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간다 뮌헨 - 친구를 찾아서 1.언제 : 2018년 9월11일 ~ 20((8박10일) 2.어디로 : 뮌헨-베를린-프라하-드레스덴-프라하 3.누구랑 : 정경현, 오금순, 권화주, 홍일선. 김명자. 황영자. 한은숙. 김은숙. 김순한. 예민숙. 정주현. 4.일정 : 독일은숙네(2박) 뮌헨(1박) 베를린(2박) 프라하(3박) 5.어떻게 : (1) 뮌헨 인 프라하 아웃 비행기. 호텔. 뮌헨-베를린, 베를린-프라하 기차표. 프라하-드레스덴 버스표. 은숙네서 1일 렌트카는 미리 서울에서 예약을 함.
(2) 현지에서의 일정은 따로 또 같이 자유로이
★여행을 나누다~~~~~ 허은숙 여행 잘 다니고 있는 멋진 할마씨님들! 이틀이었지만 정이 홈빡 니들 한테 눈물 나올 만큼 들었어. 많은 에피소드 남기고 갔구나. 너희들 떠난 자리가 별처럼 반짝반짝~ 하는데 여긴 소제기가 없고 다른 장치로 하는데 머리 드라이기로 청소를 했는지 수수께끼는 안풀리고 하여튼 너희가 남겨놓은 반찬으로 베를린에서 온 아들 생일에 며느리 등 여덟 식구 한상 차렸었고(너희들 음식솜씨 자랑 빼놓지 않고) 애들은 그 작은 방에서 다들 묵었다고 하니 상상이 안 되나봐. 쇼크 먹었어. 역시 멋지다고! 특히 잠자리 엄청 불편했을 텐데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볼 생각도 못했어. 하여간 너네들 한테 그냥 고맙단 말밖엔 할 말이 없다. 특히 지하실에 내려가서 국수라도 가져오려면 너무 정리가 잘되 있어서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어서 뮌헨 박물관에서 칸디스키 그림 보는 것 보다 더 행복해! 지하실만이라도 안 어지러 놓고 살아야지 작정하고 언제라도 또 와주길 기대해본다. 즐거운 시간 함께 해서 감사하다. 세 은숙이 워찌 이리 이쁘냐? 동창 친구들아~~ 잘 귀국했구나, 곱게들 나이 먹고 너희들 따뜻한 마음에 가끔은 외로운 내 마음도 더워지고. 난 너희들이 남겨 놓은 따뜻한 추억으로 감사하고 특히 꽃송이님 고맙습니다! 여고시절로 돌아가고 그리고 고생하고 싶으면 언제라도 이집 대환영이니까 열명 이상씩 떼 지어 오길~ 날씨는 어쩜 아직 이리 좋은지.
황영자 모두들 각자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겠네 민숙이 탄 차가 옆에 지나가네 모두에게 감사하고 푹 쉬고 10일 날 보자.
예민숙 그랬구나, 못 봤네 모두 잘 가 즐거웠던 시간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생각나겠지. 함께 함에 감사!
김은숙 너무 달리다 사고 날라. 금순이의 실수가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가방 끌고 나오다 꽈당 넘어져 자빠졌네. 내가 마지막을 장식했네...ㅎㅎ 잘 쉬고 만나는 날 봐요∼ 은숙아~~ 보길도 함께 여행하며 지나가며 나온 말이 정말로 독일 여행으로 이루어질지 누가 알았겠니? 살면서 더 많이 독일 느끼고 싶었지만 이번 여행만으로도 행복했어. 많은 친구들 몰아닥쳐 힘들었지? 우리에겐 잊지 못 할 추억이 되었고 ~ 고마워, 서울에 오면 꼭 만나요.
여행 돌아와 보니 촉촉한 비소리에 차분히 하루 맞이하며 지나온 발자취 돌아보게 되네.... kbs라디오 아침방송 바하의 선율 후 곧 스메타나의 몰다우 나온다니 함께 듣자. 사 온 커피 마시며... 스메타나 아니네 재즈곡moldava네.
