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
요트의 선창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온다.
어제 선실 침대에 누운 후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골아 떨어졌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를 넘었다.
언제나 일어나는 시간에 눈이 떠진 것이다.
눈을 뜨고 제일 먼저 기상상황을 체크한다.
전날 항해에 망가진 나비오닉스 플로터가 설치된 태블릿PC가 계속 말성이다.
터치스크린이 작동하지 않아 조작이 잘 되지 않는다.
어쩔수 없이 전화기에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다운 받아서 기상을 체크해 나간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있고, 내일기상은 더 좋지가 않다.
고민이 머리를 아프게 한다.
요트 살롱으로 나오니 이미 한선생은 일어나 밖으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유람선 선착장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왔다.
아침에 커피를 타야겠다고 생각하고 커피를 찾는데 찾지를 못하겠다.
그런 사이 제이가 나온다.
제이가 나오니 치즈도 같이 나온다.
한성생도 도착을 했다.
아침에 제이가 커피를 한잔씩 돌린다.
모두 얼굴이 어제보다 밝아 졌다.
다들 꿈같은 잠을 잤다고 한다.
오늘 일정을 구상해야 한다.
어제부터 기상을 계속 점검하고 있다.
동해안에 계속해서 강풍이 불고 있다.
강원도에는 큰 산불도 났다고 한다.
이곳 울릉도까지 아련한 연기냄새가 난다고 해경출장소 소장님이 이야기 하신다.
오늘은 출항을 해야 하는 날이다.
우리가 돌아가는 항로상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귀항하는 8일 새벽녘에는 동해안 강원도 앞바다에 30노트가 넘는 바람이 예보되어 있다.
그 서풍은 아침 8시경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그 서풍이 우리가 가야하는 항로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귀항하는 여정이 험난할 것이다.
여러 일정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제이와 치즈가 아침을 챙긴다.
햇반을 데우고, 제이가 손수 만든 멍개 젓갈이 올라왔다.
제이가 이번 항해를 위해서 담근 오이소박이도 나왔다.
요트 쌀롱에서 근사한 아침 식사를 했다.
후식으로는 사과도 나왔다. 맛있는 사과다.
식사 후 오늘 일정에 대한 회의를 진행 한다.
우리가 귀항하는 방안을 2개 마련하였다.
첫 번째 안은 7일 오후 9시 출항하여 8일 해지기 전에 도착이 목표,
더 늦어진다고 해도 잘 아는 바다이니 야간에라도 접안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조금 거친 바다를 항해해야 한다.
두 번째 안은 8일 오전에 출항 9일 새벽에 도착하는 안이다.
문제는 내가 9일 오전에 서울에서 치과예약이 잡혀 있는데 시간내에 도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장점은 오늘 출발하는 것보다 바다의 상태가 안정될 것 같다는 점.
회의를 진행 한 결과 선장인 내 의견에 따르겠다는 것으로 결정이 되고 출항일정은 내가 수시로 점검해서 결정하기로 했다.
일단 첫 번째 안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남은 시간에 무얼 할지 고민을 한다.
한선생이 해상 관광을 하지고 한다.
다들 찬성하여 요트를 타고 울릉도 일주관광을 하기로 하였다.
혹시 모를 파도에 대비하기 위하여 선실들 짐도 정리하고 고정할 것들도 고정했다.
선내의 화장실이 망가진 관계로 출항 전에 모두들 화장실도 다녀왔다.
해경 출장소에 울릉도 해상 관관을 나간다고 통보를 하고, 만일 기상이 좋으면 바로 강원도 수산항으로 출발 할 수 있다고 연락을 하였다.
울릉도 여행을 마치고 현포항에 잠시 들려 최종 결정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12시가 다 되어 씨엘제이호를 이안시켜 일주 관광을 나간다.
그런데 사동항 내에를 운항하는데도 바람이 강하게 분다.
사동항을 빠져나와 좌현으로 방향을 틀어 나간다.
수려한 울릉도의 풍광이 아름답다.
약 5노트의 속로 사동항에서 도동항, 저동항을 바라보고 살살 달려간다.
울릉도 둘레길의 경관이 아름답다.
조화를 이루는 다리들과 해안 절벽을 깍아 만든 둘레길,
우리가 어제 걸었던 도동항에서 저동항으로 넘어가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다.
우리들을 보고 손을 흔드는 사람들도 있어 우리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마 우리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바다에 떠있는 요트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들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유자적 요트를 타고 울릉도의 경관에 빠져 관광 삼매경에 빠져 있다.
