뮬리브완지(muli bwangi)?
("안녕하세요?"의 말라위 토속언어)
아프리카(Africa),
TV 프로,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던, 멀고 뜨겁고 위험하다는 그곳을 다녀왔습니다.
8월 8일부터 23일까지 16일간 중동부 아프리카의 케냐와 말라위라는 나라에서 의료봉사를 마치고
23일 아침 아프리카보다 더 뜨거운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실제로 케냐와 말라위 날씨는 저녁에 싸늘하여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였습니다. (케냐는 고원, 말라위는 남반구라서 겨울)
아침 6시(현지시간)에 말라위 수도 리롱궤에 있는 숙소를 출발하여 리롱궤 공항에 도착하니
10시 30분에 출발한다는 케냐행 비행기가 12시 50분으로 변경되었고, 케냐 공항에서 6시간,
방콕 공항에서 약 10시간, 인천공항에서 2시간 반을 기다려 대구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총 비행시간 약 20시간, 기다리는 시간 약 25시간, 한국시간으로 해서 계산해 보니
출발에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45시간 정도 걸렸으며, 그 동안 저의 수염은 까칠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도시화와 개발의 시동이 걸렸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곳에는 크고 선한 큰 눈동자를 가진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으며,
끝없이 기다리면서도 별로 불평하거나 항의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슈바이처 아니라도 슈바이처 흉내를 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났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아이들 환자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보통, 엄마들이 아이 하나를 업고 둘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소아청소년과가 전공인 저에게는 너무나 할 일이 많았습니다.
통역을 통하여 진료를 하면서도 거의 2~3분에 한 명의 환자들을 보았으나 기다리는 줄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우리나라 처럼 감기와 위장염 환자가 많았으나, 수두, 홍진, 피부병, 폐렴은 물론
먼지로 인한 알레르기 환자도 많았고, 잘 걷기로 유명한 마사이 족에게는 관절염이 많았습니다.
내 앞에 앉은 에이즈 환자, 난생 처음으로 에이즈 환자의 몸에 청진기를 대고 호흡음을 들었습니다.
함께 간 의사들은 물론 저도 에이즈와 말라리아와 토속 전염병의 불안이 없지 않았으나
의사라는 직업의식으로 마스크도 걸치지 않은 체 겁없이 뛰어들었습니다.
위험한 만큼, 그들의 해맑은 웃음과 만족해 하는 표정에 보람도 컸습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정말 의사다운 의사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으며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케냐에서는 도로 포장은 엉망이고, 차량은 낡았고, 운전수는 버스를 거칠게 몰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수도 나이로비에서 100여 Km 떨어진 마사이 족이 사는 곳으로 진료를 가는
길에 타이어에 펑크가 났고, 돌아오는 오르막 길에서는 드디어 큰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일행 57명을 태운 트럭을 개조한 버스가 오르막길을 오르다 기어 변속과 브레이크에 문제가 생겨
뒤로 밀리면서 뒤쪽으로 가속이 붙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 어~" 하는 탄성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150여 미터를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던 버스는 길옆으로 90도 뒤집혀 지고 말았습니다.
난생 처음 당해보는 버스전복 사고, 그것도 아프리카에서 말입니다.
옆으로 누운 버스에서 위를 쳐다보니 기름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보던 장면이 생각나고 폭발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목을 돌려보고 몸을 만져보니 특별히 다친 곳은 없는 듯 하였습니다.
나중에 보니 다리와 입속에 상처가 났고, 운동화가 찢어졌습니다.
결국 저는 창문을 통하여 좀 일찍 빠져나왔습니다. 날씬한 몸매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 늦게 위험 무릅쓰고 버스에서 탈출한 현지인이 깬 뒤쪽 창을 통하여 나왔습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제가 늘 차고 다니던 디카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버스에서 나온 즉시 3장의 생생한 사고 순간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디카를 가진 사람은 많았지만 그 순간의 사진은 저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대부분의 봉사단원들은 크게 상처를 입지 않았으나,
목과 다리와 팔을 다친 세 명의 중환자가 발생하여 지나가던 차를 세워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교통사고가 난 후 두 시간이 지나도 경찰도 구급차도 오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버스가 올 때까지 끝없이 기다리며 어두운 아프리카 벌판에서 하이에나의 습격을 걱정해야 했으나
사고로부터 살아남은 우리 일행은 어느 때보다 동료애가 크게 생겼났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죽다가 살아난 사람들"끼리 카페를 하나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카페 이름을 "아죽살"하면 될 것 같네요.
