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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미타불의 명호가 헛되지 않아 우리 집 네 노인이 서방정토에 왕생하다
내 이름은 장숙진(張淑真)이고, 법명은 불영(佛迎)이다. 1950년 대만 신죽현(新竹縣)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 대만은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았고, 시골에는 숲과 나무가 많아 귀신 이야기가 자주 떠돌았다. 그래서 무척 두려웠는데, 한 어른이 나에게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 주었다.
당시에는 불교가 널리 퍼져 있지 않아 나도 관세음보살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그래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줄곧 불법을 접할 인연이 없다가 결혼한 뒤 둘째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몸이 약하고 병치레가 잦은 데다 유난히 키우기 힘들어 비로소 부처님께 가피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찰에서 『불가사의한 인과현상(不可思議的因果現象)』이라는 책 한 권을 가져왔다. 그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인간 세상의 모든 길흉화복은 인연과보에 따른 것이며, 업장을 소멸하고 운명을 바꾸려면 선을 행하고 보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염불감응록도 몇 권 잇달아 읽으면서 아미타불을 부르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남동생마저 일찍 죽었기 때문에 나는 인생의 무상함을 깊이 느꼈다. 불법을 배운 뒤 가장 큰 소원은 집안의 네 어른, 곧 할머니와 어머니,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훗날 모두 부처님의 접인을 받아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우 열심히 염불하고 조념에도 참여하였다. 아미타불의 자비로운 가호 아래 집안의 네 어른은 모두 편안히 왕생할 수 있었다. 다음은 그분들의 왕생 사적이다.
(1) 백세 할머니가 편안히 왕생하다
나의 할머니는 이름이 장신매(張新妹)이며, 근면하고 검소하며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객가(客家) 여성이었다. 할머니는 산가(山歌)를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노래를 부를 때면 자주 ‘아미타불’을 넣어 부르셨다. 누가 가르쳐 주었느냐고 물으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그저 아미타불을 노래하면 평안하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노래를 아주 잘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노래를 불러 달라고 부탁하였다.
할머니가 일흔이 넘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화가 왔다. 내가 급히 집으로 돌아갔을 때 할머니의 의식은 여전히 또렷하였다. 할머니는 밤마다 많은 귀신이 창문에 달라붙어 있고, 침대 곁에도 한 여자가 앉아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그 말을 듣고 무서워서 염불기를 틀어 놓고 할머니의 침대 곁에서 계속 염불하였다. 한밤중이 되었을 때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던 숙모가 갑자기 이불을 들고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문밖에 흑백무상(黑白無常)이 서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위해 보시를 하고 싶어 할머니의 이름으로 『염불감응견문기(念佛感應見聞記)』 50권의 인쇄를 후원하였다. 그 뒤 할머니의 병세가 호전되어 내가 할머니와 함께 마당에 앉아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이한 향기가 코끝에 풍겨 왔다. 그 향기를 맡으니 매우 상쾌하였고, 할머니는 나에게 위층에 올라가 향기가 어디에서 나는지 찾아보라고까지 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의 병은 완전히 나았다. 나는 당시 보살님께서 내려오셔서 할머니의 병을 치료해 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할머니가 여든이 넘었을 때 다시 병이 위중해졌다. 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계속 신음하고 계셨지만, 병원에서는 아무리 검사해도 병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였고 가족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당시 나는 이미 『지장경(地藏經)』을 읽어 본 적이 있었는데, 선남자나 선여인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살기를 구해도 죽기를 구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병자가 아끼는 물건을 가져다가 보시하고 삼보에 공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평생 매우 근검하셔서 돈을 거의 쓰지 않으셨다. 그러나 다급한 상황이었기에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할머니께 돈을 내어 보시하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할머니는 열쇠 하나를 내주시며 나더러 직접 장을 열어 돈을 꺼내라고 하셨다. 세어 보니 모두 8만 5천 원이었다. 할머니가 그 돈을 전부 보시하는 데 동의하시자, 나는 곧바로 향 세 대를 피우고 서쪽을 향하여 불보살님께 아뢰었다.
“저의 할머니께서 가지고 계신 돈을 모두 보시하고자 하십니다. 앞으로 업보로 인해 중병을 받아야 한다면 이 공덕을 입어 곧 병이 낫고 수명이 늘어나게 해 주시고, 업보신의 수명이 다한 것이라면 이 공덕을 입어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해 주십시오.”
내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 보니, 할머니는 놀랍게도 더 이상 괴로워 몸부림치지 않고 침대에 편안히 누워 계셨다. 이때 자손들도 모두 돌아와 있었기에 다 함께 할머니를 위해 조념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갑자기 “나 지금 다리를 건너려고 한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할머니가 깨어나 말씀하셨다.
