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 드셨습니까
공양 드셨습니까 라는 인사를 자주 받는다. 공양이란 불교 전문용어다. 시주하는 물건 또는 시주물을 불단에 올리는 행위를 공양이라고 한다면 이 인사는 왜곡된 언사다. 공양물을 살피면서 정성이 어디로 미치는가를 살펴 본다.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며 향을 사루어 올림은 업장소멸을 위한 기도다. 향은 촛불에서 붙여 낸다. 촛불은 자기를 태워 빛을 내면서 여기저기 두루 어두운 곳을 밝혀준다. 광명을 필요로 하는 부분은 무명無明이다. 그래서 지혜로워지고 싶은 간절함으로 촛불을 켠다.
불전佛錢이라는 이름으로 현금을 보시한다. 현금은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때 많게 또는 적게 세분하여 지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나눔의 매체로서 적합하다. 내년도 달력을 보시하고 싶다는 신도가 있다. 불구상佛具商에 함께 가서 주문한다. 불전을 보시하는 마음으로 결재를 한다.
쌀은 오복을 대표하는 먹거리다. 그래서 오복증진五福增進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쌀을 보시한다. 보자기나 포대에 싸들고 오지 않는다. 쌀가게로 하여금 배달하도록 주문한다. 일단 보시가 이루어지면 공양미供養米가 된다. 래사객來寺客의 식사가 되거나 떡으로 만들어져 이웃과의 나눔에 쓰인다.
초파일이면 일 년에 한 번 절에 발을 디디는 신도도 연등蓮燈에 불을 밝힌다. 부처님 재세시에는 자기 등을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 달았다. 요즘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등에 이름표를 붙여 네 것과 내 것을 구분한다. 간절하게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밝히는 소원성취 등燈이다.
차茶를 달여 올리는 경우도 있다. 덖은 잎이나 발효 잎으로 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보시는 수명장수壽命長壽라는 원대한 기도가 스며있다. 꼭 오래 살게 해달라는 소망을 발현한다기보다 막연한 평화와 화목을 기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불단에 빠뜨릴 수 없는 공양물 중 떡과 꽃이 있다. 떡은 우애화합友愛和合 하고자 하는 소망이 담긴다. 부부간, 형제간, 이웃간 등 관계개선이다. 꽃華은 모두가 귀히 되고자 함을 발원하는 귀한 마음이 담긴다. 웬만한 절이라면 꽃花 보살이 지정된다. 그만큼 서로 담당하고자 경쟁적으로 요청을 하기에 형평을 유지시키는 방편으로 윤번제로 지정한다.
좌우보처 끝단 어디쯤에 인등引燈이 꺼지지 않는다. 연등이 가족 등이라면 인등은 개인 등이다. 전도명조前途明照라는 원대한 꿈이 실린다. 전기가 없던 시절에도 인등이 있었을까 싶은 의구심이 들지만 일단 끄지 않는다. 개인의 앞날이 잠시도 어두워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에서다.
과일이 빠질 수 없다. 봄에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땅 기운과 하늘 기운을 다 보듬어 숙성하면 씨앗을 잉태한다. 지혜와 결실이라는 풍요를 안고 있다. 과일은 맛이나 영양을 초월하여 부귀를 상징한다. 제사상처럼 조棗, 율栗, 이梨, 시柿를 죄다 포함하지는 않는다. 바나나, 파인애플 등 신종 외래과일도 정성들여 차리면 풍요를 발원하는 공양이 된다.
자손이 지혜롭기를 발원한다면 대두(大豆 ; 콩)를, 액운소멸厄運消滅을 원한다면 소두(小豆 ; 팥)를, 부부화목夫婦和睦을 발원코자하면 지마(芝麻 ; 참깨)를, 백년해로百年偕老를 이루고자 한다면 면자(麪子;국수)를, 자손번창子孫繁昌을 기도하고 싶거든 해채(海菜-미역)를 공양물로 올리면 소원성취가 쉽다고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공양물과 기도종류에 관련된 데이터는 많지만, 꼭 그렇다는 논리적 근거가 되기보다는 대부분 추상적이다. 불단에 오른 공양물을 섭취하는 행위를 공양이라는 말로 통칭하기도 한다. 명사가 동사화 하는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토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통용되는 용어로 수용하는 분위기다. 스님께 공양 드셨습니까 물으면 식사 하셨습니까 정도로 이해하자는 결론이다.
공양供養은 산스크리트어 푸쟈 또는 푸쟈나pū–janā를 번역한 말이다. 상대에 대한 존경의 뜻에서 향 등을 바치는 것을 이른다. 이 점 브라만교에서 말하는 어떤 보수를 구해서, 또는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 신에게 희생을 바치는 『공희供犧』와는 그 의미를 달리한다. 공희에는 동물의 피가 포함 되지만 공양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고대 인도의 종교시宗敎詩 『바가바드기타』에는 희생으로써 바쳐진 음식물을 허비하면 하늘에서 쫓겨 날 위험에 처해진다고 하였다.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대홍수가 신에게 바쳐진 음식물을 쓸어 보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희생물을 바치자 신들이 벌떼처럼 떼를 지어 모여들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처럼 공희나 공물이 신들이나 사자를 먹여 살리는 음식물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향ㆍ음식 등의 재물을 공양하는 이利공양과, 수행을 통해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법法공양이 있다. 찬탄 공경하는 경敬공양, 불법을 받아들여서 수행하는 행行공양을 더하여 삼공양 이라고도 한다. 사사四事공양 이라고 하여 음식, 의복, 와구, 탕약을 이르기도 한다. 심업心業공양은 운심運心공양, 이심以心공양, 심의心意공양이라고도 하는데 공양하는 대상에 따라서도 구별된다.
공양의 종류가 많다고 하여 복잡할 것은 없다. 공양에 쏟는 마음 즉 정성이 공양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공양 드셨습니까 라는 인사말에는 신도들이 마련한 공양물을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면서 드셨습니까 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오늘 이렇게 곱씹어봄은 과연 나는 공양물에 깃든 정성을 충분히 새겨보고 있는지 돌이켜 보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