이 도덕적 결함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그들이 인욕으로 가득차고 비판했으며, 4문단에서 진량은 그들이 고대의 윤리적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들의 영웅적 행위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주희와 진량 모두 한고조와 당 태종이 삼대의 윤리적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03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기 답 ③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③ 4문단에서 진량은 영웅적인 행위를 통해 난세의 어려움을 극복한 한고조와 당 태종의 이(利)를 무절제한 사리사욕으로 보지 않고 있다. <보기>의 나에서 관중 역시 포숙아의 천거로 재상이 된 후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으므로, 진량은 관중이 포숙아의 천거를 받아들인 행위를 사리사욕으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4문단에서 진량은 영웅적 행위를 통해 난세의 어려움을 극복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보았다. <보기>의 (가)를 보면, 주공은 반란을 진압하여 나라의 기틀을 마련했다. 따라서 진량은 주공의 행위를 높이 평가할 것이라 볼 수 있다.
② 3문단에서 주희는 도덕적 내면을 중시했는데, <보기>의 (가)에서 주공은 성왕에게 자신의 모든 권력을 내어 주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따라서 주희는 주공이 인욕과 거리가 멀다고 평가할 것이다.
④ 3문단을 보면 주희는 한고조와 당 태종을 평가할 때, 그들의 공적보다는 도덕적 차원에서 보았다. 따라서 <보기>의 (나)에서 관중이 소홀과 달리 자신의 주군을 따라 죽지 않고 환공의 밑에서 재상이 된 것에 대해 주희는 관중의 공적과 상관없이 관중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것이라 볼 수 있다.
⑤ 4문단에서 진량은 ‘사공’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입장을 보였다. 따라서 진량은 <보기>의 (가)에서 주공이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것과 (나)에서 관중이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것을 사공으로 보아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 볼 수 있다.
인문 11
[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송나라 유학의 거두인 주희는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계승하여 선한 본성의 회복과 이를 위한 개인적인 도덕 수양을 강조했다. 또한 덕(德)으로 인(仁)을 행하는 왕도(王道)와 힘으로 인을 가장하는 패도(覇道)를 구분했던 맹자의 견해를 이어받아, ‘덕치(德治)’ 즉 천리(天理)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 철학을 정립했다. 이에 대해 진량은 덕치의 의미와 목적, 그 실현 방도를 두고 당대 유학의 거두인 주희와 10년 동안 서신을 주고받으며 일명 왕패 논쟁을 벌이게 된다.
이 논쟁에서 주희는 도를 초월적 존재이자 인간 세상에 실현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으며, 사람이 온전히 도를 따라 살지 못하거나 도를 ㉠벗어나 살게 되면, 도는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고 했다. 그는 과거 하(夏), 은(殷), 주(周) 삼대(三代) 이후 분열의 시기를 수습하고 통일 국가를 설립하여 유지했던 한나라와 당나라 시대를 도의 빛이 바랜 암흑기로 규정하고, 삼대 이후 도는 온전한 형태로 전수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비해 진량은 도가 실현되는 방식이나 도를 경영하는 군주의 방식이 변할 수는 있어도, 도가 온전히 보존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훼손되어 세상이 갑자기 암흑으로 뒤바뀔 수는 없다고 보았다. 진량은 주희의 편협한 시각이 삼대의 역사를 완전무결한 이상의 역사로 보고 한나라, 당나라의 역사를 인욕(人慾)으로 점철된 세속의 역사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기인한다고 비판했다.
두 사람은 한나라 고조와 당나라 태종의 통치를 두고도 논쟁을 벌였다. 이들 두 황제는 각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며 백성에게 이로움을 베풀었지만, 고조는 황제가 된 후 자신을 도왔던 신하들을 제거했으며, 태종은 자신의 형과 동생을 살해하여 제위에 올랐다. 주희는 맹자의 도덕주의적 관점에 근거하여, 천리는 왕자와 패자가 이룩한 공적에 의해 판단되지 않고 오직 내면의 도덕적 차원에서 문제를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삼대에 비해 한고조나 당 태종의 통치를 인욕으로 가득하고 천리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평가했다. 군주의 밝은 덕으로 백성을 감화시키는 정치가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무력과 술수에 바탕을 두어 정치를 행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고조와 당 태종은 근본에서부터 천리가 아닌 이(利)를 추구하는 인욕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굳이 왕패의 공적을 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주희의 입장이었다.
