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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서울문학심포지엄 주제발표 원고/2016.11.28.월.오후 3시/서울특별시청 신청사 홀
서울문학의 향유와 공유
- 서울에 뿌리를 둔 수필 문학작품들 -
최원현
nulsaem@hanmail.net
1. 들어가기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다. 영화 속 배경으로는 많이 소개가 되고 있지만 문학 속에서는 그다지 조명 받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수필 장르에선 더 그런 것 같다. 이번 서울문학축전에서 ‘서울문학의 향유와 공유’란 주제 하에 ‘서울에 뿌리를 둔 문학작품들’을 찾아보자고 한 것은 그런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서울(서울特別市)은 우리 대한민국의 수도이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백제의 첫 수도인 위례성, 고려시대의 남경(南京), 조선의 한성(한양)으로 수도가 된 이후 대한민국의 정부중앙청사와 청와대 등이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다. 도심으로 한강이 흐르고, 북한·관악·도봉·불암·인왕·청계산 등에 둘러싸인 도시이다. 면적은 대한민국 전 국토의 0.6%에 불과하지만 인구는 전국 인구의 20%나 되는 약 1천만 명이 살고 있다.
서울의 뜻은 신라 수도 경주를 서라벌(徐羅伐)·서벌(徐伐)·서나벌(徐那伐) 등으로 부른 데서 비롯된 말로 서울의 ‘서’는 수리·솔·솟의 음과 통하는 ‘신령스럽다’는 뜻이며, ‘울’은 벌·부리가 변음 된 것으로 벌판·큰 마을·큰 도시라는 뜻이라 한다.
서울은 경제부흥과 함께 세계 속 도시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세계의 유명한 도시들처럼 영화나 문학의 중요한 배경은 되고 있지 못함은 아쉬운 일일 뿐이다. 뿐 아니라 근래엔 좀 덜하지만 우리나라 작가들에게서도 서울을 소재로 한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수필도 마찬가지가 아녔나 싶다.
이런 가운데도 서울을 주제로 한 수필 공모가 이뤄진 것이 몇 있다. 서울특별시가 1997년(1회)부터 ‘서울 사람들 삶의 이모저모를 담은 서울이야기’의 수필을 공모했다. 한글 뿐 아니라 영어·중국어·일본어 권의 사람들까지도 서울 이야기를 쓰게 하여 세계 속 서울을 심기에 노력해 왔다. 그런가하면 문학의 집 서울(이사장 김후란)에서는 2013년부터 ‘사랑으로 쓰는 우리 동네 이야기’ 공모전을 하고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내가 살고 있는 동네·골목·이웃·건물·자랑거리·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수필 형식으로 응모케 하는 것이다.
지역별로도 이런 공모가 이뤄지고 있다. 양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서울사람들의 이야기를 공모하고 있다. 또한 강남문인협회(회장 최원현)가 공모한 ‘강남이야기 전국 공모전’의『강남이야기』(2015)도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의 내용을 보면 미처 우리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서울의 모습과 역사적 사실까지도 알게 된다.
특히 2006년 문학의 집 서울(이사장 김후란)이 개관 5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2006 서울문학인대회를 개최하면서 문단 활동 10년 이상 된 문학의 집 중진 회원들에게서‘내 작품 속의 서울, 그곳은 지금 어떤가’ 라는 주제로 글을 받아『서울을 품은 사람들』(2006.10.25.발행)이란 제목으로 펴낸 두 권의 기념문집은 기성문인 156명의 서울사랑이 담긴 책이요 글이라는 데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본고(稿)에서는 서울특별시의『서울이야기』, 문학의 집 서울의『서울을 품은 사람들 1.2』와 그 외 수필로 발표된 서울 주제의 수필들을 통해 추억 속의 도시 서울·역사 속의 도시 서울· 문학작품 속의 도시 서울·서울 수필 등으로 수필문학 작품을 통한 ‘서울 문학의 향유와 공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추억 속의 도시 서울
어디라고 추억이 안 될까마는 비교적 서울은 지방도시나 시골과 달리 추억을 향유하기엔 약한 감이 없지 않다. 발전과 변화는 소멸과 창조를 동시에 수반한다. 그러자니 있는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가 하면 새 것을 위해서는 옛 것은 포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 대세의 흐름을 이겨낼 수 없는 것이 또한 시대다. 그 시대는 그 둘을 다 수용하고 포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간이 가면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되고 그들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갖게 되는데 서울 또한 그런 변화 속에서 추억 속 도시가 되고 만다.
