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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무등산 원효사
2025년 02월 02일(일요일)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입니다. 신라 지증왕 또는 법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과 문무왕대에 원효국사가 이전부터 있던 암자를 개축한 뒤 머무르면서 원효사·원효암·원효당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한 고려 충숙왕 때 화엄종의 한 승려가 이곳에 절을 짓고 원효대사의 이름을 따서 원효암이라 했다고도 합니다.
그뒤 정유재란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1609년(광해군 1) 증심사(證心寺)를 중창한 석경(釋經)이 건물들을 다시 세우고 천왕문을 건립했습니다. 1636년(인조 14)에는 신원(信元)대사가 중수했고, 이듬해 9월에는 왕견(王堅)대사가 32불을 조성하여 안치했습니다. 1685년(숙종 11)에는 신옥(信玉)과 정식(淨式)이 지붕을 고쳤으며, 1789년(정조 13)에는 회운(會雲)이 선방(禪房)을 중창한 후 1802년(순조 2)에 법당을 다시 지었습니다. 1831년과 1847년(헌종 13)에는 내원(乃圓)과 의관(義寬)이 각각 중수했으며 1927년에는 원담(圓潭)대사가 계속 중수하여 대가람을 이루었습니다.
6·25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1954~60년에 걸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명부전·성산각·요사채 등이 있습니다. 1980년 5월 대웅전 중창불사(重創佛事) 때 금동불상을 비롯하여 소조불상군·토기·와당·철불두상·고려자기 등 시대가 다른 각종 유물이 140여 점 출토되었습니다. 또한 절 주변에는 고려시대 부도(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를 비롯하여 조선 중기의 회운당부도와 원효대사부도 등이 있습니다.

원효사 일주문

석장승

원효사 일주문

무등산원효사(無等山 元曉寺) 편액
정면에 걸린 '무등산원효사(無等山 元曉寺)' 편액은 서예가 소원 김병남(素園 金炳南)의 글씨입니다.
원효사 일주문 뒤편

뒤편에 걸린 '무등산원효사' 한글 편액은 서예가 소원 김병남(素園 金炳南)의 글씨입니다.
원효사 입구 표지석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원효국사 부도와 회운당부도 등 2기의 석종형 부도와 원담화상탑, 1961년에 세운 춘곡거사송화식 부도 등이 있습니다,
부도군
부도는 총 6기로 좌측은 1927년 절을 중수한 원담화상(圓潭和尙)의 탑이고, 우측은 회운당 부도탑과 원효국사 부도탑입니다.
석종형 부도는 회운당과 원효국사의 부도탑입니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장방형 석재를 지대석으로 하여 석종형 탑신을 받게 하였는데 현재의 지대석은 원래의 탑재가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원담화상탑(圓潭和尚塔)
삭발본사 원효유허(削髮本寺 元曉遺墟)
수법회운 원담승훈(受法會雲 圓潭承動)
도기초 적측면(道既超蹟則然)
탑사흘 이난결(塔斯屹理難訣)
숭정기원후오정묘십일월일(崇禎紀元後五丁卯十一月日 (1927년))
1927년 원효사를 중창한 스님으로 부도로 미루어 같은 해에 입적하였습니다.
회운당(會雲堂) 부도
탑신석 중앙을 파내고 당호를 새겼읍니다.
회운대사는 1789년(정조 13)선방을 중창하였으며, 1802년(순조 20에는 대웅전을 중창한 스님으로 전합니다.
즉, 19세기 초반에 조성된 부도임을 알수 있습니다.
원효국사탑(元曉國師)
석종형 탑신 중앙에 '원효국사탑(元曉國師)'이란 탑호를 음각하였으며, 상륜부의 처리는 지극히 형식적입니다. 회운당 부도와 동일 장인의 작품처럼 흡사합니다.
회운당(會雲堂) 부도와 함께 19세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범종각
범종각(梵鍾閣) 편액
범종각 편액
범종

원효사 원효루에서 바라본 무등산

당겨본 무등산

원효루
정면 5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의 2층으로 된 원효루의 모습입니다.
나라연금강, 밀적금강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역사로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합니다.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라는 무기를 쥐고 항상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의 우두머리로서 부처님의 비밀스러운 사적은 모두 듣겠다는 서원을 세워 밀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원효루 편액
원효루 편액
무등선원
스님들의 수련도장입니다.
무등선원(無等禪院) 편액

