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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7장 1절로 12절 다윗이 핍박을 못 이겨 불신나라로 감
1. 지난 시간에는 다윗이 사울왕을 두 번째 살려준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즉 다윗은 분명히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만났으나 하나님께서 알아서 처리해주실 것을 믿고 자기 손으로 원수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두 번이라 다윗을 더 이상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고서도 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울 왕국을 떠나 이방 불신국가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2. 오늘은 이처럼 다윗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에 계속 머물러 있지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 불신국가로 망명한 잘못된 처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3. 오늘 설교 제목은 <다윗이 핍박을 못 견디고 불신나라로 망명감>입니다.
������ 1-4절은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생각대로 이방 불신국가로 도망하기로 결정한 내용입니다.
1절.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1.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다윗이 블레셋 나라로 도피하는 것은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왕이 두 번이나 약속을 어기고 자기를 죽이려 했고, 십 사람들이 계속 고발하고 있고, 군사만 6백명이고 전체로는 3천명이나 되는 식구들을 먹여 살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다윗의 판단과 처신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찍이 22장에서 선지자 갓을 통해서 다윗에게 이방 불신국가로 도망가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상 22장 5절.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즉 오늘날에 적용하면 환난과 핍박이 많더라도 불신세상으로 나가지 말고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왕이 계속 자기를 죽이려고 하니까 후일에는 사울왕에게 망할 것으로 생각하여 이방 불신 나라 블레셋으로 망명을 갔습니다.
이전 26장까지는 다윗이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것을 믿고 사울왕도 두 번이나 살려준 믿음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27장에서는 그렇게 훌륭한 믿음의 사람 다윗이 계속되는 사울왕의 핍박 속에서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방 나라로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해보았거나 함께 있는 제사장에게 물어보았거나 이전에 말씀해주신 갓 선지자(사무엘 선지자의 제자) 에게 물어보았더라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 땅에 계속 남아 있으라고 말씀해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해보지도 않고 하나님의 종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인간적인 생각으로 잘못 판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방나라로 갔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5-8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또한 하나님의 말씀 믿고 축복의 결실을 얻으려면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6절.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야고보서 5장 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신나라로 가서 마귀의 종처럼 살인하고 강도짓을 하고 이방나라 왕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가족이 몰살 당할 위기에 처하고 다윗 자신도 신하들에게 배신을 당해서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전에 아브라함도 가나안 땅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말씀을 어기고 흉년시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도 애굽 왕에게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되고 아내를 애굽 왕에게 빼앗기고 애굽 왕에게 책망을 듣고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교회를 떠나서 불신 세상에 가서 마귀의 종노릇 하게 되면 거짓말 하게 되고 도적질 하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수치와 멸망의 위기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난 많은 세상에서라도 하나님 말씀 믿고 성도의 신분, 집사와 권사 장로의 신분에서 떠나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불신자의 핍박과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기적적인 은혜로 승리의 생활을 해가시를 축원합니다!
2.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다윗이 자기 증조모 룻의 친정인 모압(22;3-4) 보다 블레셋으로 피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당시에 모압은 약소국이었고, 블레셋은 강한 나라였으며, 블레셋 왕 아기스는 이전에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사건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다윗을 용병으로 채용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3. 사울왕이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신의 판단 때문에 아각왕과 살진 송아지들을 남김으로써 버림 받았습니다(삼상13:8-15).
그런데 다윗도 갓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신의 판단으로 블레셋으로 망명갔습니다.
이것은 사울왕의 행동이나 다윗의 행동이 똑 같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다윗의 판단대로 사울왕이 추격을 단념한 것이 잘 된 것 같았습니다( 4절).
그리고 시글락에 있을 때 많은 지원군들이 다윗에게로 모여든 것도 자기 판단이 잘 된 것 같았습니다 ( 삼상 30:10).
그러나 결국 처자식을 다 잃을 뻔했고, 자신도 죽을 뻔 했고, 결국 무고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전 건축을 못하게 하셨습니다.
[설교]- 한남노회 카페에서 따온 것
<서론>
제임스 존슨: "영웅의 참으로 위대한 점은 낙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신앙의 성웅이라 일컬어지는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낙심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을 믿음과 인내로 잘 견디어 왔던 다윗이 마침내 낙심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위대한 신앙의 인물 다윗이 낙심하게 된 원인이 무었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다윗이 낙심한 원인들을 살펴보므로 낙심의 위기 앞에서 낙심을 극복하는 믿음을 배우고자 합니다.
