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기쁘게 하라
롬 15장 1-7절
사도바울이 로마서 12장 이후에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입니다.
오늘 본문인 1절을 보십시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믿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다면
자기를 위해서 살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버려진
수많은 영혼들과
가난한 영혼들과
외롭고 고독한 영혼들을
돌보고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시간과 돈과
모든 것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 강한자는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살지 말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모든 문제는
자기만 해결되면
모두 해결됩니다.
결국 모든문제는
자신이 문제였습니다.
싸움은 마귀와의 싸움이 아니고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마귀와 싸워서
여러분은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패배하는 이유는
여러분 자신이
자신 안에서
먼저
무너지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의 열쇠는 무엇입니까?
자기를 부인하는 삶입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내가 죽지 않고
깨지지 않아서 생기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깨어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는 강한 자가
마땅히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강한 믿음은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은사와 능력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봉사하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왜 우리는
믿음이 연약한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합니까?
세상에는
강한 자가 판을 칩니다.
그리고 강한 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약한 자의 약점을 이용해서
존재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형제의 약점이나
다른사람의 약점으로 장난하면 안됩니다.
약점을 가지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약점이 있다면 보호하십시오.
그 약점은
여러분이 사랑해야 할 부분입니다.
왜 우리는 연약한 형제의 약점과
치명적인 상처를 보호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도덕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휴머니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선행이나 윤리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인임을 알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고
우리의 병도, 절망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우리의 약점을 파고들었다면
우리는 살길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나 실수를
지적하시고 심판하셨다면
이곳에 살아남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
예수님이 눈감아 주시고
못 본척하시고
안들은 척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렇게
은혜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았으니
우리의 연약한 형제를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연약한 점을
비판하지 말고 감싸주라는 것이
14장과 15장에서 반복적으로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약한 자를 도와주면
그때부터
예수님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조건 없이 용서해 준다든지
그 사람의 약점을 덮어주면
놀랍게도 바로 그 순간에
가슴속에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을 느낍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좋은 말과 옳은 말로
비판을 해도
그곳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두번째 1절에서 발견하는 것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기쁘게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남편이 존재합니다.
또 남편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아내가 존재한다는 것도 믿으십시오.
그러면 가정에 평화가 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를 기쁘게 하지 말라.
너의 쾌락을 위해 살지 말라’ 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1절을 보십시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본문 2절을 보십시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기쁘게 하는 데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남을 도와주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왜 우리가 남에게 선을 베풀고
약자를 도와주고
가난한 자를 도와줍니까?
세상사람들은 도덕심으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
노인들을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의
도덕성에 기초해서 하는 것이지만
성경은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
이라고 말합니다.
왜 우리는
자기를 기쁘게 하면 안 됩니까?
예수님이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지만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위해 고생할 때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하는가?’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 나만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 일을 하게 된 것도
여러분이 손해 보는 것도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게 사십시오.
나를 기쁘게 하면서 살지말고
자식들과 가족을 기쁘게 하면서 사십시오.
이 목적을 가지고 사십시오.
예수님은 철저하게
자기 시간도 없이
모두 빼앗긴 삶을 살았습니다.
‘내 시간이 없다. 내 공간이 없다.’ 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정상입니다.
내 것은 모두
남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삶입니다.
그러한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건강도 시간도 빼앗기는
사랑의 착취를 당하면서 사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하나님 섬기다가 죽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배부르게 살다가,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고통없이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것도 복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전하다가
죽을 수 있다면
가장 큰 축복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성경을 읽어보면
많은 사례들이 나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많은 사건들이 있어요.
이 많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봅니까?
이런 사람의 이야기,
저런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보노라면
그 속에서
우리는 힘을 얻게 됩니다.
덕을 배우게 됩니다.
보세요.
우리가 성경에서
의인의 고난을 보지 않습니까?
욥이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이렇듯 성경에서
고난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봅니다.
그리고 끝까지
의롭게 사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 약속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을 봅니다.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이 성취된 사람들을 봅니다.
아주 끈질긴,
혹은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산
이야기들을 봅니다.
그리고 얼마나 오래오래 참았는가 하는
그 무서운 인내를 성경에서 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자꾸 읽고 들으면
믿음이 생겨요.
소망이 생겨요, 사랑이 생겨요,
그리고 덕 있는 사람이 됩니다.
성경 이야기들을 자꾸 듣다보면
어느 사이에 내가 성경에 나타난 인물,
성경이 지향하는 그러한 사람으로
성숙되고
덕 있는 사람으로
키워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소망과 안위를 얻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5절)"
하나님께서
뜻을 같게 만드신다는 말씀입니다.
뜻이 하나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받아들이게 되고,
하나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여주신다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가능케 해주십니다.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능케 하세요.
부지런히 성경을 보아가면
이제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로
덕 있는 사람되게 하시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뜻이 하나되게,
그렇게 만들어주신다
하는 말씀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은 내 마음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마음을 가지면
자연히 예수님의 성품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일컬어서
성령의 열매라고 말합니다.
이 성령의 열매는
한마디로 요약해서
자기를 위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 형제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말합니다.
다른 형제의 짐을 지고
그것을 기쁘게 감내하면서 사는
삶을 일컬어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대로
약한 형제를
적극적으로 받아 주려면
한마디로
작은 예수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되어야
비로소 약한 형제를 받을 수 있고
형제의 약함을 기뻐할 수 있고
그 형제와 함께
동고동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은 수준까지 가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본문 7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서로 받으라-서로 수용하라는 말이에요.
이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접하신 것처럼
서로 영접하라 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접하신 것처럼 영접한다면,
세상에 영접 못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수용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그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신 것처럼
서로서로 받으라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기다리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산 소망을 갖게 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복된 삶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