권화주 얘들아 집에 조심히 가 행복한 여행 즐겁고 고마워 다들 무사히 집으로 잘 가.
한은숙 고등학교 때 기분으로 나이도 잊고 수학여행 잘 다녀왔네. 남들이 뭐라든 우린 여고시절로 되돌아갔다 왔네. 행복하고 소중한 잊지 못할 추억이네. 다들 아프지 말자.
김명자 자 타고 출발할 때 경현 은숙이 보았는데 넘어진 후였니? 괜찮구? 친구들 덕분에 일상을 떠나 쉼을 누리며 즐겁고 행복했어.
홍일선 허은숙 고맙다, 처음 가는 친구 집 임에도 내 집 같이 편했어. 요셉님과 요하임님까지 함께 해 더욱 따뜻한 환영이 느껴졌고 쏟아지는 별도 수 십년 만에 처음, 캠프파이어도 대학시절 후 처음. 너무 황홀했다. 모든 게 은숙이 덕분. 평생 잊지 않을게.
김순한 경현에겐 10주 같은 열흘이 우리에겐 10초 같은 열흘! 은숙이네 이틀은 패키지에선 엄두도 못 낼 일. 남편 분 따뜻한 환대~ 이웃집의 모닥불~ 소금쌀밥 먹을 뻔~ 명자의 골벵이국수~ 은숙이네 떠날 때 다리 붕괴도 한 수 거들고~ 노천식사 원 없이 했다는 내 말에 울 남편 차를 용유도로 돌리며 본인도 해보자해서 바닷가 노천서 해물칼국수 먹고 오느라 늦어진 귀가. 헤어질 때 친구들과 인사두 잘 못해서 아쉬움! 하나하나가 내 인생의 추억의 장으로 기억될거야~~ 이번 여행을 있게 한 허은숙, 정경현에게 감사의 전하고 함께 한 친구들 즐거웠데이~~
오금순 헤어질 때 눈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보람도 없이 눈 앞에서 떠나는 차를 놓쳤엉. 열흘간의 무궁무진, 상상초월, 에피소드를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함께 했기에 끄덕일 수 있는 우리들만의 특권이 되었네. 독일 은숙이도 우리들과 함께 한 이틀이 굉장한 경험이었지? 폭풍처럼 몰려왔다가 빠져나간 빈자리에 가족이 바톤 이어받고 요셉께도 마지막 인사에 길게 누워주는 신의 한 수에 감사함을 더하고. 내 친구, 그리고 동생~ 덕분에 생각으로 수없이 시도하고 다짐하던 여행을 이제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어요. 짧던 길던 꼭 한번 해보게요 마지막 에피소드 장식을 은숙에게 넘겼네. 왠지 모를 섭섭함? ㅎㅎㅎ 뭐니 뭐니 해도 이번 여행의 최고봉(갠적 생각)에피소드는 기차 끊김과 소금밥인데.... 우리 투표 해 볼까? 아~~ 열흘간의 장면 장면이 넘 좋다~~~
정경현 보길도의 하룻밤이 너무 정겹고 재미있어 뮌헨에도 한번 오라는 은숙의 말에 우린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용감하게 자유여행을 감행하기로 하였다. 일정, 비행기, 호텔, 기차표 예약을 마치고 와이파이도시락 하나 믿고 드디어 훨훨 날기로 했다. 은숙의 오지랖에 감동하며 우리 11명은 이틀 밤이나 은숙집으로 쳐들어가기로 했다. 2018. 9. 11(화) 설레는 맘 가득 안고 드뎌 인천공항. 늦게 오는 친구는 알아서 들어 오라하고 츨국장으로 고고. 기내에서 맞이하는 외국인 승무원을 보는 순간 아 루프탄자였지. 모국어 영화는 단 2편, 한편은 이미 본 영화였고 선택은 리틀프레스트 뿐이다. 자고 깨기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뮌헨에 도착. 픽업기사가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벤츠다. 연예인이 타는 15인승 멋진 차를 타고 은숙네 집으로 고고. 은숙의 집은 뮌헨에서 50㎞ 정도 떨어진 외곽지역이다. 아우토반을 달리며 차창 밖의 풍경은 여기가 한국인가 독일인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아우토반을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니 전형적인 유럽의 전원주택들이 그림 같은 초원들과 어우러져 있어 독일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내비게이션으론 얼마 남지 않았는데 좁은 골목길에 주차한 승용차 땜에 멈춰야만 했다. 