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의 아픔.
엄OO님 (경기도 김포시)
저는 88올림픽이 한참이던 때에 입대하여 90년 말에 제대한 육군 헌병대 출신입니다.
사건은 90년 봄, 꽃들이 화사하게 피던 5월, 그때 당시에는 군에서 고래잡이(일명 포경수술)을 모든 병사들이 거의 다할 때였습니다.
우리 부대 내에도 거의 90%가 군 생활 말년에 했을 정도였습니다.
사제병원에서 하는 병사도 있었지만, 돈도 아낄 겸 정문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어 대부분 의무대에서 의무병에게 하곤 했지요.
90년 초 나도 어엿한 병장 3호봉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부대에서 ‘김OO 병장님’이라고 있었는데 그분은 병장 8호봉, 한두 달 있음 제대였기에 서둘러 고래잡이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사건은 어느 날 햇볕도 따뜻한 일요일 오후,
근무가 없던 나는 김병장의 호출을 받아 의무대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전날에 의무병에게 부탁하여 고래잡이 수술을 부탁하셨던 모양입니다.
우리는 px에 들러 음료수 한 박스를 들고 의무대로 향했던 거죠.
의무대에 도착한 우리는 의무병에 음료수를 건네고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에 제대한 고참도 여기서 다 고래를 다 잡았으니까요.
근데 좀 이상한 것은 그전에 수술한 그 병사들이 아니었던 거였습니다.
우리의 김병장님은 좀 떨렸었는지 나하게
김병장 - “이봐 엄병장, 니가 먼저 하면 안 되겠냐?”
나 - “김병장님, 난 아직 군대생활이 많이 남았고
김병장님이 먼저 하셔야죠.”
김병장 - “그래도 니가 먼저 하면 안 되냐?”
조금 불안했던 나는
나 - “안됩니다. 고참이 먼저 하셔야지 어떻게 쫄따구가 먼저 하겠습니까?”
극구 사양을 하고 있는데 수술실에 수술준비를 다한 의무병들이 빨리 들어오라는 재촉과 함께 김병장님이 들어가셨습니다.
우리의 김병장님은 불안하지만 의무대 병사들인데 하고 조금은 안심을 하며
들어가시더라고요.
수술실과 밖에 의자의 거리는 불과 3미터 안팎.
안에서 나는 수술 가위소리 핀셋 놓는 소리가 다 밖에서 들리고 말하는 소리도 다 들립니다. 수술실에서 의무병들이
의무병 - “자,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들리더군요. 김병장님은
김병장 - “그래 잘 부탁한다.”
이윽고 수술은 시작되었습니다.
의무병 - “마취하겠습니다.”
김병장 - “응, 알았다.”
김병장 - “아~!!! 왜 이리 아프냐?”
의무병 - “마취 주사 놓을 땐 좀 아픕니다. 참으십시오."
제법 그럴듯하게 말도 하고 입에는 수술용 마스크도 쓰고 완전 의사처럼 보였습니다.
의무병 - “느낌이 있습니까?”
김병장 - “아니 아무느낌이 없어.”
의무병 -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들고 달그닥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의무병 - “큰일났다. 큰일났다.”
옆에서 보조하던 부하 의무병이
의무병2 - “왜 그러십니까?”
의무병 - “잘못 짤랐다. 이거 어떡하지?”
의무병2 - “김일병님, 그냥 묶어놓고 이것먼저 자르시죠.”
의무병 - “그럴까?”
싹둑싹둑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의무병 - “큰일났다. 이거 어떡하지?”
김병장 - “야~ 이넘들아! 왜 그래?”
의무병 - “이거 자르면 안 되는 거 같은데?”
김병장 - “니네들 뭘 알고 수술을 하는거야?”
의무병 - “솔직히... 처음 하는 겁니다.”
김병장 - “뭐야? 오늘 처음 하는거란 말이지?”
의무병 - “네. 나도 병원에서 내 것 하는 거 보고
할 수 있을거라 생각되기에...”
의무병2 - “별거 아닙니다. 계속하겠습니다.”
이렇게 두 의무병이 이렇게 하면 된다, 안 된다 의견싸움을 하면서 우리의 김병장님을 마루타 삼아 수술을 계속하였지요.
밖에서 이걸 듣고 있는 나는 잘못될까봐 걱정도 되면서 의무병들이 ‘큰일났다, 큰일났다’ 하는 소리가 얼마나 웃기전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한참 웃었습니다.
이렇게 20분이 흘렀을까.
김병장 - “아야~! 나 죽는다~!”
의무병 - “거의 끝나갑니다. 마취가 깰 때가 되어서 그럴 겁니다.”
이렇게 30분가량의 수술을 끝낸 우리 김병장님은 거즈에 피가 흠뻑 뭍은 상태로 수술실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잠시 후 김병장님이 나에게
김병장 - “야~ 엄병장, 너도 들어가서 해라.”
나 - “아닙니다. 곰곰이 생각하니까
난 군대생활이 아직 6개월 정도 남았는데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김병장 - “그럼 나만 하란 말이냐?”
나 - “김병장님은 제대하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여 우린 의무대에서 김병장님을 부축하며 연병장을 걸어서 내무반으로 들어왔습니다. 피는 나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없는 듯 보였습니다.
저녁도 잘 먹고 약도 잘 먹었고, 문제는 새벽이었습니다.
김병장 - “아~악 너무 아프다.”
내무반장 - “김병장, 너 왜 그래?”
김병장 - “어제 수술한 곳에 피가 너무 많이 납니다.”
내무반장 - “어디 보자.”
하다니 내무반장이 빨리 의무대로 후송하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수술을 한 부위가 넘 짧게 짤라 꼬메서 그자리가 터진 겁니다.
이렇게 새벽에 난리를 치르고 우리의 김병장님은 의무대로 후송을 갔지요.
다음날 나는 오전 영창 근무를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많이 보던 병사들이 있는 겁니다. 어제 수술했던 그 의무대 병사 2명이 아침에 영창에 들어와 앉아있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의무 쪽으로는 공부한 게 없고 의료 방사선과를 다니던 학생이여서 의무대에 왔는데 김병장님은 그것도 모르고 먼저 고참들이 모두 의무대에서 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수술을 한 거였습니다.
그때 선배들을 수술해 줬던 의무병은 모두 제대한 사실은 모르고 있었지요.
김병장님은 일주일 의무대에 후송을 마치고 돌아와 무사히 제대를 하셨답니다.
그 후론 절대 의무대에서 고래잡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아무도 수술을 못하였답니다. 대신 부대 근처 행신동의 산부인과와 자매결연을 맺고 다음부터는 행주산부인과로 가서 수술을 하였지요.
김병장님 지금도 수술 부위는 무사한거죠? 한번 뵙고 싶네요.
첫댓글 사연주셔서 감사합니다