“옛날에는 밤섬이 지금보다 훨씬 컸지유. 그리고 지금처럼 세 동강이 나있지도 않았구유. 우리 집이 저 앞에 보이는 두 번째 섬의 큰 나무가 있는 데 있시유.“
노인의 눈가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혀 있었다. 같은 서울인데도 강변도로 아래의 저수부지는 고향땅을 밟는 듯하였다. 노을빛도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노인은 길을 가면서도 자꾸 이야기를 꺼냈다.
박상기 「마지막 배 짓는 노인」중
내가 향유하고 있던 것이 없어져 버리면 특히 내가 살던 곳이 변해 버리면 삶의 기본이 흔들려 버린다. 뿌리가 없어진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인의 눈가에 맺힌 이슬을 작가는 놓치지 않았는데 그건 누구에게나 있는 고향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었던 그 언덕이 지금 흑석동 넘어가는 고갯길 아래쪽이다. 그 부근이 노량진 즉 옛 노들나루였으니 우리가 놀던 곳이 노들강변 언덕이었다. 지금 행정구역상의 노량진은 한강대교를 건너 우측, 흑석동과는 반대쪽인 여의도에 이르는 길 안쪽으로 사육신묘와 수산시장이 있는 지역이니 내 추억 속의 노들강변은 그 이름을 잃어버린 것이다. 김설려 「노들강변」중
이상 두 편은 서울특별시가 공모한 제1회(1997) 서울이야기 공모전 수필들이다. 달라져 버린, 내가 놀고 자라고 살던 곳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난다.
내 소설의 주인공처럼 내가 다니던 명동 입구의 칠성구두점이며 명동극장과 명동서점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엘리자베스 구두 살롱과 파리다방과 코지코너도 세시봉과 고려정도 다 없다. <올페>를 보고 <백조의 호수>를 눈 크게 뜨고 감상하고 최은희의 코리아를 보던 시공관은 어디로 갔는가. 다 없어졌다. 아스라한 신기루인 양 살아있던 생물인 양 그것들은 다 어디론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없다. 김녕희소설가 「명동 엘리지」(2006)
김녕희 소설가는 서울 모습을 작품 속에 많이 넣고 있다. 그래서 서울에 대한 정이 더 깊은 것 같다. 소설가가 다니던 명동은 작품 속에서도 나오지만 작가 스스로가 즐겨 다니던 곳이었다.
우리 집이 개포동으로 이사 온 지가 22년이 되었다. 그때 아파트 주변에는 밭들이 많았다. 양재천 주변에는 파밭 수박밭이 있었고 농부들이 다리 아래에서 농사를 지었다. 여름 밤, 수박서리 하는 젊은이가 수박을 들고 거리를 가끔 뛰어갔고 가을철 다리 아래에 있는 밭에는 팥 단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조한숙「양재천의 5월」(2006) 중
한 곳에서 20년을 넘게 살면 고향과 다를 바 없다. 어디보다 변화가 많았던 강남도 옛날엔 다리 아래서 농사를 짓고 팥 단이 수북이 쌓였었다니 실로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60년대 서울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자연하천으로 좁아질 대로 좁아진 청계천의 천변풍경을 기억할 것이다. 그곳은 더 이상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가 아니라 서민의 고단한 삶을 받아주는 골목으로 자리했었다. 헌책방과 판자촌, 갈길 잃은 나그네의 힘없는 발걸음이 연상되는 청계천이다. 윤재천 「살아있는 전설」(2006) 중
청계천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추억으로 기억된다. 60년대의 청계천변을 기억하는 이는 지금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문학작품을 통해 그 때의 정경을 구현해 내면 그걸 읽은 사람들 나름으로 그것들을 유추해 내고 기억을 새롭게 하는 것도 문학의 힘이 아니겠는가.
이상은 문학의 집이 발간한『서울을 품은 사람들』에 실린 작품들이지만 서울은 이렇게도 작품 속에서 우리에게 추억 속의 도시 서울로 살아있다.
3. 역사 속 도시 서울
앞에서도 후백제의 서울 위례성으로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는 역사 속 각 나라의 서울임을 말한 바 있지만 서울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도시다. 역사란 흘러가 버린 것들에 대한 사실의 기록이지만 우리 기억 속에 있던 것들을 살려내서 역사화 시킬 수 있는 것이 또한 기록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이란 60-70년이 고작이다. 하지만 그 기억이 문학과 만나면 지나가 버린 역사적 사실도 오늘의 것처럼 살아나게 하고 또 오래도록 기억되게 한다. 지금 이 자리가 어떤 곳이었는지도 알게 하는 역사할아버지가 되게 하는 것이 또한 문학이다.