기사는 화 한번, 경적 한번 울리지 않고 이집 저집 문을 두드리며 차량 소유자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친절한 주민이 돌아가는 길을 안내하여 무사히 은숙의 집에 도착하였다. 벨소리에도 인기척이 없는데 부엌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쌀을 씻어놓은 함지박과 우리의 고가구가 보여 은숙의 집임을 확신했다. 이웃의 독일 아주머니까지 은숙을 불러주었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 후 현관문이 열리며 우린 은숙과의 반가운 재회를 하였다. 밥솥 2개에 밥을 짓고 서울서 공수해간 밑반찬을 꺼내 놓으니 훌륭한 뷔페가 되었다. 친구들 모두 어찌나 음식 솜씨들이 좋은지.
식사 후 드디어 그녀의 너무나 멋진 남편을 만났다. 큰 키에 히딩크의 젊은 모습을 한 그는 어찌나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지 은숙은 복도 많다. 사진 속 그녀의 두 아들과 딸은 영화배우 못지않은 외모에 더구나 두 한국 며느리까지~ 한국 보다 더 한국스럽게 살고 있다. 30년 넘게 외로운 타국살이를 참 잘 해낸 은숙이 자랑스러웠다. 담장도 없이 나무 사이로 이웃한 앞집 로하임(의사. 부인은 스페인 여행중)은 이웃집의 고국 친구들을 위한 캠프파이어 파티에 우릴 초대했다. 샴페인을 나누며 은숙의 통역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초승달과 은하수가 흐르는 황홀한 별밤 아래에서 어릴 적 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느새 은숙의 눈가가 젖는다. 많이 외롭고 그리웠으리라.
20년 전 명자가 독일을 방문하여 찍었던 사진첩과 일선이가 직접 염색한 스카프, 민숙의 화보를 선물로 전하니 이 또한 감동이다.
9월12일(수) 바시락거리는 소리, 두런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 3시다. 잠시 후 민숙이가 어제 씻은 쌀 어디 있냐고 묻는다. 네가 들고 있는 함지박에 씻어놓았는데 했더니. 없단다. 그건 쌀이 아니고 소금이란다. 아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고? 사진까지 찍어놓았단다. 어제 밤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대로 독일어만 잔뜩 써 있는 작은 상자의 것을 뜯어 어떻게 불을 켜야 하는지 몰라 어두운 부엌에서 그냥 씻은 것이 소금이란다. 어째 쌀을 씻는데 거칠하고 알갱이가 짤막하여 독일 쌀이라서 그런가보다 했더니만 소금이었나 보다. 소금밥을 먹을 뻔 했다. 우린 그 새벽에 배 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소금밥 대신 쌀밥으로 아침을 지어먹고 느지막하게 주인장들 아침상을 봐드렸다. 역시나 오이지무침, 깻잎김치, 매실장아찌, 황태포무침, 오징어채볶음, 멸치볶음, 고추장볶음, 김 등 한국 음식을 너무나 잘 드신다.
벤츠 9인승 차량을 렌트하여 은숙의 차에 나누어 타고 란츠베르크로 향했다. 소금과 후추 교역의 거점도시로 아주 부유했으나 지금은 조용하고 예쁜 오래된 도시일 뿐이다. 광장의 테라스레스토랑에서 맛 본 독일의 쇠고기, 돼지고기, 생선요리는 아주 맛있었다. 후식으론 젤라또까지. 마더탑, 슈타트카르힐교회, 소금창고, 바이러트아를 둘러보고 암문세 호수에서 석양과 함께 호프잔을 기울이니 낭만이 흐른다. 안주는 가장 독일다운 프리첼, 커리소세지, 커리브르스트, 생선구이를 맛보았다. 모두 맛있었다.