“다리 옆에 두 명의 경비병이 있었는데, 손을 흔들며 이 다리는 매우 위험하니 건너지 말라고 하더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의 병은 완전히 나았다.
할머니가 아흔 살이 되던 해, 위출혈로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으셨다. 두 달 동안 중환자실을 드나들며 몸에 여러 개의 관을 꽂고 있어 몹시 고통스러워하셨고, 가족들도 모두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꿈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것 같았다. “네 할머니가 앞으로 장례를 불교식으로 치르고 살생하지 않겠다고 발원한다면 병이 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병원으로 가서 할머니께 이 말을 전하고, 불상 앞에서 향을 피우고 발원하시도록 하였다. 또 고모에게 녹음하고 사진을 찍어 증거로 남겨 달라고 부탁하였다. 과연 발원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병이 나았으며, 기적처럼 다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
할머니가 103세가 되던 해 8월, 집에서 할머니가 또 위독하시다는 전화가 왔다. 내가 집으로 돌아간 뒤 할머니 곁에 앉아 염불하고 있었는데, 한참 염불을 하던 중 할머니가 뜻밖에도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따라 타이베이에 가서 지내도 되겠니?”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줄곧 객지에서 죽는 것을 가장 불길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일흔이 넘은 뒤로는 거의 밖에서 밤을 보내지 않아 이미 25년 동안 우리 집에 오신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무척 기뻤다. 더욱 뜻밖인 것은 두 분의 숙부도 동의하시면서, 만일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타이베이에서 장례를 치르라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어머니가 왕생하셨을 때 숙부들은 정토종협회(淨土宗協會)에서 주관한 합동추모식(聯合公祭)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의식이 성대하면서도 장엄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타이베이로 돌아왔다.
당시 나는 자주 정토종협회에 가서 염불하였는데, 할머니의 몸이 좀 좋아지면 부축하여 협회에 모시고 갔으며, 할머니를 모시고 양명산(陽明山)으로 여행을 가기도 하였다. 연우들이 집으로 할머니를 찾아오면 할머니도 모두와 함께 염불하셨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한 달 남짓 지내신 뒤, 민국 98년(2009년) 10월에 연우들의 염불 소리 속에서 아무런 병고 없이 편안히 왕생하셨다. 24시간 동안 조념한 뒤에도 온몸이 부드러웠으며, 얼굴 모습도 편안하였다.
할머니는 장수하신 데다 자손도 많았기 때문에, 만약 시골에서 왕생하셨다면 숙부들은 틀림없이 성대한 도교 의식으로 장례를 치렀을 것이다. 게다가 할머니의 친정에도 장례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있어 이미 할머니의 장례를 자신들이 맡을 대상으로 정해 놓고 있었다.
나는 이미 시집간 손녀이므로, 집안에서의 관계로 보면 조금 먼 편이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뜻밖에 우리 집에서 왕생하셨고, 내가 전적으로 장례를 맡아 불교식으로 치를 수 있었으며, 정토종의 합동추모식에도 참여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아미타불의 자비로 할머니가 당초 세웠던 발원을 원만히 이루어 주신 것이었다.
할머니가 왕생하신 뒤, 막내 숙모가 꿈에서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매우 화려한 옷을 입고 온몸이 반짝반짝 빛났으며, 손에는 보석 한 움큼을 들고 숙모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보석이 아주 많은데, 너도 갖겠니?”
그 뒤로 숙모도 불법을 배우고 염불하게 되었다.
(2) 염불하던 어머니가 왕생할 때를 미리 알다
나의 어머니는 이름이 장서유매(張徐有妹)이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아들마저 죽는 아픔을 겪으면서 불법을 배우게 되었다. 당시 집에서 멀지 않은 정토사(淨土寺)에서 마침 대웅전을 짓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곳에 머물면서 자원봉사자들이 먹을 채소를 길렀다. 그러다가 관절이 쑤시고 아파 잠시 쉬게 되었는데, 전후로 정토사에서 5년 남짓 지냈다.
그 뒤 우리 집 근처에 매일 염불할 수 있는 염불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73세 되던 해에 내가 타이베이로 모셔 오자, 어머니는 매일 염불당의 공양간에 가서 일을 도왔다. 그 무렵에는 이전보다 더욱 정진하여 염불하였는데, 이후 좌골신경통으로 두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고, 병고를 겪으면서 인생의 괴로움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또 어머니는 나에게 시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만일 자신이 오랫동안 병이 낫지 않으면 틀림없이 나에게 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매일 향을 올릴 때마다 아미타불께 하루빨리 왕생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당시 나도 열심히 염불하고 적극적으로 조념에 참여하면서, 어머니가 아무런 장애 없이 왕생할 수 있도록 그 공덕을 회향하였다.
