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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사람 죽이는 사람
출애굽기 2:1~10
(출 2: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출 2: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출 2: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출 2: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출 2: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출 2: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출 2: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
(출 2:18)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출 2:19)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출 2:20) 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출 2: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출 2: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출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출 2: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출 2: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제가 저 자신에게 대하여 대견하게 여긴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만리포로 교인들과 더불어 수련회를 갔을 때입니다. 저는 그 당시 6살이었던 둘째 딸을 자그마한 고부 보트에 태우고 손으로 노를 저어 바다 깊은 곳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내려 보트를 밀어주면 아이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되어 보트에서 내리다가 그만 보트가 홀딱 전복(顚覆)되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물속으로 휩쓸려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을 때 저는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속을 찾아 봤지만 마침 썰물 때문에 아이가 어디로 떠내려갔는지 알 수조차 없었습니다. 서해바다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바다가 뿌옇기 때문에 더욱 찾기에 어려웠습니다. 그 때 제 마음속에 내가 죽더라도 이 아이는 어떻게 하든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다 속에 잠수하여 휘저으며 찾다가 아이가 제 팔에 닿아 건져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살렸을 때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참 아빠로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내가 죽어도 아이를 살려야 돼!”하는 마음이 저로 하여금 자긍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사람은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살아날 때 기쁨을 얻게 됩니다. 사람에게서 영원토록 빛을 발할 수 있는 자세는 사람을 살리는 것일 것입니다. (단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했습니다. 나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죽이는 사람입니까? 스스로를 평가해 보십시오!
모세의 생애를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40년은 애굽의 왕자로서 그리고 40년은 미디안의 척박한 땅에서 양떼를 치는 목동으로 하나님의 연단을 받았고 남은 40년의 기간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광야 40년을 저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모세의 초기 40년간 애굽의 왕자로서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당시의 애굽은 세계 최강의 문화와 부요를 누리는 나라였습니다. 제가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에서 국립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1층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고 상층에는 소규모의 조각상과 보석류, 투탕카멘 왕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중 왕족 미이라 전시실에서는 열한 명의 왕과 왕비의 미이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왕들의 시신들을 미이라로 만들었고 그들의 황금관도 전시되었는데 그 규모가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불가시의라고 알려진 피라미드도 1개당 2.5톤으로 추정되는 석재 숫자는 230만개를 쌓아 올려 210단까지 올린 피라미드는 약 4500년 전에 지어진 것입니다. 이것만 보더라고 그 당시의 애굽의 찬란한 문화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문화를 바탕으로 모세는 최상의 학문과 지식을 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삶의 결과는 살인자로 전락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로하여금 살인자로 되게 하였나요?
오늘 11절에서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왕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양육했던 분은 그의 친 어머니 요게벳이었습니다. 그녀는 유모로 들어와 모세가 히브리족속임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그런 연유로 자기 동족이 애굽인에 의하여 무참하게 짓밟히는 노동 현장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12절에서는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고 했습니다. 그의 성향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사람임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사람을 죽여 모래 속에 감추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사람의 특성이 있습니다. 자기 의를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잠 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정한 룰(rule)따라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배운 학문도 지식도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이튿날 자기 동족이 싸우는 것을 보고 잘못한 사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라고 항의하자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고 오히려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자 모세는 두려웠습니다.
지난 8월에 개그맨 출신 서세원씨와 서정희씨가 이혼했다는 보도가 매스컴에 올랐습니다. 부인인 서정희씨는 32년 결혼생활은 자기에게 포로생활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루도 편한 날이 없고 입에 상스런 폭력적인 욕을 달고 살면서 자기주장은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입장으로 그렇게 아내를 억압하고 짓이기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배운 것이 많아지고 지식이 증가되면서 사람들은 자기를 내려놓기가 참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결혼에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살기 때문에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서로 팽팽하게 줄다리기 하다가 이것이 끊어짐으로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며 헤어지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모세가 갖고 있는 인간성의 한계입니다. 많은 학문으로도 종교교육과 도덕 윤리로도 사람을 살려 낼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은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살리시기 위하여 자신을 내어드려 죽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사실을 깨닫고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너희를 살리기 위하여 자기는 죽는다는 고백입니다. 스스로 죽는 것이 말과 같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나를 죽이기로 작정하셨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고전 4: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 했습니다. 왜 나를 죽음의 골짜기로 들어가게 하십니까?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죽이는 사람에서 살리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납니다.