어두어져서야 돌아와 보니 앞집 로하임이 모닥불을 지펴 놓고 우리를 기다린다. 피곤하였지만 인사차 건너갔더니 집 구경을 시켜준다. 역시 독일인답게 외관 보다는 안이 아주 아름다웠으며 가구도 현대적이고 심플하면서도 마치 갤러리에 온 듯 했다.
9월 13일(목) 오늘은 뮌헨으로 떠난다. 뮌헨에서 묵고 내일은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다. 정확히 어제 보다 1시간 늦은 시간에 기상한 친구들은 명자가 한국에서 공수해간 골벵이 소면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내가 먹기에도 맛있지만 매운 소면을 요셉은 잘도 먹는다, 신기하기만 하다.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건네며 사진 한 컷을 찍기로 했다, 요셉에게 원하는 자리를 선택하라 하니 아~~ 놀라운 센스쟁이. 거침없이 우리들 앞에 길게 눕는다. 렌트카로 기차역에 친구들을 내려놓고 렌트카는 반납해야 한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이런 시골 간이역에 사람들이 참 많다. 어떤 젊은이는 우리 차가 뮌헨 가냐고 묻는다. 이리저리 뛰어다닌 은숙 왈 어느 교량이 위험해서 기차 운행을 중단했단다. 역무원이 없는 역이라 정확한 정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교량 전까지 가서 택시나 버스로 뮌헨까지 가야한단다. 아뿔싸 우린 베르린으로 가기 위해 오늘 꼭 뮌헨으로 가야만 하는데. 20키로가 넘는 가방들을 끌고 어찌 간단 말인가. 은숙은 마트용 운전이라 뮌헨까지는 도저히 못가겠단다. 우린 2명의 친구를 은숙과 남겨두고 내비게이션 하나 믿고 뮌헨으로 출발하였다. 뮌헨 호텔에 친구들을 내려놓고 다시 렌트카 사무실에 예상한 시간 내에 도착하여 반납하고 2명의 친구와 함께 택시를 타고 뮌헨으로 돌아왔다. 독일의 초행길을 내비게이션 하나 믿고 뮌헨을 왕복하다니 참으로 대단한 우리들이다. 모두 만나 시청사 뒤 레스토랑에서 피자, 스파게티, 라자니아, 샐러드로 맛있게 식사하고 뚜벅이 뮌헨 시내 투어를 하였다.
칼스광장, 뮌헨프라우엔교회, 노우하이젠거리, 마리엔 광장, 빅투알렌시장, 신시청사, 호프브로이하우스 등을 순례하다 달마이어 커피숍에서 에소프레소를 맛보는 여유에 오데온 광장에서는 콩의자에 누워 9월의 뮌헨 하늘을 보며 자유를 누렸다. 두팀으로 나뉘어 각자 보고 싶은 곳으로 갔다. 이게 바로 여행이다~~~~
두고 온 은숙이 늘 가슴 한켠에서 함께 한다. 저녁에는 뮌헨호프로 우리들의 뮌헨에 흠뻑 취했다.
사다리 타기로 방 배정을 준비하다 문득 든 생각, 베를린은 분명 1인 실이 있었고 뮌헨의 1박만 3인 1실인가 싶어 프라하도 확인해보니 3박을 예약했는데 2박 만이 예약되어 있다. 부랴부랴 서울에 연락하니 여행사의 실수라며 1박은 회사비용으로 처리한단다. 그리하여 우린 프라하의 1박을 공짜로 잘 수가 있었다.