동묘를 지나면 술 많이 마시고 외나무다리 건너기 시합이 벌어지곤 했던 형제추탕 옆으로 미나리 깡과 연못이 있고, 그 뒤 동남쪽에는 수만 평의 경마장이 있어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무리들이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저녁이면 찢어버린 마권이 늦가을 낙엽같이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경마장도 6.25직후 경비행장으로 변하였다 없어지고 경마장은 뚝섬으로 다시 과천으로 옮겨졌다.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간다. 이재순 「동대문 밖 지난날의 소묘」중(1999)
서울이야기 공모 작품이다. 동묘 동남쪽에 경마장이 있었는데 뚝섬으로 옮겨갔다가 지금의 과천으로 옮겨갔다는 역사적 사실이 작품을 통해 말해지고 있다. 경마장 자리는 경비행장이 되었다가 없어졌단다.
1936년 서울, 경성은 인구 70만의 대도시가 되었다. 청계천변의 위생문제와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청계천 시내 구간을 일부 복개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1958년부터 4년간에 걸쳐 청계천 도심부 구간이 전면 복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표교는 현재의 장충단 공원에 옮겨져 있으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표교는 지금의 한강교처럼 청계천의 물높이를 재는 기준점 역할을 했다. 김후란 <수표교 이야기)(2006) 중
독립문 일대는 1960년대에 전찻길이 없어지더니 1970년대와 80년대를 관류하면서 다시 한 번 크게 변하여 예전의 모습이라고는 영천시장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찾아볼 수 있을 뿐 완전히 단 동네처럼 탈바꿈해 버렸다. 영천 전차 종점 서족에 있던 서대문형무소는 일 부문만 남기고 모두 헐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변했고 형무관학교 자리와 우리 집이 있던 현저동 104번지는 서대문독립공원이 되었다. 폐허가 된 양잠소 언저리에는 대신고등학교가 들어섰고 인왕산과 안산(속칭 말 바위)으로 오르는 언덕배기에 게딱지처럼 오밀조밀 그러나 삶의 냄새를 물씬 풍기며 정답게 붙어있던 집들은 모두 그렇고 그런 무미건조한 아파트로 변신했다.
김용성 소설가 「내 문학의 고향, 독립문 일대」 중
위의 두 편은 문인들의 서울이야기다. 수표교와 독립문 일대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이처럼 문학작품은 지금은 볼 수 없는 역사 속의 도시 서울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고 그 변화의 크기와 속도도 알게 해 준다.
4. 수필문학 작품 속의 서울
서울은 향수를 일으킬만한 곳은 아닐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각도로 영향을 주는 도시이다. 특히 작가들에게 서울은 선망의 곳이 되기도 하고 작품을 낳게 하는 산실로 문학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거나 배경으로 또는 작품이 있게 하는 모티브로 나타난다.
나는 어디론가 끊임없이 서성이고 다녔다. 광화문 근처 서점을 드나들고, 음악이 좋은 찻집에 드나들고, 그러나 나는 혼자였다. 그때마다 원효로 행 전차는 제자리에 섰다. 발이 붓도록 걸으면서도 굽높은 하이힐을 고집했다. 나는 전차에 오르면 너무 고마워 자리에 앉을 생각조차 없었다. 남영동 문방구점에도 나는 오래 머물렀다. 갖가지 필기용구가 탐나고 하얗게 가지런한 줄무늬 노트를 만지작거렸다. 내 방황의 영토는 서울의 한 부분 원효로 행 전차가 뜨고 내리는 지점이 고작이었다. 박정희 시인 「시 50년대-3의 원효로 언덕」 중
시인의 방황은 서울이기에 가능했을 수 있다. 그 때 그런 그의 방황은 고뇌와 함께 깊은 사고를 불러왔을 테고 오늘의 시인이 되게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시인이기 전의 시인을 방황케 한 서울이 그를 시인이 되게 하지 않았을까.
녹사평에서 삼각지로 빠지는 그곳, 그 언저리를 사우스 포스트라 하는 것 같은데 42년도 더 되는 그 옛날에 나는 그곳에서 알바를 했었다. 세탁소 종업원, 물탱크차 기사, 하우스보이에 하우스 걸, 초소의 가드, PX에서 좀도둑질도 했었던 아가씨들, 그 사람들, 그 한국 사람들, <외인촌 입구>를 쓰게 했던 그곳 사람들.