낙심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게 되며, 더 큰 시련과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낙심은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십자가입니다.
그러면 왜 낙심하게 될까요?
<본론>
1. 두려움 때문에 낙심 합니다. (1절)
본문 1절에서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라고 생각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전에 24장과 26장에서 두 번이나 사울왕을 살려주었습니다.
즉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3천명의 군사를 데리고 쳐들어 왔으나 다윗은 두 번이나 사울왕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이제 그 말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 다.
지금까지 사울은 여러 차례 다윗이 안심하고 지낼 만하면 그때마다 그를 죽이려고 애썼습니다.(18:10-11. 19:9-10. 20:33. 24:1-2. 26:2)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가다가는 후일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듯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차츰 깊어지면서 마침내 다윗은 낙심하고 절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어떤 한 대상에 대하여 극심한 두려움을 가질 때 결국은 낙심하게 됩니다.
이것은 믿음의 용장이었던 선지자 엘리야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상숭배하는 아세라 선지자들 400명과 바알선지자들 450명 도합 850명과 대결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참신인지 아니면 그들의 신이 참신인지를 갈멜산상에서 왕과 백성들을 증인으로 모아놓고 대결하였습니다.(왕상18장)
여기서 엘리야는 담대함으로 하나님이 참신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증명하고 승리 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의기양양하게 우상의 사제들인 아세라선지자들과 바알선지자들 850명을 기손강가에서 모두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에서 참 신인 여호와 하나님만이 섬기게 될 것을 기대하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승리의 기쁨을 채 맞보기도 전에 이스라엘에 우상을 퍼뜨린 아합왕의 왕후 이세벧로부터 예기치도 않았던 무서운 목숨의 위협을 받고 두려워하여 멀리 광야로 도망쳤던 것입니다.(왕상19:1-4)
그리고는 낙심과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차라리 내 목숨을 지금 이 순간 거두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두려워하면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도 변덕스런 사울을 두려워한 나머지 좌절과 낙심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사랑을 체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이전과 같이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믿지 못하면 그때부터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요일4:18)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의심하기 시작할 때 마귀는 그 틈을 타고 들어와서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안겨주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마귀가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두려움에는 무서운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참 평안과 기쁨과 만족하는 마음입니다.
디모데후서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에게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마다 십자가 위에서 모든 저주와 고통을 짊어지시고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주님의 십자가는 모든 두려움의 세력들을 철폐하셨습니다.
나아가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한 성도들이 두려워하는 마음대신 참 평강과 만족과 기쁨 중에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기 때문에 낙심합니다.
다윗은 이미 어린 목동시절에 이스라엘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또한 수차례 사람들의 입으로 통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소망을 품고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 수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러한 소망이 이루어질 것 같은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의 목숨을 찾는 사울의 칼날만 더욱 번득일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다윗의 소망은 마침내 지쳐 낙심하고 말았습니다.
왕이 되는 소망은 고사하고 목숨조차 제대로 부지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같은 시련 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며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될 때 마음은 소망 대신에 절망과 염려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6절.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야고보서 5장 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로마서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사례) 어느 종합병원에서 병원 실습중인 젊은 의대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학기말 시험을 걱정하며 불안해 하고 있었는데, 이에 더하여 장래에 대한 이런 저런 고민거리들이 밀려와 그의 괴로움을 가중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시험은 잘 치룰 수 있을까?
내 인생을 통하여 이루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과연 내가 의사로서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 나의 생활방식이 성공을 향한 방향인가? '
그의 머리 속에는 당장 며칠 앞의 일들로부터 시작하여 장장 수 십 년 후의 근심거리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습니다.
그날도 그 의대생은 그 엄청난 고민들을 갖고서 괴로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그의 친구의 책에서 그의 일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한 짧은 글귀를 발견했습니다.
'우리의 주된 할 일은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요, 다만 우리 가까이 놓여 있는 것을 잘 하는 것이다.' 라는 토마스 카일라일(Thomas Caryle)의 글 이었습니다.