저 멀리 죽도가 보인다.
죽도를 향해 쭉 나아간다.
죽도를 지나니 관음도가 좌측에 나타난다.
관음도에는 바다를 향해서 커다란 구멍들이 나있다.
꼭 숨겨놓은 잠수함 기지들이 있을 것만 같다.
이곳은 남서풍을 울릉도가 막아주어 바람도 약하고 파도도 1미터가 넘지 않는다.
관음도를 좌로 두고 돌아서니 저 멀리 삼선암이 보인다.
갑자기 제이가 우현 부표라고 소리친다.
나는 부표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요트의 속도가 확 줄어든다.
이곳부터는 파도도 거칠어지고 맞바람이 불어와서 그런가 생각하고 계속 진행 한다.
그런데 요트의 속도가 2노트, 1노트, 0노트, 다시 1노트로 자꾸 변한다.
제이가 아까 지나간 부표가 다시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든다.
제이에게 조타를 맞기고 선미로 가 보았다.
파도와 스크류가 만들어내는 물결로 수면 아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제이에게 스로틀을 내리라고 소리친다.
그 순간 저 아래로 하얀 밧줄이 보인다.
그리고 엔진이 꺼져 버렸다.
순간 머릿속이 하해진다.
요트의 속도가 줄어드니 요트가 조류에 밀려 좌현으로 틀어진다.
물속의 밧줄이 좌측으로 이동한다.
부표의 밧줄에 킬이 걸린 것이다.
얼른 보트 후크를 가져와 줄을 끌어 올렸다.
줄이 올라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정도까지 올라왔으나 더 이상은 올라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다.
한선생에게 잡고 있으라고 하고 줄을 끊을 칼을 찾으러 선실로 들어갔다.
칼을 찾아서 나오니 한선생이 줄이 갈수록 밀려 내려가 줄을 잡고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이미 줄이 한참을 내려가 수면에 닿을 정도다,
한선생에게 줄을 놓으라고 했다.
안되면 다시 줄을 끌어 올릴 방안을 찾아보기로 한다.
요트 아래 좌현 쪽으로 하얀 줄이 보인다.
다시 보트후크로 줄을 겉어 올리려고 하는데 보트후크가 닿지를 않는다.
한선생이 시도를 해보아도 안 된다.
다시 머릿속이 하해진다.
요트는 계속 조류에 밀려 선수가 돌아간다.
우리요트에는 스쿠버세트가 준비되어 있다.
공기통도 있다. 순간 장비를 챙겨서 물에 들어가야 하나 고민을 한다.
조류도 세고 물도 차가운데, 해경에 연락해서 도움을 청해야 하나 많은 생각이 든다.
그간의 경험으로 무리를 하지 않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인 것을 알고 있다.
엔진에 시동을 걸어보니 시동은 걸린다.
내가 다시 조타기를 잡고 걸린 줄에서 빠져나오기를 시도해본다.
살짝 전진해 본다. 그런데 걸린 듯 속도가 나지 않는다.
다시 후진 기어를 넣고 살짝 되로 빼어본다.
엔진도 꺼지지 않고 요트가 살짝 뒤로 밀린다.
다시 전진 기어를 넣고 전진해본다.
요트가 앞으로 살짝 나가는 느낌이 든다.
모두에게 혹시 수면 아래로 줄이 보이는지를 찾아보라고 했다.
다들 찾아보아도 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제이에게 다시 조타를 맞기고 내가 갑판에서 빙 둘러가며 요트아래를 점검 한다.
정말 걸려있던 줄이 보이지 않는다.
제이에게 다시 조타기를 넘겨받아서 전진기어를 넣고 살짝 전진해 본다.
요트가 1,2,3 노트 속도가 올라간다.
다행이다.
줄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스크류에 줄이 감기지 않은 것이 하늘이 도운 것이리라.
우리는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삼선암 쪽으로 나아간다.
삼선암을 지나며 파도도 거칠어지고 바람도 강하게 분다.
우리는 코끼리 바위까지만 관광을 하고 다시 사동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때 한선생님이 그것이 좋겠다고 하신다.
다름이 아니라 사동항 해경출장소 소장님이 우리가 가려고 했던 현포항에 우리가 정박할 곳이 없다고 사동항으로 돌아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사동항으로 뱃머리를 돌려 돌아왔다.
사동항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시간이 4시가 넘어간다.
관광중 줄에 걸리는 사고도 있었고, 항구로 돌아오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온다.