15절에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고 했습니다. 왕자가 사람 하나를 죽였다고 해서 도망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상황에서 애굽의 바로는 투트모세3세(Thutmose)였는데, 그는 부친 투트모세 2세와 궁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투트모세 2세의 왕비인 핫셉슈트(Hatshepsut)는 아들을 낳지 못하자 모세를 강에서 주워 자신의 양자로 입양 시켰던 것이지요. 이러한 때 투트모세2세가 일찍 죽자 모세를 입양시킨 투트모세 1세의 무남독녀 핫셉슈트가 애굽의 실권을 장악했고 아울러 모세의 지위도 격상되었습니다. 그러자 핫셉슈트에 눌려 섭정기에 있었던 야심에 찬 투트모세3세는 자신의 확고한 왕권 구축을 위해서 최대의 정적(政敵) 모세를 제거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차에 모세의 애굽인 살해 사건이 들리자 이것을 민족적 감정으로 비화시켜 모세를 제거코자 했고, 이에 모세는 어쩔 수 없이 도망치기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 뒤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놓여 있습니다. 사람에의 하여 도망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도망을 간 곳은 미디안 땅의 한 우물곁에 앉게 되었습니다. ‘우물’하면 떠오르는 것 없습니까?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셨던 곧이 바로 이 우물이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물을 찾으셨던 것처럼 모세도 하나님의 크나큰 경륜에 의하여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우물로 인도하셨던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은 그 앞에 언제나 사람을 예비하시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번에는 미디안 제사장에 이르도록 하십니다. 여기서 '제사장'이란 어떤 종교를 불문하고 신에게 제사를 집례하는 사제(司祭)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곳에 등장하는 미디안 제사장도 유일신 여호와를 경배하는 자라고 보기는 힘들고 당시 고대 근동 지역에 권능자로 알려진 셈족의 하나님 '엘'(El)을 숭배했던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훗날 이스라엘의 출애굽 기사를 들은 후 여호와 신앙으로 쉽게 개종할 수 있었던 것있고 모세의 장인이 된 '르우엘'이었습니다.
21절에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로 하여금 의아하게 여기는 대목이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라는 구절입니다. ‘기뻐하다’는 ‘야알’(la'y)이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단어는 ‘'특정한 행동을 시작하기 위해 의지적인 결단을 내리다'입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는 것을 염두에 두고 흔쾌히 지금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야알‘입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모세의 반응을 보고 르우엘이 그의 딸 십보라를 아내로 내어주었습니다. 결국 모세는 십보라를 사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애굽에서 수많은 화려한 여인들이 둘러쳐 있었을 때 느끼지 못한 사람의 감정이 그에게 찾아 왔음을 말하는 대목입니다. 결국 사랑이란 낮아 진 사람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잘난 사람끼리의 만남은 위험하기 그지없습니다. 스물두 살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으로 훌쩍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3년 만에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헤이스팅스 로스쿨에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변호사 자격을 받아 캘리포니아 주 검사로 임용됐고, 청소년 사역을 시작하면서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이민아 목사입니다. 그녀가 그렇게 사랑해서 이 남자라면 평생 후회하지 않고 사랑할 거라 기대했던 분은 김한길씨입니다. 김한길 씨는 《눈뜨면 없어라》는 자서전에서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이나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 미국생활 5년 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 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3층짜리 새집을 지어 이사한 한 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라고 말입니다. 낮아진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낮아진 사람이 사랑의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23절에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정확한 시간관념이 희박했던 고대인들의 관습적 표현으로서 '매우 오랜 기간이 경과한 후'라고 번역됨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인을 살해하고 도피하던 당시의 나이가 40세였고 모세가 바로 앞에 나아갔을 때가 80세였므로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약 40년간의 지루한 세월을 보낸 것이 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자의 자존심이 꺾일 대로 꺾이는 것이 처가살이인데 모세는 처가에 얹혀 살며 장인의 양을 기르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양을 치는 목동에게 무슨 학문이 필요하며 웅변술과 무도(武道)가 필요하겠습니까? 그 모든 것이 다 쓸모없게 느껴지고 그에게 남아 있는 유용한 도구는 양을 치는데 필요한 마른 막대기 하나입니다.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마른 막대기가 그에게 그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막대기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피로 변하고 홍해를 치면 갈라지고 반석을 치면 목마른 이스라엘 백성과 짐승들이 마실 수 있는 물이 솟구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살리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들려주신 것은 근사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초라하고 별 볼일 없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구가 되어 구속의 흐름을 잇게 한다면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