그는 이 글을 읽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근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의대생 이름은 윌리엄 오슬로(William Oslow)로서, 죤 홉킨스 의과대학의 설립자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더디게 되면 조급하여 온갖 근심과 염려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대개가 쉽게 성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약속된 소망을 바라보고 끝까지 인내하는 훈련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같은 기다리며 인내하는 훈련을 통하여 우리의 인격을 연단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연단은 우리의 인격의 불순물을 제거시켜 줍니다.
(말3: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재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 성경에서 믿음으로 산 인물들은 하늘 위로와 형통한 축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 위대한 성경의 인물들도 오랜 기다림 속에서 인내와 연단에 연단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인내 없이는 형통이 없으며, 연단이 없으면 축복도 없습니다.
형통한 복을 누리기 원한다면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영육간에 넘치는 복을 받고 싶으면 연단 받을 각오부터 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있어서 인내와 연단은 선택과목이 아니고 필수과목입니다.
우리 주님은 귀한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않습니다.
진주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진주를 주어도 아무 소용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이 성도들을 축복하실 때는 반드시 그 축복의 소중함과 가치를 분명히 깨닫고 아는 신앙인격으로 바뀌어 질 때까지 연단 시켜놓고 축복하십니다.
연단 없는 축복은 성도로 하여금 제2의 탕자가 되는 지름길일 뿐입니다.
마치 쉽게 번 돈이 쉽게 없어지는 것과 같으며, 불로소득이 어떤 의미에서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축복을 향한 믿음의 길에서는 반드시 오래 오래 기다리는 인내의 연단과 훈련이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소망이 더디 이루어진다고 쉽게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낙심이 찾아오려는 바로 그 때가 축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를 놓는 순간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하시는 순간을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여 방해하는 영물이 바로 마귀입니다.
따라서 마귀가 우리의 마음에 낙심을 불어넣는 순간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 가까이 이르고 있음을 반증하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 여러분!
가장 낙심하기 쉬운 바로 그때를 오히려 감사하며 소망을 져버리지 않으므로 축복을 위한 결정적인 순간으로 바꾸어 놓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에 낙심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처지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결국은 블렛셋으로 피신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1절)
다윗이 블렛셋 땅으로 피신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 었습니다.
일전 에도 사울을 피하여 피신했던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21:10-15)
그러나, 피신하여간 그곳에서 오히려 또 다른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는 일부러 미친척하여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다윗은 이스라엘 땅을 떠나 타국으로 도피하는 것이 결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아님을 절감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윗이 이번에도 블렛셋 땅으로 들어간 것은 결코 잘한 일이 못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그와 같은 결단을 하게 된 것은, 성격이 매우 변덕스러운 사울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언제 자신을 해치려들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염려는 당시 형편으로 보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염려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이스라엘 땅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한번은 모압 땅에 머물러 있었을 때 선지자 갔을 통하여 이방 땅에 머물지 말고 다시 유다 땅으로 들어갈 것을 명하였던 것입니다.
다윗이 비록 여러 번 어려움을 맞이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무사 했던 사실을 명심해야 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다윗의 이같은 블렛셋 망명으로 인하여, 나중에(28장) 블렛셋이 이스라엘과 싸우게 될 때 자신의 동족과 싸워야하는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만일 그때에 하나님께서 돌보시지 않으셨다면 다윗은 꼼짝없이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결국, 다윗이 블렛셋으로 피신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때까지는 의로운 방법으로 악한 사울과 대항하여 싸워
왔지만, 계속되는 피난생활 중에서 다윗은 믿음이 많이 약해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윗을 도와 피할 길을 주시며 적절하게 구원하시던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잠시 망각한 것입니다. 사실, 계속되는 시련은 우리의 마음이 육신적 안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지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역을 감당해야 할 성도가 영적인 영역을 떠나 세상 가운데서 육신적 안일을 찾는 것은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8장 5-8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부름 받은 성도여러분!
승리의 그날까지 영적 긴장감을 풀지 말고 힘차게 믿음으로만 나아가게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결론>
우리가 가는 천성길에는 수많은 고난과 아픔이 있습니다.
고난이 오래 지속되면 그 고난으로 망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옵니다.
아무리 믿음을 지키고 인내하며 걸어간다 할지라도 어느 순간에 이르면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낙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치 맙시다.
그러면 귀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가셨던 한분을 기억 하십시다.