9월 14일(금) 9시 55분 발 베를린 행 기차를 탄다. 승차권은 서울에서 예매를 하였고 길만 건너면 역이다. 2시 30분 도착이라 서브웨이에서 점심과 물을 사기로 하였다. 음식 먼저 보내고 계산이 늦는 관계로 곧 뒤따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역에는 아무도 없다. 기차를 찾아 길고 긴 기차 앞까지 뛰어가 보았지만 일행이 안 보인다. 다시 가방을 끌며 달리기로 뒤까지 달려오니 그제야 일행들이 오고 있는데 한명은 날 찾으러 갔단다. 시간은 얼마 안 남았는데…. 그 때의 난감함이란. 마침 돌아오는 일행을 만나 14호가 아닌 4호에 올랐다가 내려서 달리기로 맨 앞 14호에 탔다. 6인용 룸이다. 친구들은 이런 기차를 타보는 것이 로망이었다며 오리엔탈 특급 같다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점심을 먹고 나서 사다리타기로 방배정을 끝내니 베를린이다. 어찌나 베를린 중앙역이 크던지 어느 출구로 나가야 호텔까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지 우왕좌왕하다 버스 안내판에 우리가 탈 142번 버스가 있음을 발견한 순간의 기쁨이란 소풍 때 보물찾기에 견줄 만 했다. 정류장 9개를 세며 가다 내려 행인에게 방향을 확인하고 걸어가니 드디어 우리 호텔이다. 체크인을 하고 뚜벅이로 베를린 대성당, 박물관 섬, 마리엔 교회, 알 렉산더플라츠 등을 둘러보았다. 마리엔느 성당 옆에서 청소년 몇몇이 우리의 트와이스의 티티에 맟춰 군무를 추고 있어 한류를 실감할 수 있었다. 곳곳에 2차 대전 때의 총탄 자국과 불탄 자리를 그대로 보전하는 독일을 보며 다시 한번 일본을 떠 올려야만 했다. 어찌 그리 역사관이 다를 수 있단 말인가. 베를린 돔 전망대에 올라 시내를 내려다보고 슈프레강 옆의 레스토랑에서 학센을 먹었다. 우리의 돼지갈비와 비슷했다. 저녁 전 지나친 슈프레강 다리 위 부의 거리악사가 아직도 있길래 다가갔다. 부녀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우린 30분 가까이 함께 즐기며 음반도 사고 팁도 두둑이 주었다. 그의 딸은 첫 연주란다. 모든 사람이 팁을 줄 만큼 소리가 아주 매력적이었고 우리도 아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우리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기도 하면서 한껏 흥을 돋운다. 베를린까지 와서 비록 음악회는 아니지만 한껏 거리 음악을 즐겼다.
9월15일(토) 버스를 타고 가 부르텐부르버, 브란덴브르크문, 국회의사당, 홀로커스트메모리얼광장, 포츠담광장, 체크포인트찰리, 젠덴르멘광장 순으로 둘러보았다. 전시된 베를린 장벽을 보며 우리의 3.8선을 떠올렸고 체크포인트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미군 복장을 한 사람들과 싸지 않은 돈을 지불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판문점을 그려본다. 헌데 우리에겐 지뢰가 묻힌 비무장지대가 있지 않은가. 도시 한가운데를 얇은 콘크리트 담장을 어느 날 사람들이 담장을 허물고 밀려들어와 통일이 되었다는 독일이 부러웠다. 야외 테이블의 식탁보가 정갈하여 들어간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와 샐러드는 지금도 입 안 가득 군침이 도는 특별한 맛이다. 게다가 레스토랑의 포인트 색깔과 그 날의 우리의 드레스코드는 동일한 빨강색이다.
