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번 시간에 허브향 지기들의 가을 심상을 촉촉하게 만들어 주었던 이세 히데코의 다른 작품을 공유해보고 싶어서 올려봅니다.
예전에 썼던 감상후기였는데요.
저번 모임때 이세 히데코의 그림에 등장하는 나무와 아이들이라는 테마는 생명의 연결성을 이야기하는 이세 히데코와의 작가적 의식이 투영된 그림책이었어요.
제가 그림은 그림대로, 글은 글대로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독립적으로도 해석되어지는 멋진 책이라고 말할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지요.
(더 재미있는건 오늘읽을 안녕달의 <안녕> 도 그 궤를 같이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 나무는 죽어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봄이면 새싹을 피우고 여름 한창을 청록의 물결을 보여주다 가을이 되먄 열매와 씨앗으로 생명은 그렇게 연결되고 이어지는 연속성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다고 그렇게 작은 나무에서 큰 아름드리 나무가 될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고 나즈막하게 말하는 작가입니다.
그런 의미성을 이해할수 있는 이세 히데코의 작품이기에 <첫번째의 질문>에서 본 이세 히데코의 작품을 연결해서 보시면 그림 읽기의 재미를 더 한층 가져보실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책은 여러 종류이지만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단면의 그림이 입체적인 캐릭터와 이야기가 돋아 나오는 그런 그림을 좋아합니다. 시선, 동작 거리, 색채 이 모든것들이 그림속 장면들을 생생하게 하는 그림들…
이세 히데코의 그림이 그렇습니다.
물론 이세 히데코의 물빛 터치는 그림 그 자체로서의 미학적 완성도 훌륭하게 이루고 있어서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는 그림책속 그림이 아니었어도 오래 두고 보고 싶은 제겐 그런 작품입니다.
제가 너무나 애정하는 작가를 함께 만나고
즐거이 이야기도 나누는 이시간 갑자기 너무 소중해지네요.
오늘 감상법은 분석하거나 해체 하는 방식이 아닌
그저 그림속 상황을 쫓아가며 그림 속 상황을 읽기만 하는 감상을 했습니다.
유달리 영화 같은 장면의 흐름의 책이라
그저 그림속 장면을 눈여겨 보면 그안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많은… 참 제겐 애정어린 작품이네요.
즐감하시길:)
<표지>주인공 소녀 소피가 작품을 관통하는 의미의 아카시아 나무 아래로 빠르게 지나가고있다
소피의 책(도감)이 망가져있다. 나무를 너무나 사랑하는 이 소녀의 식물도감이 뜯어진것은 책을 그만큼 오래지니고 좋아했다는 뜻이다
다른 공간으로 배치해서 양 페이지로 아직 만나지 않은 두사람을 긴장감있게 그려주고 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소녀에게 를리외르 아저씨를 알려주는 사람이 등장한다.(점점 두사람의 페이지 상의배치도 가까워지고 있다)
드디어! 같은 풍경안에 두사람. 그러나 아직 페이지는 대치상태이고 다른 페이지에 존재하는 만큼의 거리는 유지하고 있다.
헤매고 다니는 소피. 다시 다른풍경으로 표현하고 있다. 술래잡기 하는듯한 두사람. 만날줄 알면서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구성이다
같은 배경이다. 이제 두사람이 두개의 점에서 하나의 점으로 모인다. 를리외르 간판 아래 아저씨의 작업실로.
드디어 만났다. 아저씨와 소피가 한페이지 안에 함께 있다.
<중략>
앞에 소피에게서 언급되었던 그 아카시아가 등장했다. 소피의 식물에 대한 애정도 아저씨의 를리외르 일도 아카시아 나무의 오랜 세월처럼 깊다.
소피의 꿈도 아저씨와 닮은 400년 된 아카시아 나무처럼 아름드리 커지겠지...
<중략>
과거로 이어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아카시아 나무 앞에 아저씨가 서있다
소피로 이어지는 미래. 아기 아카시아 나무를 들고 뛰는 소피가 보인다.
또다시 소피와 아저씨가 과거와 미래로 연결되고 재탄생되는 장면이다.
소피의 미래가 이어져 현재로까지 뻗어있는 모습이다.
덧붙임
이세 히데코의 작품은 를리외르 아저씨 말고도 몇권더 국내에 있다.
주로 프랑스 거리 풍경속 주인공들이고
대부분 고요하고 쓸쓸하며 내면의 힘이 있다.
< 커다란 나무같은 사람>은 식물을 사랑하는 소녀와 식물학자의 이야기로 이야기 안에 등장인물로 성인이된 소피가 잠시 등장한다. 나름 연작.
소피가 여기 있다. 나무를 연구하는 식물학자가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