곧, 낙심치 않고 묵묵히 오로지 한길만 끝까지 걸어 가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러면 두려움이 변하여 담대함을 얻으며, 절망이 변하여 샘솟듯 하는 소망으로 되돌아오며, 의심이 변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어 모든 낙심을 이기고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설교] 쓰러지고 넘어질 때(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찬송가) 주님이 붙들어주십니다.
시94:18. 여호와여 내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들었사옵니다.
아브라함- 하나님께서 바로 왕의 꿈에 위협하셨음
다윗- 아기스의 신하들이 이스라엘 전투에 참여치 못하게 했음( 28: 3절 이하)
2절.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1. 마옥의 아들 아기스 왕은 다윗의 즉위 직전부터 솔로몬 왕 즉위 직후까지 약 50년간 왕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골리앗은 아기스 나라의 신하였으나, 다윗이 죽인 사건이 오래 되었으므로, 아기스 왕은 다윗에 대한 감정이 풀어져 있었습니다.
2. 다윗이 아기스 왕에게 간 것은 오랫동안 사울왕과 다윗이 서로 죽이려는 관계인 것을 아기스 왕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전에 다윗은 골리앗을 죽일 정도로 훌륭한 장군인 것을 알기 때문에, 아기스 왕은 사울 왕국을 쳐부수려고 다윗의 군사를 용병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즉 다윗이 없는 사울왕국을 치는 것은 식은 죽 먹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습니다.
3. 그러나 다윗이 이스라엘의 원수 나라 블레셋 아기스 왕에게 신하로 들어간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이전에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걸로 싸워서 아기스 왕의 장군 골리앗을 쳐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은 과거에 원수 나라 왕이었던 블레셋 왕 아기스의 신하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인 다윗으로서는 대단히 수치스런 일이었습니다.
물론 세상 이치로 따지면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므로 사울과 원수인 블레셋 왕과 다윗이 한 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다윗이 마귀 섬기는 블레셋 왕의 신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사울왕의 핍박을 피하기 위해서 마귀 대장인 아기스 왕의 종이 된 것은 차라리 하나님의 일군으로 일하다가 죽는 것만도 못한 수치스런 일이었습니다.
[설교] 하나님의 울타리를 넘어가지 마시오(따온 것)
분명히 신자에게도 천국 가기 전까지는 고난이 있다고 ... 심지어 더 많다고 ... 시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 행14:22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
마치 거친 광물을 용광로에 넣어 빛나는 정금을 만들어 내듯이 ...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는 긴 고통 중에서도 신앙으로 승리하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중에 단 한 명도 이 고통의 시기가 신앙에 긍정적일지언정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영향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본문에 나타난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긴 고통 중에 신자가 취할 태도가 과연 무엇인지 함께 살펴봅니다.
[1] 다윗은 긴 고통 중에 하나님의 울타리를 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일찌기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선택해 두신 사람입니다. 다윗은 도피 생활을 시작합니다. 어느덧 8년 이상 지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다윗의 마음에 회의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사울은 더 거세게 추격하고,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더욱이 식솔들(부하들이 600명이니까 딸린 식구 다 합치면 3천여명은 실히 될 겁니다)의 안전과 양식 문제를 생각하면 이만 저만 고민이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기스 왕은 아마도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반체제 인사가 되었으니까, 또한 적지 않은 사병들을 거느리고 있으니까, 망명을 받아주면 여러모로 이익이 될 것으로 생각한 듯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의 생애 몇 가지 중요한 실수 중 하나였습니다. 왜? 단지 국경을 넘어 이방땅으로 간 사실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영적 배경이 문제입니다
① 하나님의 울타리에서 그 마음이 벗어난 것입니다. 월담한 겁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생각을 믿었습니다. 1절 "내가 ... 내가 ..." 하나님보다 이방왕의 힘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② 하나님 말씀의 선을 벗어난 것입니다. 삼상22:5 모압에 도피했을때 갓 선지자가 권면한 말. "이 요새(모압)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고난이 길어지자 하나님의 말씀의 선을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2] 그 결과 더 큰 고통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다윗은 잠시 평안하게 살 수 있었지만, 이내 더 큰 고통과 마주치게 됩니다.
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삼상27:8~12 가끔 외족을 침노하면서 이스라엘을 침노한 것처럼 거짓말을 합니다. 아기스 왕의 환심을 사느라 ...
② 이스라엘 침략 전쟁에 징발됩니다. 삼상28:1, 29:1~2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다윗이 심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장차 왕이 될 사람이 동족을 향해 칼을 들이댄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기기 막힌 일입니까?