원효사 대웅전(大雄殿)
1980년 법타스님이 신축복원한 정면 5칸, 측면3칸의 다포양식이며, 팔작지붕입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
대웅전 안에는 연화대좌 위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에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결가부좌한 석가모니불좌상이 주존불로 모셔져 있고, 좌우협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정하고 있으며, 후불탱은 영산회상도가 봉안되어있습니다.
삼존불과 후불탱
삼존불 뒤 봉안된 탱화는 아미타후불탱화(1954년)입니다.
아미타후불탱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주협시 보살로 하여 보살과 사천왕, 부처님의 제자, 신중 등이 그려집니다.
이 불화는 본존 오른쪽으로 보관에 화불이 그려진 관음보살을 배치시켜, 대웅전에 모셔져 있었지만 아미타후불탱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아미타불은 화면 가운데 원형의 연꽃 대좌 위에 앉아 계시고 그 좌우에 각각 세부느이 보살상이 서 계십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두광 좌우로 네자와 동녀, 동자를 배치시겼습니다.
아미타불은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위로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도록 옷을 걸치고 잇으며, 길고 가느다란 눈썹과 엄정한 눈맵시 등은 석굴암 본존불을 연상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삼곡자세를 취한 좌우의 보살상은 일본 법륭사 금당벽화 보살상의 유려한 선맛을 그대로 재현한 듯합니다.
1954년 오지호 화백이 후불탱을 그리고, 돌아가신 후 49재에 그의 아들들이 화기를 적은 것입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은 화려한 연꽃대좌에 결가부좌하여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으며,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을 하고 있습니다.
보현보살, 문수보살
좌우보살은 화려한 천의에 연꽃을 쥐고 있습니다
신중탱
신중단의 신중탱화는 동진보살(위태천 혹은 위타천이라고도 한다.)이나 대범천왕, 제석천왕, 사천왕, 팔부신중 등의 신중을 모신 탱화를 말한다. 신중은 부처님께 귀의하여 수행정진하면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입니다.
원효사의 신중탱은 투구를 쓴 모습의 동진보살(위태천)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범천과 제석천이 배치되어 있는 구도입니다.
내부 벽화로는 사문유관상도(四門遊觀相圖)가 그려져 있고, 아미타후불탱,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원효사 성산각(星山閣)
대웅전 좌측에 위치하는 성산각은 전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집으로 1994년 개축하였습니다.
대웅전과 같이 2단의 높은 축대위에 놓여 있습니다. 낮은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전면에는 원형기둥을, 배면에는 방형기둥을 세웠습니다. 지붕의 측면에는 풍판이 있으며, 겹처마로 연등천정을 둔 5량가입니다. 외양으로 보아서는 제일 오래된 건물로 여겨지는 고졸한 건물입니다.
보통 세 분을 모시는 각은 삼성각이라 하는데 원효사에서는 성산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산각(星山閣)
성산각(星山閣) 편액은 천마산인(天馬山人) 송곡 안규동(松谷 安圭東 1907~1987)의 글씨입니다.
삼성각이라고도 하며 독성. 칠성. 산신이 모셔져 있습니다. 탱화도 각각 모셔져 있는데, 모두 1995년에 조성되었습니다.
산신은 모두가 잘아는 우리의 토속신입니다.
내부에는 산신탱. 칠성탱,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앞에 조그만 석불좌상 16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칠성탱
수명장수신으로 일컬어지는 칠성입니다.
산신탱
독성탱
독성은 스승없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독성 즉 나반존자입니다.
나반존자는 삼명과 자리이타의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명은 전생을 남김없이 아는 숙명명
미래를 꿰뚫어 보는 천안명
모든 고통의 원이 되는 현세의 번뇌를 끊는 누진명입니다.
자리이타는
자기를 위하여 수양을 하는 것은 자리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이타입니다.