각자 한두시간 쉬기로 했다.
한시간 정도 꿀 맛 같은 낮잠을 잤다.
일어나 다시 기상상황을 살펴본다.
풍랑주의보는 해제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기성청 예보는 동해바다의 파고가 2~3미터다.
내일도 별 변화가 없을 것 같다는 예보다.
미국기상을 보니 내일 새벽에 엄청난 바람이 동해에 예보되어 있다.
그런데 바람이 동해 앞바다에 국한 된다.
아침 10시경에 동해 중부 일부구간에 그 바람의 영향으로 시속 25노트정도의 바람이 분다.
잘 하면 그 바람 지대만 피하면 2미터 내외의 파도만 헤치고 가면 될 것 같다.
어제의 4미터 파도에 고생을 한 지라 2미터 파도는 다들 잘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설치한 도져가 앞에서 달려드는 파도 및 바람을 막아주어 파도스프레이에 몸이 젖는 것을 막아주니 추위도 덜하고 덜 힘든 항해를 할 수 있게 해준 덕이다.
저녁 7시.
준비되는 대로 출항하기로 결정 했다.
제이와 치즈가 간단한 저녁을 준비한다.
컵라면과 햇반이다.
그런데 나와 한성생은 저녁을 먹는데 제이와 치즈는 저녁을 먹지 않는다.
표면적인 이유는 속이 좋지 않아서.
그런데 나중에 진정한 이유를 듣고 정말 미안했다.
내가 변기를 망가트리는 바람에 여성들이 변기를 사용할 수 없으니 안먹는 것이 상책이 되는 것이다.
제이와 치즈에게 너무 미안하다.
저녁을 먹고 마지막 화장실을 가기위해서 유람선 선착장으로 갔다,
그런데 문이 닫혀있다.
어쩔 수 없이 해경 출장소로 갔는데 거기에도 문이 닫혀 있다.
다행이 길 건너에 호텔이 있어 호텔 화장실을 이용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해경출장소 소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화징실에 있는데 문소리가 나서 나와 보니 아무도 없고, 혹시 몰라 우리요트에 와보아도 아무도 없어서 전화를 주신 거라고 한다.
우리는 8시경에 출항을 하겠다고 하니 가기 전에 커피라도 하고 가라고 하신다.
해경소장님이 커피도 한잔 주시고, 돌아가는 길에 안전 항해를 당부하신다.
해경출장소 소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요트를 이안 시킨다.
그런데 바람에 자꾸 요트가 앞으로 밀린다.
요트선수에는 울릉군 행정선이 정박해 있는데 씨엘제이호와의 거리가 몇 미터가 안 된다.
선수를 우측으로 완전히 꺽어서 나오는데 그만 요트 선수와 행정선 옆구리가 살짝 스치고 말았다.
바로 소장님이 괜찮으냐고 물어 오신다.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우리는 사동항을 빠져 나왔다.
제이가 야간이고 잘 모르는 항구이니 주의해서 운항하라고 다시한번 주의를 준다.
내가 조타를 하고 제이, 한선생, 치즈 3명이서 전방 견시를 한다.
조심조심 3노트 미만의 속도로 항구를 나와서, 낮에 본 부의들을 상기하면서 멀리 돌아서 항로를 잡는다.
울릉도 가두봉 등대를 빠져 나오는 데에만 30분 넘게 걸렸다.
이후 곰바위까지 나오는데 또다시 1시간이 걸렸다.
이유는 앞조류가 있어서다.
울릉도에 올 때에도 앞 조류 였는데, 다시 돌아가는 길도 앞 조류다.
마침 동해 해경에서 현 위치를 물어보는 전화가 왔다.
우리의 위치와 항로를 알려준 후 현재 조류의 방향을 물의니 110도 1노트의 조류라고 한다.
울릉도를 빠져나와서 우리의 항로는 290도다.
정면에서 조루가 우리기 가는 방향을 방해 한다.
그나마 바람은 조금 약하고 파도도 1~1.5미터 정도다.
요트의 피칭을 방지하고자 메인세일을 펴고 수산항으로 나아간다.
밤 10시가 넘어 제이에게 조타를 맞기고 나는 선실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하늘에는 커다란 달과 별들만이 반짝인다.
첫댓글 글을 읽고 있는데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
4일차는 퇴근해서 읽어야겠습니다. 다 읽고 나서 다시 한번 더 읽고 싶습니다. 엄청 다이나믹한 항해를 하셨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