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마이클 셔머 지음
- 출판사
- 바다출판사 | 2007-11-12 출간
- 카테고리
- 과학
- 책소개
- 이 시대의 사이비 과학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 현대 사회에 만...
평가: ★★★★★
우리는 희망을 갈구한다.
희망이란 지금은 없는 것, 갖지 못한 것, 이루지 못한 것, 찾지 못한 것 따위에 대한
불안 및 욕구에서 시작한다.
즉, 희망의 뿌리에는 현실을 무언가 늘 부족하게 보는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희망은 없고, 않고, 못한 현실의 고달픔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된다.
이런 역설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희망이라는 것이 혹 인간의 속절없는 근본적 조건은 아닐까?
희망을 가지면 가질수록, 지금-여기라는 나의 현실은 더욱 어둡고 불안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다.
회의 skepticism란 어떤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이전에,
그리고 내가 이러저러하다고 무엇을 주장하기 이전에,
그 주장에 대해 '의심'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심을 품는다는 것은, 과연 그 주장이 타당한지 살피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런 회의가 가능한 근거는 무엇일까? 바로 '이성'일 것이다.
이성이란 세계와 존재, 정체성 등에 대해서 캐묻고 따지고 판단하는 능력,
즉 인간의 지적 능력을 포괄적으로 표현한 개념이 이성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근본조건이며,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결론으로 말하자면, '회의'란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길을 모색하는 방법'인 것이다.
-역자의 글 중에서-
내가 볼 때 기적, 괴물, 신비를 믿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사기꾼이나 협잡꾼, 광신자가 아니다.
대부분 정상적인 사람들이며, 어떤 식으론가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다.
이성을 이용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과학적인 방법을 따르는 것이다.
과학이 진보적인 까닭은 과학적 패러다임이 실험, 확증, 반증을 통한 지식의 누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도 실수를 한다. 하지만, 과학은 '자기교정'이라는 능력이 있다. 이것은 리처드 파인만이 말했듯이 "일종의 철저한 정직함-자기 생각이 반박될 가능성까지 고려하는 것-에 해당하는 과학적 사고원리라고 할 수 있다. 즉, 실험 결과를 설명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요인들까지 모두 보고해야 한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패턴을 찾는 동물이다.
복잡하고, 변덕스럽고, 우연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아다닌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이야기를 짓는 동물이기도 하다.
수천 년 동안 신화와 종교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패턴들, 곧 신들과 하느님,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신비로운 힘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조물주와의 관계, 우주 속 우리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현대 과학적 사고방식의 역사가 몇 백 년 밖에 되지 않은 반면,
인류는 몇 십만 년 동안 존재했기 때문이다.
인류 진화의 99.9%는 우리 종의 선조들이 살았던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열세 번의 밀레니엄 동안에 뇌의 진화가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진화는 그렇게 빠르게 일어나지 않는다.
패턴을 추적하고 찾아낼 때 관건이 되는 것은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무의미한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 대개는 아무 해도 입히지 않으며,
나아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불안을 상당히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까닭은,
첫째, 희망하기를 그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일반적인 방식에서 생각이 잘못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특수한 상황에서 생각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모든 것에 대해서 과학적 검증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저자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라고 묻는 것이라고.
종교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며, 신념에 관한 문제이다.
하지만 종교를 현실과 물리의 세계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를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입증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종교란 입증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럴수록 가치와 품위를 잃게 된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별자리와 일치하고,
내가 태어난 날과 시간이 내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는 믿음은
내 남은 삶을 예측가능하게 해주니 얼마나 편리한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도 나를 보살펴 준다는 믿은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전지 전능한 신이 나를 굽어보고 나의 기도를 들어준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교통사고에서 나만 살아 남았다고 해서
조상님들의 묘자리가 좋았거나,
나만이 독실한 신자이거나,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를 보호해줬다는 것은 넌센스다.
나머지 죽은 이들은 무슨 큰 잘못을 했단 말인가?
과학적으로 달의 신비가 벗겨졌지만,
여전히 밤하늘에 빛나는 달은 아름답고 로맨틱하다.
누구를 믿든
건전한 정신과 순수한 믿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태도 또한
아름답고 인간적이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비판적 사고는 배울 수 있다.
회의주의는 학습할 수 있다.
Cogita tute - 스스로 생각하라.
본문내용
과학이 진보적인 까닭은 과학적 패러다임이 실험, 확증, 반증을 통한 지식의 누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이비 과학, 비과학, 미신, 신화, 종교, 예술이 진보적이지 않은 까닭은 과거를 토대로 지식의 축적을 허용하는 목표나 메커니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패러다임들은 전환되지도 않고, 다른 패러다임들과 공존하지도 않는다. 누적의 의미를 가진 진보는 그것들의 목적이 아니다. 이런 말이 비판은 아니다. 그냥 관찰에 의한 결과일 뿐이다. 예술가들은 선배들의 양식을 개선하지 않고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낸다. 사제, 랍비, 목사 역시 스승들의 말씀을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스승들의 말씀을 되풀이하고, 해석하고, 가르친다. 사이비 과학자들은 선배들의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 그냥 그 잘못을 계속할 따름이다.--- p.90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사람들이 이상한 것들을 믿는 이유는 바로 믿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느낌이 좋다, 편안하다,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1996년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성인의 96퍼센트가 신의 존재를 믿고, 90퍼센트가 천국의 존재를 믿고, 79퍼센트가 기적을 믿고, 72퍼센트가 천사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했다.(, 1월 30일 A8) 지고한 힘, 사후의 삶, 신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불식시키려 애쓰는 회의주의자들, 무신론자들, 호전적인 반종교주의자들이 정면충돌한 것은 (일부 인류학자들이 믿는 것처럼, 만일 신에 대한 믿음과 종교가 생물적인 기초를 갖고 있다면) 만 년의 역사, 아니 어쩌면 십만 년의 진화의 역사일 것이다. 기록된 모든 역사 속에서, 전 세계 어디에서나 그런 믿음을 믿는 자들의 비슷비슷한 비율을 공통적응로 찾아볼 수 있다. 비종교적응로 이를 적절하게 대체할 만한 것이 부상하지 않고선, 이 수치는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p.504
첫댓글 그래서 가끔은 나만의 주문이 필요한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