약사전
전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약사전은 1993년에 건축되었으며, 약사여래불 좌우로 일광 월광 양대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약사여래불 탱화는 2009년에 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약사전 내에는 1955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칠성탱화가 약사부처님 기준으로 오른쪽에 모셔져 있습니다. 아마도 칠성각에 모셔지다가, 새로 성산각을 만들면서 일괄적으로 함께 탱화를 조성하면서 여기에 남게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약사전(藥師殿) 편액
약사불을 본존으로 좌우에 일광, 월광보살을 협시로 모시고 있습니다.
약사여래불 탱화는 2009년에 조성되었습니다.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는 선정인을 취하고 손바닥 위에는 약함이 놓여있습니다.
칠성탱화
1955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칠성탱화입니다.
주존불이 치성광여래인데 치성광여래는 북극성을 말합니다. 치성광여래 좌우로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시립하고 있는 구도입니다.
아마도 칠성각에 모셔지다가, 새로 성산각을 만들면서 일괄적으로 함께 탱화를 조성하면서 여기에 남게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모자상
원효당과 성산전 사이에 자리한 명부전(冥府殿)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측면에는 풍판을 하고 있습니다.
낮은 기단위에 원형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으며 익공식가구를 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과 명부시왕을 모시고서 돌아가신 영가들을 위한 천도제와 사십구재 등을 하는 이 지장전은 1982년에 건축되었으며, 지장탱화는 1990년에 조성되었습니다.
내부는 내진간에 고주가 없이 변주인 평주위에 주두와 공포를 포착하여 그 위에 직접 대들보를 얹었습니다. 대들보위에 동자주를 세우고 종보를 걸친 다음 판대공을 얹고 그 위에 첨차형 부재를 놓고 장설와 종도리 순으로 가구했습니다.
명부전(冥府殿) 편액
명부전 편액은 천마산인 송곡 안규동(松谷 安圭東 1907~1987)의 글씨입니다.
송곡 안규동은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81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선생은 옥동이서를 시초로 윤두서, 윤순, 이광사, 이삼만, 기정진, 모수명, 송운회로 이어지는 동국진체(東國眞體)의 호남 서맥을 계승하였습니다.
선생은 오체에 두루 능했으며 특히 행초에 일가를 이루었고 광주에 서예연구원을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습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 명부시왕과 시왕을 모시는 10동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판관 2위, 녹사 2위, 장군 2위 등 모두 29를 모십니다.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지장보살
지장보살은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며 부처가 되기를 포기한 보살입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곳이 지옥입니다.
지장보살은 그 지옥 속으로 뛰어들어 고통받는 지옥의 중생을 모두 구하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지장보살은 지옥문을 지키면서 그 곳으로 들어가는 중생을 못 들어가게 막고 계십니다.
시왕은 죽은 사람의 죄업을 판정하는 분들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49일 까지는 7일 마다 심판을 받고, 그 이후에는 100재, 소상, 대상까지 열 번 동안 각 왕에게 심판받게 됩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명복을 위하여 재를 지내는데 그 재를 모시는 곳이 명부전입니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무독귀왕, 아난존자 등 삼존상과 시왕상, 판관, 녹사, 사자, 덩자, 목조지장입상, 지장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원효전(元曉殿)
정면 1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90년5월에 건축되었습니다
원효전에는 원효사의 창건주로 숭상되는 원효대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습니다.