점심 후 일부는 이스트사이드갤러리로, 일부는 박물관 탐방을 하였다. 난 지하철을 이용하여 이스트사이드갤러리로 향했다, 1,3키로의 장벽을 왕복으로 감상하였다. 베를린에 온 이유가 바로 이거다. 베를린 장벽 위에 세계 화가들이 그림으로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이 벽을 사이로 동과 서로 나뉘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지도자 한 사람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9월 16일(일) 오늘은 프라하행 기차를 탄다. 예상시간 보다 30여분을 더 빨리 나서기로 하고 트램을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가보니 아뿔싸~~~ 바로 베를린마라톤 코스로 차량운행은 전면 금지다. 방법은 기차로 함부르크역까지 가는 방법뿐이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기차역까지는 멀다. 그 때부터 우린 20키로의 가방을 끌며 베를린 마라톤 코스를 전 속력으로 달렸다. 완주는 아니지만 베를린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기차 시간은 다가오고 티켓은 발매기를 이용해야 하는데 동전만 사용한다. 독일어를 영어로 바꾸고 한 장 한 장 끊다보니 옆에 사람에게 물어보고 한꺼번에 끊어보자고 하길래 친절한 독일인이 터치하는 대로 놔뒀더니 4장 값을 넣었는데 2장이 나오길래 확인해보니 어머머 왕복으로 해준 것이다. 겨우 11장의 티켓을 끊고 4정거장 가서 갈아타고 2정거장인가 가야 한다는데 곧바로 환승이 될까도 의문이고 시간은 없고 불안감이 앞서는데 기차 안에서 미국인에게 물어보니 4정거장 가면 바로 함뿌르크역이란다. 미국인이라서 영어가 잘 통했나? 안심하며 역에 도착하여 같은 층 중앙의 마주보고 있는 2대의 엘리베이터로 지하에 있는 승차장으로 내려가니 어머머 내가 탄 엘리베이터는 승차장 건너편이네요. 일행은 보이지도 않고요. 다급해진 맘에 건너가기 위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보니 일행이 보여 안심이 됐다. 겨우 승차장을 찾아 맨 끝 칸에 올라타고 불안한 맘에 차내 이동을 하다 보니 여의치가 않다. 맨 뒤의 두 친구가 내려서 달려가 우리 자리에 가방을 싣고 다시 달려와 내리라고 하는 손짓에 내려서 베를린마라톤에 참가한 실력으로 달려 겨우 올라타자마자 기차는 출발하였다. 휴~~ 날이면 날마다 좌충우돌 돌발 사태가 벌어지지만 한 번도 실패한 일이 없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프라하 가는 기차까지 탔겠다 이제는 더 이상의 사건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기차 안에서 룸메이트 사다리타기 했다. 프라하에서는 3박 인지라 누구든 상관없다 했지만 은근 바라는 친구가 있는 것 같아 사다리만 정하고 뜸을 들이다 사다리를 타니 첫 번째 친구가 계 탔다며 환호한다. 몇 명의 친구가 같이 자기를 원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나를 희망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으니 누굴 탓하랴 재미없는 내 탓이다. 순한이는 베를린에서 프라하 까지 가는 기찻길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며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꼽았는데 정말 강을 따라 이어지는 풍경과 특이한 모양의 바위로 이어진 산세는 정말 살고 싶다는 맘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프라하의 호텔은 바로 역 앞이었고 가방을 두고 곧바로 화약탑에서 카를교까지 구시가지 투어에 나섰다. 화약탑, 첼레트나거리, 천문시계, 얀후스 동상,틴틴성당 등을 거쳐 값을 잘 쳐주는 환전소를 찾기 위해 헤매다 보니 골목길이 마치 미로 같다. 골목을 헤매다 굴뚝빵 냄새도 맡았겠다 시장기까지 도니 발걸음을 재촉하여 400유로를 코루나로 바꾸자마자 프라하의 명물 뜨르들로를 먹었다. 화로에 쇠막대에 꽂아 돌려가며 직화로 구워 안에 아이스크림 등을 넣어 주는데 어찌나 큰지 한 끼 때울 양이다. 뒤쳐진 몇몇 친구들은 한참 후 합류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인 카를교에 다다랐다. 매일 2만 여보의 강행군인지라 카를교 입구 탑 아래에 앉아서 쉬었다. 옆에 앉아 있던 한국인 부부는 패키지로 왔는데 카를교 다녀오라는 시간에 너무 힘들어서 쉬는 중이란다. 자녀들이 보내준 효도관광 중인데 처음엔 너무 좋았지만 지금은 자녀들이 하나도 안 고맙단다. 패키지가 다 그렇지 뭐. 매일 끌려 다니기가 너무 힘든가보다. 자유여행을 온 우리를 너무나 부러워했다. 저물어가는 카를교를 거닐며 네포묵상을 쓰다듬으며 소원을 빌기도 하고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은 프라하를 즐겼다. 블타바강엔 유람선이 유유히 다니고 푸른 숲 사이로 보이는 붉은 색 지붕과 프라하 성은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프라하는 15여 년 전에 왔던 곳이지만 그 땐 패키지라 잠깐 찍은 곳이기에 이번에 느끼는 프라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카를교 아래 레스토랑에서 호프와 식사를 하며 카를교와 프라하의 야경을 밤늦도록 즐겼다. 참으로 아름다운 곳에서, 게다가 친구들과 함께하니 오래오래 잊지 못할, 두 번 다시 올까 싶은 행복한 시간이다.