* 다행히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삼상29:3 이하. 블레셋 방백들이 아기스왕에게 항의합니다. 무얼 믿고 다윗을 데려가냐고 ... 만일 칼을 거꾸로 들이대면 어떻게 할 거냐고 ... 결국 빠지게 됩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는 실수해도 하나님을 우리를 끝까지 도우십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요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성도의 견인)(아들을 십자가에 내 주신 하나님이 아까와서라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문제는 ... 돌이키는 과정 속에 징계가 있습니다.
③ 시글락이 침노를 당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삼상30:1 이하. 3일 만에 돌아오니까 난리가 났습니다. 아말렉이 노략질을 했습니다. 다 불태우고, 여인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잘망 중의 절망입니다. 4절. 모두 다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습니다. 6절. 부하들이 흥분해서 다윗을 돌로 치려고 대듭니다.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히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어렵다고 힘들다고 하나님의 울타리를 넘어가면 편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더 큰 고통이 옵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긴 고통의 시간이 닥쳐와도 결코 하나님의 울타리를 넘지 말아야 합니다.(월담 금지)
①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피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무서울 때면 어떻게 하죠? 엄마 품에 와락 안깁니다.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하나님 품 안입니다.
돈을 피난처 삼는 자가 있습니다. 권세를 피난처 삼는 자가 있습니다.
시11: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이 어찜인고"
시91:2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② 인내하며 하나님께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 폭풍주의보 - 배는 정박해서 부두에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 마14:28~31 주님 바라보고 바다 위로 가던 베드로가 바람 보고 빠졌습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늘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③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로운 삶을 지켜야 합니다.
고전4:6 " ...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
기왕에 고난 받는 것 의를 지킵시다. 말씀을 어기고 월담하다 징계 받고 고통을 받기보다 차라리 말씀대로 살다가 고난 받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안전합니다.
예> 링컨 - 남북 전쟁 당시 - 부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실까요?" "나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은지 그게 걱정일세."
존 칼빈 "인생의 행복은 하나님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사는 데 있다."
윈스턴 처어칠 수상-2차 대전 당시 영국민들에게 연설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외엔 없습니다."(We have nothing to fear but fear.)
3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1. 다윗이 개인적으로는 이스라엘 땅에 머물고자 했지만, 두 아내가 졸랐거나 신하들과 그 가족들이 졸라서 이방 블레셋 땅으로 갔을 것입니다.
즉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한 동기는 신하들과 가족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원수 사울왕을 죽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신하들과 가족들은 언제까지 피난생활을 해야 하느냐고 불평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다윗 개인의 믿음이 다른 사람에게는 수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통일 왕국을 이룩한 다윗에게도 이런 죽음의 사점이 있었습니다.
2. 믿음이 약해지면
(1) 하나님 생각을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즉 영적인 생각을 않고 인간적인 생각만 합니다.
또한 부정적이고 의심하고 차갑습니다.
(2) 또한 믿음이 약해지면 도피하고 뒤로 미룹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감당할 시험만 주신 것으로 믿고 전진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의 끝자락에 왔음을 믿고 조금만 더 인내해야 합니다.
(3) 이처럼 믿음이 약해지면 비참한 종이 됩니다.
즉 다윗은 아기스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약해지면 두려워 하게 됩니다.
즉 11절에서 다윗에게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볼 때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인 예수를 바라보자
베드로가 풍랑을 바라볼 때 두려워서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볼 때는 물 위로 걸어갔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시각으로 상황과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4) 이처럼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불신앙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면 더욱 사태를 악화시키게 됩니다.
즉 빼도 박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하게 되니다.
그러나 인생 위기에 빠지게 되어도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는 신자는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됩니다
3. 다윗이 미끄러진 데서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늘 성공만 하면 우리 같이 늘 실패한 사람에게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용장 다윗도 실패한 것을 보고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은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위로해주어도 위로가 되지 않고 시험에 떨어진 사람이라야 위로가 됩니다.
마리아 전도사님은 아이 하나를 잃은 성도를 찾아가서 나는 아이를 넷이나 잃었다고 하자 그 성도가 위로를 받았습니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했습니다.
4. 이처럼 다윗은 군사들과 처자식까지 데리고 스스로 원수 나라의 종이 되었습니다.