16일간의 아프리카 이야기,
오늘은 간단히 소개만 하고 시간이 나는 대로 출발에서 귀국까지 희로험락(喜怒險樂)의
생생한 아프리카 이야기를 세세하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프리카 가는 길은 두바이와 방콕을 경유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방콕을 경유하는 길이었습니다.
케냐의 무료진료소. 수백명의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라위 소아과 무료 진료소 앞 대기실. 말라위 크리니션(의사 아래 단계이나 이곳에는 진료를 함) 3명과 진료를 했습니다.
크고 해맑은 눈동자를 가진 형제 환자. 참으로 귀여웠습니다.
귀를 들여다 보는 이경으로 중이염을 가진 환자의 귀를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케냐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진료를 받을 때 우는데, 이 녀석은 웃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저도 간호사도 엄마도 통역도 웃고 있음
케냐 빈민촌에서 만난 너무나 예쁘고 귀여운 3개월 된 아기. 이방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에이즈를 가진 여인. 본인이 에이즈 검사를 원하여 에이즈 검사 키트(kit)로 검사를 하니 정말 에이즈 포지티브(positive)가 나왔음.
말라위 리롱궤 시골 고등학교에서 진료를 하고 있음. 밖에는 물론 교실 안에도 많은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린이 피부병 환자. 이 사진을 한국의 피부과 의사에게 메일로 보내서 상담까지 했습니다.(아토피가 태선화 되었으며 큰 병은 아님)
저것이 우리가 타고온 버스, 펑크가 나고 오버 히팅이 되더니 드디어 전복사고.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독설의 묘지명을 남긴 버나드 쇼의 비문이 생각났습니다. 더 리얼한 사진이 있으나 초상권문제를 생각해야 할 것 같아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이 사진을 올립니다. 저 아래 언덕으로 한 바퀴만 더 굴렀으면 여러분과 영원히 Bye bye 할 뻔
말라위 호수(Malawi lake). 호수가 아니라 바다처럼 보였습니다. 길이 600km(365마일), 넓이 50~100km. 해변 아니 호변까지 있는 완전히 바다였습니다. 이 호수의 길이가 365마일이라, calendar(달력) lake라는 별명이 붙어 있음. 그래도 아프리카 3등 밖에 안됨.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말라위 가는 비행기에서 찍은 킬리만자로 산의 모습. 구름 위에 꼭대기의 위용을 들어내고 있음. 소속은 탄자니아이며 거의 6,000 미터의 높이입니다.
마지막 날 여유가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가져간 옷과 넥타이로 멋(?)을 내고, 말라위 한인회장의 아버지의 차를 타고, 말라위 리롱궤에서 한국인 간호사가 운영하는 대양병원을 찾아갔습니다.(좌로부터 이근욱 의사, 백영심 이사장, 저를 안내한 한인회장 아버지, 그리고 저). 교외에 있는 이 병원은 앞으로 간호대학과 의과대학을 개설할 예정인 상당히 큰 규모의 병원이었음. 그러나 의사가 별로 없음. 백영심 이사장은 40대 후반의 간호사로 온 몸을 바쳐 아프리카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치코모 권빌~
(Thank you very much의 말라위 토속어)
첫댓글 원장님, 무사(?)히 잘 다녀오셨다니 반갑습니다.
제반 여건이 좋지 않으니 진료환경은 물론 교통보 불편하고
더군다나 아찔한 교통사고 까지 당하셨다니 염려가 됩니다.
우리 카페에 원장님이 회원이신게 자랑스럽습니다.
세세한 자료는 다음 봉사를 위한 지침이 되겠습니다.
아직 여독도 덜 풀렸을텐데 빠른 소식 감사드리며 더위에 건강유의하세요.
평소 아프리카 흑인에 대해 미개하고 지저분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이사진을 보니 천진난만한 어린이를 보니 그들도 기아와 질병에
해방하고져 하는 갈망이 보입니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는 이웃"이라는 봉사정신을 실천하는 박사님께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