어머니는 몸에 병고가 있었지만 일상생활은 스스로 하실 수 있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79세 되던 해인 2006년 10월, 어느 날 갑자기 온몸에 힘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한 친구에게 부탁하여 다음 날 집에 와서 염불하도록 하였다.
그때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계실 수밖에 없었는데도 계속 고향에 계신 할머니를 부르면서 “나 내일이면 돌아갈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정신이 흐려지신 것은 아닌가 생각하였다. 이미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하시는데 어떻게 내일 돌아갈 수 있겠는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셋째 날에는 많은 연우들에게 부탁하여 교대로 조념하도록 하였다. 오전에 온 연우들은 어머니가 마치 잠을 자는 것 같고 호흡 상태도 괜찮아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오후 4시가 조금 지나 어머니는 염불 소리 속에서 편안히 왕생하셨는데, 아무런 고통이 없었으며, 입관할 때에도 온몸이 부드러웠다.
나에게는 여동생 한 명이 있는데, 천성적으로 집착이 강하여 번뇌도 유난히 많았다. 어머니가 왕생하신 뒤, 여동생은 꿈에서 매우 젊고 장엄한 모습으로 변해 있는 어머니를 보았는데, 입고 계신 옷도 아주 아름다웠다. 어머니는 여동생에게 집착을 내려놓고 열심히 염불하라고 권하셨다.
어머니는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매우 간절하였으며, 아미타불께서 자비로 섭수하시어 왕생하기 전에 병고를 겪어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하셨다. 그 결과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왕생하기 전에 왕생할 때를 미리 알았고, 왕생한 뒤에는 다시 꿈에 나타나 번뇌가 많은 여동생에게 염불을 권하기까지 하셨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아미타불께서 중생에 대한 자비가 지극하고, 구하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응해 주신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3) 암에 걸린 시아버지가 고통 없이 왕생하다
나의 시아버지는 이름이 오서청(吳瑞清)이며, 시어머니와 함께 도원(桃園) 평진향(平鎮鄉)의 시골에서 살면서 가끔 채소도 가꾸셨으며, 몸은 줄곧 건강하셔서 자녀들이 걱정할 일이 없었다. 오히려 우리가 휴일에 찾아가면 많은 채소를 챙겨 주시며 가져가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
민국 98년(2009년) 초 어느 날, 두 분이 함께 산책을 나갔다가 시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장경병원(長庚醫院)으로 모시고 가 검사를 받은 결과 뜻밖에도 폐암 말기였으며, 암이 뇌까지 전이되어 종양 세 개가 생긴 상태였다. 의사는 수술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는 곧바로 두 분을 타이베이로 모셔 와 돌보았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두 분은 매우 보수적이고 고집이 센 시골 분들이어서 늙음과 병,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더욱 꺼리셨다. 특히 누군가 염불한다는 말을 들으면 죽음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여러 해 동안 불법을 배우고 조념에 참여해 왔음에도 두 분께는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였다.
시아버지가 타이베이에 오신 뒤, 입원하여 방사선 치료를 받기로 한 바로 전날 정토종협회의 정수(淨修) 법사가 일부러 집으로 찾아와 시아버지께 이렇게 법문해 주셨다.
“이런 병은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반드시 낫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차라리 열심히 염불하며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십시오. 수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병은 자연히 나을 것이고, 수명이 다했다면 마침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됩니다.”
뜻밖에도 시아버지는 법사님의 권유를 그대로 받아들이셨다. 동시에 남편에게 “병원에 잡아 놓은 입원과 치료를 모두 취소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뒤로 집에서 염불하셨으며, 시어머니와 함께 거실을 돌며 염불하기도 하셨다. 때로 공원으로 산책을 모시고 가면 걸으면서도 염불하셨고, 휴일이면 나와 함께 정토종협회에 가서 염불하기도 하셨는데, 그 정진하는 모습은 사람을 감동하게 하였다.
시아버지는 타이베이에서 석 달 남짓 지내자 고향을 그리워하기 시작하셨다. 무엇보다 자신의 장례는 반드시 고향에서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셨고, 남편을 포함한 삼 형제가 돌아가며 시아버지를 돌보았다.