처자식들까지 데리고 갔으니 자기들만 도망칠 수도 없고 꼼짝 없이 원수에게 종노릇하고 하나님 백성을 죽이는데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기도와 성령으로 행하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처신하게 되면, 원수 나라의 신하고 하나님 교회에 원수 노릇을 하게 되니다.
신앙이 좋을 때는 교회의 충신이 되다가도 신앙이 떨어지면 교회의 원수 노릇을 하게 됩니다.
과거에 공산당이 교인들을 죽일 때도 불신자가 아닌 교인이 공산당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가롯 유다가 유대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해서 예수님을 잡아가게 한 것과 같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을 할 때는 <반석>이라는 칭찬을 받았지만, 불신앙적이고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는 예수님께 <사탄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다윗처럼 신앙이 떨어지면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괴롭히는 마귀의 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매일 기도함으로써 성령님이 붙들어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고 말씀의 능력 받아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절.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1. 이처럼 다윗이 블레셋 나라로 도망하여 적군의 종노릇 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울왕은 더 이상 다윗을 수색하러 다니지 않았습니다.
1절에서 다윗은 사울왕을 절망시키려고 블레셋 나라로 망명했다고 했습니다.
정말 다윗의 생각대로 사울왕은 용장 다윗이 원수 나라 블레셋 왕의 휘하 장군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절망하고 믿는 사람이 과연 하나님 나라의 원수가 될 수 있을까 하고 낙심하고 비참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사울왕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에 신앙 있는 백성들도 <아무리 사울왕이 죽이려고 한다고 해도 그래도 그렇지 다윗이 원수나라 블레셋 왕의 신하로 들어갈 수 있느냐고 탄식하며 다윗을 욕하고 원망했을 것입니다.
혹시 다윗이 이스라엘 나라와 멀리 떨어진 애굽 나라나 아니면 모압 같은 나라로 망명을 갔다면 그처럼 다윗에 대해서 욕하거나 낙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 골리앗을 나라로 망명 갔으니 정말 믿지 못할 것은 사람이라고 낙심했을 것입니다.
5절.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바라건대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
1. 다윗이 아기스 왕의 수도에 거주하지 않고 지방의 한 성읍인 시글락에 거주하게 해달라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수도에 살면 이방나라의 우상숭배 행사에 자주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고, 또 아기스 왕과 신하들에게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스런 생활을 하고 했기 때문입니다.
2. 이처럼 다윗이 왕성에 거하지 않고 지방 성읍에 가서 살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왕성에서 우상숭배를 하지 않으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었습니다.
즉 술집에 들어가서 사이다만 마시겠다는 생각이요, 제사 하는 집에서 절은 하지 않고 제물만 먹겠다는 식입니다.
이처럼 다윗이 지방 성읍을 원하자 블레셋 왕은 시글락이란 곳에 가서 살라고 했습니다.
6절.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1. 시글락-
원래 시글락은 유다지파의 땅이었는데(수 15:31), 후에 시므온 지파에게로 넘어갔습니다(수 19:5).
그런데 시므온 지파가 사사 시대에 블레셋의 침략 때문에 분배 받은 땅을 지키지 못하고 북쪽으로 이주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윗 시대 당시에는 시글락이 블레셋의 영토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시글락은 블레셋의 도성 가드의 남서쪽 40킬로에 멀리 떨어져 있는 성읍이었습니다.
2. 시글락이 유다 왕에게 속했다고 한 말씀은 남북 분열 왕국 시대에 남쪽 유다 왕국에 속한 지역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즉 다윗이 이 때 시글락에 거주하였고, 나중에도 다윗이 시글락을 되찾았으므로 블레셋에 빼앗겼던 시글락이 다윗 이후에 유다 땅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유다 왕이란 남쪽 유다왕국의 왕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이 단어는 사무엘상 성경이 남북 분열왕국 시대에 쓰여졌다는 증거가 됩니다 (남북 분열 시대인 B.C. 930년에서 북이스라엘의 멸망인 722년 사이).
3. 원래 시글락은 유다지파의 땅이었는데, 다윗은 이 때 블레셋 나라의 종이 되어 시글락을 블레셋 땅으로 지켜주는 원수나라 종노릇을 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이 한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원수의 종노릇을 하니까, 참 부끄러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는 부끄러운 삶을 산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블레셋 나라에서 1년 4개월 동안 마귀의 종노릇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7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산 날 수는 일 년 사 개월이었더라
1. 여기서 지방이란 단어(사데)는 시글락의 성읍을 가리키기 보다는 시글락 성읍에서 떨어진 변방 산골 지역을 가리킵니다.