이제 그곳에 공원이 들어서면 나는 반드시 그곳에 가서 다시 서 보리라. 그러면 내 마음 속에 무엇이 다시 펼쳐질까. 박순녀 소설가 「달칵달칵 마차소리」(2006)
소설가는 작품 속 주인공에게 서울을 맘껏 살게 한다. 그 삶이 너무 힘든 것일지라도 그걸 통해 그 시대의 어려움을 함께 느끼게 하고 연민하게 하고 그 시절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중에도 정조가 쓴 편액이 걸려있는 주합루, 기우제를 지내 비를 오게 했다는 희우정, 그리고 왕비가 누에를 쳤다는 서향각 앞 뽕나무에서는 오디를 따 먹었다. 소요정이나 부용정은 한낮엔 정사에 파묻혀 피곤한 임금이 저녁에 신선처럼 노닐 수 있었던 곳이란 생각도 들었다. 엄숙하고 근엄하던 상감도 곤룡포를 벗어 던지고 너털웃음과 소박한 인정을 베풀 만한 자리였을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유혜자 「비원 환상」(2006) 중
서울에만 있는 궁은 서울을 서울이게 하는 가장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행여 L선생님과의 약속시간에 늦을세라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택시를 타긴 했어도 언제나 내리는 곳은 영미다리 앞이었다. 그 이상은 택시가 갈 수 없는, 미로 같은 가파른 비탈길, 한 두 사람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좁아터진 골목이었으니까.
영미다리는 그 옛날 단종이 그의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봉 돼 강원도 영월로 유배가면서 정순왕후와 이별한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변영희 「추억의 영미다리」(2006) 중
이상 4편 모두 2006년 서울문학인대회 기념문집인 문인들의 서울이야기다. 시인 소설가 수필가 등 저마다 다른 작가의 눈과 마음으로 작품 속에 서울을 그리고 있다.
옛날 이곳은 아흔아홉 칸의 한옥이 있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대청마루가 훤하게 보여서 대청마을이라고 불리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한옥의 기와 한 장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공사를 시작하더니 공원이 들어섰다. 볼썽사납게 지저분한 양철 벽으로 막혀 있던 곳은 허물고 벚나무를 심고 오솔길을 만들었다. 도심 속의 작은 산책코스가 되었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걷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고 삼삼오오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는 사람도 보였다.
강남구 대청역 옆에 있는 마루공원은 그렇게 태어났다. 괴괴하던 곳이 공원 하나로 사람들을 밖으로 나오게 한다. 어느 날 나도 밖으로 나왔다. 임금희 「마루공원 출생신고」(2015)
위의 글은 문학의 집이 공모한 ‘우리 동네 이야기’의 글이다. 강남구 대청역 옆 마루공원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알게 해 준다. 이처럼 작품으로 서울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태어났다. 뿐 아니라 시인이 되게도 했고 소설가가 되게도 하고 수필가가 되게도 하여 스스로 작품 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5. 수필로 써진 서울 수필
시나 소설에 서울에 관한 작품들은 많다. 본 고를 위해 수필도 많을 거라 생각되어 찾아보았지만 급한 마음에서인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 수필들도 많이 쓰여졌을 거라 생각한다. 아래의 두 작품은 수필로 발표된 서울 수필이다.
심여 년을 넘게 맞이하는 갈현동의 봄은 어느 동네에서 비견할 수 없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자태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경탄을 일게 한다. 대부분의 집 담장 곁에서 시작되는 봄의 화신은 개나리 가지에 앉아 청순한 꽃송이의 노오란 옷을 입는다. 그리고 천 마리 종이학을 접어 소원을 비는 소녀의 기도일까. 학의 무리가 날개를 접고 목련의 가지에 앉았다. 순백의 하양 목련이 꽃잎을 연다. 지연희 <갈현동의 봄>(1987) 중.
차가 어쩌다 사직동 근처로 지나가면, 늘 고개를 빼고 밖을 내다본다. 사직동은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제2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사직공원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좁은 골목이 있다. 그 모퉁이에 가게가 있는데 그 집에는 생강을 하얗게 말린 편강이나 거무스름한 치자 몇 알이 든 봉지가 밖에까지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이정림 <사직동 그 집>(2006)
갈현동과 사직동 이야기다. 작가마다 사는 곳, 또는 가본 곳에 따라 그곳에 대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 천 마리 종이학을 접어 소원을 비는 소녀의 기도로 개나리꽃을 보는가 하면(지연희), 생강을 하얗게 말린 편강이나 치자 봉지가 주렁주렁 걸려있는 풍경의 유년시절 그곳은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이정림)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런가 하면 이명재 문학평론가는 서울에 관해 쓴 글을 수필을 통해 말해 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내가 서울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쓴 글은 두 편이다. 서울 정도 6백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위한 평론 <문학 속의 서울 조감도>(1994년 여름)와 수필 <강남생활 20년>(1996년 3월)이 그것이다.