9월 17일(월) 은숙, 일선, 민숙은 독립을 선언하고 팁투어에 나섰고 우린 프라하성을 가기 위해 트램을 탔다. 트램 안에서 만난 교민은 자유여행이라는 말에 용기가 대단하다며 이것저것 정보를 준다. 용기 있다는 말에 우쭐해진 우리는 앞으로는 죽 자유여행만 할 듯이 패키지는 정말 재미없어∼.
아뿔사, 한정거장을 지나친 우리는 다시 돌아와야 했고 영국식 왕실정원을 둘러보고 성비투스대성당, 구황궁, 황금소로 등과 근위병 행진까지 봤다. 성비투스 대성당은 웅장하였으며 화려하고 정교한 스테인글라스는 이제껏 본 것 중 최고의 작품이다. 왕비의 고해성사를 비밀로 하기 위해 세 번이나 혀를 잘리는 고통을 당한 성네포묵 조각상은 은만 30톤이 쓰였단다. 왕비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왕과 지키려는 성직자, 크고 화려한 왕궁, 성당과, 황금소로에 있던 왕을 위한 서민들의 좁디좁은 집이 오버랩 되며 인간, 종교, 권력, 전쟁, 생존 사랑 등등의 낱말들이 둥둥 떠다닌다. 프라하성에서 포도밭길을 걸어 내려와 굴라쉬로 식사를 하고 카를교 아래를 지나 캄파섬에 있는 존 레논 벽으로 갔다. 몰타공화국 대사관 담장에 체코공산권 시대에 반 정부 구호를 적었던 벽으로 몰타측에서 표현의 자유라며 지우지 않아 지금은 평화의 벽이 되었단다. 존 레논 곡의 내용과 무관치 않는 것 같다. 평화와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고 체제, 이념, 사상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블타바강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쇼핑에 나서기로 했다.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에 힘들어하다가도 쇼핑의 기회가 오면 눈빛이 달라지는 친구들은 물 만난 물고기가 된다.
이날 일선과 민숙은 우리 보다 먼저 호텔에 돌아와 있었고 은숙은 밤 늦게 3만보를 달성하며 귀텔을 했다. 진즉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은숙의 학구열과 호기심, 체력은 놀랍다. 날다람쥐다. 발에 물집이 잡힌 친구 2, 허리가 아파 엉거주춤 걷는 친구들이 늘어나며 우리의 일정도 막바지를 치닫는다.
9월 18일(화) 오늘은 드레스덴이다. 국제버스는 예매를 해왔고 버스를 타기 위해 기차를 타고 1정거장 이동했다. 마침 한 독일인이 자기도 거기에 간다며 따라오란다. 데려 간 곳은 기차 타는 곳이다. 머쓱해하는 그를 뒤로 하고 지상으로 나와 드레스덴 행 버스를 탔다. 안내군이 쿠키와 커피를 준다. 옛날 우리의 고속버스가 생각난다.