원효대사의 진영은 세가지 형태로 모셔졌는데, 각각 보는 방향에 따라서 다르게 조성되어져 있습니다.
현재의 원효전 전각 내에는 1710년 추월산 만수사에서 조성되어졌다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이곳 원효사에 소장되고 있는 시지정 유형문화재 15호인 원효사소장만수사범종(元曉寺所藏萬壽寺梵鐘)이 있습니다.
원효전 편액
옛날에는 개산조당(開山祖堂)이라는 편액을 걸었습니다.
개산조당 편액의 낙관엔 '신미단양(辛未端陽) 범일(梵日)'이라 적혀 있습니다.
원효사 창건주로 숭상되는 원효국사의 진영은 세가지 형태로 모셔졌는데 각각 보는 방향에 따라서 다르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원효대사 진영
원효사소장만수사범종(元曉寺所藏萬壽寺梵鐘)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
1710년(숙종 36) 추월산 만수사에서 조성되어졌다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이곳 원효사에 소장되고 있는 광주 유형문화재 제15호인 원효사 소장 만수사 범종이 있습니다.
총고 86㎝․구경 63㎝인데 용뉴부(龍鈕部)는 20㎝, 종신부는 66㎝인 범종입니다.
용뉴는 각각 여의주을 물고 있는 2마리의 용으로 장식하였는데, 용머리 위에도 불꽃에 휩싸인 1개의 여의주을 장식하였습니다.
용두의 표현이나 천판에 드리운 발의 조각기법은 약간 경직되어 있습니다.
또한 소리를 내는 음관으로써 용동시설 대신 천판상부에 원형의 음공(직경 2㎝)을 마련하였습니다.
종 위쪽 띠에는 범자(인도어) 문양 띠를 둘렀으며, 띠 아래에는 사각형 유곽과 4구의 보살상이 동일선상에 번갈아 배치되었습니다.
유곽과 4구의 보살상 사이에 왕실의 안녕을 비는 글이 새겼습니다.
유곽 안에는 연꽃무늬의 바탕에 연봉오리 모양의 9개의 유두가 도드라지게 새겨 있습니다.
유곽
용뉴
동종(銅鍾)의 정상(頂上)에는 일체쌍두(一體雙頭)의 용뉴(龍鈕)를 구비하고 있으며 정상(頂上)의 형태는 중앙에 경(徑) 2cm정도의 원공을 갖춘 반구형(半球形)입니다.
천판(天板)인 종정부(鍾頂部)와 접하는 계선상(界線上)에는 1조(條)의 융기된 태선대(太線帶)를 돌려 구분(區分)하고 그 밑으로 상대(上帶)로 보이는 위치에 경(徑) 7cm정도의 원좌에 범자(梵字)를 갖춘 문양대(紋樣帶)를 돌려 장식하였습니다.
보살입상
종신(鍾身)에는 독립되게 떨어져 있는 유곽 4개(個)를 일정 간격으로 배치하고 있고, 유곽문양은 사격문을 엇비슷하게 교대로 장식 처리하였고 화좌에 자방이 돌기된 9유두를 갖추었습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원형 두광과 보관을 갖춘 22cm 높이의 보살입상 4구(軀)를 배치하였습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입상을 조각하고 ‘주상삼전하(主上三殿下)’라는 명문을 새겨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였습니다.
이중 1구(軀)의 보살입상 바로 밑으로 ‘강희(康熙)四十九年경인(庚寅)四月日’ ‘추월산만수사대종주성야(秋月山萬壽寺大鍾鑄成也)’라는 명문(銘文)이 있어 주조년대(鑄造年代)를 확인할 수 있으며 다른 여러 곳에도 양주(陽鑄)된 명문(銘文)과 후각(後刻)한 명문(銘文) 등이 보입니다.
하대(下帶)
하대부분에는 1954년 대웅전 중수 때의 시주자 명단이 새겨져 있고, 이 당시의 범종 등에서 공통으로 보이듯 당좌와 하대는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명문의 내용으로 보아 강희(康熙) 49年 경인(庚寅)은 숙종(肅宗) 36年(1710)이며, 추월산(秋月山) 만수사대종(萬壽寺大鍾)으로 주조(鑄造)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효당 뒷쪽에 있는 원효대사입상
감로정
감로정(甘露井) 편액
동부도(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
이 부도는 팔각형의 집 모양이지만 맨 아래 돌은 사각형으로 하였습니다. 연꽃을 팔각형으로 새기고 네 곳에 사자와 비슷한 짐승을 조각하여 사각형 모양이 위의 팔각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지붕은 기와집 지붕과 같이 서까래와 기와를 자세히 표현하였고, 모서리 위에는 용, 다람쥐, 비둘기, 거북 등을 조각하였습니다.
전체적인 모양이나 장식이 해남 대둔사 서산대사 부도와 비슷하여 조선시대에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어느 스님의 부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대석(地臺石)과 하대석(下臺石)을 1석으로 한 4각방형에 8각연화문(八角蓮華文)의 복련(覆蓮)을 앉히고, 네 모서리에 사자상(獅子像)을 양각으로 새겨 모두 부도 중심부를 향하게 하였습니다.
이 절에 전하고 있는 몇 안되는 유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