한편, 진량의 사상을 사공지학(事功之學)이라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사공’ 즉 당면한 사안에 있어 공을 이루는 것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입장에 있었다. 진량은 한고조와 당 태종이 비록 고대의 윤리적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영웅적인 행위를 통해 난세의 어려움을 극복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의 영웅적 행위와 업적이 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틀이 되는 천지의 도를 바로 설 수 있게 하며, 그런 점에서 그들의 이(利)는 무절제한 사리사욕이 아니라 백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논쟁은 북방 이민족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당시 송나라가 직면한 국가적 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주희와 진량을 위시한 당시의 지식인들은 국운을 회복해야 한다는 긴박한 과제를 안고 있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두 사람의 논쟁은 국가적 과제의 해결과 직결되어 있었다. 도덕주의적이고 이상론적인 주희의 입장과 실용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진량의 입장이 맞서며 이어진 논쟁에 대해, 당시와 후대의 성리학자들은 주희와 입장을 같이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진량의 현실주의적 접근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01. 윗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2점]
① 주희는 인간이 도를 벗어나 살면 도는 인간에서 멀어진다고 보았다.
② 주희는 삼대(三代)를 포함해 한나라와 당나라까지의 시기에 도가 부재한다고 생각했다.
③ 주희는 도덕주의적 관점에서 한고조와 당 태종의 행위를 비판했다.
④ 진량은 한고조와 당 태종의 영웅적 행위가 도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⑤ 후대의 성리학자들은 진량의 견해보다 주희의 견해에 동의하는 경향을 보였다.
02. 윗글의 진량과 주희가 <보기>에 대해 보인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보기>
패자[ 覇者 ]
중국 주대(周代) 말기 제후 중의 실력자. 패주(覇主) ·패왕(覇王)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제(齊)나라의 환공(桓公), 진(晉)나라의 문공(文公), 초(楚)나라의 장공(莊公),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 월(越)나라 왕 구천(勾踐) 등 ‘춘추(春秋)의 오패(五覇)’가 그 대표들이다. 본시 “인의(仁義)를 존중하는 왕도(王道)에 대해서 이것은 무력과 권모술수라는 패도(覇道)에 의해서 실력을 간직한 자”라는 맹자 등 유가(儒家)의 비난이 섞인 호칭이었으나, 전국(戰國) 말의 순자(荀子)가 그 존재를 인정한 것처럼, 그 후에 나타난 전국의 7웅(七雄)이나 진(秦) ·한(漢)의 황제 등, 시대의 필요성을 짊어진 군주의 명칭이기도 하다.
① <보기>의 패자에 대해 주희는 그의 도덕성을 비판하겠군.
② 주희는 <보기>의 패자가 ‘덕치(德治)’ 즉 천리(天理)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 철학을 지녀야 한다고 말하겠군.
③ <보기>의 패자를 두고 진량과 주희는 그들의 행동이 윤리적 기준을 충족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겠군.
④ 진량은 사공을 중시했지만 <보기>의 패주의 행동은 무절제한 사리사욕이라며 비판하겠군.
⑤ 진량은 <보기>의 패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야 했으므로 그들의 행동은 윤리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높이 평가해야함을 주장하겠군.
03. 윗글의 맥락에 따라 ㉠벗어나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 단어는? [2점]
① 자연이의 눈에 벗어나는 행동을 했다가는 해고다.
② 민형아, 이제 가족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서 시집가야지.
③ 침울한 화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억지로 지윤이는 이상한 농담을 꾸몄다.
④ 윤하는 성실반 무리에서 벗어나 수영장 가장자리나 한 구석에 웅크리듯이 가만히 있었다.
⑤ 유림의 흐름을 벗어나 독자적인 입장을 취한 세경이의 기개는 높이 살 만하오.
