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배규한
제45차 수요산행: 홍유릉
2024. 9. 4. 09:42 금곡역 집결
참석자(10명): 권형국 김범하 김성욱 김진곤 박노일 배규한 배연균 임원택 채용호 최동열
‘수요산행’은 계성고 57회 동기들 모임으로 매월 1, 3 수요일에 모인다. 2023년 5월부터 매월 셋째 수요일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조선왕릉 40기”를 탐방하기로 했다. 그 외 제릉(태조비 한씨의 능)과 후릉(정종의 능) 2기는 북한에 있다. 그 대신 광해군과 연산군 묘를 더하여 42기 방문 계획을 세웠는데, 오늘은 1년 5개월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오늘도 사전에 예약한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진지하게 공부했다. 홍릉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합장릉이고, 유릉은 순종과 순명황후, 계비인 순정황후 3인의 합장릉이다. 해설을 들으며 자연히 그간 탐방했던 다른 왕릉들과 비교하게 됐다.
고종은 1897년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올랐으므로 홍유릉은 명나라 황제릉을 답사하고 참고하여 황제릉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그래서 여러모로 이전의 왕릉들과 달랐다.
첫째, 능 앞에 정자(丁字)각 대신 일자(一字)형 ‘침전’을 지었다.
둘째, 다른 왕릉에는 능 바로 앞에 문인, 무인, 호랑이, 양 등의 석물이 있는데, 홍유릉에는 침전 앞에 문인, 무인,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2마리) 등 9개씩의 석물이 양쪽에 도열해 있다.
셋째, 다른 왕릉 들어가는 길은 二路(향로와 어로)인데, 여기에는 三路(향로와 양측 길)로 돼 있다. 그러고 보니 영내로 들어오는 입구 건물도 三門이었다.
홍릉은 고종이 1901년에 조성한 수릉(壽陵: 임금이 살아있을 때 미리 마련해 두는 능)이므로 외형은 황제릉 형식으로 잘 조성되었다. 그러나 고종이 승하한 1919년은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뒤이므로, 고종은 능호를 받지 못해 명성황후의 능호인 (청량리 근처에 있던) ‘홍릉’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순종도 순명황후의 능호인 (어린이대공원 근처 능동에 있던) ‘유릉’을 그대로 쓰고 있다. 능호로만 보면 고종과 순종은 사후에 황후의 유택에 들어간 모양새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제는 고종의 비석에 쓴 “대한 고종대황제”라는 글이 옳지 않다며 비석 건립을 막았다고 한다. 능참봉이던 고영근이 몰래 비석을 일으켜 세운 후 석고대죄하여 파직당하긴 했지만, 3.1운동에 놀란 일제가 비석은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고종의 국장일인 1919년 3월 1일과 순종의 국장일인 1926년 6월 10일은 민족의 대항일투쟁일이었다. 42기 왕릉 탐방을 통해 조선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대한제국의 몰락으로 끝나는 비극의 역사를 통감하였다. 특히 북한에 있는 2기는 가볼 수 없는 분단의 아픔도 느꼈다.
70대 노인들의 대단한 여정을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라는 뜻의 신세대 조어) 이끌어준 박노일 대장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오늘은 ‘명륜진사갈비’에서 거하게 종강파티를 하고, 이어서 독립지사 이석영 선생 기념관을 방문하여 또 공부한 후, 베이커리씨어터 카페에서 마무리 종합토론과 향후 계획수립 후 대장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