2. 이처럼 다윗은 1년 4개월 동안 마귀 나라에서 종노릇 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아말렉 적군에게 온 가족들이 사로잡혀간 다음에야 블레셋 나라를 떠나게 됩니다.
이렇게 다윗은 스스로 마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서 마귀에게서 빠져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과 시험이 혹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징계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잠언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이처럼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녀가 하나님을 멀리 하고 세상으로 갈 때 사랑의 채찍으로 징계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를 받을 때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낫게 해주시고 싸매어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호세아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그러면서 지금이 곧 하나님을 찾을 때라고 했습니다.
호세야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그리고 환난 때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찾으매 하나님께서 만나주셨다고 했습니다.
역대하 15:4. 그들이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찾으매 그가 그들과 만나게 되셨나니
그러나 더욱 패역한 길로 가면 매를 더 맞는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1: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악의 나라로 가서 마귀의 종노릇하다가 죽음의 위기에 빠졌다면, 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축복과 행복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8-12절은 다윗이 시글락에서 사는 동안 정직하지 못하고, 거짓말하며 순전히 강도짓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8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
1.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올라가서>란 단어(알라)는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올라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다윗이 이 때 침략한 족속들이 시글락보다 고지대인 바란 광야의 북동쪽 산악 지대에 거주했음을 가리킵니다.
2. 그술 사람-
그술 사람들은 아말렉 족속처럼 유랑생활을 하던 민족인데, 일부는 요단강 동쪽에 살았고(신 3:14) 일부는 가사 부근에 살았습니다(신 2:23).
3. 기르스 사람-
팔레스틴 남쪽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4. 아말렉 사람-
유랑민족이면서 다른 민족을 공격하고 약탈하는 굉장히 거친 족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을 죽이고 약탈하려고 해서 모세가 기도하고 여호수아가 무찔렀습니다.
그 후에 사울왕이 사무엘 선지자의 말을 듣고 무찔렀는데(15:7-8) 세월이 흐르자 다시 세력을 규합하여 블레세과 이스라엘에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5. 이 세 민족은 이스라엘 백성이 술과 애굽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약탈행위를 일삼던 족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 세 민족을 공격했던 것입니다.
6. 술과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
사무엘상 15:7에는 사울왕이 아말렉을 칠 때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을 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술은 애굽의 입구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에서 <과>는 <즉>이란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술 즉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7. 특히 다윗이 아말렉을 친 것은 하나님께서 아말렉은 천하에서 도말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신명기 25:19).
8. 그런데 이 때 다윗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성직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섬기는 나라에 있는 동안에는 23장에서 그일라 백성을 적군으로부터 보호해주고 25장에서 나발의 양때를 돌봐주는 선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일단 블레셋 나라 시글락에 가서는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약탈하는 강도짓을 하면서 살아갔습니다.
이처럼 죽이고 도적질 하고 멸망시키는 것은 마귀가 하는 짓들입니다.
요한복음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이처럼 믿는 성도가 타락하면 불신자 보다 더 악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번 청소된 마음에 마귀가 들어가면 일곱 배나 더 악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24-26절.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도 믿다가 타락한 이단들은 불신자 보다도 더 악한 죄인들이 되는 것을 봅니다.
과거에 박태선 이단도 그랬고, 정명석이나 구원파 이단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사회에 봉사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릴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복음 전도하여 영혼을 살리고 건강이나 가정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복음 전하고 어린이집을 통해서 지역민을 돕고 전도하며 재가복지를 통해서 목욕봉사와 집안청소와 가사 봉사와 요양보호와 가사돌보미를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영육간에 봉사와 섬기는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성도님들의 기도와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추운 겨울을 맞이해서 에스도 여전도회와 재가복지 요양사들이 맛있는 김장을 해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푸짐한 김장 김치를 나누어드린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을 버리고 마귀 나라에 가서 사람을 죽이고 도적질 할 뿐만 아니라 거짓말을 했습니다.