인문 11 본문 087~089쪽 |
01 ④ 02 ④ 03 ③ |
「주희와 진량의 왕패 논쟁」 |
해제 : 이 글은 당대 송나라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희와 진량이 왕도와 패도에 대해 벌인 논쟁을 설명하고 있다. 주희는 맹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개인의 내면적 도덕을 중시했다. 그는 하, 은, 주 삼대를 이상적인 국가로 보고, 그 이후에 전개된 역사는 온전한 형태의 도가 전수되지 않은 암흑기로 천리보다 인욕이 앞선 시대로 보았다. 이에 반해 진량은 도를 경영하는 방식은 변할 수 있지만 도가 훼손될 수는 없으며, 영웅적인 행위와 업적이 천지의 도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며 주희를 비판했다. 주제 : 주희와 진량의 왕패 논쟁 구성 1문단 :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계승한 주희의 정치철학 2문단 : 삼대 이후 도의 전수에 대한 주희와 진량의 논쟁 3문단 : 한고조와 당 태종의 통치에 대한 주희의 입장 4문단 :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주희를 비판한 진량의 입장 5문단 : 왕패논쟁의 배경과 주희와 진량에 대한 후대의 평가 |
01 세부 정보 파악 답 ②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② 1문단에서 주희와 진량 두 사람이 왕도와 패도에 대해 논쟁을 벌였음을 알 수 있으며, 5문단에서 이들의 논쟁이 당대 송나라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로서 제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2문단에서 주희는 사람이 온전히 도를 따라 살지 못하거나 도를 벗어나 살게 되면, 도는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고 했다.
③ 3문단에서 주희는 맹자의 도덕주의적 관점에 근거하여 천리는 공적에 의해 판단되지 않고 오직 내면의 도덕적 차원에서 문제를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고조다 당태종의 시기를 인욕으로 가득하고 천리와 거리가 멀다고 평가했다.
④ 4문단에 진량은 한고조와 당태종이 난세의 어려움을 극복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고대의 윤리적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⑤ 5문단에서 진량과 주희의 왕패논쟁에 대해 당시와 후대의 성리학자들은 주희와 입장을 같이했음을 알 수 있다.
02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기 답 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④ 진량이 사공을 중요시 하였다는 것은 맞으나, 현실주의적이고 실용적인 진량은 한고조나 당태종 같은 패주의 행위가 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틀이 되는 천지의 도를 바로 설 수 있게 하며, 그런 점에서 그들의 이(利)는 무절제한 사리사욕이 아닌 백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주희는 덕으로 인을 행하는 왕도와 힘으로 인을 가장하는 패도를 구분했던 맹자의 견해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보기>의 패자에 대해 주희는 그의 도덕성을 비판할 것임을 알 수 있다.
② 주희는 덕으로 인을 행하는 왕도정치를 해야 함을 주장하며, 한고조나 당태종과 같은 패주를 군주의 밝은 덕이 아닌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정치를 했다고 지적하며 도덕적인 결함이 있는 패자가 ‘덕치(德治)’ 즉 천리(天理)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 철학을 지녀야 한다고 말할 것임을 알 수 있다.
③ 주희는 한고조나 당태종 같은 패자의 통치가 군주의 밝은 덕으로 백성을 감화시키는 정치가 아니며 통치자의 사리사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진량 또한 한고조와 당태종이 고대의 윤리적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⑤ 4문단에서 진량은 한고조와 당태종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야 했으므로 그들의 행동은 윤리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높이 평가해야함을 주장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진량은 <보기>의 패자 역시 높이 평가할 것임을 알 수 있다.
03 어휘의 문맥적 의미 파악 답 ③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⑤ (‘…에서’ 대신에 ‘…에’가 쓰이기도 한다) 규범이나 이치, 체계 따위에 어긋나다. 의 의미를 가진 ‘벗어나다’ 이므로 ㉠벗어나 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에서’ 대신에 ‘…에’가 쓰이기도 한다) 남의 눈에 들지 못하다. 의 의미를 가진 ‘벗어나다’ 이므로 ㉠벗어나 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해석하기 어렵다.
② 맡은 일에서 놓여나다. 의 의미를 가진 ‘벗어나다’이므로 ㉠벗어나 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해석하기 어렵다.
③이야기의 흐름이 빗나가다. 의 의미를 가진 ‘벗어나다’이므로 ㉠벗어나 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해석하기 어렵다.
④동아리나 어떤 집단에서 빠져나오다. 의 의미를 가진 ‘벗어나다’ 이므로 ㉠벗어나 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해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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