이명재 문학평론가 「강남생활 30년에」 중
이 수필에 인용된 이명재 교수의 수필 「강남생활 20년」은 이랬다.
‘이곳 강남이 정든 데다 집에 가득한 책을 옮기기가 귀찮아서 일산 신도시 개발 때 당첨됐던 아파트를 포기하고 지내다 보니 어느새 전국 명소 주인으로 격상되기도 했다. 바로 서울의 8학군인데다 선릉역 근처이며 대치동 인접이고 해서 덤으로 집값 또한 오른 행운을 맞이한 셈이다. 어쩌면 이곳 강남은 필자가 태어나 자란 시골의 아늑한 제동마을에 버금갈 만큼 제2의 고향이라 여겨진다. 소중한 청소년기에 이어서 이곳 강남은 내 자신에게 값진 중장년의 새로운 터전이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갈현동, 사직동, 강남이란 서울의 지역들이 이처럼 그곳에 사는 작가에 의하여 작품으로 살아나고 그것들을 읽는 이에게 공감과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6. 나가기
서울은 이제 우리만의 서울이 아니다.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곳이고, 우리의 문화를 세계문화 속에 펼치는 곳으로 세계문화의 중심이 되어가는 곳이다. 한류의 발원지고 우리의 김치는 세계 식탁을 평정하려 하고 있다. 얼마 전 에어 캐나다를 탔는데 기내식 매 끼마다 포장된 김치가 나왔고 메뉴로 아예 김치볶음밥도 나왔다. 우리의 서울 또한 아직까지는 미약하나 많은 세계인이 와보고 간 곳으로 필시 문학작품 속에서도 많이 언급되리라 믿는다. 필자도 서울에서만 어언 50년을 살아왔다. 제2의 고향이라기보다 고향으로의 비중이 더 크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알게 모르게 내 문학의 배경이요 중심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은 농촌을 고향으로 가진 사람보다 감정이나 정서면에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아래 글이 그것을 증명한다.
고향이 서울이라 해서 남들과 다를 바는 없다. 오래도록 떠난 적이 없어 턱없이 그리운 적이 없을 뿐, 고향이 주는 이미지는 다르지 않다. 서울은 타관인 사람들에게 언제나 낯설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서울을 벗어나면 불안해 지고 ‘여기는 서울입니다’ 표지판을 대하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김훈동 「서울찬가」 중
그렇다. 정 붙이고 살다보면 그곳이 내가 가장 살기 좋은 곳이고 내 삶이 있고 내 사랑이 있고 내 문학이 있는 곳이다. 노(老) 시인은 그래서 이렇게 서울사랑을 고백했다.
하늘엔 무지대로 길을 열어주었고 한강은 꿈속에서도 흐르고 있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신 것도 이 서울에서였다. 우리나라 서울은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이다. 우리들의 영원한 서울이다. 우리의 서울은 언제나 눈을 뜨고 있다. 황금찬 시인 「서울을 사랑한다」(2006) 중
서울만 한 곳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고 본다. 서울에 살고 서울을 문학으로 향유하고 공유하는 행복과 특권을 누리는 우리이기에 더욱 서울을 사랑하고 더욱이 문학인인 우리는 문학으로 우리의 서울을 더욱 빛내야 되지 않을까 싶다.
* 참고 도서
제1회 서울이야기 수필공모 수상작 모음집 『서울이야기』(서울특별시. 1998.2)
제2회 서울이야기 수필공모 수상작 모음집 『서울이야기』(서울특별시. 1998.12)
제3회 서울이야기 수필공모 수상작 모음집 『서울이야기』(서울특별시. 1999.12)
제4회 서울이야기 수필공모 수상작 모음집 『서울이야기』(서울특별시. 2000.12)
제5회 서울이야기 수필공모 수상작 모음집 『서울이야기』(서울특별시. 2001.12)
2006 서울문학인대회 기념문집 1『서울을 품은 사람들1』(문학의집 서울. 2006.10)
2006 서울문학인대회 기념문집 2『서울을 품은 사람들2』(문학의집 서울. 2006.10)
범우문고 285 『사직동 그 집』(이정림. 범우사. 2015.10)
강남이야기 공모전 수상작품집『강남이야기』(강남문인협회 간. 2015.12)
최원현 http://cafe.daum.net/Essaykorea
수필가·문학평론가,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 강남문인협회장·한국수필작가회장 역임, 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현석김병규문학상 등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오렌지색 모자를 쓴 도시』등 14권. 문학평론집『좋은 수필 쓰기와 수필 바르게 읽기』『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 중학교 교과서《국어1》《도덕2》및 여러 교재에 수필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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