시아버지는 우리가 오랫동안 불법을 배워 많은 법사와 연우들을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다. 그래서 남편에게 거듭 “네가 나를 돌볼 차례가 되면 나는 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과연 민국 98년(2009년) 7월, 남편이 시아버지를 돌보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시아버지는 연우들의 조념 소리 속에서 아무런 고통 없이 왕생하셨다. 왕생하신 뒤 얼굴빛은 생전보다 더욱 불그스름하고 윤기가 돌았으며, 모습도 장엄하고 보기 좋았다.
시아버지는 암이 발견되기 전까지 불법을 전혀 접해 본 적이 없었고, 염불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셨다. 그러나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안 뒤에는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 탓을 하지도 않았고, 낙심하거나 의기소침해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염불에 용맹정진하셨다. 그 뒤로는 단 하루도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고 다른 치료도 받지 않으셨으며, 전심으로 아미타불의 명호에 의지하였는데, 왕생할 때까지 몸에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으셨다.
시아버지가 이처럼 순조롭게 왕생하신 것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숙세의 선근이 드러났기 때문에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자비와 원력이 은연중에 그를 변화시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암 말기의 한 노인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수십 년 동안 지녀 온 생각과 견해를 바꾸고,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아미타불의 구제를 온전히 믿고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4)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가 편안히 서방정토에 왕생하다
나의 시어머니는 이름이 호다매(胡茶妹)이다. 민국 98년(2009년) 시아버지에게 암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불법을 거의 전혀 접해 본 적이 없었으며, 시아버지가 병에 걸린 뒤에야 비로소 염불을 시작하셨다. 시아버지가 왕생하신 뒤에는 세 아들의 집을 돌아가며 지내셨다. 게다가 치매를 앓아 인지 능력이 점차 떨어졌기 때문에 염불도 하다 말다 하셨으며, 염불하시라고 말씀드려야 비로소 염불하셨다. 때로는 “염불하면 입이 아프니 좀 쉬어야겠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매우 교양 있는 어른으로,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남을 꾸짖는 일이 없으셨고, 세 끼 식사도 먹을 것만 있으면 그만이었으며, 음식이 좋고 나쁜 것을 따지는 일도 없이 일상생활을 모두 스스로 해 나가시는 매우 온화하고 자상한 분이었다.
시어머니는 치매 외에도 예전에 뇌졸중을 앓고 종양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모두 잘 회복되었으며, 그 밖에는 다른 병이 없었다. 그러다가 올해(2012년) 9월, 곧 왕생하기 한 달 전부터 장기의 기능이 쇠퇴하여 음식을 삼키기 어려워졌고, 유동식만 드실 수 있었기 때문에 몸이 점점 야위어 갔다. 막내 시동생은 시어머니가 영양실조에 걸릴까 염려하여 병원에 모시고 가 수액을 맞게 하였지만 별다른 차도는 없었다.
그해 10월 4일, 시어머니는 다시 열이 나서 병원에 입원하였다. 의사는 삽관을 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우리는 시어머니가 더 이상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퇴원 수속을 밟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지 두 시간 남짓 만에 시어머니는 왕생하셨다.
예전에 내가 가장 걱정했던 분은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가 염불에 가장 정진하지 않는 것 같았고, 게다가 치매까지 앓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수(淨修) 법사에게 “저희 시어머니 같은 경우에도 나중에 조념을 받으면 왕생할 수 있겠지요?”라고 여쭈었다. 정수 법사는 매우 확신에 차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왕생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습니다.”
과연 시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셨지만, 그것은 단지 신체 기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일 뿐 실제로 신식(神識)은 매우 또렷하였다.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법사의 법문과 연우들의 조념을 받고, 24시간이 지나자 온몸이 솜처럼 부드러웠으며 피부는 생전보다 더욱 탄력이 있었고 거의 모든 관절을 움직일 수 있었다.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면 참으로 우리의 무거운 죄업이 소멸되고, 광명의 비춤을 받아 몸이 부드러워지는구나!
내가 불법을 배운 뒤 가장 큰 소원은 집안의 네 어른이 모두 아미타불의 자비로운 구제를 받아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금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라고 생각하였다. 이제 집안의 네 어른은 모두 임종할 때 집에서 편안하고 아무런 고통 없이 왕생하셨다. 이것은 우리에게 가장 큰 위안이었으며, 우리 가족 모두가 불법을 배우고 염불함으로써 가장 큰 이익을 받았다.
앞으로는 더욱 부지런히 염불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널리 불법을 믿고 염불하도록 권하여 아미타불의 크나큰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다.
(불영(佛迎) 거사 기록, 2012년 11월 15일)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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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 거사의 큰 효심 수희찬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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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의 왕생을 돕기위해
헌신하신 연우님 수희 찬탄합니다
빈틈없이 구제해주시니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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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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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念佛真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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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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