9. 다윗은 블레셋 망명 시절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아말렉 족속과 이스라엘 원수 족속들을 쳤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다윗이 하나님 말씀대로 아말렉을 진멸했다면 짐승까지도 모두 진멸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짐승을 약탈해온 것을 보면 하나님 말씀 순종 보다는 약탈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과거에 사울 왕이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지 않고 양과 소의 좋은 것을 탈취해서 가져온 것과 같습니다.
10. 근본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개인적인 의를 행하려고 하지만, 이런 의도 결국 개인의 탐욕을 위한 것임
- 다윗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땅을 떠나 우상숭배의 땅으로 간 불순종을 했으면서도, 아말렉인을 죽이는 의를 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인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짐승까지도 모두 죽이라고 하셨는데, 다윗은 겉으로만 하나님 말씀 순종하는 체 하면서 실상은 짐승을 약탈을 도적질을 했습니다.
- 우리들도 겉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탐욕 행위를 하곤 합니다.
- 예를 들어봅니다.
① 예루살렘 성전 마당에서 비둘기 팔고 양 팔고 돈 바꾸어주는 상인들은 제물을 편리하게 드리도록 하는 미명하에 장사를 했습니다.
② 천주교에서 베드로 성당을 지으려는 목적으로 헌금을 거두어들이기 위해서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③ 교회에 충성한다는 미명하에 공부 안 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④ 건축 헌금을 내게 할 목적으로 부흥회를 하거나 장로 권사를 뽑는 일이 있습니다.
⑤ 내 자신이 자주 범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과거에 기도한다고 아침 밥을 늦게 먹었음
주일 성수한다는 핑계로 친척들 애경사를 자주 못 갔음
부모님께 효도해야 하는데, 교회에 충성한다는 핑계로 잘 해드리지 못했음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가 술 안 먹는다고 그 좋아하는 술 한잔 안 사주었음
돌이켜 보면 나는 이웃에게 아주 인색했음
- 이웃을 예수님처럼 섬겨야 하는데, 예수님 핑계로 이웃에게 인색했음 (이웃이 주라고 한 것은 더 주라고 하셨음)
9절.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
1.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도 없이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 건축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역대상 22: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2.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
이처럼 다윗이 노략물들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온 것은 군사들과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고 한 것이고, 또한 유다지역의 가난한 동포들을 도와주려고 한 것입니다(30:26-30).
다윗이 아말렉 남녀를 다 죽인 것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준행한 것 같지만, 실상은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약탈하기 위한 살인 강도 행위였습니다.
3. 아기스에게 이르매 -
다윗이 이 때 아기스에게 간 것은 노략물 중 일부를 선물로 바치고 아기스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었습니다.
10절.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
1. 유다 네겝(남방)은 브엘세바 인근 지역을 가리킵니다(삼상 8:2; 삼하 24:7).
2. 여라므엘 사람의 네겝(남방)은 여라므엘 가족이 살던 유다지파의 남쪽 지역을 가리킵니다.
여라므엘이란 사람은 유다가 다말에게서 난 베레스의 손자입니다(대상 2:3, 5, 9).
3. 겐 사람의 네겝(남방)은 이전에 사울왕이 아말렉을 칠 때 도피시켰던 지역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원래 겐 사람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속한 종족이었는데,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와서 유다지파 남쪽에 거주하였습니다.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하니라”(삿 1:16)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적장 시스라를 죽임으로써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삿 4:17-22).
이처럼 겐 사람들은 유다민족과 믿음이 같았습니다.
4. 그런데 이 때 다윗은 그술과 기르스와 아말렉을 약탈했으면서도 아기스 왕에게는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 남방과 겐 사람 남방을 침략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을 떠난 다윗은 잔인한 살인자요 약탈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거짓말 장이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죄는 점점 더 장성하게 됩니다.
야고보서 1: 15.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5. 이 때 다윗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마귀 섬기는 불신자 나라에서 이처럼 죄를 더욱 짓고 살았으니 얼마나 신앙적으로 괴로웠겠습니까?
<내가 이럴려고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닌데 도대체 내 모습이 무엇인가> 하고 날마다 과거의 은혜 생활을 돌아보면서 후회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즉 과거에는 비록 가장 천한 목동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부족함 없는 생활을 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살인강도 짓을 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런데 더욱 비참한 모습이 다음에 나옵니다.
즉 다윗은 거짓말이 탄로날까봐서 잔인하고 무자비하게도 여자와 어린아이조차도 몰살시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