프라우엔교회, 브륄테라스, 성삼위일체 성당, 군주의 행렬 등을 보고 레지던츠궁전으로 갔다. 미술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미술관으로 가고 우린 옥상정원에서 한가하게 9월의 따사로운 드레스덴의 햇볕을 즐겼다. 옆에 있던 한국인 역시 생애 최초의 자유여행이란다. 게다가 혼자서. 비행기표를 끊는 날은 두려움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단다. 우리 보고 대단하단다. 그녀는 프라하를 거점으로 여기저기 다녀오는 여행 일정이다. 초콜렛아이스크림 맛집을 찾으니 커다란 쇼핑몰이다. 아이스크림을 시켜놓고 화장실에 간 친구가 아이스크림이 다 녹도록 오지 않는다. 분명 화장실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사정이 생겼나 싶어 가보니 없다. 큰 통로에 기다리던 일행에게 아주 걱정스럽게 ‘없어’ 말하는 순간 저쪽에서 ‘나 여기 있어’ 하며 다가오는데 얼굴이 사색이다. 길을 잃었단다. 불안해하며 헤매였을 친구가 반가우면서도 놀란 그가 더 걱정이 되었다. 매일매일이 사건의 연속이다. 버스 타기 까지 쇼핑이다. 쇼핑은 역시 독일이다.
돼지갈, 맥주효모, 맥주샴푸, 발포비타민이 주요 쇼핑품목이다. DM이 나올 때 마다 맥주효모를 산다. 그게 그렇게 탈모에 좋다네 맥주샴퓨도. 아, 우리가 그런 나이가 되었네요. 모두들 전리품인 듯 쇼핑한 것들을 자랑하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드레스덴에 안 왔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짐스러워 미뤘던 가족 선물까지 모두들 알차게 쇼핑을 했다. 정류장에 도착하여 버스노선도 시간도 확인하고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왜 이런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지. 경찰에게 맞다는 확인까지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한국 젊은이 둘이 오길래 물었더니 여기가 맞긴 한데 확인해봐야 한단다. 불안한 마음에 버스회사 사무실에 들러 확인하니 어머나 아침에 내린 그 임시정류장이란다. 시간에 쫓겨 다시 달리기다. 그 때 아까 그 젊은이가 시간이 되어도 우리가 오지 않자 데리러 오고 있다. 참 고맙다. 다행히 30여분 늦게 도착한 버스를 타고 무사히 프라하로 돌아와 호프집에서 이번 자유여행의 마지막 밤을 자축하였다. 이 밤은 긴장감도 풀리고 후련함으로 좀 취하도록 마셨다. 기분 좋은 밤이다.
9월 19일(수) 드디어 귀국이다. 예약 된 샌딩 차량으로 공항으로 이동하여 프랑크프루트에서 환승하는 경로다. 프랑크프루트에서 2번의 검표를 거쳐 게이트로 이동하였다. 이제 정말로 여행 끝이다. 택스리펀도 했고 게이트도 열렸다. 바로 이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친구를 두고 가야하나 같이 남아야 하나 절대 절명의 순간이다. 티켓이 없단다. ‘내가 마지막으로 큰 사고 치나봐’하는 당황한 친구를 진정시키며 차근차근 찾아보다가 직원에게 갔다. ‘돈 워리’ 재발급해준다.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 비행기를 타는 순간 이제는 정말로 이 여행이 끝난다. 기내식에, 자고 깨다 보니 인천이다. 뒷풀이를 약속하며 아쉬운 작별을 고하며 돌아서는 순간 꽈당! 본 사람은 나뿐이었지만 그 친구는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자신이 마지막 사고자임을 톡방에 고백했다. 이렇게 우리의 좌충우돌 자유여행은 끝났다. 벌써 그리워진다. 아직 시차도 적응 안됐는데 또 떠나고 싶다. 여행이란, 자유여행이란 그야말로 자유다.
무사히 건강하게 매일 마라톤을 하며 2만보씩 걸은 우리 친구들! 참 고맙습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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